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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작은여행기] 15. 나는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Broadcaster 리르리안
2021-11-10 19:08:52 34 0 0

[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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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오늘은,

드디어 극한에 도전하는 날이다.


혹시 몰라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숙소에서 나오기로 했다.

왜냐면,

오늘은 35km가 넘는 길을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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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km. 지도에서 37km면, 지금까지의 결과를 볼 때 40km는 예상해야 한다.>


물론, 혹시라도 너무 힘들다 싶으면

승주읍에서 자고 갈 예정이긴 하다.

근데 승주읍에는 숙소가 딱 하나 있고,

그 곳은 소위 읍내라고 부를만한 곳과는 거리가 1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근처에 편의점은 커녕 구멍가게도 없는 동네다.

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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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출발을 한다.

내 기억 속 곡성의 특징은,

아침 안개가 아주 짙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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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끝이 안개로 가려졌다. 구름 사이에 난 다리를 건너는 느낌이었다.>


오늘도 아침에는 천변을 따라 난 자전거길과 인도를 걷게 되어서

그나마 차에 치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점점 안개의 매력에

매료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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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이었으면 귀신이라도 나올까 두려운 풍경.>


주변에서 들리는 까치의 울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따금씩 오는 차 한 두대만이

그래도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걸 알려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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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어폰 마이크로 송출을 해보기로 했다.

모니터링을 하니 소리가 너무 작게 들린다.

소리가 작은 것 같아서 입 근처에 마이크를 붙이고 가니,

숨소리가 너무 거칠게 들어간다.

불만이다.

최대한 마이크에 숨소리가 덜 들어가게 세팅을 이리저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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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조그만 애가 생각보다 말소리는 잘 담는다. 원래 통화용으로 나온 애라서 그런지 잡소리도 좀 걸러주더라.>


그리고 나중에

동영상을 모니터링하니 느끼는 점.

너무 입 근처에 가져다 대니까

내가 모니터링할때 듣던 소리보다

10배는 부풀려서 소리가 송출된 것 같다.

뭐지...

소리가 너무 두꺼운 느낌이다.

다음에 하면 그냥 저 상태 그대로 방송해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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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결제일이여서 

결제 되고 남은 돈, 그리고 다음달 결제액을 계산을 해보니

통장잔고가 간당간당하다.

이러다 잘못하면 핸드폰비랑 청약에 붓는 돈도

못 넣을 정도가 될 것 같다.

불안하다.

이렇게 되니, 더욱더 순천시내까지 들어가야 할

명분이 생긴다.

하루치의 숙소비라도 아끼려면

오늘 무조건 순천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점점 걷혀가는 안개처럼

오늘의 목표도 점점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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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을 빠져나왔다. 반대편을 바라본다. 안개가 낀 동네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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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화장실이 급하다.

젠장...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관광서도 모두 문이 닫고,

심지어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고속도로 옆길.

근처를 보니 아무래도 휴게소 근처인 듯 하다.

휴게소 직원들의 차들이 줄지어 도로변을 차지하고 있다.

휴게소 뒷문이 열려있는데,

순간 화장실의 유혹이 밀려온다.

근데, 직원용 출입구로 되어있을텐데

저기를 어떻게 지나가겠냐.

그냥 포기하고 길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걸어간 지 10분.

오르막을 꽤 올라가고

도로도 점점 좁아지더니 콘크리트길로 변한다.

이 정도면 출근하는 사람들도 이쪽까지는 차를 가져오지 않을 길이다.

아무도 없다.

주변에는 풀숲뿐이다.

집중이 안된다.

너무 힘들다.

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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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으로 가려진 작은 길을 빠져나오니,

마을이 나온다.

여기는 주암면의 한 마을.

중학교도 있는 걸로 보니 면소재지 근처인 것 같다.

나는 어느 새 순천시에 진입한 것이다.

그 흔한 간판도 볼 새 없이 순천에 진입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순천시내까지는 무려 27km.

현재 시간은 10시.

지금까지의 속도로 봤을 때 순천시청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가 될 것이다.

흠...

오늘은 야간보행 확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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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면에 있는 정자. 마이크 고정한다고 밴드 2개를 버렸다. 고정도 안돼서 개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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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읍으로 가는 길.

골프장을 지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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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길이 분기했다가 반대편에서 다시 국도와 합류한다. 이 길....>


아무 생각 없이 지도가 알려주는대로 저수지 옆쪽 길로 진입한다.

근데...

이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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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옆에서 한 컷. 눈빛이 흔들렸던 나.>


저수지 옆이라는 건 알았지만,

산길이라는 건 몰랐다.

저수지에서 난 하천길을 따라가는데

끝도 없는 오르막길이다.

거기에 산의 형태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길.

이건 고창에서 장성으로 넘어갈 때의 그 길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길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길을 만나고

어쩔 수 없이 올라가야 한다는 건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거기에,

분명 승주읍에서 시내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야 한다는 걸 미리 봤기 때문에,

여기서 힘을 빼면 나중에는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내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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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은 이게 끝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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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두 시간,

산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니,

승주읍에 있는 한 숙소 근처에 도착한다.

여기는 옛 승주군청 근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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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반듯반듯.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도로 선형이다. 대놓고 계획한 곳이라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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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이후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나 보다. 도로는 넓은데 차도 텅텅 사람도 텅텅.>


잠시 버스정류장에서 쉬어준다.

지금 시간은 12시 30분.

음.... 어?

지금 5시간 30분만에 20km를 왔네?

그리고 남은 거리는 17km.

거기에 이 정도면 못 갈 정도로 아프거나 한 부분은 없다.

그렇다면...

오늘 안에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바로 숙박 어플을 켜서,

순천시내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본다.

순천 청춘창고 앞 모텔이 가장 싼 가격.

시청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된다.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니, 

조금 더 걸어준다는 느낌으로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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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17.5km.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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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떠나기로 했고

시간도 여유있다는 걸 알았으니,

점심을 먹어주기로 한다.

마침 근처에 TV에도 여러 번 나왔다는 백반집이 있다.

원래 이런 거 비싸게만 받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이런 데서 밥도 한 번 먹어주자는 생각에

가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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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원짜리 밥상. 반찬이 다 맛있고 특히 김치찜은 그냥 저것만 팔아서 9천원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맛있는데

9천원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첫인상.

그리고 한 입 먹은 김치찜은

여기가 왜 9천원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완전 가성비도 좋다 이런 건 아니지만,

이 가격 내고 충분히 먹어도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반찬도 다 맛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15일이나 이렇게 오면서

한식부페에서 밥을 먹으려고 시도만 했지

진짜로 한상차림 한식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집에서 이렇게 먹은 적이 없는 데도

집이 생각나는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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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산행의 시작이다.

백반집에서 커피도 마셨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묵묵히 산행을 끝내는 것.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라간다.

경사가 조금은 있는 느낌이지만,

간간히 차가 다니는 것을 보니

그래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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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친척모임을 한 듯한 한적한 시골을 지나

본격적인 산의 경사를 보이는 오르막을 올라간다.

근데 이거...

경사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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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표지판이 있는데 % 표시가 없었다. 일부러 표기 안한건가?>


도로 표지판을 봤더니

제한속도가 무려 20km/h다.

올라갈 때는 그 정도 속도밖에 못 낼 것 같고,

내려올 때는 그거 이상 속력을 내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좀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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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사를 30분 이상 계속 올라왔다. 다리가 접혀서 질럿이라도 되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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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다 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까지는 저 높은 산이 눈높이에 닿는다. 이걸 올라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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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사투 끝에

오르막을 다 올랐다.

그리고 나타나는 1차선 콘크리트길.

이 길을 통해 차들도 산을 넘어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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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좋다. 이래서 산을 가는 것 같다.>


걷다보니 알게 되었는데,

여기가 상수원보호구역이라고 한다.

이용하는 데 주의를 많이 주고 있었다.

하긴, 내가 올라온 저 경사를 보면

비 올 때는 절대로 차가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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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이 좋게도 산불방지기간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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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을 급하게 이렇게 산을 올라오니,

계속해서 내리막만 나온다.

2시간 넘게, 옆에 난 강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오르막은 하나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내려갈 뿐이다.

산을 내려가고 있으니, 점점 산에 둘러쌓여지는 게 느껴지고,

해가 금방 쏙 들어가버린다.

5시 30분.

이미 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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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이미 지고, 가로등이 슬슬 켜진다. 산이라 그런지 동영상이 개판이 났다.>


계속 길을 간다.

점점 해는 지고,

내가 가는 길은 점점 사람이 사는 골목길로 변한다.

그리고 나오는 수많은 가로등.

여기서부터는 인도가 없어도 나를 지켜줄 불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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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빛이 얼마나 반가운지. 일반적이 국도나 지방도는 불빛이 없어서 야간보행이 힘들다.>


그렇게 또 30분,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슈퍼가 나오고,

인도가 나오니,

드디어 순천시내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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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해냈다.>


그리고 또 10분,

오늘의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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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1km 정도 더 가야 하지만, 다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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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가서

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원래는 김밥에 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6시에 갔는데도 문을 닫았다...

다른 김밥천국은 너무 멀어서,

대체 메뉴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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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행 하면 국밥이지.>


순대국밥을 뼈해장국만큼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든든한 한끼 식사로는 틀림없이 좋다.

거기에 반찬까지 맛있다.

특히 저 쥐포같이 생긴 애를 볶은건지 무친건지 만든 반찬은

너무너무 좋았다.

저것만 있어도 밥 한 끼 뚝딱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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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따로 찍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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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도 한 잔 마셨겠다,

숙소 주변을 좀 둘러보기로 한다.

정말,

내일 여수를 가야하는 일정이 아니었으면

하루 정도 날을 잡고 가보고 싶은 집이 많이 몰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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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를 개조한 것 같은 카페. 가격이 비싸서 도보여행 중에는 불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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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있는 집은 수제맥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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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에는 청춘창고. 아쉽게도 마감시간이라 안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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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용 감응형 신호기를 달아두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보행자용은 처음 봐서 신기해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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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37.1km

실제 : 42.3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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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이어보기

https://tgd.kr/s/rillyan_sj/5940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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