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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어요 쓸데없는데 여러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2차 대전 이야기

행복벨
2021-08-07 14:04:13 1289 31 21





분명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지만

잠이 오질 않아 지금까지 깨어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떤 글을 쓰려고 하면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져서 잠을 못 이루는 걸까요?


요즘 연달아서 전쟁에 관한 글만 올리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yeonSorry 



방장님께서 (예상도 못했던) 배틀필드 V를 플레이하시는 만큼,

그에 맞춰 여러분들께 색다른 이야기들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스스로의 사연은 아니지만 이 카테고리가 가장 알맞아 보여서 이걸로 올리겠습니다.


무더운 주말,

저의 부족한 글이 여러분들께 편안한 휴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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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서론


1. 유령부대

2. 거인과 기사

3. 전쟁영'웅'

4. 애꾸눈 저격수

5. 머리카락, 기부합니다

6. 영국 신사의 싸움 방식

7. 미군이던 내가 미군을 격추하게 된 건에 대하여

8. 라떼는말여

9.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전투

10. 우리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기에

11. "난 살인자가 아니다, 난 사람이고 싶다."

12. 그는 더 이상 적이 아니었습니다

13. 용기




서론


여러분들은 2차대전을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2차 대전을 다루는 매체는 정말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그 깊이에 대해서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인기있는 인물과 사건들은 몇 번이고 다뤄지지만- 과연 그것이 이 전쟁의 전부일까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간 다른 이야기들은 없는걸까요?


그래서 이 글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 점점 큰 이야기로 여러분들께 전해드릴까 합니다.




1. 유령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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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부대' 로 알려진 미군 제 23 본부 특수부대


우리는 전쟁이라고 하면 으레 군인들만의 일로 생각하지만,

세계대전으로 탄생한 '총력전'의 개념은 이와 달랐습니다.


국가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는 총력전은,

그동안의 전쟁과 달리 여성과 비전투원들에게도 역할을 부여하게 했습니다.

많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국익에 이바지했죠.


그 중에는 예술가, 할리우드 연출가, 광고업 종사자들이 모인 특이한 부대도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유령부대로 알려진 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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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으로 만든 가짜 전차, 업계 전문가들 다운 퀄리티가 돋보인다.


이들은 최대한 '뭔가 있는 것 처럼' 꾸며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기만 전술 부대였습니다.

아마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됐던걸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시작은 영국군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인 기만전술들이었는데,

이걸 보고 미군이 잘 써먹은 사례가 '포티튜드 작전' 입니다.


노르망디 상륙 직전, 이들을 이용해 가짜 군대를 계속 편성하여

독일군은 노르망디에 상륙이 이뤄지고 며칠 후에도 주력이 어디인지 헷갈려했습니다.


하루에 100km 씩 부대가 왔다갔다 하고, 수백대의 탱크가 한번에 나타나니 미칠 노릇이었죠.

실제로 독일군은 이 유령부대의 규모를 4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대의 존재, 그리고 이들이 쌓은 전술과 노하우들은

이후 냉전시대에도 계속 눈치싸움을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1996년에야 세상에 공개됩니다.




2. 거인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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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군인은 키가 2.21m 이다.


그런가 하면 대전 중엔 흥미로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서커스 단원으로 있던 야코프 내킨(Jakob Nacken)이 독일에 징집되면서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키가 큰 군인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전투를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특기를 살려 선전물에 출연하는 식으로 복무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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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앞서가는 군인을 보라, 검을 쥐고 있다!


하지만 기행의 나라 하면 영국 아니겠습니까?


'미치광이 잭' 이라 불렸던 잭 처칠(Jack Churchill)은

총 대신 백파이프, 한손용 클레이모어, 장궁을 들고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찰 시 자신의 부하들에게 습격 명령을 '적에게 화살을 꽂는 것' 으로 시작하였고,

수류탄을 던지기 전 백파이프로 연주를 하는 등

몹시 호전적이고 하는 짓은 이상해도, 작전은 성공시키는 그런 고위급 장교였습니다.


어느 날은 소총수 한 명을 데리고 백파이프를 불어재껴

적에게 항복을 종용하여 42명의 포로를 사로잡은 일도 있었지요.


1944년에는 베를린에 포로로 잡혀가지만, 그것마저 무사히 탈출했으며

일본군과 무척 싸우고 싶어 했으나 그 전에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2차대전 중 유일하게 로 사살한 기록이 있는 군인이며,

독일군 측에서도 아무리봐도 잭이 미친거같아서 기록한 자료들이 여럿 남아있습니다.

이정도면 기사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군요.




3. 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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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쟁은 사람만의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여기, 이렇게 공을 세운 분도 계시거든요.


보이텍(Wojtek)은 자유 폴란드군에 속했던 시리아불곰입니다.


제 22 탄약보급중대원 중 한 병사가 현지 소년으로부터

어린 곰을 구매해 같이 데리고 다닌 것이 시작이었지요.


보이텍은 그들을 따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탈리아, 영국까지

많은 곳을 함께 다니게 됩니다.


그는 병사들과 같이 자거나, 조수석에 앉는 것, 레슬링 하는 것을 즐겼고

특히나 맥주를 좋아했으며 담배를 매우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불 붙은 담배가 아니면 쳐다도 안봤다고 하니...)


그도 엄연히 부대원으로서 포탄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는데

평생 단 한발도 떨어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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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보급중대의 깃발, 보이텍은 당연히 중대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중대원들은 그에게 공식적인 계급도 부여하였는데-

전쟁이 끝날 때 최종 계급은 하사였습니다.


전후 보이텍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물원으로 보내졌으나

보이텍은 다른 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전우들을 항상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따끔씩 그의 동료들이 방문할 때면, 우리 안으로 들어가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흡연을 하곤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가 공산화 되었기 때문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병사들은 보이텍의 처지가 자신들과 같아 서글퍼했습니다.

보이텍은 이후 22살의 나이로 자연사하게 됩니다.




4. 애꾸눈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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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다치면 전역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드릴 레오 메이저(Léo Major)는 "퀘벡 람보" 라는 별명을 지녔던 군인입니다.


그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즉 캐나다군으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정찰병이었던 그는 노르망디 상륙 후 정찰 도중 무장친위대와 교전을 하게 되는데

4명을 전부 사살하는 과정에서 그는 인 수류탄을 맞아 왼쪽 눈을 잃게 됩니다.


군에선 그를 제대시켜주려 했으나,

그는 자신의 무기를 조준하는 데에는 한쪽만 있어도 충분하다며 군에 남았습니다.


당장 한쪽 눈을 감고 계단 내려가기만 해봐도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이 오실겁니다.


그는 이후 네덜란드의 도시 Zwolle에서 93명의 독일군을 단독으로 생포하였고

이 공로로 영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인 'Distinguished Conduct Medal'(이하 DCM)에

후보로 올랐는데- 훈장을 자신에게 수여해주게 될 몽고메리 장군이 '무능'하기 때문에

훈장 대신 7일의 휴가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분은 이후 한국전쟁에서도 정찰저격수로 참전하여

제1차 마량산 전투에서 밤새 아군을 위해 포격을 받아가며 중공군을 막아낸 공로로

DCM 훈장을 (이번엔 진짜로) 수여받게 됩니다.




5. 머리카락, 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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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은 미군이 10억 달러를 들인 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맨하탄 프로젝트가 30억이었고

10억 달러의 추정가가 현재 약 26조원인걸 감안하면 엄청난 물건이었죠.


그래서 이게 뭐였냐고요?

노든 폭격조준기, 즉 조준용 컴퓨터였습니다.


이것을 비행기에 달고 폭격했을 시, 폭격의 오차범위가 실험상 18m

실전에선 300m 내외로 줄어드는 획기적인 발전을 보여주었지요.


조종사들은 전쟁 내내 이 조준기에 대한 비밀을 지켜야했고

존재 자체가 철저히 비밀리에 취급되던 장비였습니다.

(물론 이미 개발단계에서 독일군도 이걸 캐냈지만 양산할 능력이 없었음이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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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바브닉 브라운의 모습


이것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조준 십자선을 실험하려면 특수한 물질이 필요했는데

그에 적합한 물질이 바로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입니다.


정확히는 평생 염색이나 화학처리, 펌 등의 열처리를 한 적이 없는

56cm 이상의 긴 금발 머리카락이 필요했지요.


당시 이 조건에 맞는 여성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위의 메리 브라운이었습니다.


그녀는 특히나 머리에 진심이었던 사람으로,

매일 천연 비누로 씻고, 2번씩 빗어주며 머리를 소중히 길렀는데

그 머리카락들은 86cm로 길이까지 알맞았습니다.


평소엔 머리를 땋고 그것을 두르는 식으로 다녔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왕관같다고 말하곤 했죠.


정확히 어떤 일에 쓰이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당연한 의무' 라며 그녀는 머리카락을 기증했고

국가에서 보상으로 전쟁 채권을 주려던 것도 거부하였습니다.

(비록 그 후 2달간 머리카락에 대한 상실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말입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그녀의 생일에 직접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조준선은 영어로 Crosshair(크로스헤어) 인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조준기에 직접 쓰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붙었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었습니다.

아쉽게도 이건 사실은 아니고, 천문학용 망원경은 원래도

거미줄이나 머리카락으로 조준선을 쓰곤 했기 때문에 훨씬 이전부터 그렇게 불리고 있었지요.


누군가 크로스헤어에 관해 낭설을 이야기한다면, 부디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yeonLaugh 




6. 영국 신사의 싸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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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모와 긴 우산을 들고 전투한 사람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아, 어차피 칼과 활만 들고 뛰어든 사람도 이미 있었군요.


딕비 타담 워터(Digby Tatham-Warter) 소령은 낙하산 연대의 장교였습니다.

그는 라디오의 신뢰성을 의심해 나팔로 신호를 주는 사용법을 부하들에게 가르쳤고,

비밀번호 기억에 어려움이 있자 아군식별 수단으로 우산중산모를 함께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야 누가봐도 저 사람은 영국인이라 생각할테니까요.


딕비는 그 모습만큼이나 특별한 일화들이 있습니다.


그가 전투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던 도중 독일군 장갑차와 대치하자,

장갑차에 달려들어 관측창을 우산으로 콕콕 찔렀습니다.

그렇게 운전병의 눈을 찔러버리면서 장갑차를 무력화해버린 일이 있었지요.


또한 전투 중 아군의 군종 목사가 사격포화에 갇혀 도망치지 못하고 있자,

"총알은 걱정하지마, 우산이 있잖아." 라며 그를 부축하여 무사히 데리고 나온다거나

실제로 라디오가 맛이 가서 그가 가르친 나팔이 요긴하게 쓰였다거나 하는

재미난 일화를 가진 전쟁영웅입니다.


또한 딕비는 동물 사냥보다는 사진을 찍는 것에 집중하는

현대적 사파리의 개념을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복장만큼이나 신사다운 분이셨네요.




7. 미군이던 내가 미군을 격추하게 된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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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에드워드 커데스(Louis Edward Curdes)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합니다.


그는 미 육군 항공대(당시엔 공군이 아직 없었습니다) 파일럿으로,

1945년 2월 10일- 추락한 동료 파일럿 Lacroix를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미군의 수송기인 C-47 더글러스 수송기였으며

분명 미군의 문양과 도색도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체와는 아무리 해도 무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일본군이 점령한 비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던데다 경로변경을 유도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커데스는 고민 끝에 이 비행기를 '일본군이 노획해서 가져가고 있다' 고 판단하고

엔진을 노려 사격합니다.


천천히 하나씩 엔진을 잃은 비행기는 바다에 안전히 불시착했고

구명정을 통해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커데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군 수송기였으니까요.


연료가 바닥난 커데스는 바로 본부에 구조요청을 하러 가고,

구명정에 남은 승무원들은 그 위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이 무슨 천운인지, 처음에 찾으려던 파일럿 Lacroix가 그 구명정에 의해 건져올려지게 된 것입니다.


아침 해가 밝자 그들을 태우기 위한 수송기가 도착했고,

12명의 승무원들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있던 간호사는 커데스가 이틀 전 함께 데이트했던 여성이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쟁이 끝난 후 커데스와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살게 되지요.


커데스는 이 실수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전투기 킬 마크에

'미국 1킬' 을 함께 표시하였습니다.


여담으로, 그의 전투기 이름은 'Bad Angel' 이었습니다.




8. 라떼는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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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를 보시고나면 배틀필드가 지향했던

'다양성'은 새발의 피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모로조프(Nikolai Alexandrovich Morozov)는

1854년생으로, 일찍부터 정치 활동을 했던 제정 러시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혁명에 좀 진심이셨던거 같습니다.


그 때문에 수감되거나, 칼 마르크스를 만나거나, 시베리아로 보내지기도 했으며

석방 후 1905년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화학과 천문학을 가르쳤지요.

1932년엔 소비에트 과학 아카데미 명예 회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조국이 위험에 처하자,

그는 저격수로서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사격술을 연마하기 시작합니다.


1942년, 입대 사무국은 그의 나이 때문에 자원 요청을 거절합니다.

니콜라이는 이에 대해 계속 편지를 보내고 심지어 상부에 보고할거라며 협박까지 해왔습니다.

결국 입대 사무국은 그를 '한 달간 자원봉사' 하는 자격으로 채용하게 되는데-

이 때가 그의 나이 87세였습니다.


한 달 동안 이 유능한 과학자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10여 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그는 기간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복무 의사를 밝히는 편지를 보냈으나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는 이후 92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소행성 1210번에 Morosovia 라는 이름이 주어지게 됩니다.




9.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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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 성, 오스트리아 이터 마을 근처의 작은 성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나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번 전투는 "이 조합은 뭐냐?"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전투니까요.


이터 성은 공식적으로 독일 정부가 주인으로부터 임대해둔 장소였습니다.

이 장소를 적국의 VIP 인질을 수용할 장소로 쓰기 위함이었죠.

보통 여기엔 프랑스의 인사들(총리, 군인, 정치인, 심지어 테니스 선수까지)이 수감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1945년 5월 5일,

히틀러는 이미 자살했으며 전황도 확실히 기울었습니다.

그러자 이 지역을 소관하던 독일 무장친위대들은 포로들을 처형하기로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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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이 최초로 만든 수용소, 다하우


이 친위대들은 다하우 수용소를 감시하던 인원들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저지른 행위들을 보고 미군들이 바로 보복하려 들만큼 잔학무도한 괴물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이터 성의 포로들을 살려준다는 생각조차 안했겠죠.


그러던 중 무장친위대의 한 장교가 포로를 데리고 심부름을 하러 마을로 내려갔는데,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그가 연합군과 합류했다고 생각하여

나머지 무장친위대원들이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맙니다.


그동안 성의 포로들은 그들이 두고간 무기들로 무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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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의 장교, 강글. 무장친위대는 이들과 달리 사설 조직에 가깝다.


한편 근처에서 작전을 하던 독일 국방군 소령, 요제프 강글(Joseph "Sepp" Gangl)은

자신의 부대가 괴멸 상태임에도 미군과 싸우라고 등 떠밀린 이 상황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군과 싸워 시간을 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이터 성에서 포로들을 처형할거란 소식을 듣고

그는 즉시 오스트리아 저항군 세력 지도자와 접선해 합류를 요청함과 동시에

포로들이 붙잡혀 있는 이터 성을 공격하자고 제안합니다.


소수의 항복한 무장친위대들도 이들과 함께 했지만, 이래도 숫자가 너무 적었기에

주변에 있던 미 육군에 항복한 후 그들과 협동하여 함께 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불행히도 성으로 향하는 다리가 너무 약해- 최종 도착한 병력은

미군 14명, 강글, 운전병 1명, 독일군 10여 명과 셔먼 전차 1대가 전부였습니다.


이윽고, 도망쳤던 무장친위대 세력은 150명의 인원과 88mm 대공포를 끌고 돌아와

성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포로 + 독일 국방군 + 항복한 무장친위대 + 미군 vs 무장친위대

라는 얼토당토않는 조합이 생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오후 12시가 되자 미 육군 142연대가 지원하러 왔지만

무전시설 고장으로 적의 위치를 알릴 수 없었는데,

테니스 선수였던 장 보로트라가 농부로 변장하여 무장친위대의 화망을 뚫고

기적적으로 위치를 전달하게 됩니다.


오후 4시에 이르자 무장친위대는 완전히 궤멸됩니다.

허나 이 과정에서 독일 국방군을 이끌던 강글 소령이 프랑스 총리 폴 레노를 보호하다가

저격당해 사망하고 맙니다. 이때가 고작 34살의 나이였습니다.


요제프 강글 소령은 사후 미국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오스트리아에선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아 그의 기념비와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고 합니다.


이터 성 전투는 유일하게 독일군과 미군이 연합한 전투이자,

히틀러가 자살한지 5일 후,

독일의 항복문서가 작성되기 2일 전에 일어났으며-

역사상 (현재까지도) "최후의 공성전" 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0. 우리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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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2월 20일,

영하 섭씨 60도의 차가운 창공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찰스 브라운(Charles L. "Charlie" Brown)' 소위는 폭격을 하기 위해

B-17 폭격기 "오랜 술친구 호(Ye Olde Pub)"를 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센 방어 때문에 대공포탄이 플렉시 기수를 깨버리고

2번 4번 엔진이 망가지면서 속력을 늦추어야 했고, 그로인해 편대에서 낙오되고 맙니다.


그 와중에 적기 십수 기가 날아들었고 3번 엔진도 피격되고,

산소계통, 유압계통, 전자계통과 총좌수들의 무기가 모두 고장나고

기수, 승강기, 항공기 외피까지 박살나게 됩니다.


격한 수비 끝에 적들을 떼어내지만 이미 후방총좌수는 사망했고

나머지 승무원들도 다리에 치명상을 입거나 눈을 맞거나 발이 얼어붙는 등 부상을 당했습니다.

설상가상 모르핀 주사기도 모두 얼어버리고, 무전기까지 박살난 최악의 상황.


한편, 이런 적 폭격기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독일 공군의 창설 당시부터 교관을 맡았던 '프란츠 슈티글러(Franz Stigler)' 중령이었습니다.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를 몰고 가까이 접근한 그는 반파된 기체와 승무원들을 보았습니다.

슈티글러는 자신이 훈련을 받을 당시 단장님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자네가 낙하산을 쏘는 걸 내가 보거나, 그랬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린다면,

내 손으로 자네를 쏴죽여 버릴거야."


슈티글러가 보기에, 이 폭격기는 살려고 몸부림치는 조종사의 그것과 같아보였습니다.

그는 사격을 하지 않았고 브라운은 이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어서 그는 네덜란드 등 중립국으로 유도 수신호를 보냈으나,

브라운 측은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도버 해협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슈티글러는 독일 대공포가 이 폭격기를 사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해상으로 나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밀착하여 에스코트 해주었으며

이윽고 독일 영공을 벗어난 것을 확인하자 그는 경례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브라운은 이후 400km를 날아 연합군 주둔지에 안전히 착륙할 수 있었고

이 일을 상부에 보고했으나, 적에게 긍정적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말은 삼가하라는 명령만이 돌아왔습니다.

반면 슈티글러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로 묻어두었습니다.

그에게 이런 일은 즉결처형을 각오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전후 브라운은 국무부 외무관료가 되고-

슈티글러는 캐나다로 이주해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둡니다.


브라운은 퇴역 이후 '이름 모를 조종사'를 계속 찾아다녔으며

그 과정에서 조종사 협회에 편지를 투고해둔 것이 몇 달 후 답장으로 돌아왔고,

이윽고 둘의 통화연결에서 슈티글러는 모든 상황을 그대로 서술하여 자신이 그가 맞음을 확인시킴으로서

두 사람은 1990년에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찰리 브라운과 프란츠 슈티글러는 이후에도 가까운 사이로 지내다가

2008년 같은 해에 나란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이 일을 기리며 헤비메탈 밴드 SABATON은 No bullets fly 라는 곡을 만들었고

후손들이 이걸 듣고 편지도 쓰고 실제로 공연장에도 방문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길 택했던 두 사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11. "난 살인자가 아니다, 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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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십니까? 법학 전공의 기운이?


따뜻한 이야기는 한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인츠 드로셀(Heinz Droßel) 은

본디 법학 전공으로, 이민을 가려하나 실패하고 1939년에 징집당한 청년입니다.


그는 애초부터 집안이 반 나치 인사들이었기에, 절대 나치당에 가입하거나 동조하지 않았고,

항상 수면 아래에선 유대인과 적군들을 돕기위해 위험을 감수하곤 했습니다.


1941년엔 그의 휘하 병력이 소련의 장교를 붙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상급 지휘관이 부대로 데려오라 명했으나 총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포로를 정 반대 방향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풀어주며, 러시아어로 그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난 살인자가 아니다, 난 사람이고 싶다."


1942년엔 베를린을 걷다가 다리에서 자살하려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 구해냅니다.

그 여성은 유대인이었으나, 드로셀은 처형될 것을 무릎쓰고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 도와주고

그녀가 안전하게 숨을 수 있게 돈까지 건네주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숙청 대상이 된 많은 사람들을 그의 아파트에 숨기고 종전까지 지켜주었습니다.


드로셀은 전쟁이 끝난 후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던 그 여인,

마리안느 히르슈펠트와 결혼하게 되었고

본래의 전공대로 서독에서 판사로 지내게 됩니다.


그는 2000년에 '세계의 의인' 칭호를 수여하였으며

상을 받은 후로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연설을 하곤 했습니다.




12. 그는 더 이상 적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대전 중 유행했던 '릴리 마를린' 이란 노래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우선 이 곡 자체는 독일어로 된 독일 노래입니다.


하지만 독일군이 라디오로 방송을 보낼 때 사용할 음반이 부족해 우연히 찾은 이 곡을 자주 틀어주었고,

이 방송이 북아프리카와 전 유럽에까지 송출되면서 많은 연합군 병사들도 이 음악을 듣곤 했기에

순식간에 양쪽 모두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되어있었지요.


1944년, 노르망디 상륙 후 한 시골에 급조된 활주로.

그 곳에서 미 육군 공병이 벌써 28명이나 한 독일군 저격수의 손에 사살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파일럿으로 있었던 잭 투엘러(Jack Tueller) 대위는

야간에 그 저격수의 사격 때문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숲으로 들어가 그는 트럼펫으로 '릴리 마를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 저 독일군 저격수는 나만큼이나 외롭고 두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헌병이 한 독일인 포로가 왔다고 말했고

그 포로는 어제 누가 트럼펫을 연주했는지 묻고 다녔습니다.

저격수는 19살의 겁 많고 외로운 젊은 청년이었으며,

그 역할을 숨기기 위해 농부처럼 입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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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트럼펫을 연주한게 자신이라 밝혔습니다.

그 청년은 약혼자가 생각나 차마 발사할 수 없었다고 울며 말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적이 아니었습니다,

"he was no enemy,

음악이 야만적인 야수를 진정시켰기 때문입니다."

because music had soothed the savage beast"

라며 잭은 2009년 CNN 인터뷰에서 그 날을 회상하였습니다.




13. 용기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적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죽음이라 답할 수도 있을 것이고,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행동이야말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는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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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주인공들은 구체적인 자료나 과거 행적이 있는

'자세히 알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프리드리히 렝필드(Friedrich Lengfeld) 독일 국방군 중위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인물입니다.


전쟁 말기, 휘르트겐 숲에선 미군과 독일군간의 치열한 소모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렝필드와 그의 부하는 숲에 있던 한 오두막에서 농성하게 되었고

미군의 공세에 그 집을 빼앗기게 됩니다.


다음날 미군을 기습해 다시 오두막을 탈환하였으나,

급히 도망치던 미군 중 한명이 오두막 옆의 Wilfe Sau 지뢰 지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연히 그는 지뢰를 밟게 되었고

다리를 잃고 하염없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미군들은 그를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렝필드 중위는 부하들에게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뒤

직접 지뢰 지대에서 그를 구해오기로 결정합니다.


독일군에게도 지뢰 매설 지도 따위가 없었기 때문에 이는 죽음을 각오한 결정이었으며-

얼마 못가 결국 지뢰를 밟게 되고 렝필드는 그 폭발로 사망하게 됩니다.


쓰러진 미군이 누구였는지, 그 미군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과 아군을 넘어-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용기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미 22 보병연대는 렝필드를 기리기 위해 휘르트겐 숲 기념관에 그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거기에는

"원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No man hath greater love than he who layeth down his life for his enemy."

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



여러분들께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를 전달 드리고 싶어

밤새 자료를 찾고 검증하고 정리해보았습니다.


전쟁은 참혹하지만, 세상 모두가 그 참혹함에 주저 앉는 것은 아님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이야기들은 국내에선 굉장히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읽으시면서 더욱 의미있는 정보가 되지 않을까... 라고 기대를 해봤는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yeonAwkward 


너무나도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이 소중한 이야기들이 묻히지 않고 더욱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다!

yeon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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