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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작은여행기] 14. 안개가 아름다운, 여기는 곡성

Broadcaster 리르리안
2021-11-09 18:47:15 33 0 0

[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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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이젠 7시 반에 나가는 게 당연해진 것 같다.

마음으로는 7시에 나가야지 생각하지만

그 마음으로 준비를 하다보면

출발하는 시간은 7시 30분이다.

날씨에서는 추울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뭐, 어차피 복장은 맨날 입는 그 복장에

재킷 하나 걸치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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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깜빡하고 놓고 갈 뻔했다. 세 번째 체크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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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30km 미만의 짧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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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서 곡성으로.>


곡성을 빠져나가는 데 있어서 중간지역으로 활용하기 좋은 곳이었기에

석곡면을 선택했다.

참고로 석곡면은 흑돼지불고기집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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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선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지...


주변 세상이

안개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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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는 데도 안개에 해가 가려버렸다.>


와,

우리 동네에서도 1년에 한 번 정도

안개가 이렇게 자욱하게 끼는 걸 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2차선 도로를 그냥 걷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나마 아침에 농로를 다니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늦게 출발해서 일몰 직전에 도착하게 시간을 배분했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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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아침에 구름이 껴서 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 안개는 언제 걷힐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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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왔다.

별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건

심심하고, 지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너무 말에 집중을 했을까?

소리가 이상하다는 말에 마이크를 확인하는데...

마이크에 달려있던 솜털이 사라졌다.

정확한 명칭은 윈드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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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윈드실드의 마지막 모습. 실종 3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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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실드가 실종된 뒤의 마이크. 잡음이 들린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원래는 사람이 들어온 이후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모니터링을 쭉 하니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나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마이크를 이리저리 만져댔나...

이렇게 둔할 수가 없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블루투스 마이크를 지켜주었지만

블루투스 마이크가 죽어버린 후

구경에 맞지 않는 헐렁한 마이크를 지키려다

스스로 바람에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별했다.

3천원이라는 돈에 

블루투스 마이크에 정착하기 위해 개조를 한 3시간,

그리고 13일 2시간 동고동락을 같이 한 

"뽀송이"와...



아, 3천원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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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적응이 다 되었나 보다.

신발도 편해지고,

어깨도 허리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단지, 화장실을 많이 찾을 뿐.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화장실을 자주 찾는데

이상하리만큼 자주 화장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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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면 버스정류장 근처 화장실에서 나와서 지도를 보고 있다.>


이렇게 몸은 점점 

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항상 하루에 가야 되는 거리는 가야 하고,

그 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떠한 것도 즐길 수 없는 상태였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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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는 동안에는 주변 경치를 보고 찍는 것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여유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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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오늘 점심도 짬뽕.

그러고 보면,

나는 짬뽕을 무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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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가 4천원이라서 군만두도 시켰다. 과식은 금물인데, 이건 못 참았다.>


별점평가에서는 너무 별점이 안 좋아서

먹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평가를 자세히 읽어보니 주말에 바쁠 때만 그렇게 서비스가 나빴던 것 같아서

오늘같이 한가한 날에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

대신 배가 너무 불러서 저녁을 맛있는 걸 챙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쓴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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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커피 한 잔의 여유는 필요하다. 커피 빼고 다 서비스. 가격도 위치를 고려하면 Good. 곡성IC 사거리니 알아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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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길이 여유롭다 보니,

다음 일정에 대한 생각이 든다.

남은 거리는 대충 80km.

어제부터 계속 지도를 보면서 일정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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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누가 그렸는 지는 몰라도 드럽게 못그렸다.>


원래 목표는 내일 순천 승주읍, 모레 여수 율촌면, 그리고 사흘 뒤 도착.

그런데 그렇게 가면 사흘 뒤 6시에 출발해야 4시 전후로 도착할 수 있는 강행군이다.

그렇다면, 내일 좀 무리를 해서라도 순천시내에 들어가고,

다음날에 여수시내로 들어가면 

마지막 날은 오전 10시에 끝난다.

참...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누가 여수 들어갔는데 회 안먹냐고 하는 말에

그걸 생각해서 짰던 경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에 일찍 끝내고 여유롭게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였다.

단지...

승주읍에서 순천시내로 넘어가는 저 길이

산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고,

석곡에서 바로 순천시내까지 가는 건

35km 이상의 강행군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이 된다.

길을 걸어가면서 계속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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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계속 하다보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걷는 것만 생각할 뿐이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재취업에 대한 고민,

여행에서 쓰는 돈의 압박,

방금 전까지 하던 경로에 대한 생각마저

사라져버리고

그저 오늘 가기로 한 목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걷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모든 생각을 잊게 해 주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아픔,

굳어버린 발가락의 물집의 이물감,

종아리와 허벅지의 뻐근함,

허리와 어깨의 쑤심.

걸을 때 느껴지는 이 고통과

이 고통이 쌓일 수록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오늘의 목표.

그냥 그것 뿐이다.

목표가 있으니,

걷는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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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있기 때문에 간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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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버스가 자주 보인다.

버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 하나.

새만금 건널 때도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 풀어본다.


보통 시골의 버스는 한 대, 두 대로 다닌다.

같은 기사님이 같은 경로를 반복해서 다니는 것.

그럼, 내가 버스의 경로를 따라서 계속 가다 보면

저 기사님은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계속 보고 있지 않을까?

저 사람은 여기까지 왔군

음, 이번에는 여기까지 왔네. 되게 빠르네?

이야~ 아직도 걸어? 다음번에 돌면 이제 안 보이겠지?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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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자 뭐 하겠냐, 내 생각도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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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석곡에 도착하고 있었다.

시간은 4시가 살짝 넘은 시간.

아까 점심에 전화해본 결과 체크인 시간 상관 없이 아무 때나 오라고 했으니

바로 숙소부터 들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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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곡면으로 들어가는 회전교차로 앞. 생각보다 금방 왔다.>


마을로 들어서니,

소박한 동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차선 도로르 따라 길게 들어선 1층짜리 상가들 사이로

높게 뻗은 건물이 겨우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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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나오면서 잠깐 찍어본 동네의 모습.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소머리국밥집은 닫았다.>


이제 다 왔으니, 힘을 내서 가기로 한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누가 나를 부른다.

"아니 뭐 하시길래 그렇게 계속 걸어가시는가?"

"네? 아~ 도보여행중이에요."

파출소 앞, 경찰관 한 분이 말을 걸어오신다.

"순찰 돌면서 봤는데 계속 오더라고~"

"아, 저도 순찰차 도는거 몇 번을 봤어요~"

그리고 나오는 맨날 나누는 그 대화.

그래도 경찰이셔서 그런지 계속 순찰 도시면서 오는 모습을 유심히 보셨나보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피곤하니 얼른 들어가기로 한다.

"저~기 저 식당이 그 유튜버 XX 왔다 간 데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조심하시고."

이 동네도 유튜버가 왔다 갔네.

신기하다.


마침 앞에 카페가 있길래, 

마지막 체력 보충을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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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위치만 빼면 모든 것이 좋았다. 이런 면소재지 단위에서 이 정도 숙소면 감개무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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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내일을 위해 닭을 먹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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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닭또음면을 피하기 위해 오늘은 신라면 볶음면을 대신 먹었다. 닭을 버리지 않기 위해 옛날통닭을 선택했다.>


내일 35km가 넘는 여정을 가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3일차에도 그랬고, 10일차에도 그랬듯이,

내일의 희생으로 마지막 날의 편안함을 가져오기로 했다.

이틀 정도 가볍게 걸어서 체력도 있고,

점심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정도로 심적인 불편함도 가라앉았다.

결정적으로,

오늘 26km 남짓 되는 거리를 8시간 30분만에 왔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쉰 시간 1시간을 빼면 7시간 30분.

26 / 7.5 = 약 3.5km.

전에도 말했지만 4km/h인 사람이 쉬는 시간을 고려할 때 시간 당 3.3km을 간다.

걷는 속도도 올라왔다.


이 정도면,

다시 35km에 도전해도

가뿐하게, 여유있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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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26.1km

실제 : 26.4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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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이어보기

https://tgd.kr/s/rillyan_sj/5936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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