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여행기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한 작성을 위해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의 시점이 3주 가량 된 이야기라, 사실이 약간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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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어제는 도저히 힐 게 없어서
앞으로의 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지도 어플을 열고 이리저리 모텔과 여관, 식당을 검색해보며 생각해본다.
<무리를 해서 이틀 만에 가느냐, 조금은 여유 있게 사흘에 가느냐.>
원래 일정은 바로 흥덕까지 간 다음 장성으로 가는 이틀 소요 경로.
그런데 이후 경로를 광주로 돌아가는 방향에서 담양-순창-곡성-구례로 바꾸면서
당시에 진행속도를 보고 사흘에 나눠서 가는 방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새만금을 건너보니까,
이 컨디션이라면 35km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장성부터는 담양-순창-곡성-구례까지 25km 언저리의 짧은 구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몸 상태라면 이틀만에 장성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돈을 계산하면서 다닌 건 아니지만 점점 바닥나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하루라도 더 줄여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나였다.
뭐, 고민은 오래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일단 줄포까지 간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다.
줄포에 일찍 도착하면 흥덕까지 가는 거고,
아니면 줄포에서 자야지.
<25.6km면 이제는 짧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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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채 먹지 못하고 나선다.
주변에 아침식사를 할만한 곳은 없고,
심지어 줄포까지는 편의점도 없다.
결국 아침식사로는 어제 사온 다이제 세 조각에 믹스커피.
주인 할머니는 불 끄고 주무시는 것 같아 그냥 키만 두고 나왔다.
아니, 잠깐만.
키를 주긴 했었나?
<그냥 서둘러 빠져나왔다. 커피가 정말 맛있는 집이 바로 옆인데 9시 오픈이라 들르지 못했다.>
밖을 나오니, 뭔가 이상하다.
물집도 굳었고, 아침이라 발바닥이 괜찮다 보니
이제는 다리의 온갖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다시 시작된 왼쪽 발등의 고통.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목도 잠긴 느낌.
오늘...
웬지 줄포에서 끝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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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작은 조용한 도로를 지난다.
국도가 생긴 뒤로, 수많은 차들의 이용이 끊겨버린 도로.
옆에 있는 국도는 경사도, 선형도 완만하여 차들이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옆의 도로를 따라 산의 모양을 그대로 느끼며 걸어갔다.
<왼쪽으로 보이는 도로가 국도. 이 도로는 자전거와 마을버스 외에는 주민들만 이용하는 도로가 된 듯 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국도를 타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도 어플이 추천하지 않는 길을 갈 이유는 없다.
거기에 도로 상태를 보니, 교량 부분도 상당히 많아서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도로 자체가 국도를 감싸며 가는 형태이다 보니,
차들이 내 앞으로 달려오는 느낌이 든다.
산에 튕겨 나오는 차 소리는
아침부터 힘들게 움직이는 나의
온갖 감각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걷기는 참 편한 길이다
경사도 그렇게 급하지 않고,
차도 없고.
그걸 아는 주변 마을의 주민들은
간간히 아침 산책을 즐기고 있으셨다.
<어쩐지 걷기 괜찮더라. 이 길 ,서해랑길이다.>
<차들이 정말 안 다니나 보다. 중앙선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 되었고, 풀들은 차도쪽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국도가 이 도로 대신 난 것이다 보니, 도로를 일부 잘라먹은 경우도 많았다. 점점 좁아지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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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뜬금없는 시골 동네 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라는 곳이 있다.
<뭘...까?>
승용차들이 이 쪽으로 들어가는 게 많이 보인다.
아마 안에 있는 기관에 출근하는 사람들이겠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 시골에
저런게 지어져 있는 걸 보고,
이 곳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
...
뭔 생각이 들겠는가.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은 나를 위주로,
나의 안위를 위해 나만을 생각할 때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네.
<선크림을 바르는 나. 손등은 그림자가 진 게 아니라 선크림을 안 발라서 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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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까지는 25km니까,
생각대로라면 4*6 =24,
13시, 늦어도 14시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내려간다.
내 몸은 엄청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와 다르게 풍경은
한가함 그 자체다.
<한가함, 그리고 평화로움. 이 안에서 싸우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음에 도보여행을 할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경로를 짜고 싶다.
저 때,
나는 주변의 풍경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
다음에는
주변을 더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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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어제 먹은 칼국수도 별로였고,
오늘 아침도 다이제 하나로 버티려니
조금은 배가 고파진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아침식사를 하는 집이 있어,
잠시 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메뉴는 제육볶음.
<예상과 달리 나온 건 김치제육이었다.>
그렇게 맛있다! 는 느낌은 아니지만
든든하고 맛 좋은 제육볶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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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걷는다.
밥을 먹었으니, 줄포까지 3시 안에 도착하면
흥덕까지는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방도를 계속 걷는 일정이다보니
지도를 볼 일도 없고,
마냥 앞으로 길을 쭉 걷다 쉬다 하고 있으면
점점 말 할 거리가 사라진다.
주변 풍경을 설명하는 것도,
지금 뭔 일이 있는지 설명하는 것도,
1시가 넘어가면 귀찮아지게 된다.
<기존의 벽돌 버스정류장에 창문이랑 문을 설치했다. 물론 의자의 수북한 먼지는 그대로다.>
방송을 켜두고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매 순간순간의 말과 행동으로
당시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말수가 줄어가니,
직접적으로는 뭔 느낌인지 알 길이 없다.
결국에는
점점 느려지는 내 발걸음,
흔들리는 내 눈,
그리고 거칠어지는 숨소리,
그리고 낮아지는 카메라의 앵글.
이런 것들을 보며
그 때 당시의 감정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계속 보다 보면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다.
당시 상황은 별로 떠오르는 게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떠오른다.
어쨌든,
저 영상 속 얼굴도 나고,
여기 앉아있는 사람도 나니까.
<얼핏 보면 끝이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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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제 무리를 한 것일까?
속도가 생각보다 나지 않는다.
배는 찼는데, 햇빛은 따사롭고, 몸은 지치고.
점점 눈이 감기는 느낌이다.
그래도 처음 출발했을 때보다는
규칙적으로 쉬고 관리도 해 주면서
잘 쉬는 방법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잠깐 쉬는 것만으로도
다음 한 시간 전진을 위한 힘이 차는 느낌이다.
<왼쪽 발등의 파스를 보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발등이 뻐근한 느낌이 든다.>
더 많은 에너지를 찾으려면
커피를 마셔줘야 한다.
이런 시골 동네를 계속 걷다보면
카페는 고사하고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커피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는,
시골의 상징 하나로마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콜라 아닙니다. 커피입니다.>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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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 국도를 따라 쭉 내려간다.
오늘 가게 될 줄포도, 흥덕도
모두 23번 국도를 통해 간다.
남부지방을 다니며 놀란 점이 있다면,
국도라고 써 있는 왕복 2차선 도로가 많다는 점이다.
군산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국도는 거의 4차선 이상의 큰 도로와
수많은 차의 압박을 받는 도로였는데,
이쪽에서 걷는 국도는
차가 좀 많이 다니는, 갓길이 좀 넓은 시골 도로였다.
<저 표지판을 안봤으면 사실 내가 걷는 길이 국도라고 인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놀란 점이 있다면,
빈 집과 망해버린 상업시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중부지방에서도 보이던 것이었지만,
점점 내려갈수록 유난히 눈에 띄게 나타난다는 점이
교과서로만 배우던 걸 몸소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나한테 이런 시골에서 살라고 하면,
....
모르겠다.
나도 수도권에서만 평생 살았던 사람인지라.
그렇게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나게 해 준다.
<원숭이학교와 자연사박물관. 오른쪽에 "직원 외 출입금지" 표지판이 참 아이러니하다. 찾아보니 폐쇄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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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도 없이 가다보니,
줄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은...
3시 40분...
아... 여기서 오늘은 그만가야 할까?
어플을 열어서 검색을 해 본다.
<이 정도면... 가볼만한데?>
10km 남짓 남았다. 이정도면 늦어도 7시 30분이면 도착한다.
여름이면 괜찮지만, 가을에 접어들면 일몰 이후 시간이다.
애매한 거리다.
가려면 빨리 가야하고, 안 갈거면 결정해야한다.
한번 숙박 어플을 켜고,
숙소를 보기로 한다.
마침 숙박 어플에서 보이는 한 숙소.
흥덕면 면소재지가 아니라 국도변의 숙소.
예정보다 1km 짧아진다.
10km는 길어 보이지만, 9km는 짧아 보인다.
면 외각이기 때문에 음식을 사 먹는 것은 힘들겠지만,
다음 날 진행 방향을 고려하면
면소재지를 들어가는 것보다 내일 거리가 짧아진다.
거기에 익숙한, 그리고 반가운 저렴한 가격.
<10km는 4시간이지만, 9km는 3시간이 되는 기적의 계산법.>
결국 힘을 조금 내서
흥덕까지 가기로 한다.
<바뀐 총 거리는 34km.>
숙소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줄포에 들른 김에 편의점을 들려 저녁거리를 사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산다.
<면 소재지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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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전진하기를 2시간.
점점 해가 지고 있다.
아무래도 야간보행을 해야 하니,
준비를 한다.
<이 모습, 밑에 불 안켜뒀으면 그냥 캄캄하게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다.
솔직히,
야간에 이런 길 위를 걷는 건
걷는 걸 좋아하는 나도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과는 별개로
밤에 일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야간보행을 할 줄은 몰랐다. 충격과 귀찮음, 그리고 두려움.>
여차저차 30분을 걸으니,
모텔 근처까지 왔다.
농로를 통해서 가면 모텔이 나온다.
차가 안 올 생각을 하니 마음에 놓인다.
주변에 가로등은 여전히 없다.
라이트만으로는 빛이 모자란 것 같아서
잠시 핸드폰 플래시를 켜본다.
그리고
방송이 꺼졌다.
카메라 오류였을 것이다.
뭐,
500미터만 더 가면 되니
괜찮긴 한데, 허무하다.
<이 장면에서 멈췄다.>
얼른 모텔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서 다시 방송을 켜서
증거를 남긴다.
<여기도 그랬고 다른데도 그랬는데, 온돌방으로 예약을 해도 침대방을 준다. 가격은 같아서 나는 불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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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
혼자 먹기 외로워서 잠시 동영상을 켰다.
오늘 저녁 메뉴는 불닭볶음면에 편의점 스모크치킨.
다행히도 로비에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뜨거운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진짜로 불닭볶음면이 좋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먹방 체질이 아니구나.
그렇게 10분도 채 못 버티고
그냥 영상을 꺼버리고는
재미있는 런닝맨 다시보기를 본다.
어제 어디까지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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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예상 : 25.6 -> 34km
실제 : 38.0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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