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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작은여행기] 3. 내일을 위한 오늘의 작은(?) 희생

Broadcaster 리르리안
2021-10-31 18:18:13 55 0 0

[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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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1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이 대체공휴일이어서 휴일이었다.

숙소가 일요일 가격, 즉 평일 가격을 받았어서 깨닫지 못한 점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느껴지는 휴일 뉴스의 느낌.

일어나서 대충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은 역시 어제 사둔 컵라면.

그래도 국물 있는 음식이라, 든든한 느낌은 든다.


재빨리 짐을 챙겨서 나왔다.

아침 7시인데도, 신기하게 사장님이 일어나계셨다.

보통 이 시간에는 키 반납함에 슬며시 넣어두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제 봤을 때 부부였던 사장님들이

번갈아가며 아침을 지키는 듯 했다.


나와서 방송을 켰다.

어제 저녁에, 생각을 거듭 한 결과

더 이상 이동 중에 웹캠을 켜지 않기로 한다.

배터리도 많이 잡아먹고

비가 오면 처치가 곤란하고,

그렇다고 화질은 좋아도 프레임을 버리는 건 아무 의미 없고,

그냥 내 얼굴만 잘 담기면 되겠다는 생각에

미니멀하게 다니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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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뭔가 빠뜨리고 나왔다.>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목 뒤가 허전하다.

아니, 머리가 허전하다.


아,

모자.

허겁지겁 모텔로 돌아간다.

다행히도 사장님께서 여전히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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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겼다.>


재빨리 키를 받아 모자를 챙기고,

모텔 로비의 커피 한 잔을 뽑아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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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원래" 목적지는 예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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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km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에,

가는 길에 순천향대학교 앞을 지나기 때문에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 마시면서

여유롭게 가려고 한다.

발가락의 물집이 네 곳이나 잡혔고,

어제 다 정리는 했지만 오른쪽은 여전히 정리가 안 된 것처럼

꾸준히 자극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 먼 곳까지 가는 것은 조금은 피하기로 했다.

또 물집이 잡히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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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보면 알겠지만, 장항선 기찻길의 선형을 상당 부분 따라가게 된다.>


아산 시내를 벗어나기 위해, 인도를 걸어간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노면은 촉촉해 보였고

하늘은 해가 뜬 것 치고는 어둑어둑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었던 건,

그렇게 젖었던 것 같은 신발이

아침이 되니 감쪽같이 말라있었다.

속깔창만 꺼내서 따로 말려주었는데,

출발할 때 신었던 신발의 느낌이

첫날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어제 빨래한 옷이 덜 말랐다는 것.

그래도 오늘은 해가 뜬다고 했으니까,

가다 보면 마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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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역을 향하는 1호선 지하철. 아산을 벗어나게 되면 이제 나는 지하철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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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상징 스타벅스. 참고로 이 여정에서 다음 스타벅스는 여수에서 봤다. 군산과 순천은 경로에 없어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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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걸어간다.

신발이 좁아서 발을 쪼그리고 가는 듯한 느낌.

한 2주일 뒤에 이 때를 회상하면 작은 게 맞았다.

발볼이 덜 늘어난 신발에,

가방은 어찌나 이렇게 무거운지.

손으로 가방끈을 좀 당기며 걸으면 무게가 분산되서 괜찮은데,

셀카봉을 한 손에 든 나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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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시내구간을 벗어나, 4차선 국도 위를 걷는다. 반대편에 인도가 있지만, 이쪽으로 걷는 것이 보행신호를 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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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말자. 어차피 옆길로 가도 고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만난다.>


힘이 드는데,

불평은 해도 계속 나아갔다.

오르막이 좀 나왔는데,

그래도 버틸만하다.

나중에 구불구불 산길도 넘어가야 하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어제도 고개길을 넘어 오지 않았는가.

그래도 시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순천향대학교로 향하는 길이어서 그런지,

버스정류장은 제때 나와주었다.

버스정류장만큼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또 없다.

물론 시내에서는 좀 눈치가 보이고,

"시(市, city)"라면 시내버스 배차간격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

안 탄다는 제스쳐를 자주 해줘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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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이렇게 앉아서 쉴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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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한적한 곳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한적한 마을에

인도가 계속 이어진다.

아무래도 신창역, 그리고 순천향대와 폴리텍대학의 영향인 것 같다.

도보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인도라는 안전한 길이 반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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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역. 예전에 친구를 만나러 순천향대를 올 일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와본 적이 있다.>


어느새 신창역을, 그리고 순천향대 앞을 지나간다.

시간은 어느 새 9시 30분.

학교 앞에는 카페가 많았고,

문을 다 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싼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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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는 잘 안보이지만 누구나 알만한 그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반갑다.>


대충 1시간 30분을 일부러 안 쉬고 왔기 때문에

좀 앉아 있다가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는 길에 다른 곳에서 잠깐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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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이 자꾸 말썽이다. 그만 좀 괴롭혔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드는게

역시 나는 카페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란 걸 느낀다.


물론,

지금도 내 주변을 맴도는

전파 잡음과 매미 소리 사이의 이 이명의 원인이

카페인이 5할 이상이라는 건

내 몸으로 실험한 결과를 통해 잘 알고 있기에

최근까지도 줄이고 있었다는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고통보다는 낫지 않을까?

병원에서 두 번이나 검사했음에도

물리적인 이상도 없고 청력 문제도 아니라고 하니까

그냥 무시하고, 안고 살아가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의사도 그냥 무시하고 살아가라고 했다.

그냥 무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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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를 벗어나니, 

바로 4차선 국도가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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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차가 쌩쌩 달려 걷기는 싫은데, 집중력이 높아져서 빨리 걸을 수 있고, 실제로 여정도 짧아진다.>


벽에 붙어서 재빨리 간다.

생각보다 갓길이 좁아서 집중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사람 한 명 지나갈 폭은 있어서 괜찮다.

다가오는 차들도 나를 보더니 

옆 차선이 비어있으면 다들 차선을 바꿔서 나를 피해준다.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나에게는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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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도가 힘든 점은, 비가 오면 물이 흘러야 해서 갓길 바깥쪽으로 길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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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는 갓길이 사람 하나도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는데,멀지 않은 곳에 신호가 있어 차가 안 올 때 통과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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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여정은 

잠시 헤어졌던 장항선을 다시 만나

그 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번에는 도고온천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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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온천역. 여기서부터는 도시철도가 오지 않는다.>


역에 들어가지는 않고,

역 앞 주차장 부분이 벤치가 많고 공간이 넓어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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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면서 알았는데, 이 날은 물집에 밴드를 안 대고 그냥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역을 따라 가기 때문에 역에서만 쉬기로 한다.

"원래였으면" 여기가 중간지점이다.다음은 신례원역, 그다음이 예산역.

일단 일정을 맞췄으니,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고,

단지 택시만 가끔 들어왔다 나간다.

아무래도 역을 이용하는 주민이나 관광객을 태우러 오는 듯 하다.

내 생각에는

어르신들은 도시철도가 가는 온양온천을 갈 것이고

주민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을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역이라

택시가 와서 기다려도 허탕만 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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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다 마셔버린 커피잔에 부어

얼음물을 만들고,

다시 출발한다.

신례원까지는 약 5km.

길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중간중간 인도도 나와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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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00미터라도 이렇게 인도가 나와주면 안심이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나는 어느 새 예산에 들어왔고,

신례원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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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고장 예산. 뒤집기 귀찮아서 그냥 올린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읍내에 진입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역처럼 생긴 건 보이지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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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방향으로 가야 신례원역. 이렇게 되면 역을 들어갔다 오는 게 경로 상 손해가 된다.>


1km 전에는 역 가려면 직진하라더니

여기 오니까 9시 방향으로 나가란다(좌회전).

세상에.

지도를 급하게 다시 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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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길로 빠졌어야 했는데, 이정표 상에는 저게 표시가 없었다.

거기에 회전교차로에서 들어가도 폐역 위치.

조금 뒤로 돌아가야 역이 나온다고 한다.

어쩔 수 없으니, 버스터미널이라고 써있는 저기서 쉴까 하지만

역시 버스터미널(이라고 쓰고 버스정류장이라고 읽는다)이라서 그런지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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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데서 꾀죄죄한 차림으로 쉬기에는 민폐다.>


차마 쉴 수 없는 공간.

결국 읍내를 거의 다 빠져나와서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던 몸을 이끌고

새로 깔린 보도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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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 오른쪽의 철 구조물이 그늘이랍시고 기대어 쉬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6km를 걷고 쉬는 거라,

자리는 불편하지만

20분 정도는 쉬어주기로 한다.


잠시 앉아서 쉬면서, 아까부터 하던 생각을 정리해본다.

지도를 계속 보면서 들던 생각과

어제 숙소를 보면서 든 생각,

그리고 약 5시간을 걸어오며 든 생각.


가만히 앉아서 지나다니는 차를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어차피 내일 목적지는 고정이고,

어제 봐둔 곳 중에 가장 싼 모텔은 예산역 근처가 아니었다.

확실히 싼 곳으로 가려면 시내에서 진행방향으로 좀 더 간 곳에 있는

무인텔이 답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지만,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저녁을 사가고,

내일 아침은 가다가 먹으면 되지 않을까?


결국

오늘 조금 더 멀리 가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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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를 바꾼 위치가 빨간색으로 표시된 위치. 절묘하게 괜찮은 위치였다.>


25km에서 32km로 7km가 늘어났다.

이렇게 하면 내일은 정말로 25km에 목적지인 광천역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 있었다.

3일 연속 30km 이상을 가는 고행, 

사실상 3일만에 100km를 가는 고된 여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참을 수 있었다.

내일 광천에 일찍 도착해서 쉬면 되지 않는가.


---------------------------------------


그렇게, 숙소를 미리 예약을 하고,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목적지가 멀어졌기 때문에 부지런히 가야 한다.


처음에는 예산역 근처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가면 2km가량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냥 원래 경로대로 가기로 한다.


시골길처럼 되어있지만, 

근처에 공장도 있어서

5톤 이상의 큰 트럭도 오가는 

넓은, 그리고 이상한 시골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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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예산군 예산읍. 군청소재지라 그런지 아파트가 많다.>


아래로는 자전거길도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다 내가 걷는 이 길로 다녔다.

지나가는 자전거 탄 부부의 대화로는

벌레도 적고, 차가 다니는 길이라 풀도 많이 안올라와있어서

자전거타기에는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나는 자전거를 모르니,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었다.


---------------------------


그렇게 또 한 시간.

발바닥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한다.

족저근막염.

이 고통이 시작되면 물집에서 느껴지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도착했을 때 부어오른 물집을 마주하게 될 뿐.


거기에

발바닥이 아프다보니

걷는 자세가 이상해지고,

그게 결국 왼쪽 발등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원래 내가 군대에서 다쳤던 게 

단순히 족저근막염 가지고 반깁스 꿀 빤 것으로 생각했는데, 

점점 아파오는, 그리고 붓는 듯한 발등을 보니

군대에서 행군하다 다쳤던 부분이 여기였다는 게 생각났다.


결국 예정된 쉴 장소보다

먼저 쉬어주기로 한다.

어차피 앞에 딱 정자가 나타나기도 했고.

힘이 들었는지,

나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들고 있는 셀카봉의 삼각대를 펼쳐서

그 삼각대 발에 의지하여 정자에 앉았다.



뽀각.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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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가 막히게 삼각대 발이 부러졌다.>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

그야말로 실소가 터져나왔다.

"으허...키키키키키키키"

3일만에 이뤄낸 첫 번째 돈 낭비.

이제 삼각대도 하나 사야 했다.

저게 부러질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앞으로의 일정이 광천역, 그리고 보령시청.

내일 모레 보령에 들어가는데,

거기에 있는 다이소라도 들려서 싸구려 삼각대라도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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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는 다이소가 딱 하나 있다. 거기에 내일모레 목적지보다 몇 백 미터는 더 가야 했다.>

<나중에 말할 거지만, 삼각대를 구매한 건 군산에서였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부러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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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을 주섬주섬 챙기고,

다시 출발한다.

1km, 2km, 3km,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수록

발바닥은 점점 더 아파왔다.

발등의 아픔조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아픔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얼마나 아팠는지

평소 걸음의 절반 속도 밖에 내질 못했다.

겨우 한 걸음 내딛으면 정상 보폭의 3분의 2,

그리고 점점 그 보폭도 좁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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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운전면허시험장. 여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배터리 잔량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어제 아무래도 비가 왔어서 그런지

배터리가 말썽이었던 것 같다.

출발한지 겨우 9시간인데

보조배터리는 이미 다 닳았고,

핸드폰 배터리도 약 30%.

남은 거리는 5km.

어쩔 수 없이 방송을 끄고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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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시험장 입구 근처 버스정류장. 저 버려진 책처럼 마음이 허무하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잠시 쉰다.

그리고는 또 우울감에 잠긴다.

분명히, 이젠 방송 안 끊기고 끝까지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해야 하는건가?

내가 가면서 본 여정을 다 남기고 싶다는 건 너무 욕심이었던 것일까?

내가 괜히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정말 많은 생각에 잠기는 10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해는 넘어가기 시작했고,

빨리 들어가야 했을 뿐이다.


---------------------------------------------


다시 걸어간다.

방송을 끄고 가면,

장점은 좀 편한 자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면서 사진을 좀 찍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방송을 켜 놓고도 잠깐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나는 그걸 군산 근처까지 가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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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선 복선전철 공사 현장. 참고로 홍성까지 개통이 되면, 이걸 타고 우리 집 근처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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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 6차로 이상의 국도나 고속도로 선형을 따라 시골길이 있는데, 차가 다니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걸어,

나는 다시 잠깐 방송을 켜기로 한다.

그래도 대충 내가 목표로 한 곳 근처는 왔다고 남겨야 하지 않은가.

동영상으로 하나 남겨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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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사거리 근처. 여기서 방송을 켰다가 다시 끄고, 편의점을 들려 장을 본 다음 2km를 걸어가야 했다.>


서둘러 증거를 남기고,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내일 먹을 아이스 커피를 산다.

(물론 아이스커피는 냉동기능이 아예 없는 냉장고로 인해 그냥 저녁에 먹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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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2km를 걸어간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

가는 길에 인도가 없는 건 그렇다 치는데,

가로등도 없고, 갓길도 없다.75db4bf89d223fcb77d464e4d378b979.jpg

<급한 마음에 찍어서 사진이 흔들렸다. 앞에 보이는 가로등과 다음 가로등 사이의 약 500m는 가로등이 없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돈

라이트를 꺼낸다.

이거 없었으면 사실 오늘 이렇게 갈 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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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켤 때는 뭐 보이겠어 싶었지만 밤에는 정말 밝다.>


이제 준비도 되었으니,

한걸음씩 나아간다.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니

발바닥도, 발가락도,

아까까지 쑤시던 종아리와 허벅지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빨리 살아서 가야겠다는 생각뿐.

예당저수지 근처라 그런지

유난히 저수지 쪽에서 나오는 차량이 많았다.


어떻게든 가야겠다는 그 생각,

그 생각 하나로 나는

어두컴컴한 그 길을 지나

모텔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7시가 넘었다.

무려 12시간이나 걸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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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이는 모텔. 오른쪽 불빛은 앞에서 오는 차. 나는 도로 밖 풀 언덕에 서서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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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고행 끝에 만난 편의점 도시락은 비록 전자레인지가 없어 차가웠지만 엄마 밥 다음으로 꿀맛이었다.>


-------------------------


결과

예상 : 25km -> 31.9km

실제 : 36,3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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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측정치가 계속 과다측정되는 것 같아서 아닌가 싶었는데,

집 근처에서 재활운동하면서 재본 결과

지도 상 거리 8.6km를 돌면

STRAVA로 9km가 나오고, 

STRAVA와 LG 헬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32km를 가도 차이는 1km 이내라는 소리.

결국 가는 동안 쉬는 곳을 찾느라 왔다리갔다리(도고온천역 case)에

지도에서는 최적으로 길을 건너게 알려주는 데 비해 실제로는 좌측이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가

합쳐진 결과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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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이어보기

https://tgd.kr/s/rillyan_sj/5909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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