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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 피드백을 위해 ! (08.15 수정)

새빨간루드빅
2020-06-25 04:10:21 294 0 3

나하! 안녕하세요. 만귀플로 작가님 작품을 입문한 작가지망생입니다!

 다시 피드백을 시작해주셔서 현재 준비중인 작품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스토리는 대충 작가가 자기가 쓴 작품에 빙의하는 내용이며, 제목은 '망작을 리메이크(가제)'입니다.. 


현직 작가님의 눈으로 이 작품이 어떤지 냉철하게 파헤쳐주세요! 

-


1화 결말을 개똥같이 쓰면.


비릿한 혈향이 맴돈다.

지독한 고통이 몸을 헤집어댔다.


“여기까진가……”


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음산한 목소리다.

시야는 제멋대로 점멸되고 고통 외에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땅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었다.

약자의 유일한 특권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더럽고 추하더라도 살아남기만 한다면 되니까.

쿵!

허나 인생에 몇 없던 행운도 여기까진 듯, 뒤편에서 지축이 울렸다.

그것의 정체는 소위 말하는 악마였다.

괴수의 상위종.

S급 헌터들조차 사냥해내지 못하는 강함. 전 세계적으로 발발한 데빌 게이트를 대처해낸 국가는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유례없던 대학살이 벌어졌다.

살아남은 헌터들이 분투했지만 악마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를 삼 년.

마침내 인류의 99.9%가 절멸하고, 나만이 이 생지옥에서 살아 있다.


“이제 됐어.”


이 상황에 대처하기를 체념했다.

두 다리를 악마에게 씹어 먹힌 몸으론 뭘 더 할 수도 없다.


-케르륵!


하물며 나를 이런 꼴로 만든 건 생김새부터가 쫄병이요 하는 최하위 악마들이다.

최하위 악마들조차 당해내지 못하는 내 꼴이 한심하다.

이제는 지쳤다.

나는 허리춤에 찬 홀스터에서 나이프를 꺼내 목을 겨눴다.


“제길. 제기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다 똑같은 개죽음인데도 떨림이 멎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스스로 결정한 적 없는 인생. 남들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이용당해왔다.

자결. 그것이 유일하게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그 사실은 어쩐지 슬프도록 괴로웠으나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었다.

나는 괴물의 손아귀가 허리를 붙잡음과 동시에 나이프를 밀어 넣었다.

나의 세계는 그렇게.


멸망했다.


나는 F급 헌터다 完



“뭔 이런 거지같은 엔딩이……!”


콰드득.

신은 스마트폰을 한 손으로 우그러뜨렸다.

신의 머리통에선 과장이 아니라 수증기가 뻗쳐올랐다.

그만큼 분노한 신 앞에 한 청년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보고 또 봐도 개떡 같은 엔딩이다! 네놈 김찬!”

“아, 저요? 예예.”

“당장 해명해 보거라. 이 엔딩은 대체 뭐냐! 3화전까지만 해도 주인공이 스킬을 개화해 600화만에 빛을 발하나 싶었더니 뭐? 갑자기 악마가 튀어나오질 않나, 세계관 최강자로 묘사된 S급 헌터들이 죽어나가질 않나! 그럼 하다못해 주인공이라도 악마들을 썰어나가야지!”


까드득.

신이 이가는 소리가 꽤나 선명했기에 김찬은 새삼 놀랐다.

진짜 작정하고 이를 갈면 소리가 꽤 나는구나. 같은 한가한 생각을 하며.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가 없어. 아무리 고구마소설의 끝판왕이라고는 하나, 전개와 필력만큼은 출중했던 네놈이 갑자기 이런 개 조… 떡 같은 엔딩을 내다니. 글은 안 써지고 마감엔 쫓기고 그러다 결국 멘탈이 무너져 막 휘갈겼을 법한 엔딩을!”


‘와, 귀신같네.’


김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이 한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까닭이다.

김찬은 방금까지 신이 읽던 소설, 나는 F급 헌터다의 작가였다.

원체 마이너한 성향이었던 지라 연재하는 내내 독자들은 불만을 토해냈었다.

소설이 너무 고구마다. 주인공이 뭐 저래 약해빠졌냐. 목이 메어 사이다 1.5L를 원샷했다 등등.

그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연재한 김찬이었다.

결말에서 역대급 핵폭탄을 던지긴 했어도 말이다.


“내 친히 그 이유를 듣고 싶어 너를 불렀다. 빨리 말해보거라. 이 엔딩을 해명해보란 말이다!”


기어코 감정이 폭발한 탓일까.

신은 체면이고 뭐고 김찬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목청을 높였다.


‘그래서였구나.’


김찬은 그제야 작금의 사태를 이해했다.

애증의 작품이던 나는 F급 헌터다를 완결낸 후 채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현자타임에 빠진 김찬을 빛이 휘감았고, 정신을 차리니 신이란 작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결말이 왜 이러냐.


‘나도 알고 싶다, 시발.’


김찬도 본래 결말을 던질 생각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첫 계약작이었던 F급 헌터를 초기에는 애정을 가지고 집필했다.

몇날며칠 밤을 새가며 전개를 고민한 적도 있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한 작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작품이 중반부로 넘어가고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애정이 식는 것을 느꼈다.

주된 원인은 슬럼프였다.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고 볼 때마다 구리기만 한 글.

내 글 구려병 말기에 접어든 김찬은 결국 후반부를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


‘그럼 설마?’


김찬에겐 어쨌거나 조진 작품이다.

독자들도 빠르게 하차해나가 400화쯤 이르러선 한 명만이 꾸준한 댓글을 남겼을 정도니까.


‘그 사람이?’


김찬의 이러한 결론은 허무맹랑한 망상이 아니었다.

그 독자의 닉네임은 ‘나는신이오.’ 아이디는 wjfeotls1.


[393화

나는신이오 : 나 신인데 이번 편은 재밌었소, 작가 양반.]

[412화

나는신이오 : 근데 주인공이 너무 약하지 않나? 마음 같아선 내 권능이라도 주고 싶군.]

[597화

나는신이오 : 주인공 597화만에 스킬 얻는 거 실화냐? 신앙심이 웅장해진다…]

[600화 完

나는신이오 : 머리가 돌아버렸나 작가 양반? 이렇게 완결 낸다고? 신은 납득할 수 없다! 해명해라!]


누가 봐도 자신이 신임을 만천하에 드러냈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지독한 컨셉충일 뿐이었다.

김찬 역시 나는신이오라는 독자를 컨셉충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과연 김찬으로써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판타지 소설 작가인 탓일까, 김찬은 의외로 침착했다.


“근데 뭐, 해명할 게 없는데.”


작품을 망친 이유는 단순하게 김찬이 못 써서였다.

김찬은 스스로에게 솔직했고 변명을 둘러댈 생각도 없었다.


“그냥 못 쓰겠어서 그랬습니다. 내가 뭘 쓰는 건가 싶고. 그래도 완결은 내야겠으니 쓴 거죠.”


김찬은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토해냈다.

단지 그뿐이라며 어깨를 으쓱했으나 신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고작 그런 이유로 한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냐.”

“잠깐, 뭐요?”

“그 세계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으냐!”

“뭐라는 거야 이 사람? 이 신? 뭐라고 해야 돼?”

“으헝헝!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신은 오열하고 있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보는 김찬의 마음도 짠해지진 않았다.

김찬이 보기에 신이라는 작자가 우는 모습은 그저 솔직하게, 조금 추했다.


“아니 뭐, 실제로 멸망한 것도 아니고. 그냥 소설이잖아요. 뭘 그렇게 비약해요?”


김찬은 굳이 따지자면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신이 자기 앞에서 울고 있으니 김찬은 어이가 없었다.

신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위엄이 없나 같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말을 망친 데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한낱 소설 속 세상에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게 그 과몰입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다른 인기작들에서나 보던 독자가 자기 작품에도 있었다니.

김찬은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애매한 심정이었다.


“작가 양반. 김찬.”


오열이 끝난 신의 주변에 손수건이 뿅 튀어나왔다.

신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참자, 참아야 한다.’


그 목소리가 심히 코맹맹이 소리라 김찬은 강제적으로 웃음 참기에 시달렸다.

허나 다음으로 들려온 말에 웃음기가 싸악 빠져나간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다시 엔딩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건…….”


김찬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다시 엔딩을 쓸 기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신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결말을 써낸 김찬도 미치도록 후회하고 현자타임에 빠졌으니 말이다.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다.’


속에서 작가의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역시 무리였다.

애초에 결말이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다 김찬 본인의 역량이 부족해서였다.

김찬은 다시 쓴다고 한들 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엔딩을 적어낼 자신이 없었다.


“무리입니”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이다!”


무리입니다. 하고 말하려는 김찬의 말허리를 신이 잘라먹었다.

거기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이 조울증 환자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김찬! 엔딩을 새로 써라!”

“그러니까 무리라니”

“완벽한 엔딩을 써낼 수 있게 너에게 힘을 주마! 에잇, 더 이상 시간 끌 것도 없다! 믿고 있으마. 네놈이 써낼 진정한 트루엔딩을!”

“뭔, 뭔!”


이쯤 되니 김찬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애초에 김찬은 신을 믿지 않는다.

유신론자가 두려워하는 신성모독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게 뭔 개소리야!”

“매우 기대되는구나. 이렇게 기대된 적은 몇 천 년 만이다.”


김찬의 부르짖음은 신에게 닿지 않았다.

신은 그저 희희낙락 웃으며 미래의 향락을 머릿속에 그렸다.


“가거라, 김찬! 그대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어어 시발? 사람 말 좀 들어!”


김찬의 몸을 빛이 휘감았다.

그 모습은 어딘가 신성해보이기까지 했다.

작가주의적인 사고로 김찬은 앞날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니지?’


여태 온갖 인기작들에서 본 단골 소재.


‘제발 선 넘지 마.’


주인공이 읽거나 쓰던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설정.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만 통용되는 허무맹랑한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니체는 옳았어.’


니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우리가 그를 죽여 버렸다!


“두고 봐라 과몰입충!”


빠드득.

김찬은 사납게 이를 갈았다.

니체의 구절을 자신은 조금만 손 볼 것이다.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결국 전해지는 의미는 똑같을 테니까.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내가 신을 죽여 버렸다.


“내가 다시 돌아오는 날이 니 제삿날이다!”

“파이팅!”


김찬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허공에서 팝콘을 꺼내 한 움큼 씹어 먹었다.


“으음.”


신의 입 끝이 기분 좋게 올라갔다.


“역시 팝콘은 카라멜 맛이지.”


시바아아아알……!

어느덧 메아리로 남은 김찬의 육두문자를 클래식 삼아, 신은 콜라를 빨았다.


2화 소설 속 주인공


-바벨 헌터 아카데미 수석 입학생도 김늘 군은 단상으로 올라와주세요.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여성의 육성.

이후로 주변의 술렁임이 귓전에 울린다.

눈을 뜨자 새까맣게 암전된 시야가 색채로 물들었다.


“김늘 군. 수석으로 입학시험을 통과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제게 과분한 성적을 받은 것 같아 어깨가 무겁지만, 받은 기대 만큼 노력하겠습니다.”


단상에 올라선 미남자가 상패를 받아들고 수줍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실화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지금 이 상황은 내 소설의 프롤로그다.

단상에 올라간 수석 수험생은 김 늘.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답던 탓에 댓글로 사실 주인공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던 녀석.

나는 결국 환청을 보지도, 꿈을 꾼 것도 아니다.

신의 말대로 내가 쓴 소설에 들어와 버렸다.


-훌륭한 소감 감사합니다. 다음으로는 차석 윤시아 양 단상으로…


어차피 이후 진행될 내용을 알기에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


“상… 태창.”


우욱.

소설에서 채용한, 강함을 보여주기엔 가장 쉬운 방법인 상태창.

글로 쓸 땐 몰랐는데 직접 말하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름 : 신태현]

[성향 : 무無]

[기본 스테이터스]

근력 : 17

체력 : 19

지력 : 8

마력 : 3

순발력 : 14


[특수 스테이터스]

개연성 : 1


[전용스킬]

1. 전지적 작가 시점(EX) - 기起

1-1. 지정한 대상의 심정을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1-2. ??? - 개연성 스탯이 20을 넘어가면 개방됩니다.

1-3. ??? - 개연성 스탯이 50을 넘어가면 개방됩니다.


“뭐야 이거?”


내가 모르는 설정들이 상태창에 보인다.

특수 스테이터스.

설정 상으로 선택받은 자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보너스 스탯.

왜 상태창에 특수 스테이터스가 있지?

원작에서 신태현은 특수 스테이터스를 갖지 않았었다.

그건 스킬 역시 마찬가지.


‘완벽한 엔딩을 써낼 수 있게 힘을 주마.’


신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끽해야 공지에 등록한 설정집 속 스킬을 던져주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

나도 모르고 설정집에도 없는데 랭크가 쓸데없이 높다.

아마도 신이 멋대로 내린 스킬이겠지.


“줘도 뭐 이딴 걸.”


차라리 설정집 속 스킬을 주는 편이 훨씬 낫다.

그것들은 적어도 내가 고안했기에 아직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내가 설정한 스킬이라면 뭐든지 손쉽게 다룰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스킬이라면 얘기가 달라져.

설명도 더럽게 빈약하고.

특수 스테이터스나 스킬이나 도통 써먹을 구석이 보이질 않는다.


“진짜 거지같네?”


멀쩡히 현자타임에 빠져있던 사람을 소설 속에 던져놓고, 힘을 준다면서 별 거지 같은 것들만 던져줘?

이게 신이냐?

그렇다면 세상 모든 유신론자들은 알아차려야 한다.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신이란 그저 흔해빠진 싸이코패스 정신병자라고.


“저기요, 당신.”


흠흠. 누가 목을 가다듬으며 당신을 찾아댔다.


“당신 말이에요.”


카랑카랑한 울림에 자꾸 생각이 흐트러진다.

사람을 찾는 건 좋은데 다른 데서 찾아주면 안 되나?


“아 진짜! 왜 못 들은 척 해요?”


그때 누가 옷깃을 팍 잡아당겨 돌아보니 웬 여자애가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아, 나 부른 거야?”

“그럼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어요?”

“여기 많잖아.”

“말장난 하자고 부른 거 아니거든요?”


내가 손과 눈짓으로 주변을 훑자 여자애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러건 말건 나는 꽤 신기한 기분에 빠졌다.

김늘을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긴 하지만, 역시 내가 설정한 등장인물들을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이게 자식을 낳은 아버지의 심정인가?”

“으, 머리라도 아프신가요?”


현지진행형으로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여자애의 이름은 하유정.

헌터 업계에서 압도적인 두각을 드러낸 천재중의 천재.

만빙여제라는 이명도 생기지만 그건 먼 이후의 이야기다.

그것보다 하유정의 표정이 혐오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얘가 왜 신태현― 즉 나한테 말을 건 거지?

적어도 중반부까지 접점은 없었을 텐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그러면?”

“하아.”


얘 좀 봐.

자기 창조주를 앞에 두고 한숨을 쉬네?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은 건방짐이다.


“아까부터 계속 혼잣말 하시는데, 주변 사람 좀 생각해줬으면 해서요. 솔직히 말해서 시끄럽거든요.”


아, 이런 애였지.

하유정은 빈말은 죽어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은 죽더라도 하는 애였다.

그런 솔직함 탓에 득보다 실이 더 많았긴 해도, 나는 그런 하유정을 아꼈다.


‘독자들은 하유정이 나올 때마다 욕했었는데.’


대부분이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하유정에게 분량을 밀어줬었지만 다 지난 일이지.


“아, 맞아.”

“뭐예요 또? 사과할 생각이라면 됐어요.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되니까요.”


정말이지 장르가 현대소설이었으면 선생님 직에 딱 어울리는 아이다.

잠깐만.

타인의 생각을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내 스킬인 전지적 작가 시점엔 분명 이런 문구가 있었다.

설명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이라면?


‘전지적 작가 시점.’


속으로 스킬을 읊었다.

보통 스킬을 쓰려면 육성을 내야 한다. 그게 내 소설의 설정이기도 하고.

뭐 때문에 그랬더라?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술명은 역시 직접 외쳐줘야 제 맛이지!

라고 생각했던 집필 당시의 나를 죽이고 싶다.


[1인칭 시점에서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됩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다행히도 ‘스킬명은 직접 외쳐야 함 *근데 무언으로도 가능은 함.’의 설정 역시 그대로인 모양이다.

조질 뻔했네.

스물다섯 살 처먹고 스킬명 말했다가 쪽팔려 뒤질 일 있나?

온몸에 닭살이 돋음과 동시에 시야에 노이즈가 끼었다.


[관찰하는 대상은 하유정입니다.]

[현재 대상인물의 심정 :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닐까요? 아니, 그래도 이 사람의 행동은 몰상식했어요. 같은 동기로써 충분히 지적할 만 했고요!’]

[관찰자 시점이 종료됩니다.]

[다음 사용까지 02:59:59의 쿨타임이 적용됩니다.]


“아, 으윽.”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그렇게 충격 받을 만큼 심한 말은 안 했잖아요!”


넌 또 왜 그래?

가벼운 두통이 일었을 뿐인데 나보다 지가 더 난리야.

어쨌든 세 가지 사실을 알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정말 말 그대로의 뜻.

쓰고 나면 3시간의 쿨타임이 적용되고 후유증으로 가벼운 두통이 남는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눅! 누가 걱정했대요?”

“그래? 아님 말고.”

“윽. 짜증나는 반응이네요.”


여기서 TMI. 하유정은 당황할 때 발음이 꼬인다.

나름 귀엽다고 생각해서 넣은 설정인데 독자들 반응은 냉랭했었지.

아무렴 어때. 내 눈에만 귀여우면 장땡인데.


“오졌다.”


일순간이지만 타인의 생각을 읽는 스킬.

패널티라 해봤자 약간의 두통과 3시간의 쿨타임.

가성비가 미쳐버렸다.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엄청 쓸 만한 스킬이다.


“또 혼잣말하시네요. 그 정도면 병 아니에요?”


스킬의 활용법을 모색하는 찰나 또 하유정이 초를 쳤다.


“에휴.”

“그 반응은 뭐예요!”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내 혼잣말이 병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쯤에서 창조주이기도 하고 성인이기도 한 내가 따끔한 깨달음을 줄 때다.


“잘 들어.”

“네?”

“작가란 직업이 있어. 종일 골방에 처박혀 골골거리며 머리를 싸매 글 쓰는 최악의 직업이지. 근데 그렇게 글을 써도 끝이 아니야. 끝나고 퇴고할 때 보면 이게 활자조합물인지 활자배설물인지 모를 쓰레기가 되어있거든. 그러니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어서 며칠을 박혀서 쓰는데 다시 보니 어라? 이것도 쓰레기네? 그럼 이젠 한 달 동안 처박혀서 글만 써.”

“저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일 년이 돼. 그 시간 동안 내내 누굴 만나지도 못하고 처박혀서 글만 쓰는 거야. 그럼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아? 간단해. 그때쯤 되면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상상친구를 만들게 돼. 즉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야. 친구랑 대화하는 거지. 병은 더욱이 아니고.”

“…….”


음.

좋아.

완벽했어.

이걸로 하유정은 큰 깨달음을 얻었겠지.

나는 절대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다. 항상 내 곁엔 친구가 있으니까.

준비됐지, 윌슨?

물론이지, 찬.


“하시는 말에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이런 적은 처음인데.”


착각인가?

하유정의 눈빛이 어딘가 측은한 사람을 보듯 하는 건?

아, 나란 놈도 참 멍청하지.

뜻깊은 깨달음을 준 나에게 측은한 시선을 보낼 리 없다.

즉 저건 동경하는 눈빛이다.


“하긴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병원에 가요. 요즘 정신병원 가는 거 가지고 욕하는 사람 없으니 우려마세요.”


아하, 선망의 눈빛이구나! 는 지랄이겠지.


“뭐라는 거야 너? 나 멀쩡해.”

“이젠 현실부정까지. 사람이 이렇게 힘든데 바벨 측은 무슨 생각으로! 안되겠어요. 당장 가서 따지고 올게요.”


시발.

유정아. 딸 같은 유정아.


“나 멀쩡하다니까?”

“아무리 뽑을 사람이 없기로서니 아픈 사람까지…… 참을 수 없어요.”


제발 창조주 말 좀 들어.

나 니 창조주라고.

니 애비라고!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유정을 보는 독자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한창 연재할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 독자의 입장이 이해갔다.


-기숙사 배정 시간이 있겠습니다. 정해진 구역으로 모여 주십시오.


그때 여성의 목소리가 나를 구했다.


“야, 야. 나 진짜 멀쩡하거든? 그러니까 넌 빨리 네 구역으로 가라. 난 간다?”

“기다려요! 당신은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고요!”


그놈의 정신병원 타령.

대체 누굴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야?

나는 하유정이 소리치거나 말거나 귀를 틀어막고 남학생들이 모인 곳으로 냅다 달렸다.


[놀라운 기연! 원래는 없었어야 할 대상과의 만남으로 개연성이 2 증가합니다.]


이건 또 뭐야?

확실히 원작에서 신태현이 하유정과 대화를 트게 되는 건 꽤 이후의 일이다.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스탯이 올랐다?

설정 상 스탯이 올리기 힘든 걸 생각하면 괜찮은 수확이다.

개연성 스탯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반갑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최고의 헌터 아카데미 ‘바벨’에 입학한 생도들이여!”


남학생들이 모인 곳에 다다르자 웬 근육질의 거한이 보였다.

바벨의 교사진 중 하나인 박열풍이었다.

교사진에서도 저런 무지막지한 근육을 가진 건 그놈 말고 없다.

그것보다 슬슬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대들은 무슨 결심을 품고 바벨에 왔는가!”


신이 말한 완벽한 엔딩의 기준은 뭘까.


“돈? 명예? 힘? 아니겠지! 이런 것들은 헌터가 아니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신은 내 소설의 결말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 이유는 한 세계를 멸망시켰기 때문.


“바로 인류를 지키기 위해! 그런 원대한 뜻을 품고 바벨에 왔으리라 본 교관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벽한 엔딩의 기준은 이런 거겠지.

악마들에게 멸망당하는 절망이 아닌, 악마들에게 맞서 싸워 이기는 희망찬 엔딩.

생각하기엔 쉽지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악마들의 설정이 변하지 않았다면 헌터 랭킹 1위도 당해내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그대들이 무럭무럭 성장하여 괴수 퇴치에 이바지해주기를 기대하지!”


아니 근데 시발?

아까부터 사색을 방해하는 잡음이 너무 많다.

목청이 얼마나 크기에 거리가 먼데도 고막이 울려?

됐다 그래.

데빌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프롤로그 기준으로 5년이나 남았으니 어?

잠깐만.

그건 최소 5년은 여기서 살아야 한단 소리 아냐?


“이 뭐 씹.”


호구를 잡혀도 단단히 잡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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