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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작은여행기] 17. 목표는 잃어버렸지만, 의미는 찾은 것 같다(完)

Broadcaster 리르리안
2021-11-11 17:09:45 29 0 0

[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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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오늘은 마지막이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쓸 것도 없다.

그냥 10km, 그것도 인도만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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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9.5km.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된다.>


그럼에도 오늘도 다른 때와 같이

7시 30분에 길을 나선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빨리 가는 것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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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물집이 잡히고 싶어하던 발가락이

계속 어필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는 상관없다.

오늘은 10km만 걸으면 되니까.

대신 아픔을 좀 이기기 위해

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한다.

평일이라 8시면 카페가 다 열 것이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저렴한 카페가 문을 연다.

단 돈 2천원에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는 혜택이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도 이 여행 이후에

저렴한 카페 브랜드가 많이 생겼다.

지금은 1500원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사이즈로 즐길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이게,

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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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에서 이 가격에 이 크기의 아메리카노를 마신 곳은 군산과 여수 딱 두 곳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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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생각한다.

왜 오늘 이렇게 집에가는

즐거운 날까지

산을 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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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터미널로 가는 길. 땀이 많은 나에게 산길은 싫다. 특히 이따 기차를 타야 하는데...>


나는 산을 타는 걸 되게 싫어한다.

정말 싫다.

올라간다는 행위도 싫고,

올라가는 만큼 내려갈 때의 고통도 싫다.

그런데도 항상 걸어가는 길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그 중에는 우리가

산이라고 부를만한 높은 언덕도 있었다.


우리의 삶도

이 여행길과 같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니

고생을 더 하면 복이 온다는

그런 이야기는 이제는 너무 식상하다.


그래도,

그냥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 길이 어떤 길이 나올지라도

그것에 충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거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있었다.


이게,

이 여행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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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터미널을 지나서 엑스포로 가는 길. 그럼에도 산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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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엑스포역.

마지막으로 온 것은 2014년 여름이었다.

장장 7년만에 온 여수엑스포역.

그 때는 편하게 기차로, 버스로 왔지만

친구들과 와서, 바다가 보여서 

좋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내 여행의 끝을 알려주는 역,

내 여행의 끝을 보여주는 바다.

그런 중요한 곳이 되었다.


바다가 보이고,

여수엑스포역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생각보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감정이 벅차오른다는 느낌보다는

허무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맞지 않을까 싶다.

이제 끝났으니 집에 가고 싶고,

집에서 집밥을 먹고 싶고,

그렇게 나의 목표는 여수엑스포역에 오는 것에서

집으로 돌아가서 쉬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목표를 잡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7년이라는 시간동안

메말라버린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363df946b8c607d7785f83d55070a0a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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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교하니, 예전에는 없던 거북선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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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9.8km

실제 : 11.4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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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쓰기 귀찮아서 남기는

초간단 에필로그.


전라선 무궁화호를 타고 

수원까지 올라간다.

창밖을 보며,

그동안의 여행이 어땠는지 생각해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정해진 목표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이게...

여행인가?


이렇게,

내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은

허무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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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3시간을 걸어온 저 길을 단 5분만에 지나갔다. 이게 바로 도보여행의 장점이자 단점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내 여행기를 보았거나,

아니면 다른 여행기를 보고

저마다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여행이

편안한 드라이브 여행이든

신나는 대중교통 여행이든

보람찬 자전거 여행이든

고생 가득 도보 여행이든

내가 했던 이 여행보다는 더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각자의 기억 속에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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