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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모코입니다
2020-05-28 07:16:58 314 0 1

안녕하십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나비계곡 님의 방송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이런 독자 참여형 컨텐츠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네요.

즉시 구독하고 1화부터 정주행하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피곤한 하루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혼자 취미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소속된 커뮤니티도 없고 딱히 연재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피드백이나 반응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죠.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몇 편 던져주고 동냥하듯 알음알음 반응을 살필 뿐.


라이트노벨 공모전이란 것에 몇 번 도전했으나 

혼자 좋아하는 이야기만 써낸 탓인지 최종심사에서 번번히

타겟층이 모호하고 상업성이 떨어진다 며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일도 바쁘고 해서 2년 정도 글은 쉬면서 

카카오페이지나 문피아 등에 연재된 웹소설을 봤더니

진정한 무지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거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즐겨 보던 그 시절과는 시장 구조나 글의 양식, 흐름 자체가 많이 다르더군요.


부디 철저하게 까주셔서 어디가 잘못된 건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지적해 주신다면

시무20조처럼 삼가 받들겠습니다.



제목 : 강철 폭풍 속에서

작가 : 로코모코



아직 어두운 새벽.

플랫폼에 군용열차가 들어선다.


“뭐야? 황실 근위대에서 파견 온다더니 설마 저 애새끼야?”


열차가 멈춰서고 작업용 강화외골격을 낀 병사들이 화물차에 올라타 작업을 시작하는 와중. 

중사는 더플백을 맨 채 내리는 기사(騎士)를 향해 중얼거렸다.


오자마자 씨발.


애새끼 기사는 가던 발을 멈추고 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뒤에서 보면 그저 더플백에 손발이 난 걸로 밖에 안 보이는 덩치인 것을.

입꼬릴 끌어올려 비죽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애새끼 기사는 중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거머쥔다.


불알.

세게.

더 세게!


“아아악!”

“중사, 이제 내 계급장이 보이나?”

“주, 준위십니다!”

“그럼 예를 표해야지.”

“피이일스응으응!!”


불알이 잡힌 채 자기 허리나 간신히 넘는 애새끼를 향해 경례.

그 목소리가 쥐어짜듯 떨린다.

하지만 애새끼 준위는 그 정도로 불알을 압박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더듬었다.

두꺼운 작업복 너머로 불알 주름의 개수나 털의 위치까지 파악하려는 듯.


“이 계급장에 예를 표하지 않는 건 말이야. 이걸 손수 달아주신 성상(聖上)께 예를 표하지 않는 거야. 자넨 공화국의 간첩인가?”

“아닙니다! 죄송하압! 니다!”

“필승! 인형정비전대 하르트 상사입니다. 부하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화물칸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하사관 중 한 명이 황급히 다가와 소년 준위를 말렸다. 

더 있다간 부하를 여군으로 전출 보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부디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상사님 체면을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견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신고를 해야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르트 상사. 정비복을 꽉 채운 떡 벌어진 어깨가 인상적이다.

그 어깨에서 나오는 풀 스윙이 간신히 풀려나 숨을 고르는 중사의 뒤통수를 덮친다.


“이 씨발 놈아! 니 눈엔 지금 다 바쁜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중사는 포경수술을 갓 끝낸 환자처럼 사타구니를 부여잡은 채 어기적어기적 화물차로 사라졌다.


“그럼 본부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져오신 기체는 저쪽 격납고로 옮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더플백을 받아들려는 손을 거절하고 준위는 화물차로 향했다. 

반듯이 누워 방수포로 덮인 채 바로 고정된 인형 앞에 선다.


“뢰베! 들었지? 저쪽에 격납고가 있다. 가서 얌전히 있어!”


방수포 속에서 쑥 튀어나온 황금팔. 

그 팔이 자신을 구속하는 바를 끊어내고 방수포를 걷어냈다.

인형. 즉 인간형 거대 기동병기. 

크기는 4m 남짓. 가로등에 비친 전신이 황금빛을 발한다.


“안에 누가 타고 있는 겁니까?”

“알터뢰베는 특별한 인형입니다.”


상사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황금 그림자가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곤 눈을 반짝인다.


“필요할 때 요청할 테니 알터뢰베에게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무심한 듯, 앙칼진 듯 준위는 하르트 상사를 올려다봤다.


“앞장서겠습니다.”


상사는 그 눈빛을 닥치고 빨리 안내나 해, 라고 받아들였다.



“필승! 준위 볼프강, 금일부로 제3인형전투단으로 파견근무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 고! 합니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높은 목소리. 

그 신고를 받는 제3인전단 단장의 표정이 영 시원찮다.


“근위대 새끼들. 이딴 애새끼를 보내다니, 지금 장난 까나? 준위, 몇 살인가?”

“열여섯 살입니다.”

“지랄하네. 그 키에 그 목소리로 열여섯이라고?”

“못 먹고 자라 작은 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하지만 군적을 속이는 건 죄지. 진짜 나이는?”

“……성상께선 열여섯으로 알고 계십니다.”

“……. 그래, 폐하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지.”


마뜩찮은 눈빛으로 볼프강을 노려보던 단장은 곧 관심 없는 눈으로

팔랑팔랑 손에 든 서류를 넘기다 마지막 장에 눈길을 줬다.

추천서.

작성자는 기욤 르노 국방대학교 교수. 

시선이 글자를 핥는다.


“무능력자라고?”

“그렇습니다.”

“과연 굶고 다닐만하군. 그래, 그 못 먹고 자란 무능력자 애새끼가 여긴 왜 왔나?

여긴 이제 전선이야. 곱상한 낯짝으로 병정놀이나 하는 근위대가 아니라고.”

“전선근무는 자원했습니다.”

“쫓겨난 게 아니고?”

“전 출세하고 싶습니다.”

“애새끼가 주둥이 놀리는 꼴이 제법 맹랑하군. 하지만 출세하려면 그냥 근위대에 있었어야지.”

“능력도 없이 정치질로 출세하는 머저리들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습니다. 

군인이란 전장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처럼 말입니다.”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크다.

소년 준위를 2개 쌓아도 모자랄 정도로 말이다. 

어쩐지 구겨진 멱살과 하늘처럼 높고 넓은 전투복 어깨에 별 하나, 준장 계급장이 빛났다.


“입으론 아닌 척하지만 혓바닥에 기름칠한 꼴을 보니 근위대 물이 아직 덜 빠진 모양이군.”


단장은 일부러 들으란 듯, 혹은 계급장의 무게만큼 무거운 발소릴 쿵쿵 울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환영한다, 좆만아.”


호탕한 웃음과 칭찬. 준위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내 평소 귀족 나부랭이들이 인형으로 소꿉장난이나 해대는 꼴이 맘에 안 들었는데 너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군.”

“…….”

“내 그 새끼들을 직접 조지지 못하는 게 항상 아쉬웠는데 네 소식을 듣고 어찌나 즐겁던지 말이야.”


볼프강은 대답도 못 할 만큼 어지러웠다.

단장의 큰 손이 오른손으로 향하면 머리는 왼쪽으로 쏠렸고 왼쪽으로 가며 목이 오른쪽으로 꺾이는 탓이다.

으아아, 멀미난다, 멀미나!


“다, 단장님. 저는 여전히 근위대 소속입니다만…….”

“그딴 좆같은 곳은 잊어. 여긴 내 3인전단이고 너는 이제 이곳에 더 큰 소속감을 느끼게 될 테니.”


반항하듯 내뱉는 준위의 말이 확신에 찬 목소리와 웃음에 묻힌다.

기선제압 끝.


“단장님! 격납고에서 볼프강 준위의 인형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내선에서 울리는 다급한 소리.

준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인가!”


단장이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어……. 직접 보시는 게…….”


볼프강 준위가 뛰어서 격납고로 들어갔다.

개판이었다.


“뢰베!”


알터뢰베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인형을 붙잡고 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새 장난감 가지고 놀 듯 옆에 있는 5미터짜리 인형을 이리저리 놀리며.


쿵! 쾅! 쿵쾅쿵쾅!


“야 이 모기 새끼야! 저쪽 구석에 안 찌그러져 있어?”


동작을 멈추고 준위를 내려 보던 알터뢰베는 곧 그가 가리킨 빈 구석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곤 털썩 주저앉았다.

반항하는 애새끼처럼.


“야!”


진동과 먼지가 가득 찬 격납고.

그 속에서 알터뢰베는 고개를 홱 돌려 준위의 시선을 피했다. 

삐진 애새끼처럼.


“뢰베. 우린 드디어 전선에 왔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고개를 돌린 채 반응이 없다.


“곧 네가 좋아하는 마술사의 피가 비처럼 흐를 거야. 알겠지?”


피란 말에 알터뢰베가 반응한다.

준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손을 들었다.

엄지 척.

소년 준위 볼프강도 웃는다. 

오른 입꼬리만 빙긋 올리며. 

드러낸 송곳니가 야수의 그것처럼 날카롭다.


뭐지? 또라이 새끼들인가?

단장은 생각했다.

아주 맘에 들어.



1.


“좆같은 아침이다, 씨발놈들아!”


제3인형전투단 예하 각 전대장 및 참모 그리고 기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장이 하는 첫 마디.

귀족 장교들은 이 별값 못하는 말버릇이 그가 평민 하사 출신이라 그렇다고 수군댔다.


“좆같은 이야길 하기 전에 먼저 유쾌한 이야기부터 하지. 볼프강, 튀어나와.”


인형작전전대 맨 끝자리에 조신하게 앉아있던 볼프강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이 좆만한 새끼가 누구냐. 그 잘나신 황실 근위대에서 파견오신 귀하신 분이다 이거야.”


볼프강은 연단에 서서 아래를 둘러본다.

인형작전전대.

인형정비전대.

기지방호전대. 

작전지원전대.

각 전대별로 나눠앉은 많은 장교들 중 자신이 소속될 인형작전전대에 눈길이 갔다.


“이 새끼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놈들은 다 알거다. 

바로 후울륭하신 근위대의 인형 대대 하나를 홀로 조져버렸지.”


전원 침묵.


“제가 아니라 알터뢰베 혼자 한 겁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인형 여덟 기입니다.”


인형 2~4기로 편성되는 편대를 다시 3~4개 정도 묶은 것이 대대란 편성.

볼프강의 말은 혼자 완편된 2개 편대를 작살내 대대 전투력의 50%를 상실시켜

전멸 상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오만? 자랑?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여도 상관없다.

사실은 그저 사실일 뿐.


“꼴좋다, 병신 새끼들!”

“근위기사는 까야 제 맛이지!”


인형작전전대 기사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환성과 박수.


“만일 제가 함께 했다면…….”


그 환성을 뚫고 볼프강은 말을 이었다.


“제가 함께 했다면 여덟 기가 아니라 16기 모두 작살냈을 겁니다.”

“오오!”


탄성과 찬사.

누군가 손가락 휘슬을 불었다.


“다들 들었나? 애새끼 주제에 배짱 한 번 든든하군. 

난 이 새끼가 맘에 든다. 얼마만큼 맘에 드느냐, 

집에서 내 동생과 소시지놀이를 하고 있으면 조용히 불러다 콘돔을 쥐어주고 싶을 정도다!”


차라리 안 듣고 말지, 란 표정의 몇 몇 장교를 제외하곤 모두가 웃었다. 그 중 한 장교가 손을 든다.


“단장님, 그 여동생은 저한테만 벌써 세 번 시집보내셨잖습니까?”

“네 아랫도리가 부실해서 돌아오는 걸 내가 어떻게 하겠나? 대신 빨아줄 수도 없는데.”


볼프강은 대충 눈치 챘다.

이 부대는 대가리부터 밑동까지 죄다 또라이 새끼들이군.

아주 맘에 들어.


“참고로 폐하께선 이 좆만이를 16살로 알고 계신다. 알겠지?”


아무리 봐도 그건 무리지, 란 시선이지만 누구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좋아, 여기까지.”


그 한 마디에 장내가 정리되었다.


“준위, 자리로.”


볼프강 준위는 단장에게 경례하고 연단을 내려왔다.

준위가 인형작전전대 맨 끝 자기 자리로 가는 동안 

착석한 기사들은 괜스레 툭 치거나 한 두 마디 던지며 친근감을 표했다.

대략 6, 70명이 넘는 기사들. 

이 인원이면 적어도 2, 3개 정도의 인형대대가 배치되어 있으리라.


“시튼 소위야. 아마 우리 편대에 소속될 건데 잘 부탁해.”


옆자리에 앉은 소위가 알은 체하며 악수를 청해왔다. 갈색머리에 잘 생긴 청년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단장님껜 여동생이 없어.”


아니, 씨발?


“자, 이제 좆같은 이야길 시작하지. 금일 0600시, 베른이 선전포고와 함께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볼프강 준위도 새벽열차 안에서 들었던 소식이다.


“연례행사 같은 군사도발이 아니다. 

조국의 위기를 살쾡이처럼 이용하는 야비한 놈들!

현재 크레아 요새와 제2산악엽병군단이 적의 공격을 받고 있다.”


지휘봉이 짚는 지도 위.

제국의 서쪽 끝자락에 고지대를 의미하는 누런색과 절벽을 나타내는 들러붙은 등고선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그 이름.

베른 공화국.

공화국과 제국이 맞닿은 단 한줄기 통로 양 끝에는 각기 칸곡과 크레아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길이 산으로 차단된 두 국가 사이에 대규모 기갑부대가 이동할 수 있을 만한 회랑이었다.


“산악엽병군단-에델바이스 쪽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가 따를 것은 슬레인의 군수사령부다. 곧 군수사 예하 2인전단과 소집된 예비군이 요새로 투입된다.”


제국 서부 최대 군사도시인 슬레인에서 출발한 지휘봉 끝이 철도를 따라 크레아로 들어간다.


“우리 3인전단은 모집될 신병들의 기초훈련이 끝나는 즉시 그들과 함께 1인전단의 임무를 이어받는다.”


크레아 요새에서 출발하는 철도는 슬레인, 제3인전단을 거쳐 최종적으로 제도(帝都) 아바스까지 연결되어 있다.

볼프강은 그것이 마치 권력의 길 같다고 느꼈다. 

한 번 제도에서 이탈하니 이제 땅 끝 국경까지 밀려나게 생겼다.

하지만 원하는 바다.


“잘 들어라. 전쟁은 분명 고통스럽고 잔인하다. 제군들을 외부, 내부에서 동시에 파괴할 것이다.”

“…….”

“하지만 날 봐라. 30년 전, 굶어죽은 동생을 등에 업고 입대한 거지새끼가 지금은 장군이다. 

알겠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 전쟁이란 기회다. 제군들도 필시 그럴 거라 믿는다.”


볼프강은 생각한다.

맞는 말이야.


“천년제국 만세! 폐하 만세!”

“만세! 만세!”

“각 전대 전대장과 참모만 남고 퇴장하라.”


볼프강은 강당을 나서기 전 뒤돌아봤다. 

단장과 잠깐 눈이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다른 이들과 섞여 강당을 나왔다.



기지 내 모든 인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열중쉬어. 

그 대상은 스피커. 

약간의 노이즈 후 황제의 옥음방송이 시작된다.


“또 다시 조국에 어두운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베른 공화국의 불법적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신민들의 단결과 국군의 건승을 비는 내용.


“…….”


어제까지 바로 눈앞, 보이는 거리에서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던 사람의 목소리.

볼프강은 생각했다.

역시 물리적 거리가 곧 권력과의 거리야. 나는 이제 진짜 권력의 핵심에서 떨어져 나왔어.

후회? 그딴 건 없다.


내겐 알터뢰베가 있으니까.

내겐 살과 숨이 얼어터지는 동토에서, 

단지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정글에서, 

신조차 버린 검은 대륙에서 겪은 잔인한 경험이 있으니까.


난 반드시 돌아간다. 그리고 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것이다.

옥음방송이 끝나고 볼프강은 배치 받은 인형편대의 사무실로 향했다. 

아침에 옆자리에 말을 걸었던 시튼 소위의 편대가 맞았다.



0915. 개전 3시간 경과.

크레아 요새 엄폐호 안.

인형들이 무릎앉아 자세를 취한 채 정렬해있다. 

제국군 제식무장인 3,7㎝ 대인형포의 개머리판을 땅에 박고 포구를 위로 향한 채.

다들 세 시간째 내리는 폭탄의 비를 버티며 무기한 대기 중.

어디로 언제 무엇이 떨어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가까이에서 터지는가 싶으면 멀리서 울리기도 하고 

연막탄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가 싶으면 그 속엔 치명적인 화학성분이 섞여 있기도 했다.


씨발, 빌어먹을, 씨발!


세워서 잡은 포 끝이 떨린다. 폭격의 진동 탓이 아니다. 

탑승자, 즉 기사가 떨고 있다.

중령 계급장을 단 그는 속으로 연신 씨발을 외치고 있었다.


황실근위대인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이게 다 그 볼프강 개새끼 때문이야! 씨발! 씨발!


“아우구스트 대대장!”

“피, 필승!”

“경례는 됐네. 그대로 대기하게.”


군용차 한 대가 그런 대대장기의 뒤에 멈춰 섰다.

안에서 별빛이 흘러내렸다. 

별 4개짜리 크레아 요새 사령관. 그 옆에는 별 3개짜리 부사령관. 

그리고 독가스 탐침용 카나리아가 한 마리.

방독면을 덮어쓴 사령관은 대기 중인 인형들을 둘러봤다.


“불편하군. 벗겨줘.”

“알겠습니다.”


권력의 단 맛을 보려고 일부러 부사령관에게 방독면을 벗기게 한 게 아니다.

사령관은 한 쪽 손이 없다.

게다가 드러난 얼굴의 3분의 1은 피부가 아니라 무기질의 빛을 발했다. 

재건수술의 흔적이었다.


“국방대신께선 강녕하신가?”

“아버님께선 평안하십니다!”

“그래. 참 묘한 인연이야. 지난 7차 방어전에선 국방대신께서 요새 사령관이셨고

내가 자네처럼 인형대대장이었는데 말이야.”


대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씨발, 어디서고 아버지 이름 밖에 안 나오는군! 

나도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최연소 대대장이란 말이야!


“앞으로 2시간 정도 남았나?”

“그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참 예의도 없단 말이지. 새벽부터 이렇게 공갈포를 쏴대니 어디 시끄러워 밥이라도 편히 먹겠나.”

“우릴 굶겨죽일 모양입니다.”

“하여간 베른 이 야만인 놈들. 전술에 변화가 없어. 대대장, 앞으로 2시간 정돈 더 대기해야하니 무장을 풀고 좀 쉬게나.”

“아닙니다!”


사령관이 방독면을 벗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요새 내 환기 시스템이 정상 작동한다는 이야기다.

세 시간이 넘는 포격에도 요새는 멀쩡했다.


“다른 곳을 둘러봐야하니 이만 가보지. 아직 전투는 시작도 안 했으니 무리하지 말게.”

“조심히 가십시오! 필승!”


다시 방독면을 쓰고 사령관은 자리를 떴다.

뒤이어 큰 거 한 방이 터진 듯 천장이 흔들리며 먼지가 파스스 떨어진다.


“이물질이 포구에 들어가지 않도록 감싸라.”


대대장은 부하들에게 명령하며 자신도 포구를 살짝 기울여 손으로 감쌌다.

미칠 것 같다. 

좁은 곳에 갇혀 벌써 세 시간. 

수 백발, 아니 수 천 수 만발 쏟아지는 폭격 소리가 

마치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알갱이들처럼 신경을 갉아먹는다.



2230 개전 15시간 경과.

제3인전단 장교클럽.


“준위, 술은 마실 줄 아나?”


장교클럽 한 구석 인형전대 전용 공간에서 신입 환영회를 하는 2대대 3편대.

그래봤자 고작 셋.


편대장 다이안 패튼 소령.

조종수 시튼 헤밍웨이 소위.

그리고 볼프강.


사람은 셋. 시킨 맥주는 넷.

빈자리에 병을 놓았다.


“원래는 사격통제관이 한 명 더 있었네만…….”

검은 안대를 찬 채 주인 없는 맥주병을 보는 다이안 편대장을 보며

볼프강은 그 사연 있어 보임에 침묵했다.


“사고 쳐서 근신 중이야.”


아니, 씨발?


“참고로 편대장님 안대도 그냥 다래끼가 나신 거고. 자꾸 술 드시면 덧납니다, 편대장님.”


부하의 충고를 애써 외면하듯 한 쪽 남은 눈을 감는 편대장.


“아니, 편대장님. 자꾸 그렇게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하시면 사람들이 오해한다니까요.”

“어허,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이 중년의 멋을 어찌하나.”


턱을 괴고 맥주병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다이안 편대장. 

은발 위로 바 특유의 끈적한 조명이 들러붙자 제법 분위기를 풍긴다.

중2병이 늙으면 저리되는구나.


“환영하네, 준위. 건배!”

“건배!”

“건배!”


세 개의 병이 부딪치는 소리.

전시에 이러고 있어도 되나? 란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군대란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하는 법.

볼프강은 망설임 없이 나발을 불었다.


“크아아! 꺼억!”


미지근하지만 여기서 처음 마신 맥주가 그리 나쁘지 않다.


“우유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제법이군, 준위.”

“맥주는 음료수니까요.”

“그렇지, 그렇지! 아무렴! 크바스랑 다를 바 없다니까. 어린 친구가 뭘 좀 아는군, 그래. 하하하!”


병 하나를 단번에 비운 다이안 편대장은 입맛을 다시며 빈자리에 놔뒀던 맥주로 손을 뻗었다.


“너, 그 나이에 맥주 마시는 게 너무 자연스럽잖아! 북부 리시안 출신이냐? 편대장님도 거기 출신이시죠?”

“그래. 그리고 원래 맥주는 밥 대신 물 대신 마시는 거네, 시튼.”

“북부 술고래들한테나 그렇겠죠.”

“저는 크레아 요새 근처 산골 출신입니다. 요 근래 처음으로 기차란 걸 타 본 촌놈이죠.”


다시 맥주 한 모금 홀짝인다.


“그래, 그 산골출신 촌놈이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온 겐가? 게다가 저 희한한 기체는 또 뭐고?”

“다른 기사들도 궁금해 하더라고. 얼른 털어놔 봐.”


볼프강은 다시 한 모금 맥주를 홀짝이며 일부러 뜸을 들인다. 

애간장을 살살 태우며 이 두 사람이 자기에게만 집중하도록.


“별 이야기 없습니다. 제가 반 년 정도 전, 군에 징발당해 국방대학교 산하 기술과학원의 발굴 현장에 갔을 때였습니다.”


징병(徵兵)이 아니다.

징발(徵發)이다. 이 차이를 군인인 편대장과 소위는 확실히 알고 있다.


“징발? 징발이라고? 그 나이에? 볼프강, 너 설마 무능력자…….”


꽝!

거칠게 문이 열린다.


“간부님들, 즉시 본대로 복귀해 주십시오! 단장님 명령입니다! 즉시 복귀해주십시오!”


사이렌 소리와 함께 헌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원대복귀를 전달했다.


“무슨 일인가?”

“전선이 돌파당한 것 같습니다!”

셋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레아 요새에서 틀어막고 있을 터인 적군이 본국으로 침입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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