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무대
친절한 이웃
극본 임지은
연출 황형선
작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에서 나와 타인 간의 신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등장인물
주아영 (30세. 여. 임신8개월)
쌀쌀맞고 따지기 좋아 하는 성격이지만, 타인에 대한 동정심도 많고 감정 이입을 잘한다.
이민호 (34세. 남. 주아영 남편. 회사원)
낙천적이고 사람 좋지만,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
조윤주 (28세. 여. 무직 / 전 아마추어볼링선수)
사람의 이목을 끄는 빼어난 외모와 타인이 경계를 풀게 하는 뛰어난 친화력과 애교가 있다.
권영우 (35세. 남. 윤주 전남편)
돈은 많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고 인성교육이 부족한 사람.
그 외
- 아영 모
- 산부인과 의사
- 이삿짐센터 직원들
- 자전거 타는 아이(7살)
- 자전거 타는 아이 아빠.
#11아영
#22민호
#33윤주,아이,엄마, 점원
#44영우,의사,아빠,인부,이웃
E 쿵쿵쿵 윗집에서 무언가를 내리 찍는 소리. 드르륵 드르륵 연이어 들리는 무언가를 굴리는 소리.
#11아영 (잠결에) 자기야...
#22민호 (잠결) 으응...
#11아영 (짜증) 윗집 또 시작했어.
#22민호 (어르면서) 자자~ 내가 자장가 불러 줄게. 자장자장 우리 아영이 잘도 잔다.
E 쿵 하며 위에서 다시 들리는 소음.
#11아영 (짜증나 벌떡 일어나며) 나 도저히 못 참아. 저놈의 집구석 오늘은 끝장을 내던지 해야지.
#22민호 (애원하며) 자기야 그냥 자자.
타이틀 친절한 이웃
E 이사하는 소음들.
#44인부 (이삿짐 인부들 중 팀장 급) 아니야 그건 거기가 아니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야 해. 어이 그것도 거기가 아니고.
E 아영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
#11아영 (짜증 섞인) 저기요 아저씨.
#44인부 아 네? 무슨 일로?
#11아영 이사 하시는 건 좋은데요. 짐은 사다리차로만 옮기셔야죠. 엘리베이터로 짐을 옮기시면 어떻게 해요.
#44인부 엘리베이터로요? 아 그럴 리가요.
#11아영 아저씨 그럼 제가 없는 말 하겠어요? 몸도 무거워 죽겠는데 엘리베이터 한참 기다렸다고요.
#44인부 사모님, 저희가 다 철저하게 교육을 해서 엘리베이터로 짐은 옮기지 않습니다.
#11아영 아니 아저씨 제가 지금 거짓말해요?
#33윤주 (뒤에서) 무슨 일이에요?
#11아영 아 이 집에 이사 오는 분이세요?
#33윤주 (쌀쌀맞게) 네 그런데요.
#11아영 (도전적으로) 혹시 아파트에 처음 사세요? 누가 짐을 엘리베이터로 옮겨요?
그리고 사전에 엘리베이터에 이사공지는 해주셔야죠. 아침 꼭두새벽부터 시끄럽게 하시면서 사전에 이웃에 인사하나 없으세요?
#33윤주 (쌀쌀맞게) 방금 전 팀장님이 엘리베이터는 그럴리 없을 거라고 하셨고,
인사는 뭐 음료수가 필요해서 이러시는 건가요?
#11아영 (기가 막혀) 뭐라고요?
#33윤주 몸도 무거우신 거 같으신데 그만 가주세요. 남 이사하는 집에 와서 이렇게 난동 부리는 거 아니에요.
#11아영 어머. 어머. 지금 뭐라는 거니. 뭐 난동?
#33윤주 (인부들보며) 식사 하셔야죠 팀장님~ 식사들 하시고 천천히 하세요.
#11아영 (혼잣말) 뭐. 뭐. 이런 싸가지가.
M 브릿지 01소리
#22민호 (숨넘어가듯 웃는) 하하하하.
#11아영 웃어? 웃겨? 지금 이게 웃겨?
#22민호 하하하... 아니... 천하에 주아영이 당하다니.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네.
E 바로 들리는 쿵쿵쿵 윗집에서 못 같은 것 박는 소리.
#11아영 (화가 나서) 저 여자야! 들리지?
E 쿵쿵쿵
#22민호 대체 뭐하는 소리야?
#11아영 (포기하듯) 종일 저래. 뭘 때려 부수는지 새로 쌓아 올리는지. 몇 번을 쫒아 갔다고,
쫒아 가면 그때만 알겠다 하고 계속 저래. 아무래도 나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같아.
#22민호 에이 설마.
#11아영 설마가 아니야. 말하는 거 보면 눈썹하나 까딱 안하고 얼마나 뻔뻔하게 말하는데.
#22민호 자기야~ 자기가 조금만 참아. 우리 행복이한테 안 좋아. 오늘은 이사 첫날이라서 그럴 거야. 내일부턴 곧 조용해질 거야.
#11아영 나도 행복이 생각해서 종일 참았어. 뱃속에 행복이만 아니면 벌써 머리끄덩이 잡아서 내동댕이 쳐버렸을 거야.
#22민호 암요. 암요. 우리 주아영님인데.
#11아영 자기야 나 장난 아니거든.
M 브릿지 02소리
(아파트 복도앞)
#22민호 몸도 무거운데 뭘 배웅까지 해준다고 나와.
#11아영 아니야 계속 움직여야 순산하지. 쪽~ 사랑해.
E 띵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
#11아영 자기야 잘 다녀와~
#22민호 쪽 나도 사랑해 이따 봐~
#33윤주 (엘리베이터 안에서 쌀쌀맞게) 안 타실 건가요?
#22민호 아! 죄송합니다.
E 엘리베이터 닫히는 소리.
#11아영 저저 싸가지 하고는, 거 얼마나 기다렸다고.
E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소리. 03소리
E 집안 어디선가 들리는 전화 벨소리.
#11아영 어? 민호씨, 휴대폰 두고 갔네!
E 지하 주차장 멀리서 들리는 남여가 언성 높여 싸우는 소리.
#33여자 (억누르지만 악에 바쳐)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
#22남자 (어이없어)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E 아영 가까이 다가가면서 싸우는 소리 점점 커지면, 민호와 윤주가 싸우고 있다.
#11아영 (놀라서) 자기야 왜 그래?
#22민호 (아영 보고 놀라서) 어... 자... 자기야.
#11아영 뭐야? 무슨 일이야?
#22민호 자기는 어쩐 일이야 왜 왔어?
#11아영 자기가 휴대폰 놓고 가서 가져다주려고 왔지.
#22민호 아 그랬어? 별일 아니야. 어서 들어 가.
#11아영 별일 아니긴? 지금 싸우고 있었던 거지? 그치? (윤주 보며) 이봐요.
아줌마인지 흠흠 아가씨인지. 어제부터 왜 여기 저기 시비에요?
#33윤주 (비웃음) 시비라니요?
#11아영 (불끈 화가 나서) 지금 당신 하는 짓이 무개념에 안하무인이잖아요.
#33윤주 (도도하게 비아냥) 아줌마? 누가 싸움을 걸고 다니는건지 당신 남편 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22민호 아니 이봐요.
#33윤주 그럼, 바빠서 그러는데 비켜주시겠어요?
E 윤주 자동차 킥 소리 크게 내며 시동 걸고 출발한다. 04소리
#22민호 완전 미쳤어...
#11아영 자기 방금 전에 저 여자랑 싸운 거지?
#22민호 어? 어... 주차 때문에... 저 여자 저거 정상이 아니야...
#11아영 거봐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22민호 아영아 너는 앞으로 저 여자 무시해. 너는 저 여자 감당 못해!
#11아영 뭐 뭘 그렇게 까지...
#22민호 저 여자는 내가 이사 가게 만들 거야. 자기는 신경 끄고 보기만 해.
M 브릿지 05소리
E 아영 걸어가는데 전화 벨 소리.
#11아영 어 엄마~
#33엄마 (F)어디니?
#11아영 응 집 앞 슈퍼에 좀 가려고.
#33엄마 (F)몸은 좀 어때? 왜 요새 며칠 전화가 뜸해?
#11아영 엄마 나 짜증나 죽겠어. 우리 윗집에 완전 이상한 여자가 이사 왔어.
#33엄마 (F)어머 왜?
#11아영 완전 미친 여자야. 이서방은 태교에 안 좋다고 나는 신경 끄고 있으라는데 신경이 꺼져야 말이지.
#33엄마 (F)아영아. 요새 미친 사람들 많더라. 평범해 보이다가도 갑자기 돌변해서는
왜 묻지마 살인 같은거 TV에도 많이 나오잖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야. 사람 조심해.
E 놀이터에서 남녀가 다투는 소리.
#44영우 이게 미쳤어?
#33윤주 미친 건 너야!
#11아영 어? 엄마 누가 싸우는 거 같은데?
#33엄마 (F)뭐야? 왜 그러는데?
#11아영 엄마 끊어봐!
#33엄마 (F)얘 아영아!
E 짝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소리.
#33윤주 (울면서 발악) 왜 때려? 네가 뭔데 때려?
#44영우 (겁박 하듯) 이게 조용히 안 해?
E 아영 가까이 다가가는 소리. 가서 보면 윤주다.
#11아영 (혼잣말)어? 윗집 여자네! 그냥 가자! 엄마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그랬어.
E 짝 소리. 영우 또 윤주를 때린다.
#44영우 이게 요새 안 맞아서 이렇지?
#33윤주 (소리 지르며) 너 경찰에 신고할 거야!!!!!!!!!!
#44영우 (또 때리려 손 올리는) 그래 신고해라 해 이게!
#11아영 (큰 소리로 다급하게 통화하며) 네네 여기는 샛별아파트 2단지 놀이터에요.
네. 남자가 여자를 또 때리려고 해요. 빨리 와주세요.
#44영우 뭐야? 뭐야 아줌마? 이리 와 봐요!
#11아영 어머. 어머. 그 아저씨가 저를 보고 저까지 때리려고 해요. (소리 지르며) 아~~~~~~~~~~~악!!!!!!
#44영우 이 이봐 아줌마!!!
E 순간 여기저기서 뭐야? 뭐? 하며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
E 아영 귀 막고 계속해서 악! 하고 소리 지르고 있다.
#44영우 에이! 조윤주 너 나중에 얘기하자! (가버리는)
#33윤주 (부끄럽게) 아줌마 갔으니까 그만해요. 시끄러워요.
#11아영 (뚝!) 갔어요?
#33윤주 아줌마 목소리 엄청 크네.
#11아영 휴~ 다행이네. 근데 당신! 아니, 너! 넌! 그게 문제야. 도와 줬으면 고맙다고 하는게 먼저 아니야?
#33윤주 (도도하게) 난 도와 달라고 한적 없는데.
#11아영 아오. 내가 등신이다. 그래 내가 미쳤지! 근데 너 말이 갑자기 짧아진다.
#33윤주 (머쓱하게) 아줌마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잔 할래...... 요?
#11아영 (도도하게) 차? 흥! 그러든가.
M 브릿지 06소리
#11아영 어머. 어머. 이게 다 뭐야? 집에 왠 볼링핀이랑 볼링공이야? 혹시 이거 밤마다?
#33윤주 (자랑하듯) 나 아마추어 볼링 선수에요!
#11아영 볼.링.선.수? 볼링 선수면 집에서 볼링을 치니?
#33윤주 경기 앞두고 예민해지면 집에서도 치고 그래요.
#11아영 뭐? 뭐? 그게 지금 윗집 사는 사람이 아랫집에 사는 사람한테 할 소리니?
#33윤주 뭐 매트도 깔았는데... 그렇게 시끄러워요?
#11아영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33윤주 흠... 내가 전에는 주택에만 살아 봐서... 요 아파트 느낌은 잘 모르겠네...
#11아영 느낌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 지금부터 볼링 금지야!
#33윤주 그런데 임신 하신 거 맞죠? 혹시 몇 개월이에요?
#11아영 아... 8개월.
#33윤주 언니가 워낙에 날씬해서 처음엔 임신하신 줄 몰랐어요.
#11아영 (싫지 않은) 날씬은 무슨... 그런데 언니라니?
#33윤주 전 스물여덟이에요. 언니~ 임신 했을 때 많이 예민해 진다던데 힘들었겠어요.
언니~ 제가 그동안 많이 시끄럽게 했죠? 미안해요.
#11아영 너 지 지금 사과 한 거니?
#33윤주 (살짝 미안하게) 아깐 고마웠어요.
#11아영 고맙긴 뭘... 지나가다 그런거 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33윤주 요새 사람들 남의 일에 참견 안하잖아요.
#11아영 그런데, 아까 그 놈은 누구야?
#33윤주 (어두워지며) 전 남편이에요... 이혼한지 2년이나 지났는데도 심심하면 찾아와서 저 난리에요.
#11아영 (분노) 뭐? 그러면 당장 신고하고 접근금지명령 같은거 받아!
#33윤주 (포기 한 듯) 저놈, 돈이 아주 많은 놈이에요. 그 돈으로 없던 일도 만들고, 있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들어요.
#11아영 (적극적으로)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안 되면 TV 고발프로그램 같은데 제보라도.
#33윤주 (씁쓸) 언니... 우리 집에... 딸린 입들이 쫌 많아요...
저 놈이 그 딸린 입들을 먹여주고 입혀줬거든요. 날 볼모로... 친정식구들이 저놈한테 빌려 쓴 돈들이 꾀 돼요.
#11아영 (안쓰러워) 에휴... 너도 참 나이도 어린데...
#33윤주 (밝게) 언니~ 나 언니 맘에 드는데 나 언니 동생 해도 되죠?
#11아영 (당황) 동생?...
#33윤주 (애교 섞어) 우리 친하게 지내요~
#11아영 (싫지 않은) 뭐... 뭐... 그렇게 하든가...
M 브릿지 07소리
#11아영 (공감하며) 알고 봤더니 불쌍하더라고.
#22민호 (잔득 화가 나서) 불쌍하다고? 누가 불쌍해?
#11아영 윤주~
#22민호 윤주? 당신 정신 차려! 아침일 기억 안나?
#11아영 (주절주절 변명) 그거야 사람이 살다보면 오해도 하고
오해했음 풀면 되는 거고 오해 풀었음 이웃사촌도 되고 하는 거지 뭐.
#22민호 주아영! 넌 임신부야! 그 몸으로 남에 싸움에 끼어들지를 않나, 낯선 사람 집에 따라가지를 않나 지금 제 정신이야?
#11아영 (빤히 보며) 자기 그 말 참 잘 쓰더라. 그럼 제 정신이지!
틀린 정신 일까봐? 아침에도 주차장에서 윤주한테 그 말 했었지?
#22민호 (약간 당황) 어... 뭐?
#11아영 저렴하게 제 정신이야?는 좀 그렇지 않아?
#22민호 야 주아영! 너 지금 누구 편이야?
#11아영 편은 누구 편이야? 애들도 아니고, 다 우리 편이지!
#22민호 아영아!
#11아영 자기 아침엔 윤주랑 왜 싸운 건데?
#22민호 (당황하여) 주차 때문이라고 했잖아.
#11아영 주차가 어쨌는데?
#22민호 자기는 몰라도 돼!
#11아영 윤주도 몰라도 된다고 하던데, 왜 나는 몰라야 하는 건데?
#22민호 (짜증) 그냥 차 빼다가 부딪칠 뻔 했어.
#11아영 주차 때문이라며?
#22민호 (버럭) 그러니까! 그게 그거지!
#11아영 그게 왜 그게 그거야? 주차랑 차 빼다 부딪칠뻔한 거랑은 다르잖아!
#22민호 (힘주어) 아영아. 윗집 여자랑은 어울리지마. 너한테 좋을거 하나도 없어. 나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11아영 (따지듯) 느낌은 무슨? 느낌이 어떻다고?
#22민호 (진지하게) 아영아 (쉬고) 나 피곤하다.
#11아영 (한숨) 알았어... 쉬어.
M 브릿지 08소리 이어서
E 잔잔한 클래식 음악 흐리고. 찻잔 놓는 소리(받침 없는 찻잔)
#33윤주 (잔잔한 목소리로) 마셔봐요. 인도차인데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대요.
E 꼴깍 차 한 모금 마시는.
#11아영 음~ 향이 좋다. 여태 마셔보지 못한 차인데?
#33윤주 (작게 속삭이듯) 허브랑 열대과일을 말려서 만들었다는데,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대요. 귀한거라 언니한테만 드려요.
#11아영 (몽롱하게) 음 이차 향이 너무 좋다.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고 꿈속을 걷는 거 같아....
E 나른하게 꿈속을 걷는 것 같은 음악.
#22민호 (현실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아영아! 아영아! 주아영아!
#11아영 (정신없는 듯) 으응... 민호씨?....
#22민호 아영아 괜찮아?
#11아영 (정신 차리고) 응... 나 괜찮아. 근데 민호씨 이 시간에 여기는 왜 왔어?
#22민호 이시간이라니? 지금 저녁 9시야.
#11아영 (놀라 벌떡 일어나며) 뭐? 저녁 9시라고?
#22민호 퇴근하고 왔더니 소파에 누워 자던데?
처음엔 피곤한가 해서 그냥 뒀는데, 저녁도 안 먹고 계속 자길래 걱정 돼서 깨웠어.
#11아영 어... 이상하다... 나 윤주랑 같이 모닝차 마셨는데... 그 뒤로는 전혀 기억이 않나...
#22민호 (버럭 화내며) 뭐? 윗집 여자를 또 만났어? 내가 멀리 하라고 했잖아.
#11아영 자기 이상해.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22민호 (걱정스러워) 아니 그렇잖아. 임신부가 아무나 만나고 차는 무슨 차를 마신건데? 종일 누워 자?
#11아영 내가 너무 피곤했나봐... 근데 이상하다... 윤주랑 헤어진 기억이 전혀 안 나네...
M 브릿지 09소리
E 시끄러운 마트 안의 소음들.
#33윤주 (놀라) 어머 언니! 어제 일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차 한 잔 마시더니 나른하고 피곤하다며 낮잠 좀 자야겠다면서 11시쯤 내려갔잖아요.
#11아영 내가 그랬어? 차 마신 기억은 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전혀 안나네...
#33윤주 (걱정하며) 어떡해 우리 언니 막달이라서 진짜 피곤하신가 보다.
#11아영 (아닌 거 같은데) 내가? ... 그런가? ...
#33윤주 언니 안 되겠어요. 임신 8개월에는 망간과 크롬섭취가 필수라는데,우리 영양분부터 보충해요.
크롬은 현미랑 닭고기에 많다고 하니까 내가 현미밥에 닭볶음탕 맵지 않게 아주 맛나게 해줄게요.
#11아영 어머 넌 아는 것도 참 많다.
#33윤주 제가 요리도 좀 해요 언니~
M 브릿지 10소리
E 맛있게 음식 먹는 소리.
#11아영 (맛있게 먹으며) 어머 진짜 너 요리 잘한다.
#33윤주 맛있어요?
#11아영 응~ 너무 맛있어. 솔직히 우리엄마가 한거 보다 더 맛있어.
#33윤주 많이 먹어요~
#11아영 (먹으며 정신없이 툭 내뱉듯) 근데 너는 얼굴도 예쁘고 몸도 착하고, 요리도 잘하는데 왜 이혼했니?
#33윤주 음...
#11아영 (실수했다) 아차 미안해... 개인산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네.
#33윤주 (아무렇지 않게) 뭐 괜찮아요. (잠시) 내가 바람 피웠어요.
#11아영 (놀라서 사리 들려) 켁켁 뭐? (물 한 모금 마시고) 네 남편이 아니라? 네가 바람을?
#33윤주 네... 전 남편이 돈은 많고 잘 썼는데, 그거 말고는 뭐든지 자기 멋대로 명령하고, 항상 내 위에 군림하려고 들었어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자기 마음에 드는 데로만 강요하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자기가 하고 싶으면,
내 기분 따위는 상관없이 자기 소유물처럼 폭력적으로 대했어요.
어느 날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건 부부관계를 하는게 아니라 성폭력을 당하고 있더라고요.
#11아영 (놀라서) 어머... 무슨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이...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이혼을 먼저 해야지, 어떻게 바람부터 피우니?
#33윤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외롭고... 힘들고... 무서웠을 때 그 사람을 만났어요... 솜털처럼 부드럽게 나를 다독여주고,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나한테 맞춰주고 다정하게 속삭여주고...
마치 언니 형부처럼이요... 남편하고는 정반대 사람을 만나니까 앞뒤 안 가리고 빠져들었죠 뭐...
#11아영 (으아 하게) 그랬구나... 그런데 우리 민호씨가? 다정하고 따뜻해보여? 그건 어떻게 알고?
#33윤주 (약간 당황하다가 이유를 찾은 듯)아, 왜요.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니 한테 다정하게 뽀뽀해 주고 주차장에서 기사처럼 보호해 줬잖아요.
#11아영 아... 그랬나? (부끄러워) 뽀뽀 하는 것도 봤어?
#33윤주 (약간 질투하듯) 다정하고 부드럽게 언니 입술에 살포시 형부입술이 닿았잖아요.
#11아영 (부끄럽고 불편하다) 어머 그런 비유는 좀 얼굴이 다 뺄개진다 얘.
#33윤주 언니는 행복하겠어요.
E 갑자기 시끄럽게 울리는 윤주의 휴대폰 벨소리. 11소리
#33윤주 (전화 받으며, 목소리 어두워) 왜?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44영우 (F)(거드름피우며) 나도 그렇고 싶은데, 어제 처남한테 전화가 왔네~ 돈 좀 몇 천 해달라고 하는데? 이걸 어쩌나?
#33윤주 (화가 나) 뭐? 윤철이가? 절대로 해주지 마!
#44영우 (F) 나도 그렇고 싶은데, 어찌나 통 사정을 하는지, 어떻게 그러냐? 암만 이혼 했어도 전 처남이였는데. 안 그래?
#33윤주 (악에 바쳐) 그걸 빌미로 날 또 얼마나 괴롭히려고!
#44영우 (F) 괴롭히긴? 정을 못 때서 그런 거지. 그래서 말인데 좀 만나자.
#33윤주 만나긴 우리가 왜 만나?
#44영우 (F) 나 아파트 앞이야. 내가 올라갈까?
#33윤주 여기가 어디라고 와!
#44영우 (F)그러면 니가 내려올래?
#33윤주 (이 악물고)알았어. 기다려. (뚝 전화 끊고)
#11아영 전 남편?
#33윤주 언니 저 잠깐 내려갔다 올게요.
#11아영 가지마. 왜 나가!
#33윤주 남동생이 그 놈한테 돈 얘기를 꺼냈나 봐요. 나 혼자 피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에요.
#11아영 나도 같이 가자!
#33윤주 아니에요 언니. 언니는 여기 계세요.
#11아영 그러다가 그 자식 또 그때처럼 폭력적으로 나오면?
#33윤주 (단호하게) 언니! 부탁이 있어요. 나한테 30분 지나서 전화해줘요. 만약에 내가 전화 안 받으면 그때 경찰을 불러줘요.
#11아영 괜찮겠어?
#33윤주 이런 일 한 두 번도 아니에요. 이런 경우 대비해서 구매해 둔 것도 있고요.
E 윤주 서랍 쪽으로가 서랍 열고 무언가를 꺼낸다. 12소리
#11아영 (놀라서) 어머 그게 뭐야?
#33윤주 (딸각거려 보이며) 호신용 경보기랑 전기 충격기예요. 그 날은 준비없이 만나서 당했는데, 이젠 안당해요.
#11아영 알겠어. 조심하고, 내가 30분 뒤에 전화 할게.
#33윤주 고마워요 언니.
M 브릿지 (시간 경과 느껴지는 음악.) 13소리
#11아영 (N)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 윤주는
서랍장에서 경보기랑 충격기를 꺼내면서 일부러 서랍을 열어 놓고 나간 것 같다.
#11아영 (혼잣말) 괜찮겠지... 어머 얘가 서랍장도 열어 놓고 정신없이 나갔네.
E 서랍 닫아 주는 소리.
#11아영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 하고 크게 놀라는) 이 이게... 어떻게...
M 브릿지 14소리
E 딩동딩동 곧이어 쿵쿵쿵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잠시 시간 경과 후.
E 철컥 천천히 현관문 여는 소리.
#11아영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당 당신이 여기에 왜... 왔어?
#22민호 (놀라고 당황하여) 아 아영아...
M 브릿지 15소리
#22민호 (담담하고 다정하게) 어제 자기가 정신없이 잤잖아.
도대체 어떤 차를 내준 건지 물어보려고 왔어. 그리고 자기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고.
#11아영 (애써 침착하게) 왜 내가 윤주랑 친하면 안 되는데?
#22민호 그렇잖아. 뭔지도 모른걸 얻어 마시고는 약에 취한 사람처럼 잠들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매일 여기 놀러오고. 내가 걱정이 안 되겠어?
#11아영 아 그래서 이렇게 윤주네 집에 퇴근하고 직접 온 거야?
#22민호 (조금 당황) 자기한테 말했으면, 자기가 얘기 못하게 했을 거잖아.
말 하나 마나 뻔해서 자기 모르게 퇴근길에 들린 거야.
#11아영 (담담히 그리고 멍하게) 아... 그랬구나... 그런데 지금 몇 시야?
#22민호 여 여덟시.
#11아영 (혼자 중얼거리며) 나 윤주한테 전화해 줘야 하는데...
#22민호 자기는 주인도 없는 집에서 뭐하고 있던 거야?
#11아영 (멍하니) 나 윤주한테 전화해 줘야해...
16소리
E 아영 휴대폰 번호 누르는 소리.
E 윤주 휴대폰 신호 가는 소리.
#33윤주 (F) (밝게) 언니?
#11아영 (멍하게) 응... 윤주야 괜찮아?
#33윤주 (F) 네 언니 괜찮아요.
#11아영 어 다행이네.
#33윤주 (F) 언니... 그런데 혹시 누구 왔어요?
#11아영 (F) (잠시 사이 두고) 아니... 아무도 안 왔는데,,,
#33윤주 (F)(실망한 듯) 그래요? ...
#11아영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어?
#33윤주 (F)(당황) 아 아니에요 언니.
17소리
M 브릿지 (아영의 꿈. 전체를 ECHO처리)
#11아영 (잠결에) 으음... 음... 민호씨? (민호를 찾는) 민호씨?
18소리
E 화장실, 방문 열어 보는 소리.
E 전화 벨소리.
#11아영 (걱정) 전화도 안 받고! 자다가 말고 대체 어디 간 거야! 혹시 설마?
19소리
E 쿵쿵쿵 문 두드리고, 딩동딩동 시끄럽게 초인종 누르는 소리.
#11아영 문 열어! 문 열라고! 당장 문 열어!
20소리
E 털커덕 현관문 열리는 소리.
#22민호 (당황하여) 어... 언니 이 시간에 어떻게?
#11아영 (악에 바쳐서) 민호씨 여기 있지? (집에 들어서며) 어디다 숨겼어?
#33윤주 (말리며) 언니 지금 뭐하는 거야? 왜 이래요?
#11아영 (여기저기 문 열며) 비켜. 나 와! 당장 나오라고! 어디 숨었어!
#22민호 어? 자기야 누구 왔어?
#11아영 (분노) 야! 이민호... 이 나쁜 놈아!
#22민호 아... 아영아 그 그게 아니라 내가 설명할게.
#33윤주 (뒤에서) 어 언니 진정하세요!
#11아영 (눈 돌아가) 진정? 나보고 진정하라고? 야!!! 너희 둘.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33윤주 (빌며) 어 언니!
#22민호 (빌며) 아... 아영아!
21번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