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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작은여행기] 10. 좋아, 25km 받고, 10km 더.

Broadcaster 리르리안
2021-11-05 18:26:00 46 0 0

[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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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어제는 도저히 힐 게 없어서

앞으로의 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지도 어플을 열고 이리저리 모텔과 여관, 식당을 검색해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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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해서 이틀 만에 가느냐, 조금은 여유 있게 사흘에 가느냐.>


원래 일정은 바로 흥덕까지 간 다음 장성으로 가는 이틀 소요 경로.

그런데 이후 경로를 광주로 돌아가는 방향에서 담양-순창-곡성-구례로 바꾸면서

당시에 진행속도를 보고 사흘에 나눠서 가는 방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새만금을 건너보니까,

이 컨디션이라면 35km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장성부터는 담양-순창-곡성-구례까지 25km 언저리의 짧은 구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몸 상태라면 이틀만에 장성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돈을 계산하면서 다닌 건 아니지만 점점 바닥나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하루라도 더 줄여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나였다.


뭐, 고민은 오래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일단 줄포까지 간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다.

줄포에 일찍 도착하면 흥덕까지 가는 거고,

아니면 줄포에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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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km면 이제는 짧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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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채 먹지 못하고 나선다.

주변에 아침식사를 할만한 곳은 없고,

심지어 줄포까지는 편의점도 없다.

결국 아침식사로는 어제 사온 다이제 세 조각에 믹스커피.


주인 할머니는 불 끄고 주무시는 것 같아 그냥 키만 두고 나왔다.

아니, 잠깐만.

키를 주긴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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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서둘러 빠져나왔다. 커피가 정말 맛있는 집이 바로 옆인데 9시 오픈이라 들르지 못했다.>


밖을 나오니, 뭔가 이상하다.

물집도 굳었고, 아침이라 발바닥이 괜찮다 보니

이제는 다리의 온갖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다시 시작된 왼쪽 발등의 고통.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목도 잠긴 느낌.

오늘...

웬지 줄포에서 끝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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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작은 조용한 도로를 지난다.

국도가 생긴 뒤로, 수많은 차들의 이용이 끊겨버린 도로.

옆에 있는 국도는 경사도, 선형도 완만하여 차들이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옆의 도로를 따라 산의 모양을 그대로 느끼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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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이는 도로가 국도. 이 도로는 자전거와 마을버스 외에는 주민들만 이용하는 도로가 된 듯 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국도를 타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도 어플이 추천하지 않는 길을 갈 이유는 없다.

거기에 도로 상태를 보니, 교량 부분도 상당히 많아서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도로 자체가 국도를 감싸며 가는 형태이다 보니,

차들이 내 앞으로 달려오는 느낌이 든다.

산에 튕겨 나오는 차 소리는

아침부터 힘들게 움직이는 나의

온갖 감각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걷기는 참 편한 길이다

경사도 그렇게 급하지 않고,

차도 없고.

그걸 아는 주변 마을의 주민들은

간간히 아침 산책을 즐기고 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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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걷기 괜찮더라. 이 길 ,서해랑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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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정말 안 다니나 보다. 중앙선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 되었고, 풀들은 차도쪽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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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가 이 도로 대신 난 것이다 보니, 도로를 일부 잘라먹은 경우도 많았다. 점점 좁아지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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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뜬금없는 시골 동네 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라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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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승용차들이 이 쪽으로 들어가는 게 많이 보인다.

아마 안에 있는 기관에 출근하는 사람들이겠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 시골에

저런게 지어져 있는 걸 보고,

이 곳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

...

뭔 생각이 들겠는가.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은 나를 위주로,

나의 안위를 위해 나만을 생각할 때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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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을 바르는 나. 손등은 그림자가 진 게 아니라 선크림을 안 발라서 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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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까지는 25km니까,

생각대로라면 4*6 =24,

13시, 늦어도 14시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내려간다.

내 몸은 엄청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와 다르게 풍경은

한가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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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 그리고 평화로움. 이 안에서 싸우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음에 도보여행을 할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경로를 짜고 싶다.

저 때,

나는 주변의 풍경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

다음에는

주변을 더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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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어제 먹은 칼국수도 별로였고, 

오늘 아침도 다이제 하나로 버티려니

조금은 배가 고파진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아침식사를 하는 집이 있어,

잠시 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메뉴는 제육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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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나온 건 김치제육이었다.>


그렇게 맛있다! 는 느낌은 아니지만

든든하고 맛 좋은 제육볶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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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걷는다.

밥을 먹었으니, 줄포까지 3시 안에 도착하면

흥덕까지는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방도를 계속 걷는 일정이다보니

지도를 볼 일도 없고,

마냥 앞으로 길을 쭉 걷다 쉬다 하고 있으면

점점 말 할 거리가 사라진다.

주변 풍경을 설명하는 것도,

지금 뭔 일이 있는지 설명하는 것도,

1시가 넘어가면 귀찮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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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벽돌 버스정류장에 창문이랑 문을 설치했다. 물론 의자의 수북한 먼지는 그대로다.>


방송을 켜두고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매 순간순간의 말과 행동으로

당시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말수가 줄어가니, 

직접적으로는 뭔 느낌인지 알 길이 없다.

결국에는

점점 느려지는 내 발걸음,

흔들리는 내 눈, 

그리고 거칠어지는 숨소리,

그리고 낮아지는 카메라의 앵글.

이런 것들을 보며

그 때 당시의 감정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계속 보다 보면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다.

당시 상황은 별로 떠오르는 게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떠오른다.

어쨌든,

저 영상 속 얼굴도 나고,

여기 앉아있는 사람도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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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끝이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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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제 무리를 한 것일까?

속도가 생각보다 나지 않는다.

배는 찼는데, 햇빛은 따사롭고, 몸은 지치고.

점점 눈이 감기는 느낌이다.


그래도 처음 출발했을 때보다는

규칙적으로 쉬고 관리도 해 주면서

잘 쉬는 방법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잠깐 쉬는 것만으로도

다음 한 시간 전진을 위한 힘이 차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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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발등의 파스를 보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발등이 뻐근한 느낌이 든다.>


더 많은 에너지를 찾으려면

커피를 마셔줘야 한다.

이런 시골 동네를 계속 걷다보면

카페는 고사하고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커피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는,

시골의 상징 하나로마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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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아닙니다. 커피입니다.>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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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 국도를 따라 쭉 내려간다.

오늘 가게 될 줄포도, 흥덕도

모두 23번 국도를 통해 간다.


남부지방을 다니며 놀란 점이 있다면,

국도라고 써 있는 왕복 2차선 도로가 많다는 점이다.

군산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국도는 거의 4차선 이상의 큰 도로와

수많은 차의 압박을 받는 도로였는데,

이쪽에서 걷는 국도는

차가 좀 많이 다니는, 갓길이 좀 넓은 시골 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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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표지판을 안봤으면 사실 내가 걷는 길이 국도라고 인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놀란 점이 있다면,

빈 집과 망해버린 상업시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중부지방에서도 보이던 것이었지만,

점점 내려갈수록 유난히 눈에 띄게 나타난다는 점이

교과서로만 배우던 걸 몸소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나한테 이런 시골에서 살라고 하면,

....

모르겠다.

나도 수도권에서만 평생 살았던 사람인지라.

그렇게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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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학교와 자연사박물관. 오른쪽에 "직원 외 출입금지" 표지판이 참 아이러니하다. 찾아보니 폐쇄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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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도 없이 가다보니,

줄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은...

3시 40분...

아... 여기서 오늘은 그만가야 할까?

어플을 열어서 검색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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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가볼만한데?>


10km 남짓 남았다. 이정도면 늦어도 7시 30분이면 도착한다.

여름이면 괜찮지만, 가을에 접어들면 일몰 이후 시간이다.

애매한 거리다.

가려면 빨리 가야하고, 안 갈거면 결정해야한다.


한번 숙박 어플을 켜고,

숙소를 보기로 한다.

마침 숙박 어플에서 보이는 한 숙소.


흥덕면 면소재지가 아니라 국도변의 숙소.

예정보다 1km 짧아진다.

10km는 길어 보이지만, 9km는 짧아 보인다.

면 외각이기 때문에 음식을 사 먹는 것은 힘들겠지만,

다음 날 진행 방향을 고려하면 

면소재지를 들어가는 것보다 내일 거리가 짧아진다.

거기에 익숙한, 그리고 반가운 저렴한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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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는 4시간이지만, 9km는 3시간이 되는 기적의 계산법.>


결국 힘을 조금 내서

흥덕까지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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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총 거리는 34km.>


숙소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줄포에 들른 김에 편의점을 들려 저녁거리를 사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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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소재지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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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전진하기를 2시간.

점점 해가 지고 있다.

아무래도 야간보행을 해야 하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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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 밑에 불 안켜뒀으면 그냥 캄캄하게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다.

솔직히,

야간에 이런 길 위를 걷는 건

걷는 걸 좋아하는 나도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과는 별개로

밤에 일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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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오늘 야간보행을 할 줄은 몰랐다. 충격과 귀찮음, 그리고 두려움.>


여차저차 30분을 걸으니,

모텔 근처까지 왔다.

농로를 통해서 가면 모텔이 나온다.

차가 안 올 생각을 하니 마음에 놓인다.


주변에 가로등은 여전히 없다.

라이트만으로는 빛이 모자란 것 같아서

잠시 핸드폰 플래시를 켜본다.


그리고 

방송이 꺼졌다.

카메라 오류였을 것이다.

뭐,

500미터만 더 가면 되니

괜찮긴 한데,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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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멈췄다.>


얼른 모텔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서 다시 방송을 켜서

증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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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그랬고 다른데도 그랬는데, 온돌방으로 예약을 해도 침대방을 준다. 가격은 같아서 나는 불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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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

혼자 먹기 외로워서 잠시 동영상을 켰다.

오늘 저녁 메뉴는 불닭볶음면에 편의점 스모크치킨.

다행히도 로비에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뜨거운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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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로 불닭볶음면이 좋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먹방 체질이 아니구나.

그렇게 10분도 채 못 버티고

그냥 영상을 꺼버리고는

재미있는 런닝맨 다시보기를 본다.

어제 어디까지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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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25.6 -> 34km

실제 : 38.0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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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이어보기

https://tgd.kr/s/rillyan_sj/5924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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