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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단편소설 '그녀만을 위한 괴물이 되겠습니다.'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스압주의)

slid00
2020-07-30 02:39:02 355 2 0

안녕하세요 생방에서 선 넘어서 밴 당할뻔 한 기억이 많은 대학교 2학년 독자입니다.

단편 로맨스향 첨가된? 판타지 소설을 한번 써봤습니다. (인생 2번째 소설)

판타지 작가님이신건 알고있습니다만...판타지 말고 로판 함 츄라이 해보시라고 졸작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제가 로판에 빠져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ㅎㅎ

그래도 몇십번씩 수정해나가며 열심히 썼습니다.

작가님 유튜브랑 다른 유튜브 보면서 부족한점들도 고쳐나갔고요.

물론 더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리고 21년산 최고급 아다만티움이라 이건 뭐지 싶은 전개가 있습니다...

그 점은 좀 양해를...

(그녀만을 위한 간식 -> 그녀만을 위한 괴물이 되겠습니다 로 제목 수정되었습니다)


그녀만을 위한 괴물이 되겠습니다.

Slid


"..... 괴물.... 죽여버...!"

'으으 더럽게 시끄럽네.'

눈을 뜬 남자의 앞에 마을사람들이 보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 훈장님, 마을의 수다쟁이 이씨 아주머니 그리고 그 아주머니 뒤에 숨은 그 댁 아이들까지...

아이들은 돌을 들어 제 어미 곁에서 그에게 던지려는 시늉을 하고 있고, 어른들은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있다.

그 경멸이 어린 시선과 폭력이 그를 향해 날아온다.


보름달 아래에 너부러져있는 그는 짙게 풍기는 혈향과 비린 맛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제 어미를 잡아먹은 괴물!"

"저 녀석을 죽여버려야해!"

"우리에게 해코지할지 또 누가 알겠어?"

"저렇게 두들겨 패도 신음 한 번 없다니. 지독한 괴물놈."


그제야 남자는 정신이 들었다.

또 이 꿈이다.

10년전 그가 아직 15살이었을 때 어머니를 죽였다고 개처럼 맞고 마을 밖으로 추방당한 그 날의 꿈이다.

'빌어먹을 인간들...'

어머니에게 짐승을 낳은 괴물년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녀가 아이에게 죽자 기회란듯이 그를 내쫓았다.


그에게 아버지란 작자의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어머니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도망치셨다던데...'


그런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어머니는 홀몸으로 그를 키워주셨다.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제 어미를 꿰뚫어버린 푸른 눈망울의 괴물을 보며 어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현랑, 너는 꼭 인간으로 살려무나...'


간만에 꾸는 이 지독한 악몽에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다.

늘 보던 그 낡은 천장이다.

현랑은 오늘도

그녀의 유언대로

죽지못해 살아가고 있다.

인간으로서.




“현랑 총각, 나이도 찼는데 어디 참한 여자라도 물어와야지?”

'또 시작이다, 이 아줌마는 내가 무섭지도 않나?'

“현랑 총각이 마을 사람들이랑 사이 안 좋은건 알고 있지, 근데 인생을 혼자 사나? 옆에서 같이 살 아내가 있어야 살 맛 나는 거여.”

“이런 괴물같은 남자랑 살 여자가 어디 있어요. 아주머니도 그만 들어가 보시죠.”

“에잉 쯧.... 현랑 총각은 괜찮은 남편감인데 왜 마을 사람들은 괴물이라고 그런다니?”

“글쎄요. 마을 근처까지는 바래다 드릴게요. 벌써 해가 넘어가려고 합니다.”

“어휴 그래 알았어. 현랑 총각도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거 귀 담아 듣지 말고 어여 결혼해야지.”


매번 반찬을 들고 그를 찾아오는 유씨 아주머니다.

유씨 아주머니는 최근에 마을에 정착하셨다.

아주머니는 어떤 사고로 가족분들을 잃고 이곳 저곳 떠돌다가 이 마을에 오셨다.

'내가 그 사고로 죽은 아들같아서 챙겨주고 싶다던가?'


그런 아주머니도 마을에 떠도는 괴물에 관한 소문을 듣는다면 그를 아들처럼 보기는 힘드실거다.

현랑은 잔소리가 귀찮아도 몇 년만에 듣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썩 듣기 좋았다고 생각했다.


현랑이 아주머니를 마을 어귀까지 바래다드리고 나니 벌써 해가 주변 나뭇잎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산 기슭에 둔 덫을 확인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벌써 한 마리쯤 걸렸을 수도 있으리라.


산 기슭에 도착한 현랑이 본 것은 아쉽게도 짐승이 아니었다.

흰 소복에 흰 머리칼을 한 무언가가 바닥에 쓰러져있다.

'저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현랑은 호기심 반, 경계 반으로 그것에게 다가간다.

가까이 가니 그제야 쓰러져있는 것의 얼굴이 보인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든 듯이 쓰러져있는 여인이다.

"해가 저문 깊은 산속에 쓰러진 여자라니."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다.


해가 저문 깊은 산속.

그곳에 쓰러져 있는 여자.

이런데 두었다간 산짐승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현랑은 문득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현랑아, 사람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해줘야 한단다.'

'하...사람으로 살려면 이래야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쓰러져있는 여자를 그의 집으로 들고 갔다.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 빈 방에 불을 때고 이불에 눕히고 나니 그녀가 눈을 떴다.

붉은 눈동자와 하얗고 긴 머리칼을 가진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치 한마리의 토끼가 떠올랐다.

“오늘은 늦었으니 푹 쉬고 내일 마을로 내려가시죠. 마을까지는 꽤 머니까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여기는..."

"제 집입니다. 혹시 어쩌다가 그런 곳에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모르겠어요... "

"그러면 이름은...?"

"미호...미호에요."

이후 몇차례의 대화가 오간 뒤.

미호가 눈망울에 물기를 머금으며 갈 곳이 없다고 당분간 여기서 살아도 되냐고 당돌하게 물어봤다.


현랑은 그 모습에 어머니가 떠올랐다.

저 하나 살리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굽신거리고 사시던 어머니...

없는 세간살림에 자식이라도 챙기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존심을 파시던 어머니...

현랑은 그런 어머니가 떠올라 도저히 안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현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 하니 미호가 활짝 웃음짓는다.

그녀를 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자려고 하니 계속 생각이 난다.


'내가 도대체 왜 허락을 한 거지? 아무리 어머니가 떠올랐다곤 해도...'

현랑은 왜인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부터 미호와 현랑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현랑은 여느때처럼 사냥을 하러 가고, 미호는 집에서 기다리면서.

수상하고 불쾌한 첫 만남이었지만,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돌아오면 혼자였던 집에 불이 켜져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현랑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호와 함께 살고 나서 집에 생기가 돌고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인다.


물론 그게 현랑이 미호를 완전히 믿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괴물과 진심으로 같이 살 사람이 어디있겠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내가 자기와 다르단 것을 알게된다면 그녀도...'


그 뒤로 며칠이 지났다.

딱히 갈데가 없다는 그녀의 말은 정말인지 오랜만에 오신 유씨 아주머니는 미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가 한양도 아니고 이런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사람이 사라졌을텐데 아무도 모른다고요?"

"현랑총각이 드디어 어디서 물어온 색시라고만 생각했지. 마을에서도 누가 사라졌다는 말은 없었어."

"...색시 아니에요. 그냥 갈 데 없다고 해서 살고 있는거지."

'그런 조그만 마을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니.'

현랑은 여전히 미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뭐 이제 와서는 다시 외로워지는것도 싫으니까 나가라고도 못하겠지만...'

여전히 그녀가 함께 있는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도 현랑은 외롭다는 느낌을 덜 받는다.


현랑이 사색에 잠겨있다.

복잡한 마음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손에 들린 나무 잔이 깨져버렸다.


"그래 현랑총각. 이 아줌마가 걱정을 덜었다 덜었어. 이제 아줌마 대신 색시한테 부탁혀. 알겄지?"

놀랜 티를 내지 않으시려는 듯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유씨 아주머니의 안색이 어느 순간부터 좋지 않아졌다.


어서 내게서 벗어나고 싶으신가 보다.

아주머니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

현랑은 그리 생각했다.

그 이후로 정말로 유씨 아주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우리의 '당분간'이었던 동거 생활은 어느새 꽤 오래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현랑은 뒷산 깊은 곳에서 오랜만에 곰을 마주하게 됐다.

'슬슬 겨울이 올 시기가 되니 일어난 건가?'

현랑이 저번에 잡은 녀석보다 덩치가 크다.


'요즘 날씨도 쌀쌀해져 가니까 저 녀석만 잡으면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어.'

그리 생각하며 곰에게 돌멩이를 던진다.

겨울잠을 위해 식량을 찾고있던 곰의 눈에 인간이 보이자, 곰은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든다.


곰을 덫으로 유인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녀석의 심장을 노리기만 하면..."

갑자기 덫이 빠직 하는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난다.

'위험하다' 라며 머리에서 경종이 울린다.

곰이 현랑을 향해 달려든다.

곰의 체중을 실은 앞발이 휘둘러진다.


다행히 곰의 발톱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현랑의 왼팔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살점이 뜯겨나가버렸다.

살점이 뜯겨나갔는데도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계속 곰만을 응시한다.


살점이 뜯어지고 유혈이 낭자하고 있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곰의 가슴께를 향해 다가간다.

현랑은 곰의 심장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뿌득 하고 미약한 파열음이 들린다.

'젠장, 녀석이 순순히 맞아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창은 심장 대신 곰의 복부를 뚫고 들어갔다.

갑작스런 공격에 곰이 몸부림을 친다.

곰의 몸부림에 창이 반토막이 나버렸다.

회초리가 되어버린 창 쪼가리를 저 편으로 던져버린다.

복부에서 고통이 느껴지자 곰은 광분하여 더욱 난폭하게 덤벼든다.


왼팔의 뜯겨진 살점이 서서히 메꿔지고 있다.

괴물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보름달이 산 건너편에서 휘영청 밝게 떠오른다.

온 몸에서 털이 솟아오르며 네 발로 서있는 곰을 눈 아래로 둘 정도로 시야가 높아진다.

심장이 날뛰는 소리가 울리고, 시야가 붉게 물든다.

피에 물든 푸른 눈알이 형형하게 빛을 발한다.


현랑은 괴물이 되었다.

눈이 붉게 물들고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간다.


그날이나 지금이나 붉은 시야는 세상에 괴물과 적만을 남긴다.


10년전 그날에는 어머니의 피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흥분되기는 할 지 언정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지는 않는다.


'왜일까?' 라고 묻기에는 괴물에게 달려드는 곰의 저 아가리가 더 가까워진다.

이미 창은 부러졌다. 그렇다면 남은 무기는...


곰의 아가리가 괴물을 향해 달려들고, 괴물은 그 아가리를 향해 오른손을 휘두른다.

워어엉” “끄으아아아 

그 곳엔 이미 인간이 아닌 두 짐승만이 있었다.

두 짐승은 서로의 존망을 걸고 달려든다.


콰득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곰의 눈과 아가리에 틀어박혔다.

괴물의 단단한 발톱이 곰에게 박히자 괴물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곰은 달려오던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 결과 곰의 짓이겨진 눈과 아가리의 살점이 괴물의 손에 들려져있다.


곰의 모습은 끔찍하다.

복부엔 부러진 창이 깊게 박혀있으며, 눈과 입이 있던 곳이 하나로 이어져있다.

그럼에도 괴물을 향한 적의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괴물의 모습도 멀쩡하진 않다.

곰의 육중한 돌진을 한 손으로 막은 괴물의 무릎에서 피가 새나오고 후들거린다.

팔꿈치와 어깨는 이미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끈질긴 것들은 그런 부상에도 굴하지 않는다.


괴물은 손에 들린 곰의 살덩어리를 게걸스레 뜯어먹는다.

오도독 오독 으드득

한 입씩 뜯어먹을 때마다 붉게 물든 시야가 옅어진다.


시야와 함께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자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녀석을 버티게 만드는거지?'

기절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도 잠시, 곰이 지척에서 두 발로 일어선다.

그리고 괴물을 향해 포효한다.

"크워어어어"


서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는 상황, 괴물의 눈에 문득 곰의 배에 단단히 박혀있는 부러진 창이 보인다.

창은 부러져있지만 괴물의 손톱보다는 훨씬 길었고, 곰의 가슴에 박힐 말뚝 대신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살점을 연료로 심장이 더욱 매섭게 뛰며 부러진 곳이 붙고 찢어진 부분은 메꿔진다.

괴물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곰의 품으로 달려든다.

날카로운 이빨을 쓰지 못하는 곰은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체중을 실어 괴물을 짓뭉개려 한다.


하지만 시야를 뺏긴 녀석의 앞발은 허튼데를 짚는다.

피륙이 으스러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괴물이 곰의 배에 박힌 창을 뽑았다.

"꾸오오오오오"

곰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르며 앞발을 휘두른다.

육중한 앞발이 괴물의 왼팔을 다시 휘갈긴다.


곰이나 괴물이나 똑같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이다.

하지만 괴물은 그 흔한 신음 한번 흘리지 않고 차분히,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곰의 심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비릿한 혈향이 괴물의 집중을 돕는다.

"이번엔 빗나가지 않는다."


으드득

쿠웅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곰과 괴물이 쓰러졌다.

그날 밤, 현랑은 자아를 가진 괴물로서, 기나긴 싸움끝에 처음으로 정당하게 사냥감을 취했다.


현랑은 이성을 찾기위해 시체를 먹어치워갔다.

그제야 곰이 그렇게 분노하고, 광적으로 싸운 이유가 드러났다.

그것의 배에는 아직 세상을 보지 못한.... 어린 새끼가 골이 으깨진 채 어미의 핏물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현랑은 역겨워서 더이상 사체에 입을 댈 수가 없었다.


벌써 자정을 울리는 종은 울린지 오래고, 보름달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다.

눈부시게 밝은 밤이다.

"지금쯤이면 미호는 자고 있겠지..."


이 사냥감을 집까지 옮기려면 지금뿐이다.

내일 가지러 온다면 산짐승들이 반쯤 뜯어먹고 난 이후일터.

너덜너덜해진 왼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곰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역시 집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다.


그것을 확인한 현랑은 곰의 사체를 근처에 두고 온 뒤 여느 때처럼 집에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리 미호가 자고 있더라도 이런 몰골로는 그녀가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은 밖에서 외박해야겠어..."

너덜너덜한 왼팔은 꿈틀거리며 조각난 뼈가 맞춰지고 살점이 대강이나마 메꿔지고 있다.

여전히 중상에 버금가는 부상이지만 이 상처도 오늘 밤이 지나면 감쪽같이 낫는다.

"이 빌어먹을 저주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내일 미호를 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현랑은 미호를 깨우지 않게 조심하며 집을 지나친다.

그 때, 문 바로 옆에 나있는 창문으로 어둠속의 흐릿한 붉은 눈과 마주쳤다.

미호는 졸린 눈으로 밖을 보며 앉아있다.


'젠장 아직 안 자고 있네...'

“현랑...? 이제 돌아온거야? 늦었네...”

큰일이다. 

'미호가 이런 나를 보면 분명 기절할거야.'

다행히 구름이 달빛을 가려주.... 젠장 달빛이 조금씩 비치고 있다.


미호가 문을 열려고 일어나는 순간 현랑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가오고 마침내 문을 연 순간, 축시(오전 3시)가 지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 빌어먹을 저주는 이전부터 그에게 해시(오후 9시)부터 축시(오전 3시)까지의 시간만 빼앗았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현랑의 몸에서 흉하게 난 짐승의 털이 사라지고 몸집이 작아진다.


마주친 순간 미호는 그의 팔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현랑...그 상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별 거 아니야. 그냥...덫에 걸린 곰을 잡다가...”

현랑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답변이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곰의 사체를 보면 알텐데 뭐하러 숨길 이유가 있을까.

“뭐가 별 거 아니야! 장난해? 네 팔은 안 아프냐고! 이렇게 너덜너덜해졌잖아!”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본다.


'도대체 왜? 나같은 괴물을 위해 왜 그녀는 눈물을 흘려주는걸까?'

“걱정 마. 하나도 안 아파. 그니까 그만 울어.”

심장이 아려온다.

눈물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도려내고있다.


"거짓말..."


미호는 현랑의 팔을 보고 한참을 울더니 손을 잡고 그녀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그를 눕히고, 환부에 녹색의 무언가를 발라준다.

'이 향은...'

이 향은 분명 야생동물들이 다쳤을 때 주로 먹는 그 과일의 향이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는 왼팔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으며 반대 팔에는 미호가 그의 손을 품고 잠들어 있었다.

아픈 곳은 없었다.

그녀는 적어도 그를 인간으로 여겨준다.


그녀가 자신을 괴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말 기뻤다.

'너는 나를 사람으로 봐주는구나.'

심하게 다쳐온 현랑을 무서워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곁에 있다.


현랑은 어느새 미호가 마음에 들었다.

미호는 현랑에게 수상한 동거인이 아닌 믿을만한 동거인이 되었다.


그래서 보름달이 뜰 때마다 미호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사람으로 봐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으니까.

또 미쳐 날뛰어서 후회할 수는 없으니까.


그날 이후 미호는 현랑이 사냥을 하다 살짝만 긁혀도 울상을 지으며 그를 간호해주었다.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빠르게 낫기는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가 그녀에게 간호를 부탁한다.

'미호와 이런 식으로라도 더 붙어있고 싶어.'

그녀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르게 말하면... 그녀가 좋다.


간호를 받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몇 번이었을까?

하루는 치료를 받고 일어나보니 그녀는 그의 오른쪽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자고있다.

"하아...반대쪽에 누워있지..."

미호의 숨결이 그곳에 닿아온다.

이대로는 큰 일이 날 것만 같다.

'얼른 미호를 깨워야겠어.'

그녀의 흰 머리칼을 쓰다듬자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드러난다.

"음....일어났어 현랑?"

"응 고마워."

"알면 몸 좀 잘 간수해."

"걱정마 이제 겨울이니까 나갈 일은 별로 없을거야. 아마도."


미호는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현랑의 탄탄한 허벅지를 짚고 일어났다.

그러다 수컷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우연히 그녀의 손가락과 스쳤다.

미호는 깜짝 놀라고, 현랑도 덩달아 당황해서 서로 바라볼 수 없었다.

미호는 당황해서 방 밖으로 달려나갔고, 이후 작게 혼잣말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커다.... 처음 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 그들은 마주치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 폭설이 내린 어느 겨울날.

눈은 모든 것을 뒤덮을 기세로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은 흰색으로 가득찼다.

낡고 작은 집은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미호의 방의 지붕이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이 미호와 현랑은 겨울이 오고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도저히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왔다.

차라리 그가 거실에서 자겠다고 하니 그녀가 그의 소매를 잡고 끌어당겼다.


한 이불안에 들어온 남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미호가 갑자기 현랑의 등을 껴안고 속삭여왔다.

"현랑...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들려온 말에 현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 좋아하는데, 너는?"

부끄러운지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있다.


부끄러운건 현랑도 마찬가지다.

미호의 봉긋한 가슴이 현랑의 넓은 등에 밀착됐다.

미호가 현랑의 목에 얼굴을 기대고 고백을 했다.


그런 미호의 말과 행동에 머리가 새하얘진다.

아무 말도 없자 그녀의 숨이 거칠어진다.

그의 목 뒤로 부는 그녀의 바람이 그에게 대답을 재촉한다.

현랑은 미호를 향해 뒤돌아 보며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미호를 향한 호감이 사랑이 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녀의 얼굴이 더더욱 빨개진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렇게 폭설이 그치고 이어지는 겨울동안 그들은 각자의 마음을 서로에게 표현했다. 더 적극적으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눈이 내린 어느날 아침, 현랑은 매달 있는 외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호를 만났다.

멀리서 그를 본 미호는 그를 향해 달려온다.

평소처럼 현랑에게 안기려던 미호는 발을 잘못 디뎌 앞으로 넘어진다.

분명 쿵 소리가 나야했지만...

미호는 어느새  현랑의 품 안에 안겨있다.


"미호, 안 다쳤어?"

"응..."

"다행이다."

"고마워..."

미호는 얼굴을 붉히며 현랑의 넓고 단단한 가슴팍에 기댄다.


미호가 넘어지는 것을 본 현랑은 잠시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넘어지는 그녀 아래에서 방석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가 쏟아지는 아침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껴안는다.

그 묘한 분위기 속에 현랑은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그녀의 새하얀 팔이 그의 목을 감싸더니 서로의 입이 포개어진다.

달빛이 비추는 숲 속에서의 처음으로 나눈 어른의 입맞춤은 달콤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무채색의 설산에서 녹색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어느 날, 현랑은 미호에게 인생의 반려가 되어주길 청했다.

"미호, 나와 결혼해줘."

미호의 얼굴이 얕은 웃음을 지으며 현랑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그를 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도...그러겠지?'


그로부터 며칠 뒤, 결혼식 당일, 그들은 단 둘이 결혼식을 올렸다.

괴물과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가할 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년 넘게 이 외진 곳에 자리한 작은 집에는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결혼식.

죽지 못해 살아가던 인생은 오늘부터 그녀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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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붉은 눈을 가지고 눈처럼 흰 머리를 한 다소 이국적인 모습의 새신부와 

바다같이 푸른 눈에 재처럼 회색빛깔이 도는 머리칼을 가진 건장한 새신랑.

하늘에는 초승달에서 상현달로 가기 시작하는, 미호의 눈썹처럼 휘어있는 달이 떠있다.


미호는 목욕재개를 하고 신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목욕을 하고 와서 좋은 향기가 난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그녀의 피부와 그녀의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현랑을 미치게 만든다.


그 이후 본능이 이끄는 대로 두 부부는 몸을 겹친다.

현랑의 탄탄한 무릎 위로 미호가 올라온다.

현랑의 조각같은 복근과 미호의 군살 하나없는 하얀 배가 서로 맞닿고 둘은 진득한 시선을 서로에게 보낸다.


새신랑 현랑과 새신부 미호는 서로의 입술을 탐한다.

누가 더 사랑하는지, 그것을 상대를 정복함으로서 보여주려는 듯 맞물린 두 입술 사이의 혀들은 마치 구렁이가 교미를 하듯이 오래, 그리고 격동적으로 움직인다.

현랑의 입이 미호에게서 떨어지고, 귀로 입술을 옮겨 잘근잘근 씹는다.

미호가 야릇한 신음을 흘리자 입술을 떼고 조금씩, 조금씩 더 아래로 내려간다.

가파른 계곡에서 내려와 두 개의 봉긋한 봉우리를 넘어, 눈 내린 것처럼 하얀 평지와 무성한 갈대밭을 지나, 두 갈래로 나뉜 다리를 건너며, 그 끝에 있는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다섯 개의 작은 돌무덤까지.

그 일련의 순례가 끝나고 드디어 서로의 눈이 마주치며 입술이 벌어진다.


"현랑... 너무 과해."

"미호... 내가 그만큼 너를 사랑하는거야."

"하여간 말은 잘해. 나도 좋아해 현랑."


그러다 문득 미호의 눈이 현랑의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전 날에 그녀가 만지고 놀라 도망쳤던 그것이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그 때보다 더 커다란 그것은 그녀의 배꼽을 향해 단단히 서있다.

미호의 목에서 꿀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이어진 행위는 짐승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신랑의 괴물같은 정력은 가녀린 신부의 몸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서로의 하반신이 들러붙을때는 울부짖는 여우의 교성이, 떨어질때는 아쉽다는듯한 신음이 들려왔다.

몇 번의 정사가 끝났을 무렵, 신부는 신랑의 목덜미를 그녀의 매끈하고 흰 팔로 감쌌다.


"현랑. 너무 좋아."

"응. 미호 나도 좋아."

신랑은 그의 밑에 깔려있는 신부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사랑스럽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껴안는다.


손이 신부의 허리에 닿자, 그녀의 입에서 '하읏'하는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현랑은 미호와 입을 맞추었다.

서로의 입이 맞닿자, 신부의 혀가 신랑의 치열을 구석구석 핥는다.

신랑도 거기에 질 수 없었는지 다시 구렁이 교미하듯 혀를 움직인다.


한참을 가만히 맞붙고 있었을까.

이윽고 신랑쪽에서 먼저 입을 떼었다.

그리곤 팔팔해진 자신의 아랫도리를 느끼고 다시 시작했다.

신부도 기대가 되는지 묘하게 홍조를 띈 모습이었다.


신랑의 허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신부의 허리는 끊어질듯한 통증과 미칠듯한 쾌락을 느끼며 신랑의 움직임을 더욱 갈구했다.

둘의 짐승같은 교미는 쉼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햇님이 산을 타고 오를 때 즈음에는 미호는 현랑의 품 안에서 혼절해버렸다.

현랑은 그런 미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녀와 잠이 들었다.


이후 신혼부부는 서로 눈이 마주치면 도화선에 불이 붙듯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겐 매일매일이 초야나 다름이 없었다.


미호와 현랑은 세상에 두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현랑은 가끔 미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미호는 같이 지내면서 한번도 마을을 보러가지 않았다.

현랑이 마을에서 추방되어서인지 미호 또한 마을에 방문하길 꺼려했다.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현랑도 울 뻔 했다.

현랑은 그런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가끔 다칠 때마다  미호에게 구박을 받기도 하는 정말 인간다운 그런 일상이었다.


그들의 이런 일상은 이후 약 세 달간 이어졌다.

미호와 함께 살며 보름달이 뜰 때 이성을 잃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언제 이성을 잃어 그녀의 피를 뒤집어쓰고 후회하게 될지 그것이 두려웠다.

"미호가 나를 경멸하면 어쩌지? 언젠가 정말로 후회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현랑은 그런 두려움을 못 이기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전보다 더욱 그녀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현랑은 칼로 저며지고 창으로 꿰뚫리고 휘둘리는 것 같았다.

그녀와 관련된 안좋은 생각만 하면 이런다.

이것은 분명 그가 미호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런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하룻밤의 이별을 버티고 버텼다.

버티고 난 다음날에는 미호의 애정행각이 격해진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어느덧 결혼한 지 99일째 밤, 사냥이 끝나고 야영할 곳을 찾던 현랑은 밤 늦게 집에서 나가는 미호를 발견했다.

‘저건.... 미호...? 이 시간에 어디 나갈데가 없을텐데? 게다가 저런 복장으로?’

그녀의 복장 또한 너무 간소하다.

아무리 더워졌다고 해도 밤에 입고 나갈만한 복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가서 밤이 차니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언제나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미호와 같은 방을 쓸 수 없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기에.

그녀와 자신을 위해서.

오늘도 그런 밤이다.

그가 그녀와 함께 보낼 수 없는 밤.


그런 밤에 그녀가 혼자 밖으로 나갔다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혹시 나를 찾으려는게 아닐까?'

그는 그런 미약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를 미행한다.

만일 그녀가 그의 진짜 모습을 알고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좋겠다고.


보름달의 저주가 시작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미호가 어디로 가는지까지만 보고 바로 떠나야겠어."

그는 그녀 몰래 그녀를 미행하다가 이 길이 기시감이 드는 것을 깨닫는다.

이 길의 끝에는 아직 불이 들어와있는 마을 외곽의 주막이 있다.


'미호가... 만나는 다른 사람이 있나? 아니 그것보다도 마을에 자주 왔었나?'

그는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며 그녀를 계속 따라간다.

'온 이유가 남자는 아니겠지...?'


마을 어귀의 으슥한 곳, 그녀는 그곳에서 멈춘다.

'다행히 그냥 산책 나온걸까? 밤의 마을은 가녀린 미호에게 위험할텐데...'

그의 머리속에 각인된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안 좋은 생각을 지운다.

'만약 네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든 구해줄게.'

그는 애정과 걱정이 넘치는 눈으로 그녀를 몰래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마을의 주막에서 나오는 술 취한 남자 한 명이 보인다.

그는 마을 어귀에 서있는 미호를 보고 다가간다.

미호에게 다가온 주정뱅이는 미호의 몸을 훑어본다.

“이런 시간에 아가씨가 왜 이런 으슥한 곳에 있으신가? 그것도 그런 옷차림으로 끄흑  남편감이라도 찾고 있나?

“............”


술 취한 남자의 음담패설이 선명하게 들린다.

미호는 역겨운 것을 봤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도망친다.

'하마터면 들킬 뻔 했다.'

미호는 먼저 도망쳤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미호를 뒤쫓는다.

그걸 바라보는 현랑은 누군가 그의 심장을 인두로 지지는 것 마냥 아프다.

'저 새끼는 내가 꼭 죽인다. 찢어죽인다...'


'인간으로 살아라.'

어머니가 자신에게 죽어가며 뱉으신 마지막 말씀.

그런 어머니가 남긴 유언조차 현랑의 머릿속에는 남아있지 않다.


현랑의 눈에 광기가 번뜩인다.

현랑은 분노를 삼키고 조용히 뒤를 따라간다.


미호가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숲속으로 들어선다.

저 숲은 길이 험해 토박이인 마을사람도 가끔 헤메는 곳이다.

'불쌍한 미호가 저 새끼를 피하려고 도망친거야.'

이윽고 조금 뒤쳐진 주정뱅이가 미호를 따라잡으려 속도를 높힌다.


"저 새끼가 미호를...."

현랑의 이빨이 맞물려 '빠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저 자식을 죽이고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보고 미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눈에 훤하다.

'그녀가 나를 다른 사람들처럼 볼까봐 두렵다.'


현랑은 머릿속에 타오르는 듯한 살의을 애써 삼키고 그들을 추적한다.

노련한 사냥꾼은 감정에 치우쳐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니까.


"젠장..."

미로같은 숲길을 지나며 잠시 그녀를 놓쳐버렸다.

헤메느라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그녀의 체향과 짙은 술냄새가 풍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니 텅 빈 공터가 나왔다.


현랑은 그곳에서 보이는 장면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녀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주정뱅이는 미호를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랑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진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찢는다죽인다찢어죽인다.'

오랜만에 분노로 이성이 싸그리 다 날아가버렸다.


그를 향해 뛰쳐 나가려 할 때, 비릿한 혈향에 이성이 살짝 돌아왔다.

주정뱅이의 배 뒤편으로 섬섬옥수가 튀어나온다.

혈향이 짙어진다.

주정뱅이의 몸이 허물어진다.


간신히 돌아온 한 줌의 이성이 경종을 울린다.

'뭐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 위험하다.'

짙어지는 혈향에 점차 이성이 돌아오자 상황이 다시 보인다.


가녀린 아내의 손이 피를 머금은 채 남의 배를 뚫고 나왔다.

그녀의 뒤로 흐릿한 흰 털뭉치의 잔상이 9개나 보인다.

그 모습은... 전설로 내려오던 구미호와 판박이다.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의 간을 파먹는다는 요괴.


'미호가 구미호였다고? 하아... 하하.... 괴물인 나나 구미호인 너나 참 기구하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그의 안에 있는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분노는 아니다. 슬픔도, 두려움도 아니다. 실망한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져 곤란할 지경이다.


현랑이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미호가 현랑을 바라본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자, 미호의 그 보석같은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떨리고 보석에서 소나기가 내린다.


“현랑...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나도 인간이 되어 너랑 계속 같이 살 수 있었을텐데... 도대체 왜 여기...있는거야?”

그녀는 품 안의 시체를 떨구고, 현랑에게 다가온다.

현랑은 오히려 지금 이 상황에 무섭게도 침착한 기분을 느낀다.

울고있는 그녀를 보니 섬뜩하다기보다는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어서일까?

그나 그녀나 똑같이 괴물이라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다.


“현랑, 미안해....흐흡...”

그녀는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울먹이며 현랑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다가온다.

그런 모습조차 너무나도, 너무나도 아름답다.

마침내 그녀가 한 발자국만 더 오면 안을 수 있는 거리까지 오자, 현랑의 복부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


푸욱


그녀의 손이 제 남편의 배를 꿰뚫는다.

현랑의 다리는 제 주인의 의지와는 달리 힘이 풀리고, 구미호 미호는 넘어져버린 그의 품 안으로 오열을 하며 안겨온다.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나? 그때는 그저 인간이 되고싶어서 너를 만난거였는데... 현랑 너가 늘 그곳에 왔으니까."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인간 남성과 결혼하여 100일간 들키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해.”

“딱 하루....딱 하루면 됐는데... 참 기구하지? 하늘은 나에게 기회를 허락해주지 않았나봐. 나는 우리 남편이랑 백년해로 하고 싶었는데 너무하다 그치?”

“나는 아무래도 인간으로 살기는 글렀나봐. 현랑 너가 너무 좋아서, 다른 남자는 눈에 들지도 않아. 아무래도 산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할 거 같아.”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이제는 움직일 리 없는 현랑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울지마...”


그녀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는 강한 남자라고 해도 보통은 배가 손으로 꿰뚫리면 죽는다.

현랑의 커다란 손이, 그 털이 난 커다란 손이 울고 있는 미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미호는 고개를 들어 현랑의 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보름달이 비추는 그의 모습은 회색 털이 몸을 뒤덮고 있었고, 원래 그녀보다 두 배가량 큰 그의 몸은 그녀보다 세 배쯤은 커보였다.

마치 커다란 늑대와 같은 그의 모습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려 한다.

그런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어느 덧 해시(오후 9시)를 알리는 종이 쳤고 현랑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시야가 붉어지지 않는다.

이성도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이 되었다. 아니 늑대인간이 되었다.

꿰뚫린 간이 부글거리며 다시 메꿔지고, 째진 복부는 서로 꿰메진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그녀의 목을 잡아 뜯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불경하다는듯이.


두 괴물이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바다같은 푸른 눈에는 작은 여우가 비쳤고, 보석같은 붉은 눈에는 커다란 늑대가 비쳤다.

커다란 늑대인간이 그보다 더 작은 구미호의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묻고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그 모습에 독한 마음을 먹은 작은 구미호의 심정에 커다란 파문이 인다.


“미호... 네가 울 때마다 내 가슴이 찢겨나가는 듯 해. 그러니까 울지말고 잘 들어... 네가 지금 보는 것처럼 나는 괴물, 늑대인간이야. 이래서 너에게만은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너랑 만나기 전부터 나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성을 잃으며 살아왔어. 내가 혹여나 너를 해코지할까봐 보름달이 뜰 때마다 너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

'혹시나 네가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을까봐 조심했는데... 너도 마찬가지였구나?'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키며 현랑은 그녀에게 고백한다.

미호의 속에서 죄책감과 놀라움,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섞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가슴팍에 기대 눈물을 흘리며 경청하는것 뿐.


“늑대인간에 대한 설화 중에 그런 게 있어. 어른이 되지 못한 늑대인간은 자아를 잃은 반쪽짜리 늑대인간이라고."

늑대들은 지킬 가족을 꾸리는 순간부터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다른 늑대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 슬하에서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것은 늑대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너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어."

현랑에게 지킬 가족은 미호뿐이었다.

"너는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해줬고, 너는 그런 나에게 삶의 이유였어."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수상하기만 했던 그녀가 이제는 그의 목숨과도 맞바꿀수 있는 사랑이 되었다.

"네가 눈물 흘리면 나도 아프고, 네가 웃으면 나 또한 기뻤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몇번인가.



“그러니까 미호... 아니 자기야...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줘..."

'그러면 진짜 미쳐버릴 거 같으니까.'

"나를 두고 산으로 떠나겠다는 둥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줘."

'제발.... 제발 그러지 마...'

"자기가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 줄게."

'네가 내 간을 원한다면 그것 마저도 줄 수 있어.'


"꼭 인간이 아니여도 괜찮잖아?"

"세상이 너를, 우리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해도..."


"나는 너의 곁에서 오직 너만을 위해 괴물이 되어줄게."


죽을 때까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만을 위해 괴물이 되어 살리라.

현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으로 산다 한들 그 삶에 그의 아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현랑은 족쇄같이 자신을 억압하던 유언을 스스로 풀어헤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호라는 목줄을 새로 맨다.

그는 그렇게 인간대신 늑대의 삶을 선택했다.


현랑의 진심이 담긴 그런 말에 미호의 마음이 동한다.


미호는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고싶었다.


그러나 현랑의 그런 고백을 듣는 순간, 문득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사람이 아니라 현랑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그와 함께라면 괴물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그녀 또한 인간이 아닌 여우의 삶을 선택했다.


서로 인간으로 살길 원했던 짐승들이 꿈을 포기하고 그저 서로를 원하고있다.


"미호, 인간 현랑의 이름으로 하는 청혼이 아닌 늑대인간 현랑의 청혼을 받아주겠어?”

미호는 그의 가슴팍에서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현랑의 가슴팍은 그 곳의 털이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마냥 축 젖어있다.


잠시 뒤, 그녀는 그의 가슴팍에서 머리를 들어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말한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늑대 신랑님."

그녀 또한 현랑을 포기하기 싫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그런 그림과 입을 맞추던 현랑의 입이 떼어지고, 그녀에게 속삭인다.


"고마워요. 여우 신부님."


현랑의 삶의 이유가 미호인 것처럼, 미호의 삶의 이유도 어느새 현랑이 되어있었다.


이내 미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늑대인간과 함께하는 구미호는 자신밖에 없을거라고.

자신이 그를 좋아하고, 그도 자신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그날 점찍어둔 남자가 현랑이라서 다행이라고.


처음에는 그저 인간이 되기 위해 그를 선택했지만, 이제 그런건 상관 없다.

그저 현랑이 좋다. 제 남편이 좋다. 너무나도.


구미호인 미호는 사랑하는 늑대인간인 현랑과 함께 백년해로, 아니 천년해로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은 인간보다 몇 배나 많은 수명을 지니고 있으니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잘 살아가리라.


또 한번의 결혼을 이루고, 현랑과 미호가 원래 살았던 집은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마을의 나뭇꾼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으로는 마을 뒤편의 커다란 산 정상 부근에서 매일 밤마다 여우의 교성과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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