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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라디오♥ 결혼에 대한 기억.

뱅구씨
2019-07-26 22:50:48 114 1 3

다시 올린다링 ㅠㅠ

어젯밤에 올리고 잔것 같은데 왜 안올라간지 모르겠어요.

정말 기나긴 결혼썰인데요,이것저것 상세하게 올려보느라 사진도 올리고, 자세하게 쓰려 했는데, 넘 오글거리려나ㅠ

어제 읽으셨어야 오늘 한번 정리하셔서 사연 하실텐데 ㅠㅠㅠ 아 왜안된거지


후잉


p.s. 신청곡은 keane - everything's changing 부탁드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0월 20일 토요일, 들뜬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몇년만에 한국행인지, 한 5년만인가.

작은 럼주 두병에 콜라를 타서 홀짝홀짝 마셨더니 잠이 잘 오고, 일어나보니 일본 나리타 공항이었다.

식 날자는 11월 4일, 우리에게는 2주라는 시간동안 식 준비를 해야했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할게 많았다. 장소는 이미 정해진 상태이지만, 나머지 드레스, 장식, 업체, 가족들 찾아뵙기, 지인들 청첩장 돌리기 등등.


한국에 도착한 날짜는 21일 일요일 저녁쯔음. 생각보다 쌀쌀한 밤공기는 그래도 상쾌했다. 

큰누나 내외가 우리를 마중나왔다. 가구 사업을 하고 캠핑을 좋아하는 우리 큰누나 내외는, 커다란 지프차를 타고왔다. 탱크같아서 놀랐어. 약간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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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서울가는 길은 많은 얘기들로 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올 4월쯤에, 아내가 한국에 나올 일이 있었을때, 우리는 이미 결혼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한국에 들른 아내는 나 없이 한국에서 우리 부모님과 우리 누나들을 만난 적 있었다.


사실 외국에 있으면서 제일 생각나는건 한국 음식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에 우리가 간 곳은 수육집. 막걸리 한잔 하면서 깍두기를 먹는데, 아 정말 한국에 왔구나, 하는 기분이 들더라.

식사 후 아내를 집 (방배동) 에 내려다 주고, 나는 작은 누나 집 (성수동) 으로 향했다.

22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방배동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방배역으로 가서,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 두개를 사고, 들뜬 마음으로 아내를 만나러 갔다. 

오늘 일정은 우리 가족과 하루를 보내는것. 캐나다에서 이미 나는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처남과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었지만, 아내는 사실 우리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한국에 있는 2주동안, 결혼식 준비 외에 가능한 많은 시간을 우리 가족과 보내는것을 사실 목표로 삼고 있었다.

점심은 장인 장모님 모시고 냉면! 면발이 아주 얇은 냉면이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사실 나 냉면 되게 좋아하는데.

백다방에서 단호박식혜랑 다방커피 같은걸 먹었는데, 달달하고 얼음이 살짝 갈려서 나온게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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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성수동에 작은 누나 집에서 먹었는데, 가족이 다 모였다. 엄마 아빠, 큰누나 내외, 작은누나 내외랑 애기 둘, 그리고 우리. 10명이 식사를 하는데 정말 좋았다. 작은누나, 엄마 그리고 아내 셋이서 요리하는 모습이 얼마나 뭉클했는지 몰라.

'우리 가족'이 한 장소에 같이 모인건, 5년만이었고, 그 사이에 아내를 와 애기들이, 가족들이 더 늘어난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부모님꼐 큰절을 올릴 수 있었고, 누나들 내외와 맞절을 하며 덕담을 나누면서 조금씩 친해지려 노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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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드레스투어. 예약을 샾 2개에 해놨었다. 장모님이랑 셋이 투어를 다녔는데, 둘 다 청담동, 걸어서 5분정도 거리에 있었다. 첫 샾은 앙드레김 선생님 부인처럼 생긴 분이 드레스를 소개해주셨는다. 그때는 상당히 화려하고 이쁘다. 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샾에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봤더니 첫번째 샾에 되게 올드해 보였어.

방 안에 장모님과 내가 앉아있고, 커튼 넘어로 선생님들이 아내에게 드레스를 입혀주었는데, 와 정말 이뻤다. 사실 아내는 별로 판타지가 없다고 했었는데, 막상 드레스를 입어봤더니 생긴다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만큼 정말 이뻤다. 본 식에 쓰일 드레스는 사진 촬영이 안되어서 눈으로만 봐야했던게 너무 아쉽다. 거기서 사진 찍으면 아마 그 화려함이 다 안담겨서 그런것도 있고, 사진만 찍고 다른 샾에 가서 이런거 주세요 하는거 방지하려고 그런것 같았다. 샾 하나당 보통 4-5개 드레스를 입혀주는데, 피팅비는 3만원.

두번째 샾에서 4번 드레스를 골랐는데, 그래도 피팅비는 따로 받았다. 힝. 바로 골랐는데 빼주지!

드레스를 고른다고 바로 주는게 아니라, 몸에 맞게 '가봉'이란걸 해야해서, 몇주 전에 골라야 한다고 하니 필요하신분들은 참고하시길.

저녁 스케쥴은 항상 청첩장 전달이었다. 나는 여기서 오래 있어서 가족들 빼고 내 지인들은 결혼식날 딱 2명 왔고, 아내 지인들은 꽤 와야 했기 때문에 저녁 스케쥴이 항상 빡빡했다. 이날은 아내 학교 선배들 두분이랑 테이스팅 룸? 이란곳에 갔는데, 사실 우리는 외국에서 계속 있다보니.. 한식같은걸 더 선오하는 편이다. ㅠㅠ 콩나물해장국 같은거 먹고싶었는데.

24일은 종로. 사실 우리는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결혼한 편인것같다. 예물 예단 폐백 이런거 다 안했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가 아내에게 보석세트는 선물하고 싶다 하셔서, 작은 누나랑 엄마, 아내 그리고 나 넷이 종로로 갔다. 예전에 작은누나 결혼할때 들렸던 같은 집으로 갔는데, 다이아 반지는 이미 내가 아내에게 준게 있어서, 그것과 같은 디자인으로 목걸이랑 귀걸이, 그리고 진주 셋트로 맞췄다.

종로 바로 옆에 익선동이란 곳에 갔는데, 거기 참 재미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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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내랑)

한국 특유의 골목골목 길에 이쁜 가게들 아기자기 하게 있는, 그런 느낌. 더군다나 이날 날씨도 참 화창해서, 밖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참 즐거웠다. 약간 이런 느낌에 까페들이랑, 악세사리 파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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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어릴때 누나랑 같이 오락하던 기억이 참 ㅎㅎ. 엄마랑 아내는 테트리스를 했는데, 생각보다 잘했고, 한판에 500원이라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놀랐다.

점심은 쫄면 떡볶이 군만두 ! 아 쫄면 약간 매웠는데 위에 뿌려진 깻잎이랑 먹으니까 완전 맛있었고 김치군만두는 밑이 바삭해서 씹히는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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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아내 대학 동기랑 같이 닭갈비를 먹었는데 우리가 30분이나 늦어서 많이, 정말 많이 사과했다 ㅠ. 바쁜 분 칼퇴시키고 만든 약속인데 늦다니, 어익후.


25일은 산소. 아침에 비가 약간 왔는데, 많이는 아니라서 산행을 결심했다. 서울 인근에 있는 할머니 산소였는데, 새로운 가족이 생길때마다 찾아 뵌것같다. 성묘하러 왔다고 하니, 산소 관리인분께서 약간 어이없어 하셨다. '이렇게 비가오는데요?' 라고 하시며.

비 얼마 안왔는데... 

저녁에는 아내 예전 회사 사람들이랑 마포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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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회생활을 얼마나 잘했는지, 부장 과장 대리 다 오셨었다. 특히나 우리 축가 불러주실 옛 회사 선배님이 오셨었는데, 노래 듀엣 파트너인 그분의 사촌오빠도 모시고 오셨었다. 부장님은 아내를 아주 예뻐하셨던지라, 나도 되게 챙겨주셨었다. 나를 완전 외국인이라 생각하셨는지, 한마디 한마디 하실때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거에요, 한국에서는 술 짠하고 먹는거에요, 한국에서는 서로 따라주는거에요.. ' 띠 ㅡ 용.

기분이 많이 좋으셨는지 소맥을 원샷으로 쭉쭉 들이키시고 나중에는 나랑 러브샷도 하셨다. 띠띠용


26일은 결혼식업체. 일단 가장 중요한건 인원 수랑 인당 얼마짜리 밥을 제공 할것이냐. 식장과 관련 된 업체가 있어서, 거기서 음식을 시키면 이것도 서비스 저것도 서비스 해주는 그런 시스템인것 같았다. 덕분에 생각에 없었던 현악 3중주 팀이 식 당일날 오셨고, 식장 꽃 데코레이션 해주시는 팀도 음식업체가 연결되어서, 되게 수월하게 진행되었던것 같다.

사실 결혼식에 사람이 몇명이 올건가는 정말 맞추기 힘들다. 보통 자녀 혹은 부부동반 애인동반 해서 오거나 안오거나, 뭐 약간 이런식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음식 재료를 미리 사 놔야 하기 때문에 1주일 전에는 인원을 꼭 알려달라 부탁하셨었는데, 음식이 모자르는 경우보다 남는게 훨씬 보기 좋으니 넉넉하게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약간 상술같았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하지는 않았다. 

27일은 상견례. 누나들이 미리 예약해둔 회 / 해초 전문점이었는데, 장인어른께서 마음에 들어하셨던것 같아 다행이었다. 상견례가 1시 약속이었는데, 우리 가족이 딱 1시 정각에 도착해서 완전 민망했었다 ㅠ. 우리 가족은 부모님, 누나들 내외 그리고 나, 이렇게 7명이었는데 아내가족은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아내, 셋이 나왔었다. 처남 아직 캐나다에 있었는데, 처남 이야기는 좀 있다가 !

아버님들끼리 통하는게 되게 많았다. 두분 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셨고, 월남전 참전용사셨고, 꽤나 나이들이 있으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따로 얘기를 하지 않아도 어려운 자리가 아니었고, 참 다행이었다. 술도 쨘만 하고 거의 안마셨으니, 걱정되는것 하나 없었다. 

성공적이고 깔끔했던 상견례를 마치고, 나는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아내랑, 아내의 외할머니를 찾아뵈러 갔다. 외할머니는 아내 집에서 차로 한 10분거리, 부담없이 찾아 뵐 수 있는거리에 계셨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께서는 조그만 손으로 내 손을 감싸주시며 잘 왔다고, 또 잘 왔다고 반겨주셨다. 절을 올리고 소파에 앉아 장모님께서 내오신 과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다행이도 할머니께서는 나를 너무 좋게 봐 주셨고, 꼭 결혼식에 참석 하시겠다고 약속 해주셨다.

사실 80 넘으신 어르신들을 특정한 날 모시는건 확신 할 수 없다. 어르신들께서는 날마다 컨디션이 오르락 내리락 하셔서, 어떤 날은 정정하게 산책 나가시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방에서 꼼짝 못하는 날도 있으시기 마련이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꼭 오시겠다 약속 해 주셨다.

28일 일요일 점심에 약속이 있었는데 취소되어서,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아내 넷이 아침 일찍 안동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안동은 우리 엄마의 고향이자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산소에 들려서 성묘도 했고, 아내의 외할머니도 뵈었으니,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뵐 차례가 된것.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뵌것도 2013년 누나 결혼식때였던것 같고, 그 전에 뵌건 2010.. 년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캐나다에 오셨을때였던것 같다.

나는 그 두번 다, 할머니를 뵈자마자 울었던것 같다. 죄송해서.

안동은 어렸을때 꽤 가봤었지만 사실 잘 기억 나지는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할머니집에 가지 않고 하회마을로 가서, 안동구경을 좀 하기로 했다. 역시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외국인들도 꽤 많았다. 초갓집, 기왓집,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을들. 이뻤다. 엄마아빠는 아들이랑 며느리가 이뻐 죽겠는지, 우리 사진을 계속 찍어주셨고, 처음에 어색하던 우리는 나중에는 포즈도 잡고 결국 즐겼던것 같다 ㅎㅎ. 아내는 아주 한국적인 사람이라, 이런 분위기의 장소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아쉽게도 마을을 거의 다 돌때쯤 보슬보슬 비가 내기리 시작했고, 깔끔히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서둘러 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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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짜 예뻤다)

안동 집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역시 우리를 많이 반겨주셨다. 저녁 준비를 할때쯤 근처에 볼일이 있던 큰누나 내외도 안동으로 왔고, 안동에 사시는 이모랑 이모부, 아들인 나의 사촌동생도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창고방에서 안동소주를 가져 오셨는데, 아내가 첫잔을 원샷을 때리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사실 아내는 술을 좋아하나 잘 못하고, 안동소주가 40도인줄 몰랐다)

그렇게 다 같이 얘기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술도 마시고 하며 안동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29일 아침에 할아버지, 아빠랑 근처 온천에 갔다. 할아버지는 올해 85세이신데, 얼마나 정정하신지 운전도 하시고, 올해 새차를 뽑으셨다. 나도 그나이에 운전 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몇십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오셨는지 궁금할 정도로 익숙해져있는 할아버지의 목욕 방법이 있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때타월에 식초를 바르는 것이었다. 비누랑 식초를 묻혀서 때를 밀면 더 때가 잘 밀린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 등을 밀어 드렸는데, 내가 할아버지 등을 처음으로 밀어 드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죄송했다. 할머니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다. 감이 얼마나 주렁주렁 달려있는지, 목욕 후에 두시간정도, 박스로 3박스를 땄는데도 아직도 주렁주렁 달려있더라. 아내는 할머니께 안동 시장 구경을 시켜달라 얘기했고, 나는 그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내는 참 어른들께 싹싹하게 잘 하고,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얘기 주제나 행동을 아주 잘한다.

점심으로 안동 찜닭을 먹고, 시장에서 사온 꽈배가 하나씩 물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나를 꼭 안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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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팔짱 끼고 걷는 아내)

30일부터 조금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으로, 우리 아빠가 성혼선언문과 덕담을 해 주기로 하셨었는데, 하회마을에서 비를 맞아서 그런지 아빠도 골골걸리고, 추위 + 시차 + 강행군이 합쳐져서 나도 골골 거리기 시작되었다. 감기 몸살 약을 계속 복용해야했고, 입 안에 혓바늘과 염증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홈그라운드라 그런지 좀 쌩쌩해 보여 다행이었다. 틈틈에 들린 병원에서 타온 약들 때문에 술은 좀 자제했고, 그래도 저녁마다 꾸준히 청첩장을 전해 줄 아내 지인들과 만났다. 오늘은 아내 대학교 후배 둘. 처제들이 친한 언니와 수다를 떨 시간을 원하는걸 알고 있지만, 사실 나도 이때 아니면 아내 지인들을 볼 기회가 정말로 없을 수 있다 싶어서 모임때마다 따라나갔다. 사실 아내가 좋아서 쫄래쫄래 따라다닌것도 있고, 한국에서 혼자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것도 있었다. 대학 후배들과 간단히 고기를 먹고, 2차로 가볍게 맥주 (아내와 나는 사이다)를 하고 귀가했다.

31일은 점심 저녁 약속 둘 다 있었다. 바쁜 회사원들중에 청접장을 줘야 하는 지인들은 우리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로 가서, 가볍게 점심을 (부대찌게 먹었다) 먹고 헤어지는 그런 식이었다. 30, 31 그리고 1일은 큰누나 집에서 잤는데, 작은 누나네 집에는 아이가 둘이 있는 반면에, 큰누나네 집은 아이가 없고, 분위기도 있고 아늑해서 아내와 내가 아주 좋아했다. 점심 후에는 예식장을 한번 둘러 보았다. 보안이 철저한 곳의 강당을 식장으로 꾸며서 쓰는 장소라, 출입증을 위해 신분증을 반납해야했고, 관계자 분과 함께 둘러보는 형식이었다. 사실 결혼식때 내가 하고싶었던게 두게 있었다. First Dance와 일기 모음집인데, 결국 결혼식에서는 둘 다 하지 못했다. First Dance는 사실 외국에서 올리는 결혼식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막 신랑 신부가 되어서, 모든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둘만의 춤을 추는 그런 시간이다. 다른건 다 몰라도 이건 하고싶다고 고집을 피운 나를 위해 아내는 나와 함께 음악에 맞춰서 몇달전부터 왈츠를 연습 했지만, 사실 맨 끝에는 하지 못했다. 이유는 즉슨, 외국 결혼식에는 결혼식 (선언문)  -> 피로연 (파티)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고, First Dance는 결혼식 후에, 옷을 갈아입고, 피로연 맨 처음, 식사 전에, 추는 춤이다. 한국에서는 피로연이 없으니, 타이밍을 잡기도 마땅치 않았고, 사실 식 도중에 시간을 만들어도, 아내의 엄청난 (사실 혼자 고개 돌리기도 힘들다고 했다) 드레스로 춤을 추는건 불가능 했다.

나와 아내는 1년 반 정도 되는 연애 기간중에 함께 쓴 동영상 일기들이 많다. '2018년 2월 3일 X요일, 오늘은 뭐했어?' 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우리의 일기는 대략 30편정도가 있었고, 그걸 편집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영상도 식중에 틀지는 못했다. 보통 함께 잠들기 전에 쓴 일기기 때문에 장소가 거의 침대 위였고, 어르신들께 안좋은 인상을 드리기 싫어서 생략한 것이다.

11월 1일. 사실 캐나다 병원 시스템은 대부분 무료이나 (암에 걸려도, 뇌수술을 해도 공짜다) 보통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의료 처리는 아주 불편하다. 일단 되게 느리고 (의사와 약속을 하면 보통 1-2달 후에 잡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아픈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기가 심해서 의사를 만나면 타이레놀을 처방해 준다던가, 집에서 씻고 잠좀 잘 주무세요 라고 한다던가 하는 반면에 한국에선 주사라도 한번 놔준다) 아내도 한국에 나온 김에 여기저기 자잘하게 불편했던곳들을 (손이 저리다던가, 어깨가 걸린다던가) 틈틈히 치료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데이트 할 시간이 났다. 아내 화장품도 좀 사고 (폼클렌징이나 파운데이션같은건 5개씩 사와서 쟁여놓고 쓴다), 캐나다 직장 동료들 줄 선물이나 우리 기념품, 특히 아트박스! 재밌었다. 뭐 이리 아기자기하게 볼게 많은지. 기억에 남던건 가습기 코너. 거얼마나 뿌연지 거기는 구름이 생겨서 비가 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듯 싶었다. 카카오 프렌즈샾 이런데도 갔었는데, 이쁘긴한데 가격이 너무 비싼것 같았다.


저녁은 아내 친구와 셋이서 족발. 계란찜도 맛있었고 콩나물국도 시원해서 좋았다. 족발에 소주 한잔 걸쳤으면 아주 좋았을텐데, 먹는 약이 많아서 패스..

11월 2일. 아내의 숙모분이 점장으로 계시는 스시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처남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처남은 지금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고, 우리 결혼식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에 빠질 수 없는 시험이 있기 때문에, 11월 4일 새벽 4시에 한국에 도착해서, 오후 1시에 있는 누나 결혼식에 참석 한 후, 오후 7시에 다시 캐나다로 출국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박 3일 비행기 시간 40시간, 한국 채류시간 15시간 정도..... 처남한테 미안해 죽겠지만, 적어도 1주일은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몇번이나 권유했지만 도저히 빠질수가 없었나보다.고로 처남은 그렇게 말도안되는 일정을 짜야했고, 처남 비행기 편으로 우리는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짐을, 가져왔던 겨울 옷들이 신혼여행지에서 필요 하지 않아서, 저렇게 빡쌘 일정을 가진 처남에게 .. 좀 가져가라고 부탁 할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고, 방배동 집으로 가서 처남편으로 보낼 짐을 싸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혹시나 모를 감기 방지를 위해, 근처 병원에 가서 노란색 링거를 한방 맞았다. 심지어 전기장판도 틀어 주셨는데, 한시간정도 동안 꿀잠에 꿀잠을 잤다. 그리고 마지막 아내의 지인들을 만나 샤브샤브를 먹었다. 역시 따듯한 국물이 좋았고, 맨 끝에 끓여주시는 죽도 되게 맛있었는데 많이 먹지는 못했다. 컨디션 조절이 완전 필요했다 ㅠ
11월 3일. 미용의 날. 아침에는 둘이 가서 마지막 얼굴 및 피부 마사지를 받았고 (사실 며칠간 몇번 받았었다) 아내는 검게 자라난 머리를 가리기 위해 뿌리염색을 했고, 네일 / 페디 아트를 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오래 걸려서 놀랐다. 몇개는 블링블링하게, 다른건 분홍색 빛으로 우아하게 해서 되게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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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같이 자다가, 식 당일날 아침에 각자의 어머님들을 모시고 식장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각자의 집에서 마지막 총각 처녀의 밤을 보냈다.


드디어 대망의 11월 4일. 우리의 결혼식.

청담동에 있는 샾에 8시정도 까지 도착했어야 했기에, 7시쯤 일어나 씻고 택시를 탔다. 이미 샾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신랑 신부였던것 같다. 장모님은 그 중에 우리 딸이랑 사위가 제일 예쁘고 멋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사실 내가 봐도 그랬다. ㅎㅎ.

들어가자마자 신부님 이름을 물어보고, 모두에게 이름표를 달아주더라. 메인은 아내였고 (XX신부님) 나는 XX신부님 - 신랑님, 우리 엄마는 XX신부님 ㅡ 시어머님, 장모님은 XX신부님 ㅡ 어머님, 이렇게. 샾에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고 (나보다 어려보이는 여자분들이 꽤 많았고, 보다 나이가 있으신 원장 혹은 실장님들이 몇분 계셨다), 한명씩 한명씩 불러서 얼굴 메이크업을 해주었고, 머리 정리도 해주셨다. 여기서 다 피팅을 하고 가더라. 드레스 샾에서 도우미 이모님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가지고 메이크업 샾으로 바로 오셨고, 일단 세팅 다 해놓고 ㅡ 옷 입고 ㅡ 마무리 세팅 하는 형식이더라. 내 화장은 사실 많이 없었다. 눈썹 조금이랑 피부정리 정도 했는데........... 머리... 머리... 머리 ㅠㅠㅠㅠㅠ 아무리 생각해도 인류는 대머리 혐오를 멈춰야한다. 내 이마랑 머리가 도화지인줄 알았다. 브러쉬로 아주 정말 막 칠하시더라. 비어있는 (?) 많은 곳들에... 근데 확실히.. 인상이 달라지긴 하더라. 

아내는, 그 어느 날 보다 예뻤다. 화장은 은은하지만 오목조목하게 해서 완전 샤방했고, 머리는 땋아서 뒤로 말아 올렸는데, 식 후에 입었던 한복이랑 완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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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이뻤다)

되게 의아했던건, 샾에 있던 다른 신부 분들 드레스가 정말 하나같이 안예뻤던것 같다. 그분들도 다 그분들의 최고의 날을 겪으셨을텐데 드레스들이 진짜 특이하거나 이상했던 기억이 남는다. 드레스 입고 후에 그녀는 귀걸이랑 티아라를 골라야 했는데, 내가 골라주었다. 히히.

그렇게 메이크업과 옷을 다 입고, 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모든 장식과 모든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인어른 친구분들이 보내주신 화환도 몇개 있었고, 우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포토테이블. 신부대기실 모두 꾸며져 있어서 되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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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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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테이블)


그렇게 12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쪽 하객은 7-80명정도 왔었고 그 중에 내 친구는 딱 둘이었다. 캐나다에서 알고 지낸 형이랑 동생 한명. 나머지는 다 친척들, 혹은 가족들 지인이었고, 아내쪽 하객은 230명정도 왔는데, 그 중에 아내 지인은 40명정도였던것 같다. 아주 많은 분들께 웃으면서 인사를 했고, 사실 잘 모르겠던 분들도 정말 잘 알고 잘 기억나는 척 하면서 환하게 웃으며 모두를 반겼다. '아이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등등. 할머니 두분 다 곱게 한복을 입고 와 주셨던게 엄청 큰 감동이었다. 특히나 안동에서 아침 일찍 올라오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또 한번 뭉클했다.

신부대기실은 얼마나 유명한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줄을 서 있었다. 내가 아내의 상태를 한번 체크하러 들어가려 하자, 사람들이 장난으로 '신랑도 줄 서야해요!' 라고 해서 웃었다. 땀이 엄청 많이 났다. 안그런척 하려 했고 안그런줄 알았는데 많이 긴장했었던지, 더웠던건지, 땀이 정말 주륵주륵 났었다.

1시에 식은 시작되었다. 어머님 두분이 입장하시고, 화촉점화를 해주셨고, 그 후에 내가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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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들 입장)

되게 긴장했었고, 흘러나왔어야 할 현악 삼중주가 들리지도 않았다. 엄청 빨리 입장했다. 조금 천천히 걸었어야 했는데, 저벅저벅 걸어서 5초정도 안에 입장했는데, 사회자가 '이렇게 빨리 입장하는 사람 처음봤습니다' 라고 하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주인공 입장. 장인어른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내게 다가오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내 아내를 보면서, 그 순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일어서서 내게 다가와주는 내 아내를 보고있었고, 버진로드에 반쯔음 오자, 나는 장인어른과 악수/포옹을 하고 아내를 넘겨받았다. 이제 내 사람이 될 그분의 딸의 손을 내가 에스코트 하며, 텅 비어있는 주례석으로 우리는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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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입장)

서로를 바라보고, 나는 아내를 보며 활짝 웃었고, 아내는 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사실 연애때 내가 구애를 상당히 많이 해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좀 대견했던것 같다.

서로를 위해 사랑의 서약을 읽었다. '이 시간,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며'

반지를 나눠 낄 차례였는데, 반지 전달은 내 4살짜리 조카, 작은누나의 딸이 해 주었다. 사실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마음이 바뀌거나 튀어버릴지 몰라서 조마조마 했었는데, 작고 반짝이는 티아라를 쓴 내 조카는 아장아장 우리에게 걸어와서 캐삼촌 (캐나다삼촌) 손에 반지가 들어있는 소중한 상자를 전해주고 도도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아내의 손에, 아내는 내 손에 서로 반지를 나눠 끼고 나서, 아빠가 나오셨다. 까만 두루마기를 길게 입고 오셨었는데, 성혼선언문을 읽어주시고, 덕담을 해주셨다.  특히나, 하객들께 감사인사를 하신 후에, 우리를 위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랑하는 아이들아, 나눌수록 사랑은 커지고, 배풀수록 인생은 값진거란다. 너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런 느낌의.

정말 좋았다. 아빠 말은 항상 호소력이 있다. 날이 날인지라 더 맘에 와닿았겠지만. 정말 울뻔했는데 잘 참았던것 같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우리 누나들은, 특히 큰누나는 아주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차례. 보통 신부들이 이때 많이 운다고 하는데, 그걸 알고 계셨던 도우미 이모님께서 아침에 미리 말해주셨던게 있다. '울면 메이크업 다 지워지고 저 그거 못고쳐드려요. 눈 마주치시지 마시고 다른생각 하세요'. '만에하나 울게되면 흘리지 말고 떯어뜨려야 합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확실히 내가 큰절을 올리고 아내가 반절을 할때 우리를 바라봐 주시던 장인 장모님 / 우리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까, 뭉클했다. 많이. 정말 많이. 그 분들은 어떤 느낌이셨을까.

우리 부모님은 누나 둘을 보낸 경험이 있지만서도,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장녀인 아내가 처음이었을텐데, 어떤 감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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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같이 마포갈매기를 먹은 아내의 회사 선배님과 그분의 사촌 오빠분이 불러주신 축가는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란 곡이었는데, 중간중간에 우리 이름을 넣어서, 우리 상황에 맞게 개사까지 해주시고 불러주셨다.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서, 아는 동생을 위해 사촌오빠까지 섭외해주신 회사 선배분의 용기와 노력이 정말 고맙고 감사했고,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 일 수 있었지만 콜을 외쳐주신 사촌오빠 분께도 (몇번이나 퇴근 후에 만나서 노래 연습을 하셨다고) 정말 감사했다. 아마 보실 수 없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정말 좋은 축가, 많이 마음에 들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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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마웠던 축가)

그리고는 행진. 행진은 입장때보다 훨씬 천천히, 아내의 드레스 밟지 않게 조심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우리를 축하하려 와 주신 모든 지인들 친인척들 하객분들을 다 보려 했다. 입장 할때는 처녀 총각이었는데, 행진할때는 정말 '부부'라는 생각이, 사실 그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안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의미있었던 일인것같다. 하지만 우리는 행진만 하고, 사회자가 클로징 멘트를 하자마자 고대로 다시 주례석으로 돌아와서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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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먼저 우리 가족 + 아내, 아내가족 + 나,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둘의 샷. 나는 ㅋㅋㅋㅋㅋ 까만 턱시도에 파란색 양말을 신고 갔었는데 (쿠팡에서 주문한 양말이 같은게 20개가 있어서 그것만 신는다), 내가 앉아서 다리를 꼬고 사진을 찍을때, 처제들이 '형부 양말밖에 안보여요' 라고 해서 양말을 벗는 사진도 있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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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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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온 사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나는 양복, 아내는 생활한복) 식사하시는 분들께 테이블 마다 가서 다시 한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했어야 했고, 이것도 꽤나 오래 걸렸다. 그냥 보고 어 왔네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모두 소중하고 한마디 나눠야 하는 분들이라, (서로의 가족을 소개하거나) 사실 꽤나 피곤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한 날이라 해 낼 수 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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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드릴때, 장모님이랑)

식장에서 좋았던건, 우리 한 팀 밖에 없었던것. 일반 예식장에는 하루에 두팀 - 세팀을 받아서, 빨리 나가시라고 재촉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우리 식장은 그 날 우리 밖에 없었기에, 조금 더 여유롭고 하객분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았었던것 같다. 거의 세시가 다 되서야 사람들이 좀 빠지고, 우리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엄청 배가고팠는데 사실 많이 먹지는 못했던것 같다. '와 끝났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고 긴장이 풀리고, 맥주만 홀짝홀짝 마셨던것 같다. 아내도 많이 배가 고팠었는지, 조그만 국수를 말아먹으며 한마디 했다. 

아내: "와 어떻게 사람들이 이 모든걸 하고 이혼을 하는거지, 그 사람들 참 대단한것 같아, 피곤해 죽겠어".

그 말을 들은 아내의 친구는

친구: "야, 그렇게 이혼하고 재혼해서 이거 한번 또 하는 사람들도 있어"

ㅋㅋ

그렇게 우리는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끝내고, 바로 방배동에 박승철 헤어샾으로 갔다. 출국은 8일이고, 오늘 안하면 머리를 하러 갈 시간이 없을것 같았다. 사실 내 머리는 보통 아내가 집에서 자르지만, 아내 머리 커트나 특히 파마는 한국이 훨씬 저렴하고 잘 하기때문에, 한국에 다녀 오는 여성분들은 다 머리가 달라져서 온다. 신부 머리와 메이크업 그리고 네일을 하고 우리는 헤어샾으로 갔고, 머리 해주신 선생님께 말했다. "막 결혼하고 왔어요". 파마를 그렇게 옆에서 기다린건 처음이다. 내 이발은 한... 20분정도 한것같은데 파마는 한 2-3시간 정도 걸린것 같다.

머리도 꽤 잘랐고 파마를 하니까 아내 기장이 훨씬 줄어들었고, 너무 마리 앙뚜아네뜨 머리가 된게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조금만 머리가 길면 자연스럽게 이뻐질거라고 (그리고 지금 머리 되게 자연스럽고 이쁨) 했더니 아내는 안심하는듯 했다.

호텔로 가기 전에 아내는 한곳 더 들리고 싶어했다. 그건 바로 어르신들 숙소. 아내의 가족들은 다 서울에 거주하셔서, 식 참석 후에 다들 댁으로 돌아가셨지만, 안동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포함, 할머니 형제분들, 삼촌분들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사실 많이 오셨었고, 그분들이 머물 숙소를 누나가 잡아 놓은 상태였다. 멀리서 와 주신 분들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면서 찾아 뵙고 싶다고 아내는 말했고 (다행이 우리 호텔이랑 멀지는 않았다) 역시 어르신들은 엄청 우리를 반겨주셨다.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문어 숙회를 안주 삼아 할아버지, 삼촌과 소주를 홀짝홀짝 비웠고, 10시 반쯤에서야 호텔로 갈 수 있었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크흠.

11월 5일, 가족여행날. 몇년만에 보는 누나들, 자형들 그리고 조카들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우리는, 결혼식 후에 신혼여행 가기 전까지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앞서 얘기했던 캠핑을 좋아하는 큰자형이랑 큰누나가 우리 동선을 짰고, 첫 목적지는 가평이었다. 아이들 포함 식구가 10명이었고, 사실 월 - 화 - 수 여행하는거라, 일을 빼기 힘든 상황이었을텐데, 그래도 우리한테 시간을 맞춰 준 가족들이, 특히 자형들 누나들이 고마웠다.

그냥 팬션일줄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힐링테마파크같은 곳이었고 생각보다 넓고 괜찮았다. 특히나 늦가을 / 초겨울 철이라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진짜 좋았던것 같다. 짐을 숙소에 넣어 놓고, 테마파크에 있는 메인 건물에서 커피 한잔하고 얘기하면서 몸을 녹이다가, 동네에 토종닭 전문점에 저녁먹으러 갔다. 토종닭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몇시간 전에 미리 몇마리를 먹으거다라고 예약을 해야하는 곳이었고, 그 가게에서 만든 막걸리가 아주 맛있었고 홀짝홀짝 몇 항아리나 비웠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나는 이 날이 참 기억이 남는다.

First Dance를 이날 했기 때문에. 사실 내 친구들은 앞서 얘기했듯이 딱 두명 식장에 왔었고, 어르신들보다는, 정말 내게 중요했던 사람들은 가족들이었다. 테마파크 광장같은 곳에, 테이블을 좀 밀어서 치우고, 우리는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나름의 댄스 플로어랄까. 사실 날씨가 약간 추웠지만 다들 우리가 옷 갈아입고 올때까지 밖에서 기다려 주고 있었다. 그날의 DJ는 나였는데, 기분좋게 한잔하신 아빠가 엄마랑 무대로 나가는걸 보고 백만송이 장미를 틀었다. 그 후에는 누나들 커플 하나씩 춤을 추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식 드레스가 아닌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고 온 아내는 수줍어 했었지만, 사람들이 먼저 분위기를 띄우고 긴장을 풀어줘서 그런지, 쑥쓰러워 하면서도 우리가 준비했던 First Dance를 했다. 선곡은 미녀와 야수.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기 있었고, 나의 소중한 순간을 지켜봐 주고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가 나와 춤을 추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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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동해 바다를 보러 출발했다. 목적지는 강릉. 아쉽게도 이 날은 밖에 나오자마자 비가 보슬보슬 와서 조금 추웠다. 점심으로 갈비탕 먹고 동해쪽으로 한시간 반 ㅡ 두시간 정도 더 달렸더니, 동해바다가 나왔다. 짐 다시 풀고 바닷가를 한바퀴 돌았더니 저녁시간 이었고, 큰자형이 추천한 고로케가 맛있는 횟집으로 갔다. 멍게 진짜 먹고 싶었는데 없어서 넘나 아쉬웠지만, 정말 고로케가 맛있어서 좋았다. 술도 약간 걸쳤겠다, 기분 좋은 상태로 노래방에 갔다. 스타트는 역시 아빠,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좋은 날, 좋은 밤.

11월 7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 서울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였고, 아내는 마지막 병원 치료랑 처방을 받았다. 성수동에서 모두와 바이바이를 하는데, 작은 누나가 울었다. 누나 앞에서는 웃으면서 왜 우냐고 했지만, 뒤로 돌아서 길을 걷자마자 막 눈물이 났다.

그렇게 신혼여행 가방을 바리바리 싸매고, 방배동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11월 8일. 하와이 가즈ㅏㅏㅏㅏㅏㅏㅏㅏㅏ


20일간의 한국 일정은 이렇게 끝이났다. 물론 아쉽고 섭섭했던 부분들도 있다. 이때 좀 더 이렇게 시간을 보냈더라면, 피곤해도 좀 버티고 한번 더 웃을껄, 하면서.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좋은 기억들, 좋은 추억들이 이번 여행속에 모두 모여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지만 여전히 그 추억속에 잠겨 행복을 느끼고 있다.

기나 긴 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잘 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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