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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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오늘은 드디어
항상 생각만 해 오던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는 날이다.
아침에 버스도 무사히 타고 왔고,
혹시 바람 때문에 추울 것 같아서 핫팩이랑 장갑도 샀고,
사진도 미리 다 찍어두었다.
<비응항의 아침. 오늘은 뭔가 될 것만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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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는 단순하다.
<이게 다다. 길이 어떻고 생각할 것 조차 하나 없다. 그냥 앞으로, 앞으로.>
오늘의 선택은 딱 하나다.
차도 왼쪽으로 걷느냐, 오른쪽으로 걷느냐.
그 전에 로드뷰를 보면서 계획한 대로,
차도 왼쪽의 도보를 이용하기로 한다.
<시작은 어쩔 수 없이 이쪽이지만>
<여기서 건너서 가기로 한다. 참고로, 여기서 출발하면 다음 쉼터까지는 길을 건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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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방조제는
사람은 당연히 없고
차도 거의 없다.
정말 넓은 길을 나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느낌.
거기에 그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하다.
이 느낌,
근데 나쁘지 않다.
어제 너무 공장 풍경에 시달려서 그런지
외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아침의 4차선 도로지만
오히려 좋다.
<지도로 보고 왔지만, 정말 길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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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가 만들어지고 그 위로 차들이 쌩쌩 다니지만,
방조제 안쪽은 아직은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마치 바다 위에 내가 떠 있는 듯한 느낌.
방조제 위에서 내륙 쪽으로 바라보아도
수평선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저 멀리 섬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뒤에서는 계속 바람이 불어온다.
다행히도,
순풍이다.
나를 도와주기라도 하는 듯,
바람은 계속해서 나를 밀어준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평소보다 더 힘이 나는 느낌이다.
더 힘을 내기 위해,
아침밥 대신으로 에너지바를 하나 먹기로 한다.
<먹느라 정신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카메라 좀 확인 하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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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행사가 있나 보다.
반대편 인도로 수 많은 자전거가 가더니
내가 걷는 길로 한 대, 두 대 오고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만금 잼버리 홍보를 위한 자전거 대회였다.
<뭐... 이런 대회였다고 한다.>
잼버리가 뭐야? 라고 할 사람들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 축약해서 설명하면,
세계 스카우트 연맹에서 4년마다 주최하는 대규모 국제 야영활동이라고 한다.
나는 아니지만,
보이/걸스카우트 가입한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야영한다고 텐트치고 했던 걸
세계 단위로 모여서 한다는 거라고 이해하면 가장 빠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cf)
혹~시라도 궁금할 사람들을 위해 주소를 남긴다.
경로가 아마 고군산군도 쪽을로 가서 돌아나오는 것 같은데,
다행히 내가 고군산군도를 지나갈 때까지는 자전거가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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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쉼터가 많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쉼터에서 화장실도 들려주고,
손톱 주변에 올라온 거스러미도 정리해주고,
밴드를 감지 않은 발바닥도 열심히 풀어준다.
<전날까지는 장갑을 끼지 않았기 때문에, 손등이 가방에 쓸리기도 하고 거스러미가 많이 올라왔었다.>
가다가 먹을 걸 파는 곳이 나오면 좀 보충을 하려고 하는데,
처음 갔던 쉼터의 매점은 아침이라 문을 닫았고,
다음 쉼터는 말 그대로 "쉼터"였다.
지도를 보니 앞으로 휴게소가 두 곳이 있는데,
여기 아니면 매점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오늘 숙소가
근처에 편의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저녁이야 근처 식당이 있어서 먹으면 된다지만, 커피는 구할 길이 없다.
그래서 가다가 매점에서 뭐라도 사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직선으로 그어도 2.6km. 심지어 앞으로 갈 방향과 정 반대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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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네 시간,
처음 들린 매점에서는 커피를 팔고 있었기에,
얼죽아 답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나왔다.
<사실 라면도 팔았는데, 4천원은 너무 한 것 같아서 패스.>
안에는 앉아있을 자리가 없어서
바깥의 쉼터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으윽...
춥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다.
근데 쉼터는 하나같이 뻥 뚫린 곳에
벤치 하나 덜렁 있는 형태의 쉼터.
사실 지금까지 계속 오면서 그랬지만,
여기 있는 쉼터는 정확하게 말하면 "차 있는 사람"이 쉬는 쉼터였다.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쉬려니 도저히 추워서 쉴 수가 없다.
어떻게 하지...
다시 걷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바람을 막아 줄 건물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다음 쉼터도 매점은 없을 거고...
건물...
아...
있네... 딱 하나...
모든 쉼터에 있는 그 건물...
그렇게 도착한 다음 쉼터.
나는 결국 생각으로만 하고 있던 걸
실행하기로 한다.
<혼밥이 흔해지기 전의 대학교 아싸 화장실 점심 짤이 생각났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그나마 이렇게 했지, 사람이 있었으면 이것도 못했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인데,
진짜 급한 사람이 오면 자리를 비켜줘야 했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맞는 5분의 휴식.
안과 밖의 체감온도 차이는 2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침부터 굳어있던 몸이 스르르 녹는 느낌.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데도 춥다고 느끼는 나였는데,
여기는 햇빛 하나 없이도 땀이 나려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차라리 빨리 가서 숙소에서 쉬는게 낫지 않을까?
조금 더 속력을 내 보기로 하고 화장실을 나선다.
<5분으로는 휴식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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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시간은 2시가 되었다.
절반을 지난 지는 좀 되었고, 앞은 다시 끝없는 길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계속 차량의 통행을 막았던 좌측의 이차선 도로에는
공사를 위한 장비와 차량이 있었다.
<저 도로는 저 공사가 끝나고 저쪽이 오픈되어야 개방되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개발이 다 끝나고 나면,
지금 내가 보는 이 풍경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냥 내가 많이 봐오던 계획도시 1의 모습일까?
바다라는 자연과 도시라는 인공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모습일까?
내가 다음에 새만금을 건너게 되는 날이 오면
알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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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가력도에 도착했다.
여기는 매점이 있고, 휴식할 공간도 넓다.]
그리고 여기가 숙소 도착하기 전에 있는 마지막 매점이다.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사온 건 작은 도넛 하나와 다이제 하나 뿐이었다.>
여기는 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끓인 라면이 4천원이다.
심지어 컵라면도 2천원이다.
안 먹고 말아.
그래도
풍력발전소 돌아가는 것도 초근접으로 볼 수 있고,
항구도 있고
공원도 나름 잘 해 놓아서
풍경 자체는 정말 좋다.
도넛을 까 먹으면서
잠시 눈을 정화시키기로 한다.
<나는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든 날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자기의 삶에서 누리지 못하는 부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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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2시간을 걸었다.
어느 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만금을 건넜다.
시계를 보니 5시 언저리.
출발한 지 10시간쯤 된 것 같다.
(나중에 정확하게 보니, 9시간 40분 가량 걸렸다.)
<부안에서 새만금으로 들어가는 초입. 다 건너오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까지의 나를 생각해보면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시 조금 넘어서 출발한 새만금을
5시도 채 되지 않아서 건너왔다.
뭐, 1시간에 3키로씩 가면 10시간이면 건너지 않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며칠 전까지도 30km를 가려면 12시간을 겨우겨우 가던 사람이
이렇게 건너온 것이다.
<이 때가 동영상 기준으로 9시간 40분. 숙소까지는 1km 남짓.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내가 이 여행을 계획하며 생각으로만 했던
새만금 건너기에 대한 열망,
이 여행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목적도, 이유도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행 안에서 하고 싶었던 것 중 가장 중요했던 일.
새만금을 건너보자,
그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
그것도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이뤄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감동이 올라왔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앞으로의 일정이 더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도보여행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부안에서 바라본 새만금. 이 길을 건너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여행의 기대감은
4만원이나 내고 들어간 숙소의 상태를 보고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실망감을 다시 꺼내 여기 털어내 보기로 한다.
<광천에서 묵었던 여관방보다 못하다. 시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맨발로 밟으면 더러움이 느껴지는 바닥이 문제였다.>
cf)
진짜 이건 말해주고 싶다.
혹시 새만금 건너는 걸 계획한다면,
내가 묵은 숙소는 비추.
어디라고 특별히 적지는 않겠지만 어딘지는 다들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신 다른 방법을 추천해본다.
(2021년 10월 기준에서는 유효)
<98번 버스. 하루 딱 3회.>
군산 시내버스 중에는 비응항에서 가력도까지 가는 버스가 일 3회 운행한다.
상행, 하행 어느 경우든
가력도에서 비응항으로 출발하는 막차를 타고 비응항 근처의 숙소를 이용하길 바란다.
코스 추천은, 군산 비응항<->가력도<->부안 줄포면 이다.
주의사항
1. 상행이라면 줄포-가력도가 시간을 맞추기 힘들 수 있으니, 출발 시간을 조절하자.
2. 이 노선 이력을 보면 폐지된 적도 있고, 2018년에 부활 후 2020년에 감차된 상태다. 반드시 운행 여부를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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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32.1km
실제 : 36.6km
아침에 나와서 버스 기다리고, 비응항에서 편의점을 갔다 오느라 1km를 추가.
쉼터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거리를 조금씩 더 잡아먹고,
새만금휴게소는 심지어 들어갔다 나오는 데만 500m를 더 소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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