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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작 mk.2

권형
2020-07-23 01:09:37 294 1 1

제목 : 회귀자를 사냥하는 최종보스


“크윽!”


한 남자가 신음소리를 참으며, 무릎을 꿇었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강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동료들..... 은 전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젠장....... 젠장......!”


12명의 동료들.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날고 기는 자들이었다. 프로, 탑티어 랭커, 혹은 스페셜리스트. 이들의 강력한 능력은 세간에 화젯거리였고, 사람들은 이들을 S랭크 플레이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전부 죽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하게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그들의 죽음에는 기존 상식이 걸쳐 있지 않았다. 그것은 검기, 오러, 마법, 이능, 회복 등. 기존 플레이어들이 연구하고, 파훼하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좀더..... 좀만 더 강했더라면.....! 좀 더 신중했더라면......!”


남자는 동료들의 시체를 부여잡으며, 울부짖었다. 그 역시 동료에게 닥친 압도적 폭력을 목도했다. 총의 형태로 발사되는 이형의 힘.


아파치 헬기에서는 검은 촉수가 튀어나왔고, m249 기관총에 끔찍한 역병과 부패가 사출되었다. 또한 수많은 모델들의 각종 총포와 전차, 전투기에선 부식과 녹으로 일렁이는 지옥의 겁화가 쏟아졌다.


그뿐이랴. 치명적인 생물병기와 고농도 방사능이 섞인 화학가스는 12중첩 정화마법이 인첸트 된 방독면을 뚫고 폐에 침투해 그대로 녹여버렸다.


그야말로 남자가 서 있는 대지는 죽음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남자 외에도 그 죽음의 땅을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남자의 대적자였다.


“하..... 하하......”


방독면을 쓴 남자와 달리, 그의 대적자는 아무런 방어 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을 뿐 이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여버리겠어.....!”


남자는 이를 갈면서 온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적자에게 달려들었다. 필사즉생. 그는 정말 죽을 각오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대적자의 탄환이었다. 탕! 대적자가 발사한 9mm 권총탄은 남자의 어께죽지를 꿰뚫었다.


“크아악!”


화끈한 격통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아직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죽지 않는 한. 언재나 기회는 있는 법이니...... 그랬어야 했다......


“어..... 어어?”


“그건 자백제가 든 주사총탄이야. 지금은 죽일 생각이 없어 지금은.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


약기운이 돌자, 남자는 절로 무릎을 꿇었다. 의식이 희미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대적자의 무기질적인 질문만이 들려왔다.


“이름은?”


“이진수......”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나?”


“......없다.”


“비트코인, 주식을 해서 대박이 난 적은 있나?”


“......없다.”


“가정환경이 유복했나?”


“아니.......”


“근 20년간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2046년 슈퍼복권 당첨번호....... 속초에 S급 아티팩트 발견..... 로그 연합의 탄생....... 최초의 S+ 급 플레이어 신연화의 데뷔...... 그리고........”


이후 대적자는 몇가지의 질문을 더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대적자는 권총의 탄창을 바꿔서 장전했다. 철컥. 한발에 140원 밖에 안하는 9mm 파라벨름 납탄. 대적자는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다 들이밀었다.


“얼마 기억하지도 않는군. 그래, 잘 가라.”


탕! 총소리와 동시에 남자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

회귀란 무엇일까. 회귀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 나는 눈앞의 남자를 죽였다. 9mm 권총으로 말이다. 140원 짜리 총알은 남자의 머리뼈를 부수고 뇌를 관통했다. 그리고 그를 죽인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동영상의 되감기 마냥 우스꽝스럽게 돌아가는 주변의 풍경들. 그리고 내가 쏴서 죽인 남자의 시체는 점차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하, 요즘 것들은 아주 심심하면 회귀를 해. 이러다간 옆집 누렁이랑, 뒷집 아롱이도 회귀하겠어?”


세계의 역행.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해본 현상에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오늘로서 300번째 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 현상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회귀자의 탄생. 그렇다. 지금 내가 죽인 이 남자는 나에게 살해당한 이 순간을 기점으로 회귀자가 되었다.


“하..... 그래그래. 이번엔 어떤 놈인지 쌍판떼기를 좀 볼까?”


하늘을 올려다보자 천체의 한 구석에서 이름 모를 별이 빛났다.


성좌. 상태창과 시스템을 통해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 성좌에게 축복받은 인간은 곧 플레이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성좌의 축복도 받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지금 빛나고 있는 저 별이 어떤 진명을 가진 성좌인지 모른다. 그리고 저 성좌가 지금 나를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별이 나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이 알고 있었다.


“너도 이게 가지고 싶은 거냐? 회귀라는 더럽고 치사한 수단을 통해서까지?”


나는 오른손의 손바닥을 하늘을 보도록 뒤집었다. 그러자 하늘색의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입방체가 내 손위에서 부유했다.


나는 이것을 ‘랠릭’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물건인지도 알고 있었다. 모든 성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태초의 물질.


그래서일까. 단순히 지금 회귀를 발동시킨 성좌를 제외하고도, 천체에 수많은 성좌들이 랠릭을 보자 빛을 발했다. 하얀 빛, 푸른 빛, 녹색 빛, 검은 빛, 그 외 기타 등등. 수많은 색체가 역행하는 세계의 하늘을 장식했다.


누군가 보면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라 하겠지. 하지만 내게 있어서 저 빛들은 그저 추하기 짝이 없는 탐욕과 야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가지고 싶으면 어디 한번 가지러 와봐 병신들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시간의 역행이 느려졌다. 그리고 차즘차즘 나의 주변도 익숙한 풍경으로 바뀌어갔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성좌와 세상의 악의를 다시금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같은 인간인 플레이어들은 그저 상태창에 퀘스트 하나 떠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죽이려 들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회귀자는 악착같이 기어 올라와 기어코 나의 목에 칼을 들이밀 것이다.


“순순히 빼앗겨주진 않을 테니까.”


역행의 마지막 단계. 거꾸로 돌아가던 세상은 회전을 멈추고 그대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저들에게 도발하듯이 주먹을 쥐어 랠릭을 으스러트렸다.


***


나에겐 기억나지도 않는 어느 날. 운석 하나가 지구에 떨어졌다. 운석의 크기는 지름 6km. 떨어진 위치는 중국-몽골의 접경지역. 그렇게 떨어진 운석은 몽골과 중국의 절반을 날려버렸다.


운석이 떨어진 이후 지구에는 세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지동설이 부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대신 중세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천동설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구의 공전이 멈추고, 태양의 공전이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는 차원 비틀림 현상이 생겨났다. 때문에 세계 곳곳에선 차원 관문의 등장과 관문 너머의 몬스터들이 차원을 넘어 지구로 침범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성좌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점지한 인간에게 시스템의 축복을 내려 상태창을 볼 수 있게 하는 플레이어의 능력을 하사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성좌와 그 산하 플레이어들의 주도 아래, 평화와 번영을 되찾아갔다.


물론 성좌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논 플레이어. 그리고 그들이 격변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그저 플레이어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 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논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렇게 굴종하기 싫었기에 능력이 없음에도 총을 든 무지렁이였다.


가장 쓰레기 같은 용병 회사에 입사하여, 수많은 전선을 겪었고, 무수한 전우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마지막에는 랠릭이 있었다.


랠릭, 신성한 입방체. 태초의 물질이자 우주의 중심. 나는, 그리고 나의 전우들은 운석이 떨어진 곳에서 랠릭을 얻기 위한 총알받이이자 고기방패였고, 랠릭은 시산혈해에 홀로 남은 나를 선택했다.


“으윽....”


역행을 마치고 난 후, 나는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다. 넓고 정돈된 집무실 안. 무언가 나른한 기분이 들었기에 잠시 동안은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뭔가..... 따뜻하고...... 눅눅한 기분이었다.


“잠시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나의 몽롱한 정신을 깨운 것은 책상 밑에서 들려오는 어느 여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정신이 확 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내가 자리를 비키자, 책상 밑에서는 정장을 입은 흑단발의 미녀가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가슴 포켓속의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입가를 쓸었다.


주먹 만 한 얼굴에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입가에 묻은 뭔가를 닦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야릇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진소미 보좌관, 제가 잠든 사이 뭘 하셨습니까?”


“회장님께서 피곤해 보이시기에 책상 밑의 봉사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고해야 합니까?”


“아니요.....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책상 밑의 봉사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은 자질구레한 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세계의 역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온 만큼, 나는 나만의 할 일을 해야 했다. 그건 바로 현 상황 파악이었다.


“진 보좌관. 그것보다는 상태창을 한 번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성좌가 보낸 퀘스트를 저에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진소미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어 자기에게만 보이는 상태창을 살폈다. 그리고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경멸이 일어났다.


“으..... 거의 스토커 전 남친이 술 처마시고 한밤중에 보낸 문자 수준으로 많이 와 있습니다. 내용은 하나 같이 다..... ‘고상준을 죽여라.’ 즉 회장님을 죽이라는 내용이군요. 이게 실시간으로 보상이 갱신되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역겹네요.”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성좌가 플레이어에게 내린 지령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아마 그녀를 포함해서 나의 반경 3km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이런 지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가...... 그럼 진 보좌관, 당신은 저를 죽일 건가요?”


진소미 보좌관, 그녀라면 아마도 능히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S랭크의 플레이어이자, 427명을 죽인 악명 높은 전문 킬러니까.


“제가 어째서 이런 관음증 기회주의자 변태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까? 저의 봉사는 오로지 회장님만을 위한 것입니다. 책상 밑이건, 침대 위에서 건, 어디에서나.”


“그, 그렇군요.”


“오로지 당신만이 저의 살아있는 성좌일 따름입니다.”


무섭다...... 탁한 두 눈동자에 비춰지는 광신과 경애가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로서 안심할 수 있다. 그녀는 내가 가진 패에서 가장 강력한 패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확인했다면,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진 보좌관님. 직속부대를 호출하세요. 간만에 사냥이나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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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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