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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ㅇㅇb0a2a
2016-09-05 02:41:41 606 0 0

곧 결혼하는 준 아재입니다. 매개더 좀 하다가 직장동료의 추천으로 하스스톤을 하게 되었고, 회사에선 맘 놓고 겜도 못하는지라 간간이 철면수심님 방송이나 이어폰 꽂고 듣고 있습니다.

 
고민은 아니고, 마음 한 켠 박아뒀던 응어리 하나 설설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남여간에 순전한 친구관계는 없다지만 제겐 정말로 그런 사이였던, 그저 머리 긴 남자같은 기지배가 있었습니다. 

목소리 우렁차고, 치마입는걸 싫어하고, 주먹을 스트레이트로 내지를 수 있는 그런 '놈' 이었죠.

저는 그 친구랑 태권도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알고봤더니 관장님 딸이었더군요. 그리 오래 다니진 않았지만 그 때 이후로 그녀석이랑 많이 친해졌습니다. 

같이 다니는 동안 별의 별 짓거리를 다 해봤습니다. 공부는 전교권이었지만 오락실에선 날이면 날마다 따닥이를 해 대서 의정부역 제우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시비가 붙은 상대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한 손으로 연달아 스트레이트를 꽂는 싸움 기술로 학교 남학생들을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네, 저도 맞아봤습니다

쨌든간에, 전 그 녀석 부모라도 된 양 그런 일들에 대한 뒤치닥거리를 해 줬고, 그 애도 머리속까지 고릴라는 아니였던지라 절 잘 대해줬습니다. 


저도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던지라 주말이면 그 놈이랑 같이 중랑천변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곤 했습니다. 병맥주와 함께 그 녀석의 무용담을 안주거리로 삼아 한주를 마치곤 했습니다. 

가끔 분위기가 멜랑꼴리할 때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저는 문과, 그 친구는 이과로 갈라졌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친구가 학원 기숙사에 들어가서 전처럼 같이 중랑천변에 가기는 힘들어졌습니다. 

기숙사에선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하루가 달라지게 피골이 상접하게 되는 꼴이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듯 눈에 띄게 보였으니까요.
매일같이 그친구 반에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일축하기 일쑤였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관장님인 아버지가 그 녀석을 이전보다 훨씬 엄하게 대하신다고 합니다.

고릴라같이 날뛰던 녀석이 골골대는 늙은 개처럼 있으니 안타깝기도 했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지다 
하루는 중랑천변에서 운동을 할 때였습니다. 항상 둘이서 술 마시던 장소에 그녀석이 쭈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맘에 다가와 인사를 했고, 그 친구는 세상 다 산 얼굴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이전의 일들 때문에 딱히 할 이야기는 없었고, 저 또한 주저앉아 별빛 비치는 중랑천을 하염없이 바라만 봤습니다. 

힐끔힐끔 거리는 그 친구의 눈길을 애써 무시하고, 운동 참 힘들게 했다는 듯이 꾸벅꾸벅 조는 척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때,
그 녀석이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지막히 한 마디 뱉었습니다.

'나 좀 안아주면 안 될까'

저는 그 말에 실례가 될 정도로 화들짝 놀라 그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그 애도 처음엔 제 반응에 깜짝 놀랬지만, 이내 결심한 듯이 포니테일을 풀고는 제 눈을 지긋이 쳐다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은 눈은 보지 못했습니다. 톡 치면 쏟아져나올 것 같은 그런 눈이었습니다. 

도대체 뭐였을까요,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두려움 때문에 전 아무 말 못하고 자리를 박차 황급히 도망쳐버렸습니다. 

정신없이 골목을 한동안 내달리다가, 겨우 전신주에 몸을 박고 달리기를 멈췄습니다. 

그러곤 전봇대를 부둥켜 잡고 어미 잃은 동물처럼 크게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녀석은 그럴리가 없어' 라는 마음과 상실감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들만이 전부는 아니었겠지요. 
정말 철없습니다.

이후 그 친구는 정해진 수순인 양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대신 지역신문 사건사고 면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전봇대에서 쏟을 눈물 다 쏟았는지, 완전히 밸브가 잠겨버렸는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 20년이 지났습니다

9월 이맘때쯤이면 항상 가슴 한 켠이 조여옵니다, 그 때 밸브를 너무 꽉 닫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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