이 이야기는 모든 요리치분들께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요리 어느정도는 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밥은 기본적으로 짓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몇개 나물정도는 할줄 알죠.
그리고, 요리에 대해서 별 큰 신념은 아니지만 딱 하나 지키는게 있는데
'처음하는 요리는 최대한 레시피를 준수하고, 바리에이션은 몇번 더 해본뒤 시도하라.'
가장 기본이지만 중요한거죠. 이건 꼭 지킬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이걸 지키지 않고 삼천포로 빠지는 분들이 많죠.
요리치분들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이건 제 친구중 한 놈에게도 속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는 제가 공익하던 시절이군요. 얼추 3년전인가?
금요일 근무 끝나고, 토요일에 잉여잉여하게 지내던 도중에 전화가 오더군요
누구인가 봤더니 꽤 오랫동안 전화 안하던 친구놈이더군요.(왠일이지?)
나: 어, 왠일이냐?
친구: 야, 너 요리 좀 하지?
나: 어...조금은 하지?
친구: 나 요리좀 가르쳐주라
(통화종료)
...순간 뭐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등에 싸한 기운이 오더군요.
뭔일있겠냐 싶어 일단 요리도구용 클리버와 칼 몇자루, 도마를 챙겨갔습니다.
가보니, 여러 재료를 사놓은 친구놈이, 스튜(그것도 토마토 비프스튜)를 가르쳐달라는겁니다.
스튜야, 원래도 자주 재료 사서 해먹기도 하고, 토마토 비프스튜는 레시피도 많으니,
일단 제가 자주 해먹는 레시피를 보여주고 옆에서 보조만 해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이 스튜란게 말입니다.원래 고기를 볶아 어느정도 고기육수를 낸 뒤에, 야채를 볶고, 토마토를
넣어 뭉근하게 끓여 만드는 음식이란 말입니다.
근데 이 색희는 레시피대로가 아닌, 야채를 먼저 볶고 고기를 볶으려 하는겁니다. 일단 옆에서 고기를
볶은 다음에 야채를 넣고 볶자고 달랬습니다. 근데, 이번엔 토마토가 아니라...바나나를 쳐넣으려 하네요?
레시피대로 안하는거에서 오는 분노 1스택은 일단 참고, 바나나를 왜 넣으려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친구놈의 이 말이 제대로 빡치게하더군요.
"숨은맛이지 숨은맛. 토마토 대신에 좀 더 부드럽고 단맛을 살짝 주는거지."
농담안하고 아주 살짝 화나서, 들고왔던 클리버를 만지작거리면서 친절하게 말해줬습니다.
"...요리해본적 없는 놈이 숨은맛 숨은맛. 이 지랄 한번만 더 해봐. 함만 더 개소리 지껄이고
레시피대로 안하면 네 왼손과는 영영작별인줄 알아."
라고 하니, 그 다음부턴 조용히 해라는 대로 다시 만들더군요(아, 물론 바나나 넣었던건 다 버렸습니다.
요리수준이 아니였거든요).
요리치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디 미슐랭 별5개 짜리 레스토랑의 셰프가 아니에요. 뭐든 처음은 레시피를
준수해서 만드는거에요.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