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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요청합니다(깁니다)

미린애
2020-08-06 19:48:09 237 1 3

가입한지 오늘에야 7일이 지나서 올려봅니다 

1화와 그 뒤가 분위기가 다르다 생각해서 피드백을 요청합니다


헌터가 없는 세상


<1화> 9300자


 유난히 천둥 소리가 내리치던 어느 날, 의문 모를 균열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균열을 단순한 촬영의 부품으로 여겨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의 등장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최초의 게이트다.

하지만 소설, 영화 등의 매체에서 수없이 등장한 장르이기에 너무나도 익숙했고, 몬스터들은 화기로 충분히 사살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일상을 어그러뜨리지 못했다.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중상자조차 거의 나지 않을 무렵, 그것들의 시체를 연구하는 것도 익숙해졌고.

그렇게 몇 년은 평화로웠다. 음모론이 나돌았지만, 그것도 잠시. 세계는 뒤집히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안정의 주춧돌을 부수며 시작된다. 군인들과 시체를 가져간 몇 연구자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갔다.

균열에선 점점 큰 몬스터가 나와 사상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균열의 주변에선 호흡하기 힘들어졌다. 이때도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상에선 능력자는 언제 나오냐고 농담만 나눌 뿐이였다.

“아저씨, 이거 중학교만 나와도 다 아는거에요.”

“수업 시간에 잔 새끼는 닥치고 듣자.”

“······.”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연구자들은 병의 원인을 균열에서 나오는 물질이라 밝혀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그 물질은 ‘마나’ 또는 ‘기’라 칭해졌다.

마나가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며 점점 많은 것들에 마나가 깃들었지만, 건물 정도의 인공적인 것들은 마나가 깃들지 못했다.

몬스터들은 크기에 따라 소형종, 중형종, 대형종이라 분류됐고, 크기에 걸맞지 않은 능력을 가진 이레귤러와, 학습하고 발달하는 인간종으로 다시 구분되어졌다.

한편, 생명을 걸고 시체를 연구한 자들에게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

“하, 새끼가 코를 시원하게도 골아재끼네. 지가 물어본 거면서. 야, 인나봐.”

진혁은 착실한 어른이가 되기 위해 꿈나라에 가 있는 지훈의 머리를 가격하며 깨웠다. 몇 번을 내리쳤건만 꿈나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훈에게 질린 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텄다 텄어. 그래, 꼰대짓 안 할 테니 눈이라도 좀 붙여라.”

진혁은 코를 비틀어 주의만 준 후 바닥에 내려놨던 총을 꼬나쥐었다. 

지금이 몇 년도인지도 모르는 지금, 그들은 괴수들을 피해 안전지대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이 어드메냐, 옳지. 여긴가?”

진혁이 이제는 없으면 심심한 혼잣말을 지껄이며 지역지도를 펼쳐 안전지대까지의 거리를 쟀다.

남은 거리는 10km. 길바닥에 널린 잡것들의 시선을 피하며 가기엔 빡센 거리다. 짐덩어리까지 달고 가야 한다면 더더욱.

진혁은 이제는 잠꼬대까지 해대는 짐덩어리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물병을 꺼내 손에 살짝 묻힌 후, 손을 뺨과 어깨에다 가져다댔다. 이것은 진혁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의 잠을 깨울 때 하셨던 방법이다.

효과는 죽여줬다. 깜짝 놀라 상체를 드세게 일으켰으니까.

“이제 슬 밥먹고 출발하자. 부지런히 가면 오늘 안에는 도착하니까.”

진혁이 머리에 부딪힌 코를 붙잡고 말했다. 코맹맹이 소리는 자신이 내고도 이상했다.

“에이, 어떻게 사람이 스무 시간 동안 걸어놓고 또 걸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가죠.”

“얘야, 옛날에 군대에선 스무 시간은 기본이였단다. 닥치고 걸으려무나.”

“악, 목소리 소름 돋아.”

깡구 극장판에 나온 양성마녀의 목소리를 따라해주니, 삭막했던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그들은 배낭에 있던 참치캔을 따 하나씩 한입에 털어넣었다. 지훈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는데, 식량은 그게 마지막이였다.

아직 지훈은 모르지만. 기껏 올린 분위기가 떨어지잖아.

대신 진혁은 그나마 넉넉한 물병을 하나 던져줬다.

금세 헤실거리며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조심스레 물을 마시는 모습은 진짜···.

“아오, 평소에 나무껍질만 까먹고 살았나, 왜 그리 맛깔나게 처먹는건데!”

지훈이 먹는 것을 보는 사람은 위가 땡기고 침이 그치지 않을 정도로 식욕을 돋군다.

‘그래서 예상 밖의 식량 소모가 늘었지.’

하나만 먹어도 버틸 것을 지훈이 먹는 모습만 보면 손이 가니 식량이 안 남아나고 배길까.

그나마 많던 물도 이제는 빈 페트병만 남아 배낭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본인은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걸 모르는지 행복한 웃음만 짓는다.

그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수록 진혁은 한숨만 푸욱 내뱉는다.

“다 먹었냐?”

지훈이 배낭을 들춰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러면 다음에 할 말은 한가지다.

“가자.”

진혁은 짐을 재점검하고 거리에 잡것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자는 놈들만 보인다.

그는 조심스레 허리에 매뒀던 대검을 꺼내 총구 아래에 단단히 끼웠다. 건물의 문을 열고 나가자 지훈이 뒤에 따라붙었다.

지금부터 숨소리도 조심해라. 입모양으로 조심스레 뜻을 전하니 지훈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들은 보도에서 깨진 유리 밟는 소리를 낼 바에 차라리 잡것들 한가운데를 걸어가기로 했다.

지훈에게 계획을 수화로 전달했을 때 그는 왼손을 관자놀이 옆에서 빙글 돌리며 진혁을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진혁이 보도 위의 유리를 가리켰을 때 지훈은 죽상을 지으며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따라가는 것의 확률이 가장 높아보였으니까.

차도엔 온갖 잡것들의 배설물과 바닥에 새겨진 탄흔, 부서진 차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뽐냈다.

그 가운데 두 명의 불청객이 주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어간다.

그들은 발뒤꿈치를 드는 것도 모자라 신발까지 벗고 걷는지라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훈은 진혁의 배낭에 온갖 것이 들어있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에 장탄식을 내뱉었다. 물론 소리 없이.

‘이제 5km 남았군’

진혁이 아직 품에 넣지 않은 지도를 훑었다. 이제 주위에 잡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몬스터 중엔 비행이 가능한 개체도 있어서 한 번 그놈들에게 발각되는 순간 주위의 모든 친구를 부르기 때문이다.

진혁은 배낭을 열어 마지막 남은 물병을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터져나오는 지훈에게 꺼내줬다.

지훈은 물병을 받고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목을 축였다.


물을 다 마실 때까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지훈도 조금이나마 체력을 채운 것 같으니 얼마 남지도 않은 길 속도를 올려 걷기로 했다.

진혁이 고개를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저 멀리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 잘도 주무시고 있는 잡것들은 야행성이다. 빨리 가야 한다.

방금까지 걷던 것이 살금살금 걷는 것이라면 지금은 거의 반쯤 뛰어간다. 지훈도 용케 요령껏 소리를 죽이고 진혁의 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기세로 간다면 해가 완전히 숨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여기서 질문, 정신없이 걸어간다면 발밑을 잘 살필 수 있는가? 진혁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지훈은 아니였다.

지훈이 진혁의 등만 보고 정신없이 걸어가다 밟은 부서진 차도의 조각이 매우 흔들린다.

지훈은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훈이 다른 조각으로 몸을 옮김과 동시에 흔들리던 조각이 단숨에 뒤집혔다.

“······!”

먼지가 그들에게 쏟아졌다. 진혁은 재빨리 지훈을 껴안고 몸을 돌려 몰아치는 잔돌을 대신 맞았다.

먼지가 가라앉으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샛노란 보석 두 개. 잡것의 눈깔.

지훈은 진혁의 품 사이에서 저 멀리 건물에 박힌, 자신이 밟고 있던 조각을 발견했다. 조각은 차 한 대 정도 크기지만 저것의 덩치를 봐선 장난감일 터다.

지훈은 최대한 크게 숨을 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짐이라도 됐다간 냉정하게 미끼로 쓰일 것이다.

이젠 그런 세상이니까.

잡것이 그들을 신기한 것 보듯 고개를 기울이며 바라볼 때 진혁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필 이레귤러냐···.”

조금만 더 가면 안전지대건만. 진혁은 뒷말을 삼켰다. 쓸모없는 희망은 사치. 지금은 머리를 굴려야 할 때.

근처에선 소란이 있었던 탓인지 주위 잡것들이 부스스 일어난다.

개중 일찍 정신을 차린 놈들은 하울링으로 친구들을 부른다.

진혁은 자신이 잡것이라 부르는, 명칭 ‘도마릴라’. 도마뱀과 고릴라를 합쳐 부른다는데 이런 개같은 이름을 지은 새끼들에게 욕을 퍼부어줬다. 이런 상황에도 웃기잖아!

잡것은 전체적으로 도마뱀 형태에 고릴라의 팔다리와 꼬리가 없는 것 외엔 도마뱀과 모양이 같다.

그런데 왜 이리 긴장하냐고? 크기가 소형차거든.

“근데 x발 저건 왜 버스만해?”

진혁의 가감 없는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레귤러는 그들의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우위를 깨달았는지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아저씨, 저 새끼는 꼬리가 있는데요? 꼬리에 흙 묻어있는 걸 보니 저 꼬리로 조각을 날렸나봐요.”

“야 이 x친놈아 저것들은 꼬리가 없. 어, 있네, x벌.”

진혁은 당황했다. 중형종이 대형종으로 변이한 것도 보기 힘든데 신체변이까지. 불행이 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x된 것 같은데요.”

36계 줄행랑은 안된다. 덩치차이가 극심해 작은 몸뚱이를 놀려 봤자 바로 밟힐 것이다.

진혁은 하, 짧은 기합을 내뱉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방법이 없잖아.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은 독기만 남긴다. 의식적으로 조절하던 행동의 제한을 푼다. 몸을 이완하여 언제든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게 데운다.

동시에 지훈을 보냈다. 저 멀리 안전지대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근처는 자주 소탕하는지 1km 안에 몬스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믿고 보낼 수 있다.

수많은 사선을 넘긴 진혁의 감이 말해준다. 저 이레귤러는 위험해.

후- 후웁- 후-

수많은 사선을 넘기며 수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졌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후- 후웁- 후-

이레귤러는 여기서 죽일 것이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안전지대의 사람들을 위해.

후- 하-

이레귤러의 뒤에서 잡것들이 슬슬 기어온다. 진혁은 싸움에 불필요한 모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것은 앞에서 잡것들을 이끄듯 양손을 들어올린다. 진혁은 몸의 이완을 끝냈다.

쿠쾅!

쏜살같이 양손이 진혁이 있던 곳을 내리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잡것들이 몰아친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양옆에서 잡것 둘이 아가리를 열어 그를 씹어먹으려 했다.

진혁은 둘 중 침을 흘리며 온몸으로 허기를 표현하는 놈에게 선물을 줬다. 왼쪽이 입을 다물자 총검이 입술 위를 반으로 갈랐다. 피부는 매우 여리다.

잡것의 패턴은 셋. 돌덩이를 들어 던지거나, 도마뱀같은 아가리로 깨물거나, 팔로 내려치던가.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점 섞인 피가 튄다.

끼으에에엑!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비명.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사는 지옥의 경쟁.

진혁은 침착하게 한 놈씩 줄여갔다. 흙먼지를 뚫고 근접하는 놈들은 총검으로 찢어발겼다.

기어이 붙어서 공격하는 놈이 있다면 칭찬의 선물로 모가지를 찔러 고기방패로 사용했다.

멀리서 돌을 던지는 놈들은 감각적으로 총을 쏴 대부분의 머리를 일격에 관통했다.

또 한 놈이 쓰러지지만 소음을 듣고 어디선가 하나둘씩 튀어나와 상대하는 숫자는 줄지 않는다.

그는 기계적으로 살육하고 또 도살했다.

지속되는 전투로 먼지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 무엇이 먼지를 뚫고 들어오는지를 일일이 판단해야 하기에 정신력 소모가 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먼지를 헤쳐나가기엔 위험부담이 크고 체력은 아직 몸을 지탱해주니까.


이제 잡것들이 섣불리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주위는 머리가 난도질된 잡것들의 시체가 가득하다.

탄창은 슬슬 바닥을 보이고 총검은 피로 무뎌졌다.

‘이제야 공포를 느끼나?’

그가 원한 결과는 단 하나, 자신을 포식자라 여기게 하는 것이다. 성공적이다. 실루엣만 보이는 잡것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친다.

흙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진혁은 두 눈을 의심했다. 머리는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다리에 신호를 보냈다.

“이런 젠장!”

퍼석. --쾅!

“커헉!”

한 박자 늦었다. 이레귤러만이 유일하게 달고 있는 꼬리로 진혁을 찔렀다.

진혁은 공격을 최대한 흘리기 위해 총으로 방어하고 발을 떼기까지 했는데도 포탄처럼 날라가 벽에 부딪혔다. 그가 부딪힌 벽은 적잖은 실금이 갔을 정도니 육체에 틀어박힌 충격은 더 할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는 본능적으로 보호했는지 살짝 깨진 정도다. 대신 그만큼의 고통을 현실에서 더 누려야 한다. 진혁은 바로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점은 꼬리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총이 ㄱ자로 구부러져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이건 답이 없네.’

고통을 빠르게 끝내는 방법은 두 가지.

대부분의 뼈가 작살난 몸을 이끌고 이레귤러를 잡아 안전하게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모든걸 포기하고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쿨럭, 제기랄. 선택권이 없나.”

그는 총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 했지만, 총의 구부러진 부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숴지며 다시 쓰러졌다.

“하, x랄맞네.”

진혁은 간신히 바로앉았다. 그런 그의 앞에는 눈이 반달로 휜 이레귤러가 꼬리를 탁탁 내리치고 있었다.

카악 퉤. 입가에 모인 피를 끌어모아 뱉었다. 참 살기 빡센 세상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마나 입자를 걸러주는 마스크를 꺼내곤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마스크를 안 썼었지?

동료들이 몰살했을 때?

마나병에 걸렸을 때?

나를 지탱하던 모든 것을 잃고 삶을 포기했을 때?

뭐가 됐든 뭔 상관이야.

지금 죽는데.

“아니.”

아니아니.

여기서 죽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낭비인 거지.

지금까지 잘 살아오다 고작 저런 잡것 때문에 죽으면 먼저 간 얘들한테 쪽팔리는 거지.

이레귤러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진혁에게 다가간다.

“나는!”

진혁은 마스크와 함께 있던 알약을 씹어삼키며 마지막 각오를 외쳤다.

“살거야!”

이레귤러가 본능적으로 진혁을 죽이기 위해 네 발로 뛰어갔다.

모든 것을 잃고 목표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오던 진혁이 가장 원초적인 각오를 세웠다.

약이 그 각오에 힘입어 그의 몸을 변화시켰다.

마나에 찌들어 생기를 잃던 장기들이 마나를 이용해 회복한다.

세포 하나하나가 생기가 돌고 모든 근육이 활성화됐다.

모조리 조각났던 뼈가 피부를 뚫고 빠져나가고 그 자리엔 새로운 뼈와 살이 돋아났다.

온몸에 격통이 가득하다. 진혁이 새까만 피와 함께 몸을 좀먹던 마나를 토했다.

‘이건······.’

환골탈태가 이러할까? 온몸에 생기가 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결코 해가 되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바로 코앞에서 이레귤러가 양팔을 내리친다.

일시적인 전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저 팔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혁은 현실을 직시했다. 공격을 막는 대신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진혁의 머리 위에서 히죽 웃는 소리가 났다. 이레귤러의 다리 사이에서 꼬리가 그의 몸을 향해 매섭게 뻗어갔다.

진혁은 자신을 향한 꼬리에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왠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진혁은 꼬리를 발판으로 삼아 어깨를 향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가볍게 성공했다.

이레귤러는 어깨에 무게를 느끼고 고개를 홱 돌려 진혁을 쏘아봤다.

파리를 낚아채듯이 손을 뻗었으나, 진혁이 머리를 타고 반대편 어깨로 뛰어가 그를 잡지 못했다.

‘무기가 없군.’

그는 대검과 총 외에도 임시로 쓸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만, 꼬리를 맞고 날아갈 때 떨어뜨린 듯하다.

“뭐 어때.”

아가리를 반으로 찢어버리면 되지.

그는 한쪽 발을 이레귤러의 잇몸 위에 고정하고 양손으로 윗입술을 잡아 반대로 접었다.

접으려고 시도했다. 이레귤러는 잡것들과 달리 피부가 더 질겼다. 게다가 한쪽만 들어올려지니 반대로 넘겨지지가 않았다.

이레귤러의 눈깔이 진혁을 응시했다. 진혁은 이제 좆됐음을 느꼈다.

설상가상 전능감이 빠져나가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약발이 사라져가는 듯하다.

이레귤러가 꼬리로 진혁을 찌르려 하지만 대가리가 부족한지 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가리에 힘이 빠진다. 진혁은 그때를 이용해 아가리를 서서히 찢는다.

이제는 초읽기다. 누가 이득을 보지 못하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진혁은 최선을 다해 먼저 아가리를 찢으려 했으나 결국 약발이 끝났다.

전능감이 휘감았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무기력감이 온몸을 훑었다.

그가 힘이 빠지자 서서히 찢어지던 입이 다시 다물어진다. 여유를 되찾은 이레귤러의 눈깔이 다시금 반달로 휘었다.

“아오, x발 저 개같은 반달눈깔. 피눈물이 나게 해주고 싶네.”

진혁이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끝인 듯하다.

---타앙!

그때. 강렬한 총소리가 진혁의 소원대로 이레귤러의 눈깔에서 피가 철철 흐르게 해줬다.

이레귤러가 불의의 일격에 형용치 못할 비명을 지를 때 저 멀리 안전지대에서 무장한 사람들과 지훈이 재빨리 뛰어오는 게 보인다.

“허억, 아저씨. 10분간 잘 버텨주셨네요?”

“뭐 x발, 넌 이게 잘 버틴걸로 보이냐? 거의 다 잡은거지. 어디서 날로 처먹으려고”

말은 거칠지만 살겠다는 표정을 짓고 총에 맞지 않도록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나저나 10분이라니. 체감 시간 개같이도 느렸-. 어어, 저 새낀 왜 이쪽을 쏴?’

생명이 경비의 사격실력에 달렸다는 걸 깨달은 진혁이 자기 근처에 총탄이 박힐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지훈은 진혁이 소리지르는 걸 보니 아직 팔팔하다 생각하며 웃었다.

죽으면 저런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니까.


첫 탄에 눈을 잃은 이레귤러의 반항은 대단했다.

기어이 자경 대원들에게 다가가 몇 사상자를 낼 뻔했지만, 진혁이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반대쪽 눈까지 기어가 피눈물을 시원하게 내줬다. 그만큼 진혁의 팔은 피로 물들었다.


무수한 화망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이 난도질된 이레귤러가 쓰러졌다.

한쪽 눈에 팔을 박고 버텼던 진혁이 대자로 누웠다. 지훈이 진혁에게 다가갔다.

“흐핳, 끝났냐?”

“···네. 이제 눈 좀 붙이셔도 됩니다.”

지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시 미뤄뒀던 고통이 한 번에 밀려왔다.

몸이 치료됐다 하더라도 피로와 전투의 후유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진혁은 그 와중에 깨끗한 마스크를 펴봤다.

그는 마스크에 써진 글을 발견하고선 처연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겸둥이 진혁이에게.

이걸 펼쳐본다면 난 이미 죽은 몸이겠지. 이유는 너도 알 거라 믿어.

사람이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서 겸둥이 지녁이를 치료하려 했는데

마치 세계의 법칙이 막는 것처럼 온갖 방도를 짜내도 불가능하더라.

사람 외에는 잘만 받아들이는데 말이야.

그래도 운이란 게 있나 봐.

함께 동봉된 약은 일시적으로 마나를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게 해주는 약이야.

하지만 실험은 못 해봤기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아무렴 어때! 너에게 마지막 선물을 줄 수가 있는데. 음, 너무 무책임한가?

이제 자리가 없네.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길 바래. 이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녀!

P.S. 이 글은 물에 넣으면 지워져. 마스크는 빨아 쓰면 돼.

-너의 소중한 여자친구. 미래가]


“하아······. 그 약 맛탱이 더럽게 없더라.”

진혁은 마스크에 써진 유언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곤 왼팔로 눈을 덮었다.

은구슬이 뺨에서 또르륵 흘러내린다. 모두가 그의 고독을 방해하지 않았다.

어쩌겠어, 살아가야지.

진혁은 자경 대원 한 명이 가져와준 배낭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낸 후 마스크 사이에 꼈다.

‘이제 할 일 다 했네. 좀 쉬자.’

진혁은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동시에 참고 참았던 피와 기침을 토해냈다.

“어? 아저씨!”

저 멀리 이레귤러의 시체를 옮기던 지훈이 당황하며 자경 대원 몇과 함께 뛰어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미래와 찍은 사진과 마스크를 꼭 쥔 채.

앞으로 어떤 시련이 찾아오든 나는 살아갈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2화> 6300자


 “···여기가 어디지?”

진혁이 정신을 차린 곳은 천막 안에 있는 야전침대 위. 천막 안은 진혁이 누웠던 침대와 향초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모든 소지품을 확인했고, 야전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몸이 아프지 않아.’

짐 다음으로 점검하는 건 육체.

어제는 기절하기 전까지 피부와 기관지가 매우 아팠건만, 지금은 무척이나 가볍다.

천막 밖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이곳은 안전지대인 것 같다.

진혁은 괜히 나가 소란스러워지기보단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진혁은 그동안 배낭 위에 있던 마스크의 글을 외울 기세로 읽고 또 읽었다.

미래의 마지막 흔적, 미래가 쓴 글, 선물. 진혁은 미래가 원했던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대신,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선택해도 되겠지?’

몬스터를 몰아내고 모두가 다시 주인이 되어 사는 삶.

진혁은 몬스터에 죽은 가족과 동료, 미래같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노라 결심한다.


틱, 티디딕, 팟.

“이야, 불도 안 켜시고 뭘 그리 열심히 하고 계십니까.”

누군가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오래된 전구는 소리내며 깜빡거리다 포근한 빛을 제공했다.

“불이 꺼져있어도 잘 보였으니까.”

“아유, 그러면 눈 나빠져요.”

그는 들고 온 간이 의자를 펼쳐 진혁의 앞에 앉았다. 진혁은 마스크를 배낭 위에 올려뒀다.

“예,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전 당신이 돌봐준 지훈이의 친한 형이자 이 안전지대의 관리자 박상훈이라고 합니다. 지훈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랑자, 양진혁.”

진혁은 초면인 상대에게 긴장을 풀고 모든 것을 밝히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상훈도 이해한다는 듯 깊게 캐묻진 않았다.

“그럼, 뭐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밥과 씻을 물을 가져다줄 수 있어?”

“밥은 곧 올 겁니다. 씻는 곳은 따로 있어요.”

저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상훈은 왼쪽을 가리키곤 다시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

밥이 올 때까지 다시 자려고 누웠던 진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지훈은 진혁을 확인하자 희희 웃으며 들어왔다.

“아저씨 아니야, 새끼야. 창창한 23세 청춘한테 아저씨라니. 형이라고 불러.”

“형, 용케 살았네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약과 적절한 지원이 없었다면 그는 확실히 죽었을 거다.

“뭐 하려고 왔어?”

“어떤 상태인가 보려고요.”

“보다시피 잘 살아있다.”

“밖에 웅성거리는 소리는 모두 형 보고 싶어서 나는 소리래요. 이레귤러를 혼자 잡을 뻔했잖아요.”

지훈은 진혁이 꼬박 하루를 누워있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가,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와 같은 필요한 내용과 어디네 누구는 무엇을 잘한다 등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종종대며 말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훈이 식판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지훈을 보자마자 발로 엉덩이를 깠다. 지훈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상훈이 낄낄댔다.

“보아하니 아직 씻지는 않으신 것 같네요. 창피한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1인실이니까.”

그리고 너, 왜 여깄는데? 으아악, 살려줘요! 지훈이 귀를 잡히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진혁은 숟가락을 놀렸다. 밥은 맛있었다.


‘아직도 웅성거리네.’

밥을 다 먹었는데도 밖에 웅성거리는 소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진혁은 더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크흑!’

그를 반겨준 것은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문 옆을 지키던 보초 둘, 그리고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이였다.

즉시 문을 닫고 천막에 들어간 진혁은 고통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마나병은 아니다. 그것은 점점 체력이 약해지다 죽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병이 있던 것은 아니다. 밖 공기가 이상한가? 진혁은 아무리 고민을 해도 왜 갑자기 아팠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는 나오다 말고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간 그를 의아하게 여겼는지 문을 두드리며 아픈 곳이 있냐는 질문이 그를 기다린다.

“밖에 공기를 쐬니까 온몸이 좀 쑤시네요.”

“그렇습니까? 곧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누워서 쉬면 괜찮아지겠죠.”

진혁은 오늘 씻진 못하겠다 생각하며 야전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밖에 관한 고민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꿈나라에 들어갔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며 존재감을 뽐낸다. 벌써부터 돌아다니는 사람은 몇 없었고 설령 돌아다닌다 해도 허름한 옷차림의 진혁을 눈여겨보거나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과는 상관없이 아픈건가?”

진혁은 샤워실에 비치됐던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중얼거렸다. 물에 닿을 때도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기에 서둘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고통은 전신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진혁은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구석에서 타들어가던 향초가 완전히 연소된 것.

그가 향초에 다가가보니 확실히 고통이 줄어든 게 느껴졌다. 즉시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에서 세워졌다.

그는 향대를 들고 보초에게 다가갔다. 보초들은 그를 발견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진혁은 그들에게 향초를 둔 자의 행방을 물었더니 지훈이 두고 간 거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희는 자원해서 여기 있는거니까요.”

진혁은 선망 어린 눈초리에 괜스레 등을 한번 두들겨주고 그가 알려준 막사로 갔다. 뒤에서 소리죽여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막사 앞의 보초는 진혁을 알아보고 통과하게 해줬다. 막사 안에도 향초가 몇 개 타들어가고 있었고 진혁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던 상훈이 인기척을 느끼자 고개를 돌려 진혁을 보고 일어서 손을 건넸다.

“잘 주무셨습니까?”

평소였다면 진혁도 받아줬겠지만, 그는 계속되는 고통에 느긋하게 받아줄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지훈이를 볼 수 있겠습니까.”

상훈은 이유를 묻지 않고 막사 뒤에서 헥헥대며 뛰고 있던 지훈을 불렀다.

“어우, 힘들어라. 덕분에 살았네요. 고마워요, 형.”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이 향초 뭐야?”

지훈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성실히 대답했다.

“그거 제가 만들었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마나를 산소로 치환해요. 뭔가 안 좋은 점이라도?”

“이 향초가 고통을 없애주더라.”

“예? 고통이요? 형 어디 아파요?”

지훈은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띄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밖에 나간 상훈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진혁은 지훈의 얼굴 앞에 다 탄 향초를 내밀었다.

“분명히 이 향초가 고통을 없애줘. 아마 마나 때문에 아픈 것 같아.”

지훈은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고민하는 듯하다.

지훈의 대답을 기다리길 몇 분, 그는 ‘생명의 은인이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진혁을 어디로 이끌었다.

그곳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깊숙이 들어가보니 온갖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지훈은 그곳이 몬스터의 사체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했다. 따라 들어온 상훈이 보통 사람에겐 위험할 수 있어서 출입을 통제한다고 덧붙였다.

진혁은 이런 곳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토막난 이레귤러의 시체가 카트에 담겨 옮겨져갔다.

지훈은 그곳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이 붙은 문 안으로 그를 데려갔다.

“오오, 이런 곳은 처음인데.”

그곳은 지하인데도 바닥에 인조 잔디가 깔려있고 식물들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 잠시 실험해봐도 될까요?”

진혁이 뒤를 돌아보니 흰색 가운으로 갈아입은 지훈이 노트를 들고 서있었다.


“분명히 동의하셨죠?”

“겁주지 말고 이번도 빨리 끝내자고.”

며칠에 걸쳐 몇 가지 가설이 세워졌다 폐기됐다.

“7번째 가설, 진혁은 마나에 접촉시 심한 작열통을 앓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마나가 깃든 식물을 잡게 한다.”

“아악, 겁나 아프네!”

“아픈 부위는요?”

“만진 손 주변.”

진혁이 식물에서 손을 떼고 황급히 털었다.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봤지만 마나에 관련된 것만 고통이 있었다.

“고통이 생긴 시간은 이레귤러를 잡은 이후요?”

“기절하기 전에 아팠으니까.”

“그러면 고통 말고 달라진 건 뭐가 있나요.”

“음···. 몸이 가벼워지고 시야가 뚜렷해지며 작은 소리도 더 잘 들리는 것 정도?”

“그 정도면 그냥 초인인데요!”

지훈이 기겁했다. 예전부터 흔히 이야기가 오갔던, 각성자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진혁일까? 모를 일이다.

“신체 대폭 개선···. 한 번 이것도 확인해볼까요?”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알아야 하니까.”

진혁은 신체를 재점검하기 위해 한계를 알아둬야 전투가 수월해진다.

다만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만나 검사하기로 했다.

진혁의 양손이 향초로 가득 차 무거웠을 텐데도 천막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강해진다는 것은 더 안전해진다는 것을 뜻하니까. 다른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니까.


“자, 가봐야겠다.”

진혁이 천막을 나와 막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들어준 마스크는 호흡할 때의 고통을 없애줘 전체적인 고통이 반감된다.

근 며칠간 진혁의 얼굴이 알려져 안전지대 주민들이 그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주민 중 한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쭈뼛쭈뼛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저어, 이레귤러를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놈이 제 아들의 팔을 분질렀습니다. 대신 복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유, 고개숙이지 마세요. 어차피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했을 텐데요.”

그는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감사에 손사래를 치지만 기어코 고개를 숙이며 뭐라도 선물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순박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포근함, 안정감, 활기, 기쁨. 이곳은 마음의 휴식처. 진혁은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표시로 받은 군고구마를 베어물면서 막사로 들어갔다.

그곳엔 지훈이 가운을 입은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형?”

“오냐. 느그 형 왔다. 빨리 검사 시작하자.”

“네!”


검사를 시작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 지훈은 예상외의 결과표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형,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이야···. 진짜 충격적이네.”

“아니 분명히 몸이 가볍고, 시력과 귀가 좋아졌다 했잖아요.”

“그걸 다 기억하네?”

“근데 어떻게 체력과 순발력과 속도에서 평균 이하가 나오죠?”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기교로 싸우는 스타일이였으니까.

그렇다면 그때 반응속도와 지치지 않는 체력은 뭐였지?

진혁은 떽떽거리는 지훈을 무시하고 결과표를 꼼꼼히 훑어봤다.


「시력-매의 눈으로 보는 중.

공간 지각 능력-cm 단위의 거리까지 정확함.

유연성-뼈가 없나 의심됨.

신체 통제력-이 정도면 제3의 다리도 조절 가능할 듯.

체력-담배피나.

근력-원펀치 쓰리강냉이

속도-달리기가 내 파워 워킹과 맞먹음.

순발력-코 앞에 돈이 떨어져도 다음날 깨달을 듯.

상황 판단 능력-순발력은 떨어지는데 이건 도대체 왜?

대인(기계 사용) 상대 능력-1대 17의 전설

몬스터(기계 사용) 상대 능력-사실 괴물은 형이 아닐까?」


지훈의 개성이 꽉꽉 찬 결과표를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상황 판단 능력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랑 순발력은 뭔 차이야?”

“하, 형. 기계랑 싸울 때 맞고 나서야 반응한 게 몇 번인지 아세요? 그게 순발력이고 몰이 당했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게 상황 판단 능력이에요.”

“나는 실전파야. 기계랑 싸울 때는 제 실력이 안나.”

지훈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을 쳤다. 조금의 긍정도 하지 않고 비웃는 지훈의 모습은 꽤나 얄미웠다.

“뭐, 대충 끝난 것 같네. 올라가자.”

“형! 컨디션도 고려해서 나중에 몇 번 더 와야 해요!”

지훈이 진혁의 등에 대고 같이 나가자고 소리쳤다. 진혁은 말을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책상 위에 뒀던 마스크를 쓰고 막사에서 나왔다. 역시나 밖은 피부가 따갑다.

오늘 별일이 없다는 가정하에 식사를 마치고 일손을 조금 도와주면 해가 질 것이다.

진혁은 며칠을 머물면서 이곳의 생활을 적응했다.

진혁이 주위를 둘러보니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근처의 아무 사람을 붙잡아 무슨 일이 있는가를 물어봤다.

“방금 방랑자들이 왔다네요.”

반감된 고통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진혁은 안전지대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안전지대 앞에는 방랑자라기엔 고급스런 옷차림의 사람들이 짐 수색을 받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딘가가 아픈지 시선을 한데 두지 못하고 이가 부딪히거나 손톱을 씹어댔다.

진혁은 그들을 둘러보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진혁을 마주하곤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진혁에게로 다가갔다.

사내가 천천히 걷던 걸음은 속보로, 속보는 뜀박질로 변했다.

진혁이 당황하자 그는 입꼬리를 기괴하게 올리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칼을 꺼내 휘둘렀다.

후웅- 퍽.

“···어?”

사내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진혁이 사라졌다. 동시에 메쳐진 그는 신음을 흘리고는 쓰러졌다.

“갑자기 뭐야, 놀라게시리.”

진혁은 순간적으로 수그린 후 벌떡 일어나며 한쪽 팔을 잡아 메친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놀랐을 때 자경대원들이 방랑자들을 전부 제압했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도 손톱을 뜯으며 히죽히죽 웃음과 동시에 몸을 떨고 있었다.

“뭐야···. 진짜 실전파인가?”

진혁을 뒤따라온 지훈이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곤 어이가 없는 듯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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