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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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오늘은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어제부터 계속 비가 오고 있다.
날이 꽤 쌀쌀해졌다. 친구들은 패딩도 이제 꺼낸다고 한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이렇게 춥지도 않았고
오히려 걷다 보면 더워서 옷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어느 새 날은 추워지고 있다.
이런 날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답은 "있다" 였다.
그 경이로움에 박수를 한번 보내면서
글을 다시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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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좀 늦게 일어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눈만 뜬 채로 TV를 계속 본 것 같다.
TV 왼쪽 아래의 6이라는 글씨가 7로 바뀌면 나갈 때가 되었다는 건데,
똑같은 뉴스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20km도 채 가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가면 17km. 커피를 위해 시내를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에 18km.>
짐을 다 챙기고 송출 세팅을 한다.
어제 망가져 버린 마이크를 더 이상 쓸 수 없으니,
비상용으로 챙겨온 유선 핀마이크를 연결한다.
<유선의 세계로 다시 돌아와버렸다...>
역시 문제가 있다.
두다다두ㅏ두다두ㅏㅏ두다두다두ㅏ두ㅏ두ㅏ다두ㅏㅏ두ㅏ다
잡음이 수시로 들어간다.
이리저리 3.5mm 단자를 돌려가며 잡음이 없는 곳을 최대한 맞춰본다.
다행히도, 모니터링을 할 수는 있어서 가져왔던 이어폰으로 잠시 모니터링을 해본다.
쩝... 이걸 수시로 듣고 다니려면 힘들고 집중도 안 될 것 같은데...
흠...
이어폰이 일단 통화가 가능하니, 어쨌든 마이크가 달려있다.
이어폰만 핸드폰에 꽂아본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링.
흠...
오늘은 그냥 이렇게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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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출발이다.
일단 시내로 출발한다.
계속 모니터링을 해 본다.
근데 소리가 너무 안 좋은 것 같다.
목소리도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모니터링 소리가 딜레이가 1초 가까이 나서
모니터링을 계속 켜 두고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 자체 송출로 가기로 한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하고 가기로 한다. 차 소음이 아주 우렁차게 들어가는 걸 보니 짜증나네.>
근데,
지금 이 글을 쓰며 동영상을 보면서 알게 된 점이 있는데,
첫째,
핸드폰 기본 마이크보다
저 이어폰의 좁쌀만한 유닛의 마이크가
내가 원하는 소리를 더 잘 낸다는 것.
둘째,
모니터링 한 사운드보다
실제로 방송에 송출된 사운드가 훨씬 소리가 크다는 점
모니터링에서는 게이지 바가 50%밖에 안오는 게
실제 방송에서는 Peak 사운드를 넘어서는 음량으로 소리가 나가고 있었다는 것.
이 어플... 블루투스 쓸 거 아니면 쓸 일도 없었는데
이젠 진짜 쓸 일 없을 것 같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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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들어선다.
잡음이 들어가는 원인이
3극-4극 젠더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혹시나 하고 다이소에서 3극-4극 젠더를 찾아본다.
내가 필요한 젠더와 반대로 되어있는 애만 보인다.
아마 수요가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에도 있는 걸 안 팔다니...
뭐,
어차피 집에도 한 세트 있어서 사면 돈 낭비고,
나중에 집에서 테스트해 본 결과 그냥 핸드폰 연결부가 오래 돼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2천원 굳었으니 됐지 뭐.
일단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가는 길에 무인카페가 하나 있다.
아마 이 동네에서는 저기가 가장 싸겠지?
<와, 전자동!>
원래 카페가 있던 자리를 무인카페로 바꾼 것 같았다.
내가 본 대부분의 무인카페는
계산을 하면 컵이 나와서 내가 직접 얼음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거였다
(물론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양 조절해서 다 나오는 거지만, 컵은 내가 옮겨야 한다.)
근데 여기는
기계 안에서 얼음도 직접 받고, 컵도 옮겨서 에스프레소도 넣고
알아서 다 해서 나오는 형식이었다.
기존의 무인카페가 반수동 반자동이라면
여기는 그야말로 전자동. 사람은 그냥 나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세상에,
우리 동네보다 담양군에 있는 무인카페가
더 신식이라니.
군(County)이라는 명칭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진짜 깨부셔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어차피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 구석에 앉아서 한 잔 하고 가기로 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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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못 샀지만,
그래도 마이크를 쓰는 게 더 나을거라는 생각에
카페에서 마이크를 달고
모니터링을 계속 하면 잡음 나는 걸 유지하면서
원하는 대로 마이크 소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크 유닛 자체는 블루투스 마이크보다 더 좋으니까.
카페를 나와,
아파트 옆을 지나서
다시 시골로 접어든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새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는
메타세콰이어들이
길을 따라 줄을 서 있다.
그러고보면,
담양은 가로수를 다 메타세콰이어로 심어놓은 것 같다.
그냥 흔한 시골길 1 인데 메타세콰이어와 함께 있으니
멋진 산책길이 되었다.
굳이 메타프로방스 쪽을 가지 않아도,
오히려 사람이 없는 곳을 선호하는 나는
이런 곳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래도
메타프로방스 한 번은 가봐야지.
<담양은 진짜 어딜 가도 걷기, 드라이브 하기 좋은 동네 같다.>
날도 좋고,
길도 좋고,
어제는 뭐 마이크가 망가졌지만
오늘은 그럴 일도 없겠지.
심지어 얼마 가지도 않으면 도착할 거고.
정말 좋은 날이다.
<저예산 도보여행만 아니면, 이런 카페에서 몇 시간 쉬고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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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소세지를 포장하면서 사장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도보여행 왜 하는 거에요?"
사장님의 질문에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요, 해 보고 싶어서?"
숙소에 오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분명, 내가 처음에는
이래서 하고 싶었다, 저래서 하고 싶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을 못 할 이유도 아니었는데,
어느 새 그 이유를 모두 잊어버린 듯,
아무런 이유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그냥 그 이유마저 핑계였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왜 이게 하고 싶었지?
왜?
뭐였지?
<왜? 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 뿐, 이미 이유는 사라졌을지도.>
내가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그 이유는 다 사라지고,
오로지 이 걷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단지 길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냥 나아갈 뿐이었다.
짧게 가야 하면 그냥 신나는 날이고,
길게 가야 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뿐이었다.
비가 오면 판초를 입고,
해가 뜨면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었다.
그냥 걸어야 해서 걷는 것이었다.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울 때는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생각하라고 한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부모님이 가지셨던 아픔을 다른 삶이 겪지 않게 하고 싶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려운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을 수 있다.
지금,
이 길 위의 나는
인생의 목표는 모르겠고,
그냥 여수까지 빨리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내가 그동안 고민했던 것은,
아니 고민을 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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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도 남겠다,
마침 가다 보니 배도 고프겠다,
가는 길에 점심도 먹기로 한다.
진짜 점심에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13일만에 느낀 것 같다.
원래는 아침에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출발하면
저녁때까지는 배 고프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사람이 여유가 생기고
신체 리듬도 여기에 적응이 되니,
일상이 되어버린 듯
자연스럽게 점심시간에 배가 고파진다.
시간은 12시.
인근에서는 좀 유명한 중국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운이 이렇게 좋을 땐, 먹고 가야지.
메뉴는 짬뽕. 그냥 짬뽕이 아니라 "왕짬뽕" 이다.
<모든 사람에게 군만두 한 점 서비스로 주었다. 옆에 짜장소스는 왕짬뽕이라 준건가?>
주변에 산업단지도 있지만,
어쨌든 근처에 밥 먹을 곳이 마땅치는 않아 보였다.
거기에 나름 유명세를 얻은 곳이라
주변 관광객들도 너도나도 차를 끌고 와서 식사를 하는 곳이기도 했고.
<기존 짬뽕보다 2천원 더 비싼 왕짬뽕. 세발낙지가 인상적이다. 도보 중이 아니면 소주 한 잔 정도는 먹고 싶네.>
짬뽕이
맛있다.
집에서 시켜먹는 짬뽕과는 달랐다.
비슷한 맛인데, 다르다.
뭐... 2천원의 힘인가?
어쨌든 내 취향에는 아주 잘 맞는 해물짬뽕이었다.
면도 좀 많은 것 같아서
같이 나온 짜장에 면도 비벼 먹고
아주 알뜰하게 잘 먹었다.
<국물까지는 먹으면 배가 터지기 때문에 원래도 다 안 먹는다. 이 정도면 정말 잘 먹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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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먹었으니, 길을 계속 가기로 한다.
오늘 숙소에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중간에 지나는 하나로마트를 잠깐 들려야겠다
사실, 어제 먹으려고 산 불닭볶음면과 크래비를
먹지 못하고 그냥 가방에 싸왔다.
라면이야 괜찮은데, 크래비는 냉장고에 있던 애라
하루 안에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들한테 보내느라 나중에 숙소에서 찍어둔 것. 다행해도 크래비는 변하지 않았다.>
하나로마트도 너무 시골이다 보니,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안 보인다.
핫바 같은 애들은 거의 들여놓지 않는 것 같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품목 위주.
컵라면도 이미 하나 있으니 다른 걸로.
가격은 좀 나가지만
국물이 든든한 쌀국수로 사기로 한다.
거기에 모자란 단백질을 위해
구운 계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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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생각보다 인도가 많다.
면 지역이더라도
메타세콰이어가 있는 곳이면
인도가 한 쪽은 무조건 있다.
걷는 사람에게
이런 건 당연히 반갑다.
물론,
인도가 있어도
관리가 되지 않는 인도는
차도만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건 반갑지 않은데 말이지...
<그냥 풀숲이다. 도저히 여길 걸을 수가 없어서 그냥 차도로 걸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국도를 걷는다.
당연하게도 왕복 2차선 국도.
이따금씩 차선이 하나씩 늘어나기도 하지만
기본은 2차선이다.
갓길이 넓어서 다니기 편한 건 덤.
마을도 간격이 그리 멀지 않아서
버스정류장도 나름 자주 나오는 편이다.
<다들 버스 시간에 맞춰 나올 테니 거미줄이 이렇게 있겠지. 근데 아예 노선이 사라진 건지 아무런 노선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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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와 마을길을 번갈아 간다.
국도로만 걷는 것이 귀찮아서 하천을 따라 낸 길도 같이 걸어주기로 한다.
<아, 한가로워라.>
진짜,
저렇게 하천을 따라 나 있는
흙길을 언제 걸어볼까.
나는 그래도
도시에 살면서도
이런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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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드디어 담양을 빠져나와
곡성에 진입한다.
아직 체크인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은 것 같다.
마을에 있는 벤치에서 20~30분 정도 쉬었다가,
모텔로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마을에 이렇게 벤치를 3개나 깔아두다니. 참 좋은 마을이야.>
혹시나 하고 카페를 검색해본다.
하나 나오는데,
뭔가 예술성이 가득한 카페인 것 같다.
핸드드립 커피에, 직접 만든 건강한 빵, 건강한 쿠키.
주인장 내외는 예술쪽으로 종사하는 사람 같고.
지금의 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그냥 쉬기로 한다.
사실 테이크아웃을 하고 싶은데
해줄 수도 없는 곳 같고,
가격도 그 안에서 직접 즐길 것이 아니면
터무니없는 가격이기도 했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조금은 더 단정한 모습으로
들르고 싶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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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
숙소에 들어간다.
오늘도 무인텔.
무인텔이, 정말 뜬금없는 곳에 뜬금없게 있어서
의외로 도보여행객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주변에 편의점이 없는 건 흠이지만,
그건 경로만 잘 짜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초록초록한 오늘의 숙소. 완전 입식 침실에 세면대가 건식이라니.>
숙소에 들어와서 바로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이제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메시지를 보내니 바로 오는 한 마디.
"야 로켓 쏜다"
아, 맞다.
오늘이었지?
<빨래를 하며 올라가는 모습을 끝까지 본 것 같다.>
결과는 다 알테니 따로 말은 안하고,
뭔가 이렇게 같은 주제를 두고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눠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친구들하고 카톡을 거의 안 하는 편인데,
아니
카톡을 잘 안보게 되서 참여를 안하는 것이었지.
사람이 무한정 혼자 살 수는 없듯이,
이 정도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은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닭또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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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18.0km
실제 : 20.5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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