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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타구니
2020-05-12 13:42:12 197 1 0

".....사라졌다."

2020년, 헌터의 시대.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와 맞서기 위해 힘을 얻은 헌터들은.

"내 모든것들이......"

모두 힘을 잃었다.

[모든 신체 능력이 초기회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모든 신체 능력이 초기화 됩니다.]

"하......"

빛으로 된 문자가 망막을 흽쓸었다.
바닥에 눌러붙은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한성아."
"네 형님."
"이거 꿈이지?"

한성이라고 불린 남자가 마찬가지로 바닥에 눌러붙은 채 남자의 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들부들.

"......아. 안되겠슴다. 갑주가 너무 무거워서 팔도 못들겠어요. 그보다 같은 꿈을 꾸다니 신기하네요."
"그치? 이거 꿈이지? 하하하....."

남자, 정찬우가 허탈하게 웃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럴리가 없잖아 씨발!......억! 허리! 허리이!"
"형님! 이 갑주 디게 무겁슴다! 허리 조심하십셔!"

찬우는 힘겹게 팔을 움직여 허리를 문지르며 다시 땅에 눌러붙었다.

콰당!

"시발! 겁나 아프네!"

갑주가 너무 무거운 탓에 도로 누우려다가 땅에 쳐박히는 꼴이 되버렸다.
땅에 닿은 얼굴에 풀잎이 간질였다.

"에취! 내가 시발.....원래 능력치의 반의 반만 되었어도 이지랄은 안할텐데 이게 뭐야 시발...흐어엉."

정찬우라는 인간은 원래 A급 헌터로, 소위 상류층에 속하는 헌터였다.

A급 헌터가 무엇인가!
극소수의 S급 헌터를 제외하면 거의 헌터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친한 동생인 최한성의 성장을 돕기 위해 B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때려잡으러 나왔건만.....

"뭐야 내 능력치 돌려줘요 흐어엉.....어디갔어 시발......"

그 A급 헌터라는 타이틀을 주었던 능력치가 갑자기 증발해버렸다.

".......형님, 그보다 이거 위험한거 아님까. 저희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데요."
"......아."

옴짝달싹도 못하고 흐느끼고 있던 정찬우가 짧은 탄성을 냈다.

B급 게이트는 정찬우에게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조금 힘들다 뿐이지 시간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혼자서 공략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갑주의 무게도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쳐박혀있는 지금은?

"......우리 좆된거지?"
"그것도 확실하게요."

최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찬우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

다음 날.

"왼쪽 길."
"이번에도 왼쪽."
"아, 다음 커브에선 우회전이네."

찬우와 최한성은 게이트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실상 토끼고 있다는게 맞았지만 둘의 행동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형님 대단함다! 어떻게 그렇게 길을 찾아낼 수 있는검까?"

최한성이 감탄하며 찬우를 바라보았다.
찬우가 가자고 하는 길마다 몬스터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난 감이 좋거든."
"감...말임까?"
"그래, 감. 각성하기 전부터 난 감이 좋았어. 야, 잠깐 후퇴하자."

두 사람은 왔던 길을 잠시 물러나고는 커다란 나무 기둥 뒤에 숨었다.

잠시 뒤.

-쿠헝! 쿠후우우

코뿔소를 닮은 커다란 생명체 한마리가 숲의 저편에서 나타났다.

"큰뿔괴력소임다."

찬우는 최한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좀만 사리고 가자."

큰뿔괴력소는 B급 던전에 서식하지만 몬스터는 아니었다.

B급 몬스터의 먹이역할을 하는 먹이사슬의 최하층.
그러나 지금의 둘에겐 승산이 1할도 존재하지 않는 보스몹이나 다름 없었다.

-쿠룽...후웅!

큰뿔괴력소는 곧 주위에 먹을게 없다고 여겼는지 다른 길로 가버렸다.
숨을 가늘게 쉬고 있던 둘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개쫄았네."

삶에 위험을 느낀다는것.
찬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A급 헌터가 된 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이 왠지 낮설었다.

"형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
"다가오는 몬스터도 없는것 같은데 이쯤에서 잠시 쉬자."

어제부터 둘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걷기만 했다.
안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제는 피곤한 참이었다.
헌터로써 단련한 신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유, 피유피유.

하늘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찬우는 불현듯 중얼거렸다.

"아 근데 무구들을 두고 온건 진짜 아깝네......"

찬우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갑주를 해체하는것은 어떻게든 성공했다.
한쪽 팔 부분을 해결하니 나머지 다른 부분들은 손쉽게 풀리게 된것.

그러나 갑주가 너무나 무거워서 차마 들고 오지 못했다.
차라리 무기인 창이라도 챙겨보자 싶었지만 그마저도 두손으로 들리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지만......"

역시 아깝다.
미치도록 아깝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찬우는 머리를 싸매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350억짜리 갑주와 창인데...내 전재산의 절반......"

10년이상 한푼 두푼 모아가며 저축한 재산의 절반을 최고급 A급 갑주와 창에 투자했다.

'그것도 불과 몇달 전에!'

분명 투자한만큼의 본전을 뽑아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설마 여기서 통수를 맞을줄은 몰랐다!

"하 씨발, 생각을 말자.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네."

이미 상황은 벌어진거고!
지금와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때 찬우의 감에 무언가가 잡혔다.
뇌리를 콕콕 쑤시는 강렬한 감각.


'강력해.'

이제까지 느껴본적 없는 강력한 감.
그 진원지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벌떡 일어선 찬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반쯤 잠들어있던 최한성을 발로 차 깨웠다.

"야, 슬슬 가자."
"예에? 좀 더 쉬고 가는거 아니었슴까?"

"잔말말고 일어나 임마."

최한성이 싫은 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일어섰다.
찬우는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아 감각을 확장해 나갔다.

'무언가가 있다.'

왠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이건?"

잠시 후.
강렬한 감각이 느껴지는곳으로 자리를 옮긴 찬우는 눈을 껌벅였다.

"각성초임다.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유능력을 각성하게 해주는 풀임다.'
"그건 나도 알아 임마!"

찬우는 허탈하다는 눈빛으로 각성초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뿌리로 갈수록 검어진다는걸 빼면 일반 잡초와 다를바 없는 볼품없는 모습.
그러나 최한성의 말대로 이건 고유능력을 각성하게 해주는 특별한 풀이었다.

'뭔가 느껴지길래 와봤더니......'

그러나 찬우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고유능력은 대개 급수가 C급 이상으로 넘어가면 개화된다.
그러나 자신은 여태까지 한번도 고유능력이 개화된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B급일때 먹어봤지만.'

고유능력은 개뿔이.
애초에 이건 D급 이하의 헌터만 섭취하는 영약이었다.
각성초를 먹고도 개화되지 않았다면 그건 아예 고유능력이 없는것이었다.

'팔기엔 또 어중간하게 비싸지.'

C급 이하의 헌터에겐 전재산을 털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지만, C급을 넘어선다면 사기엔 조금 부담이 되는 수준.

당연히 자신이 팔아도 껌값정도밖에 안나올것이다.
찬우는 한숨을 내쉬며 각성초를 뽑아 최한성에게 건냈다.

"에휴, 한성아. 이건 너나 먹어라."
"저 이거 이미 먹어봤는데 아무 소용 없었슴다, 형님."
"뭐? 그럼 진짜 쓸데가 없는데....."

찬우는 손에 들려있는 각성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지금도 감이 강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걸 먹어보라고, 먹어야 한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쓰읍......"

속는셈 치고 먹어봐?
지금 자신의 모든 능력치는 F랭크.
즉 A급 헌터가 아니라 F급 헌터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각성초는 C급 이하일때 효과가 있지.'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그래 까짓거, 먹어서 해가 되는것도 없고.'

각성해서 고유능력을 얻는다면 럭키, 아니면 아닌것이다.
찬우는 각성초 뿌리의 흙을 털고 한입에 씹어삼켰다.

우물우물.

베어물자 식물 특유의 텁텁한 쓴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흠...역시 안되나."

잠시 기다려봤지만 달라지는것은 없는것 같았다.
찬우가 괜히 아쉬워져서 입맛을 다신 그때였다.

-지이이잉.

감각이, 확장된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뻗어나가고, 보다 정교해지며 정보의 파도가 찬우를 덮쳤다.

"우욱......!"

찬우가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형님! 괜찮으심까?!!"

최한성이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300미터.
두 마리의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500미터.
호숫가에 큰뿔괴력소가 목을 축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1000미터.
나뭇잎에 새겨진 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어라......'

마지막 광경을 끝으로 찬우는 눈앞이 흐릿해졌다.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휘청거리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더는 못버텨......'

정신을 놓으려는 끝에,

[고유능력 <기감>을 각성합니다. 낮은 능력치로 정신이 버티지 못해 강제 휴면으로 돌입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본것도 같다.


ㅡㅡㅡㅡㅡㅡㅡ


2화


커다란 투기장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흐아아압!"

콰직!

휘두른 창대에 상대방의 몸은 'ㄱ'자로 찌그러져 날아갔다.
걸치고 있던 갑옷이 무색할만큼,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었다.

"아밀! 아밀! 아밀!"
"다 쳐죽여 아밀!"

관객석에서는 사람들이 광기에 차 소리치고 있었다.
대부분이 때깔 좋은 옷을 입고있는걸 보니 상류층의 사람들인것 같았다.

"흐아아아아앗!!"

아밀이라고 불린, 갓 청년이 됬을법한 남자가 호쾌하게 포효하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잠깐.

아밀?
그거, 내 이름이었던가?

내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나, 아니 아밀은 창대를 휘어잡고는 그대로 빙글, 돌아서 뒤편으로 날려버렸다.

푸욱!

"끄륵......"

현을 당기고 있던 궁수가 목에 창날이 꼿힌 채로 즉사했다.
화살은 방향을 잃고 쏘아져, 다른 전사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억!"
"오늘 느낌 좋은데!"

관객 중 한사람이 유쾌하게 외쳤다.
그에 동의라도 하듯 아밀은 미친듯이 웃어재끼며 투기장의 전사들을 모조리 도륙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의 옷깃조차 닿을 수 없었다.
사각을 점거해 달려들어도 대응하며, 눈과 귀는 천리를 바라보고, 그의 창은 단 한번도 목표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는 투기장의 악마였다.

***

"으음......"

찬우의 두 눈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분 한번 뭐같네....."

쓰러진 뒤로 기억이 없다.
무수한 정보를 여과없이 받아들인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으며, 눈은 극심한 피로로 욱신거렸다.

-삐이이.

고막을 다친걸까.
귀에서 시끄러운 이명까지 들려왔다.

"괜찮으심까, 형님?"

옆에서 최한성이 걱정스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우는 머리를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좆같아. 그런데 한성아."
"예, 형님"
"시간이 얼마나 흐른거냐?"

찬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게이트, 그것도 B급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확힌 모르겠지만, 한시간정도 흐른것 같슴다."
"쓰읍, 그래."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뻔했네.'

최한성이 없었다면 필히 죽었을 상황.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와는 다른 장소로 이동한것 같았다.
아마 최한성이 그를 업고 몬스터를 피해 이동한 모양이었다.

"힘들었을텐데 수고했다, 짜식."
"농담 아니고 몇번 죽을뻔했지 말임다."

최한성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찬우 자신처럼 감으로 몬스터를 회피하지 못했을테니 눈에 보이는 위험을 피해 도망다녔을 것이다.

찬우는 고마운 마음에 최한성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음에 소고기 한번 산다."
"흐흐, 꽃등심으로 부탁함다."

거 침은 흘리지 말고......
찬우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더 쉬어야 하지 않겠슴까?"
"충분해. 그리고 지금 떠야한다."

몬스터가 근처에 있었다.
전보다 더 선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유능력.'

기절하기 전에 본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자신은 <기감>이라는 고유능력을 각성한게 틀림없었다.

'왜 지금에서야 각성한건지...하다못해 공격형이었다면......'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일단 각성했다는것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고유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선명하게 몬스터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면 분명 강력한 능력임에 틀림없었다.

없는것보단 역시 있는게 훨씬 좋지!

나중에 능력을 확인해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그래도 최소한 업히시는게......."

최한성이 걱정된다는듯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됐어 임마."

몸상태는 최악이었지만 걸을 정도는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기절해 있던게 회복에 도움이 된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무슨 꿈을 꿨던것도 같고...아닌것도 같고.......'

찬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개꿈인가 보지.'

***

"들어와."

찬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최한성은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집이 디따 크네요 형님. 아, 실례하겠슴다."

찬우의 자택은 주택으로 지어졌으며, 총 평수는 50평이 넘어간다.
서울에서 이만한 집을 짓는것은 왠만한 돈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치익.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찬우는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댔다.
온몸이 나른해지는게 금방이라도 잠이 올것만 같았다.

"하...피곤하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다.
게이트 내에서 밤을 새며 끝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 먼저 씻고 나오겠슴다."
"그려."

최한성은 눈치껏 찬우의 기색을 읽고 거실을 나섰다.
시간은 늦은 저녁을 향해가고 있었고,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찬우의 자택이었기 때문에 최한성이 자고 가는것으로 정해졌다.

잠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찬우는 문득 확인해야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다, 고유능력."

나 각성했었지 참.
피곤에 절어서 완전히 잊고있었다.

찬우는 조용히 명령어를 읊었다.

'가이아의 축복'

빛으로 된 문자가 망막을 가득 채웠다.

[대지모신의 축복을 열람합니다.]

-이름: 정찬우
-칭호: --

-근력: F
-체력: F
-민첩: F
-내성: F
-마력: F

《축복》
<오르트 백작가의 창술: A>

《고유능력》
<기감: C>

가이아의 축복.
능력치의 성장을 돕고 자신의 경지를 가시화 할 수 있는 헌터들의 기본 능력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A랭크로 도배가 되어있었는데......

"후우......."

찬우는 숨을 내쉬며 미칠듯한 허무감을 억눌렀다.
능력치가 리셋된 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확인할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것은.'

축복과 고유능력은 여타 능력치와 달리 리셋이 되지 않았다는것이다.

'축복은 아무래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었으니까 말이지.'

축복은 모든 헌터들이 부여받는 일종의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무술, 정령술, 마법 이외에도 종류는 다양하지만, 축복을 부여받는 순간 해당 기술의 지식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각인된다.

찬우는 이미 <오르트 백작가의 창술>을 일정 경지까지 습득했기 때문에 랭크가 다운되는 일이 없었다.

축복을 살핀 후 시선이 상태창의 아래를 향했다.
찬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기감>은......"

왜 C랭크지?

보통 고유능력은 최하 랭크인 F랭크부터 시작하고, 점점 성장시켜 나가는것이 일반적이다.
E랭크부터 시작하는 극소수의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건 일반적이지 않은.......

'...내 감 때문인가?'

찬우는 어려서부터 '감'이 좋았다.
이젠 일상이 되어서 의식하지 않고있지만 예지 수준의 감은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잠재되있던 고유능력이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외부로 표출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타당할것이다.

'그럼 성장속도가 어마어마하겠는데?'

E랭크로 시작하는 고유능력은 보통 2배 빨리 성장한다.
그렇다면 C랭크로 시작하는 <기감>은 어느정도일까?
가히 측정을 불허하는 성장속도를 보여줄 것이었다.

'솔직히 <기감>이 비전투형인만큼 강해져봤자 실질적인 공격력은 없겠지만.'

나쁠건 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찬우의 생각대로라면 이건 전투에서도 사기성을 여실히 드러낼것이다.

'능력을 다시 되찾는다면, 이겠지만.'

능력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만큼, 이 고유능력이 빛을 볼 날이 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꼭 확인해야 할 마지막 하나.
찬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듯 하더니, 이내 발 끝을 주시했다.

'하필 저기에......'

괜찮다.
충분히 가져올 수 있는 거리다.

찬우는 최대한 다리를 펴며 발로 리모컨을 가져오려했다.

부들부들.

발이 쥐가 나도록 곧게 펴도 리모컨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좀 더......'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자 그제야 닿는듯 싶더니,

팽그르르.

더 멀리 가버렸다.

"망할!"

그냥 일어나서 주워오고 말지!

"일어나는게 뭐가 어렵다고."

찬우는 한숨을 내쉬며 가져온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이봐, 내 능력이 사라졌어! 난 B급 헌터였다고!>
<관리국에선 이 사태에 대해 무언가 알고계신 거죠?>

수많은 헌터들이 커다란 건물 1층을 점거한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서울에 위치한 헌터관리국 본사.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들을 관리감독하는 동시에, 헌터의 편의를 도와주는 일종의 서비스업도 겸하고 있는 조직 단체였다.

전국에 수십개의 지부가 존재하기에 평소에 사람이 붐비는 일은 거의 없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아수라장.
아니 그것을 넘어선 혼돈이 지금 저곳의 상황이었다.

<현재 헌터 관리국의 확실한 의견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만 현재 확인된 바로는 대다수의 헌터들이 능력을 상실했고, 지금 이곳 본사의 1층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헌터들이 능력을 잃었다라......"

찬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네요."

어느새 씻고 나온 최한성이 덧붙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수건만 걸치고 나온 그 모습에 찬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적어도 팬티는 입고 오지?"

사내새끼가 알몸에 수건 걸치고 있는건 그렇게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이쿠, 잠시만요."

최한성이 허겁지겁 거실을 나서자 찬우는 쯧쯧 혀를 차고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금으로썬 딱히 TV에서 정보를 얻을만한게 없어보였다.

'인터넷은 근거없는 뇌피셜로 가득하고.'

지구종말론 무엇.
혹시 인터넷에선 뭔가 올라온게 있을까 싶어 둘러봤지만 여기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헌터에 관한 모든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헌터 관리국에서 보다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었다.

찬우가 더 이상 볼건 없다고 여기고 스마트폰의 사용을 중지할 때였다

-부재중 전화 [윤설아] 14건.
-안 읽은 메시지 21개.

찬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래쪽에 표시된 부재중 기록.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이내 빠르게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못본걸로 하자.'

이건 스마트폰이 꺼져 있어서 못받은거다.


ㅡㅡㅡㅡㅡㅡㅡㅡ


3화


''아자, 이겼다!
"혀, 형님. 저희 대화로 해결합시다, 대화로!"
"어딜 가!"

찬우는 왼손으로 최한성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따악!

"아이고 나 죽네!"

최한성이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찬우는 손을 휘적휘적 털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엄살은."
"진짜 엄청 아픔다, 이거!"

두 사람은 지금 알까기를 하고 있었다.
헌터 관리국에서 발표가 날때까지 할것도 없으니 찬우가 제안한 것이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이시간에도 헌터관리국에서 아직까지 소식은 없었습니다. 이어서 '축복'이 초기화된 헌터를 취재......>

텔레비전에서는 아직도 뉴스가 방송중이었다.

"말도 안됨다! 보통 이런건 제안한 사람이 지는거 아님까!?"

최한성이 바둑판을 뒤엎으며 일어섰다.

찬우의 현재 스코어는 32전 32승.
최한성은 빛나는 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흐흐 새끼, 순진하기는. 내가 괜히 알까기를 제안했겠냐?"

찬우는 여태까지 한번도 알까기에서 져본적이 없었다.

'내가 게임중 유일하게 잘하는게 알까기였다 이말이야.'

자신이 이길 확률이 극악히 높은 게임을 제안한 찬우가 처음부터 유리한게 당연했다
최한성으로써는 억울한 수밖에 없는 상황.

최한성은 입을 비죽이며 이마를 어루만졌다.

"다신 형님하고 알까기 안할검다......"
"억울하면 알까기 잘하시던가."

띠리리링, 띠리리링.

'전화?'

낄낄거리며 최한성을 놀리던 찬우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이면 걸려올 데가 없는데.'

지금은 새벽 2시라는 늦은 시간이었다.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찬우는 집전화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야, 정찬......

뚝.

찬우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최한성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라, 형님? 지인한테 걸려온 전화 아니었슴까?"
"어, 아니, 장난전화 같아."

찬우는 마른 미소를 지으며 바둑돌을 집어들었다.

"슬슬 지겨우니까 이것도 치우......."

쾅쾅!

멈칫.
찬우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끼기기긱. 고개를 현관문 쪽으로 돌리자 날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셋 셀때까지 안열면, 알지?"

슈바.

'조졌다......'

찬우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

"그래서, 어제부터 전화도 안받고 날 방치한 채로 알까기나 두셨다?"
"저기, 일단 그게.....맞긴 한데요......"

싸늘한 목소리.
최한성은 두 사람이 대치한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무섭다!'

자신이 찔리는것도 아닌데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전화는 왜 안받은건데?"
"이번엔 상황이 상황이라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나 할까......"

찬우는 슬쩍 여성의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내가 얼마나 걱정한줄 알기나 해?"

갑자기 울먹이는 여성의 목소리.
찬우는 무릎꿇은 자세에서 허둥거리더니 다급히 여성의 어깨를 안았다.

"미안해 설아야, 잘못했어! 내가 다 나쁜놈이야!"
"그럼 맞아야지."

윤설아는 찬우의 손을 쳐내며 싱긋 웃었다.

"......네?"
"너가 스스로 나쁜놈이라면서. 그럼 맞아야지."

찬우는 직감적으로 ㅈ됬다는것을 깨달았다.

'축복이 리셋된 상태에서 윤설아표 드롭킥을 맞았다간.....'

뼈도 못추릴것이 뻔했다.

"너 지금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지?"

윤설아는 가볍게 허공에 킥을 날렸다.

부웅!

미세한 바람이 찬우의 뺨을 스쳤다.

"미, 미미미안해! 진짜! 다시는 그러지 않을테니까 한번만 용서......"
"이리와 자기야."

윤설아는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형님'

최한성은 최대한 조용히 거실을 나왔다.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쌤통임다!'

은근히 딱밤 맞은것에 대해 뒤끝이 있었던 최한성이었다.

***

윤설아는 시원한 표정으로 소파에 걸터앉았다.

"후우! 속이 다 후련하네."

꺼억..흐흑.....

바닥엔 찬우가 배를 부여잡고 빌빌거리고 있었다.
윤설아도 조금 심했나 싶었던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어.....커헉! 무, 물론이지......"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쿨럭, 위에서 뭔가.....!'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한 상태!

'올라온다!'

''자, 잠깐 화장실 좀."

찬우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웨에에에에엑!"

변기통을 붙잡고는 모든걸 게워냈다.

'드롭킥 한방으로 저렇게까지.....?'

거실의 문 반대편에 서있던 최한성은 변기에 얼굴을 쳐박은 찬우를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윤설아는 예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죽겠다......"
"괘, 괜찮으심까, 형님?"

찬우의 변기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새끼,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어!'

찬우는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최한성을 바라보았다.
설마 형님형님 하면서 따르던 동생이 배신할 줄은 몰랐다.

안그래도 내심 찔려하던 최한성은 급하게 부얶으로 달려갔다.

"물이라도 가져오겠슴다!"
"......그래."

찬우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거실로 돌아갔다.
왠지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당연한 거겠지?'

여자친구에게 걱정이나 끼치고.
자신이 윤설아의 입장이었어도 화낼게 분명했다.

'그래, 남자답게 사과하는거야.'

누가 그랬던가.
비가 온 뒤에 땅이 단단하게 굳는다고.
진중하고 터프하게 사과 한번 하면 서로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었다.

'그 다음에 키스 한번 쮸웁 하면......'

캬 완벽하죠 씨바!

찬우는 헤벌레 미소지은 입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안돼지 안돼.'

진중하고, 근엄하게.

"설아야~역시 내가 잘못......"

찬우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거실 문을 열었다.

"정찬우!"

그때 갑자기 윤설아가 찬우의 손을 잡아끌며 텔레비전이 있는곳으로 이끌었다.

"뭐, 뭐야? 왜 그래?"
"헌터관리국에서 공식발표를 한다고 했어!"

'하필 지금!?'

왜 지금!?

텔레비전에서는 헌터관리국장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망연했던 찬우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때를 노리자.'

지금 사과를 해봤자 쮸웁을 할 분위기도 안나온다.
분명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것이었다.

'인내하는 자에게 행복 있으리.'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우리 찬우 어떡해......'

그러나 윤설아에게는 찬우가 진지빨고 기자회견을 보고있는것으로밖에 안보였다.

'나는...나는 내 기분 안좋다고 찬우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어. 제일 힘든건 찬우일텐데.......'

전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찬우에게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윤설아는 팔을 뻗어 찬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서, 설아야?"

괜히 쫄아서 움찔했다.
윤설아는 찬우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어루만졌다.

"괜찮아, 찬우야. 다 잘될거야."
"어, 응, 고마워."

찬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윤설아의 뇌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유리한듯 하니 가만히 냅두기로 했다.

잠시 후 텔레비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헌터관리국장 박상철입니다.>

헌터관리국의 국장.
최초의 헌터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S급 헌터가 된 남자였다.

<헌터 여러분들께서는 상심이 크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걱정이 큽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면......>

박상철의 본론은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번 째, 헌터들이 능력을 잃은건 동시다발적이며, 그 원인은 아직까지 불명. 전 세계 15퍼센트, 약 90만명의 헌터들이 죽거나 중상 이상.
두번 째, F급을 제외한 게이트들의 입장불가. 투명한 결계같은것이 가로막고 있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으며 재입장은 불가함.
세번 째, 게이트에서 능력치를 다시 올릴 수 있음.
네번 째, S급 헌터들은 능력의 소실 없음. 이 또한 원인 불명.

"아니 시발 왜 쟤내들만."

나는 네번 째 공지에서 불만을 터뜨렸다

A급도 말이야 어?
사람이야 사람!
A급까지는 봐줘도 됐었잖아!

<...이상 현재 알아낸 사실입니다. 추가적으로 밝혀낸것이 있다면 추후 다시 기자회견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상을 내려갔다.
뉴스는 그 뒤로 더 이어졌지만 헌터들의 사건 사고들을 다루고 있어서 아예 꺼버렸다.

"하아....."

나는 소파에 비척비척 걸어가 쓰러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참 많이 애용한다 그치 소파야?

"이제 뭐해먹고 사냐......"

스물 아홉에 강제퇴직하게 생겼다.

'뭐, 새삼스러울것도 없나.'

어제부터 충분히 예상을 했었고, 그에 따른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니까.
그래도 직접 통보 받으니 뭐라 말못할 허무감과, 분노, 상실감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찬우야."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윤설아가 무릎을 세운채 앉았다.
그대로 날 끌어안더니, 가만히 손으로 토닥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난 너가 이대로 퇴직해도 괜찮고, 헌터를 뛴다고 해도 괜찮아. 어느 선택을 해도 응원할거고, 하는 일이 모두 잘되기를 바래."

윤설아는 한 박자 쉬고 숨을 들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만약 다시 헌터를 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이미 한번 갔던 길이고, 요령을 알잖아? 너라면 A급보다 더 높은 S급도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설아야......"

윤설아는 멋쩍은 듯이 "헤헤" 웃더니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했다.
쓸리는 기다란 머리칼에 뭔가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그러니까...너무 슬퍼하지 마. 난 언제나 너의 편이니까. "
"...고마워. 덕분에 기운이 났어."

손의 토닥임은 어느새 멈췄고, 거실엔 우리 둘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그래, 이게 사랑이지.'

찬우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임을 직감했다.

'지금, 지금, 지금!'

찬우는 시선을 위로 올려 윤설아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지.....

"...저 형님? 여기 물 놓고가면 될깝쇼....."


어?

최한성의 눈치 없는 참견이 들려왔다.
물을 가지러 간다더니 어느새 와서 두 손으로 공손히 잡은 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당연히 윤설아의 움직임은 멈추었고, 찐한 키스는 물건너가버렸다.

...저 씨발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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