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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당신의 시간을 삽니다 2

Broadcaster 로페릭의_매콤달콤
2020-03-03 11:15:10 203 0 0

E. 왔다갔다 전당포 문 앞에서 서성이는 강두.


강두11- 하아... 나 이 새끼, 전당포엔 왜 또 온 거냐. 아서라 아서. 노인네 등쳐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영감님한테 안부 인사나 여쭙고 갈까?


E. 전당포 문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강두11- (빼꼼) 사장님 계세요?


노인22- 또 자네구만. 오늘도 돈이 필요해서 찾아왔나?


강두11- 척하면 척이시네요. 자주 보니까 가족 같고 좋은데요. (히죽-)


노인22- 그래, 오늘은 얼마나 필요한가?


강두11- 이번엔 좀 많이...


노인22- 많이 얼마나?


강두11- 중형차 한 대 값... 정도?


노인22- 국산차? 외제차?


강두11- (흥이 올라) 기왕이면 외제차로다가!


노인22- 흠...


강두11- (눈치 살피며) 국산차도 뭐 괜찮지만... 왜요, 좀 무리겠어요?


노인22- 내가 무리일 건 없고, 자네야말로 괜찮겠나? 그 정도면 꽤 많은 시간을 팔아야 할 텐데...


강두11- 제가 늘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노인22- 가진 건 시간 밖에 없다?!


강두11- 바로 그거죠!


노인22- (의미심장한)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강두11- 아무렴요. 남아도는 시간이 주체가 안 된다니깐요.


노인22- 흠... 그런데 이를 어쩐다? 이번엔 그냥 돌아가야겠는 걸?


강두11- (당황) 아니, 왜요? 이제 와서 이러시면 곤란한데...


노인22- 중형차 한 대 값은 고사하고 중고차 한 대 값도 안 나와.


강두11- 예에? 그,그게 무슨...? 혹시 그만한 돈이 이제 없으신 거에요?


노인22- 그럴 리가. 나야말로 남아도는 건 돈밖에 없는 늙은인걸.


강두11- 그럼... 대체 왜...?


노인22- 자네한테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있어. 팔아 쓸 수 있는 시간.


강두11- (어안이 벙벙) 팔아 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뇨...?


노인22- 말 그대로야. 자네한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단 소리지. 그러니 더 이상 시간을 팔수도 없는 거고.


강두11-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데... 저를 좀 이해시켜 주시겠어요?


노인22- 쉽게 말해 주지. 인생을 살다 시간이 다 가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


강두11- 그야 죽기 밖에 더 하겠... (다급한)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저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그 말인 즉슨, 

             제가 얼마 못 산다... 설마 그런 뜻은 아니죠?


노인22- 돌대가린 줄 알았더니 말귀를 아예 못 알아듣는 건 아니구만.


강두11- (어이없는) 지금 저더러 그 말을 믿으라구요?


노인22- 이제까지 나한테 시간 팔아서 돈 받아간 건 말이 되고, 지금은 말이 안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강두11- (말 문 막히는) 그... 그건...


노인22-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이만 나가 주게나.


E. 강두 ‘어... 어...’ 하는 사이 얼떨결에 전당포 밖으로 밀려나고.

E. 전당포 문 쾅- 닫히는.


강두11-  (얼떨떨한) 뭐야? 이게 말이 돼? 당연히 말이 안 되지. 그래, 처음부터 말이 안됐어 처음부터... 

                그럼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뭔가 잘못 된 거 같은데... 내가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그래, 이건 꿈이야. 빌어먹을 뭐 이딴 개꿈이 다 있어!


M. 브릿지

 

E. 고시원 계단 올라가는 발소리.


총무22- (off) 어이 404호 서강두씨! 잠깐 나 좀 봐요.


강두11- (다가가며) 무슨 일 있어요?


총무22- 404호 친구 401호 황대철씨 말이에요, 로또 맞은 거 맞죠?


강두11- 맨날 로또만 끼고 사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아시나...


총무22- 아니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대?


강두11- 돈이라뇨?


총무22- 좀 전에 밀린 고시원비에 이자까지 쳐줬다니까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참.

              거기다 온 몸을 명품으로 휘감았던데, 백수가 그런 돈이 갑자기 어디서 났겠어요?

              가만, 그러고 보니까 404호도 지난번에 밀린 방값 다 계산했었잖아. 이거 이거 둘 다 수상한데...?


강두11- (기분 쌔-해지는) 대철이 지금 어딨어요?


총무22- 양반은 못되시구만. 저기, 저기 오네.


강두11- (계단 뛰어 내려가며) 황대철!


대철33- 어... 강두야...


강두11- 나랑 얘기 좀 해.


대철33- 나중에. 나 지금 좀 바빠.


강두11- 들고 있는 그 가방은 뭐야?


대철33- (당황) 어? 어... 이거... 가방이 그냥 가방이지 뭐긴...


강두11- 뭐가 들었길래 가슴에 끌어안기까지 해? 돈이라도 들어 있어?


대철33- (흠칫) 어?!


강두11- (가방을 빼앗으려 하는) 어디 좀 봐, 뭐가 들어 있는지.


대철33- (빼앗기지 않으려 실랑이) 뭐하는 짓이야? 내 돈이야, 내 놔!


강두11- 돈? 그 가방 안에 정말로 돈이 들었단 말야? 너 설마...!!


대철33- 그래, 나도 내 시간 좀 팔았다. 그게 뭐?


강두11- (버럭) 너 미쳤어?


대철33- 시간 팔 수 있는 전당포 알려준 건 너야. 왜 정색을 해?


강두11- (말 문 막히는) 너 진짜...!!


대철33- 강두야, 우리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인생역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한테도 찾아 온 거잖아. 

              역시 인생 한방이야.


강두11- 야 이 자식아, 인생역전은 커녕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게 생겼어 지금!


대철33- 뭔 되도 않는 소리야?


강두11- 솔직히 말 해. 그 노인네한테 니 시간을 얼마나 판 거야? 

               가방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돈을 받았으면 얼마나 판 거냐구!


대철33- 난 그냥... 받을 수 있는 만큼 일시불로 전부 다 달라고 했지.


강두11- 뭐 인마?! 이 자식 이거 어쩌려구... 미치겠네 정말...


대철33- (눈치 살피며) 반응이 왜 그래?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어?


강두11- 그 돈 다시 돌려주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대철33-돌려줘? 왜 그래야 되는데?


강두11- (예민하게 반응하는) 왜는! 그냥 그렇게 해. 너 아직 돈 다 안 썼지? 그럼 별 문제 없을 거야.


대철33- 평생을 모아도 못 만져 볼 돈을 다시 돌려주라고? 농담이지?


강두11- 그래서 못 돌려주겠다는 거야?


대철33- 아니, 안 돌려줘. 이거 내 돈이야. 내 시간 내가 팔아서 챙긴 내 돈. 

              니가 뭔데 이 돈을 돌려주라 마라야?


강두11- 지금 이깟 돈이 중요한 게 아냐. 니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단 말야!


대철33- 이깟 돈이라고 했어? 너 평생 이런 돈 만져 볼 수 있을 것 같아?

               로또 1등 당첨 돼도 이거보다 적어. 근데 나더러 이 돈을 포기하라구?

강두11- (OL) 그게 만약 니 목숨 값이라면!


대철33- (피식) 뭐 목숨 값? 그렇다 쳐도 다시 돌려주는 일 절대 없으니까 헛소리 집어치워. 

                나도 이제 구질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M. 브릿지

 

E. 고시원 방 안 가득 알람 소리 울려 퍼지는.

E. 총무가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총무22- (방문 밖에서, off) 404호 알람 안 끄고 뭐해요? 고시원에 혼자 살아요? 

               다른 방 사람들 생각도 좀 해야지!


E. 강두, 방문 열고 나오는.


강두11- (잠에서 덜 깬) 죄송해요... 잠이 깊이 드는 바람에...


총무22- 문을 얼마나 두드렸는데요. 혹시 뭔 일 저지른 거 아닌가 괜히 식겁 했네... 

              고시원 수칙 좀 지킵시다, 예?


E. 헉헉대며 복도에서 이삿짐을 옮기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한 남자 보이고.


강두11- 아침부터 고시원에 누가 새로 들어오나 봐요?


총무22- 저기 끝 방, 401호요.


강두11- (잘못 들었나 싶어) 몇 호요?


총무22- 방에 뭔 귀신이 들러붙었는지 401호만 사람이 안 들었었잖아요. 이제 한시름 놨지 뭐야.


강두11- 401호라고 했어요 지금? 거기 대철이 방이잖아요?


총무22- 뭔 소리래?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강두11- (짐 옮기는 남자에게 다가가)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남자33- (끙차) 보면 몰라요? 짐 옮기지.


강두11- 방주인 따로 있는데 왜 그쪽 짐을 401호에 옮기냐구요!


남자33- 무슨 소리에요? 내가 오늘부터 이 방 쓰기로 계약하고 들어온 건데.


총무22- (다가와서 뜯어말리는) 404호 왜 이래요?


강두11- 아니 이 사람이 대철이 방에 함부로 들어가잖아요.


총무22- (남자에게)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말고 짐 마저 들여 놓으세요.


강두11- 이 방에 짐을 들여놓으라니요? 그럼 대철이는요?


총무22- (짜증 확 솟구치는) 아씨, 대철이가 누군데!


강두11- 누구긴 누구에요? 여기 401호에 살고 있는 방 주인이지!


총무22- (미치겠는) 이 방에 살긴 누가 산다고 그래요 자꾸!


강두11- 어제 대철이한테 밀린 방값에 이자까지 붙여 받았다고 좋아했어요, 안 했어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입 싹 닦아요?


총무22- 누가? 내가? 환장하겠네.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나랑 한판 하자는 거야 뭐야?

              비워둔 지 일 년이 넘은 방에 살긴 누가 살았다고!


강두11- (황당한) 일 년이나 비어 있었다구요?


총무22- 잠 덜 깼으면 가서 찬물로 세수나 해요. 여기 서서 훼방 말구.


강두11- 대철이 어디 있어요 지금?


총무22- 아 거 참, 난 그런 사람 모른다고 몇 번을 말해요!


강두11- 나랑 같이 이 고시원에서 사년이나 살았던 놈을 모른다구요?


총무22- 이봐요 404호, 사년이나 살았던 사람을 고시원 총무인 내가 모를 리없잖아요!

              아침 댓바람부터 헛소리 계속 할 거에요?


강두11- 기다려요, 대철이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E. 강두 휴대전화로 대철의 번호 꾹꾹 누르는.


E. 곧바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멘트 이어지고.


M. 브릿지

 

E. 커피전문점, 커피 잔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가영44a-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상사한테 깨졌어?


강두11- (생각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는)


가영44a- 야, 서강두!


강두11- (넋이 나간) 어...?


가영44a- 왜 넋을 놓고 있어? 뭔데 그래?


강두11- 아냐... 아냐, 아무것도...


가영44a- 그럼 계속 그렇게 죽상을 하고 앉아 있을 거야?


강두11- 대철이가 없어졌어.


가영44a- 누구?


강두11- 대철이가 사라졌다구. 흔적도 없이.


가영44a- 대철이가 누군데?


강두11- 장난하지 마. 나 지금 농담 할 기분 아냐.


가영44a- 왜, 대철인가 뭔가 하는 그 놈이 니 돈 떼먹고 튀었어? 그래서 심각한 거야?


강두11- 너까지 정말 왜 그래? 다들 모른 척 하기로 작정했어?


가영44a-  모른 척?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작정은 또 뭐래.


강두11- 몰라? 니가 대철일 모른다고?!


가영44a- (마지못해) 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강두11- 너랑 나, 대철이, 대학 4년 내내 붙어 다녔어. 

              그런 대학 동기 녀석을 모른다고? 왜 다들 모른다고 발뺌인데, 왜!


가영44a- 내가 모르는 동기가 있었나?


강두11- 됐다, 됐어. 미안한데 나 먼저 일어날게. (일어나 나가버리는)


가영44a- 야, 서강두! 왜 저러는 거야 대체? 회사에서 뭔 일 있었나...


동창33- (다가오며, off) 어, 가영아? 여기서 또 보네?


가영44a- 어머 명진아, 여긴 웬일이야?


동창33- 여기 우리 회사 앞이잖아.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가영44a- 응, 남자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동창33- 아, 그때 말했던 내 입사 동기? 혹시 아까 너랑 같이 있었던 그 남잔 아니지?


가영44a- 아니긴, 그 사람 맞아.


동창33- (갸우뚱) 그래? 이상하다...


가영44a- 이상하다니, 뭐가?


동창33- 니 남친, 나랑 같이 입사했다고 하지 않았어?


가영44a- 어, 맞아.


동창3- 무슨 부서에서 근무하는데?


가영44a- 인사과.


동창33- 뭐? 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가영44a- 아냐 맞아. 분명히 인사과라고 했어. 근데 왜 그러는데?


동창33- 내가 인사과에서 근무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를 못 알아 볼 리가 없잖아.

가영44a-  (OL) 뭐라구?!


M. 짧은 브릿지

 

E. 고시원 강두 방, 휴대전화 진동음 울리는.


강두11- (받으며) 어...


가영44a- (담담하게, F) ...어디야?


강두11- 이 시간에 어디겠어?


가영44a- (F) 그래, 이 시간이면 회사겠구나. 일하는 중이야?


강두11- 어...


가영44a- (F) 나 지금 너희 회사 앞인데 잠깐 내려올 수 있어?


강두11- 왜 또...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가영44a- (F) 미리 연락했으면 뭐가 달라져?


강두11- 무슨 말이 그래?


가영44a- (F) 내려올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강두11- 지금 근무 중이야. 곧 회의 시작해서 안 돼.


가영44a- (F) 근무 중? 회의?


강두11- 회의 끝나고 전화 할게.


가영44a- (F)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강두11- 할 말?


가영44a- (F) 문 좀 열어 봐. 지금 당장.


강두11- 문이라니... 무슨 문을 열라는 거야?


가영44a- (F) 고시원 니 방 문 열라고.


강두11- (서늘한 기분이 드는) 가영이 너...


E. 딸깍- 조용히 고시원 방문 열리는.


강두11- 니가 여기 어떻게...


가영44a- 너 왜 회사에 안 있고 고시원에 있어?


강두11- 가영아...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지...


가영44a- 쓰레기 같은 자식!


M. 브릿지

 

E. 전당포 내부.


노인22- 한심한 인간들... 돈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그깟 돈 따위랑 시간을 바꿀 생각을 해? 쯧쯧...


E. 그때 전당포 문 덜컥 열고 안으로 들이닥치는 강두.


강두11- (분노에 찬)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바닥까지 떨어지진 않았다구!!


노인22- 그게 왜 내 탓이지? 제 발로 나를 찾아온 것도 자네고, 내게 시간을 판 것도 자네 아니었나?


강두11- 당신 대체 누구야! 정체가 뭐냐구!!


노인22- 보시다시피 늙고 힘없는 늙은이 아닌가.


강두11- (태도 돌변해 사정하는)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내 시간, 돌려 줘요. 내 꺼니까 돌려주세요, 제발...


노인22- 시간을 팔아 돈을 가져가지 않았나? 내가 자네한테 준 돈은 다 어디 있지?


강두11- 돈을 다시 가져오면 제 시간도 돌려주실 거에요?


노인22- 흠... 글쎄...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는걸.


강두11- (간절히) 돈은... 나중에 꼭 다시 돌려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노인22- 나중? 나중이라... 자네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그 시간이 바닥나면 어찌 되는지도 자네 친구를 통해 알았을 테고.


강두11- 대철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노인22- 젊은 친구가 통이 아주 크더구만. 

              남은 인생의 시간 전체를 모조리 돈으로 바꿔 달라 길래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네. 

              덕분에 내 수명이 훌쩍 늘었지 뭔가.


강두11- (섬뜩) 당신 수명이 늘다니... 무슨 말이에요?


노인22- 말 안했던가? 돈과 시간을 맞바꿨으니 그 시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고. 

               자네가 팔아치운 시간도 요긴하게 잘 쓰겠네.


강두11- (필사적으로) 안 돼! 안 돼요!! 살려주세요, 제발...!!


노인22- 허허- 난 자네를 죽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게다가 이 모든 건 자네가 선택한 일 아닌가? 

              내가 강제로 자네 시간을 뺏기라도 했나, 아님 강매를 했나?


강두11- (절규하는) 왜 하필 나였어요, 왜!


노인22- 간절히 원한 건 자네였어. 가진 건 시간 밖에 없다고 선심 쓰듯 내게 팔아치운 건 자네였다고!


강두11- 왜 말해 주지 않았어요! 시간을 팔면 죽는다고,

              내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왜 말해 주지 않았냐구요!!


노인22- (무심하게) 나한테 언제 물어본 적 있었나? 자넨 그저 나를 정신 나간 늙은이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그런 늙은이 돈을 가져갈 땐 죄책감 따윈 없었지 않나?


강두11-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시간을 팔아 치우는 일 따윈 하지 않았을 거라구요!


노인22- 시간을 판 걸 후회하나?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은 법이지.


강두11- (간절히)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려줘요. 그 정돈 알려 줄 수 있잖아요!


노인22- 그 질문을 진작 했어야지. 어디 보자... 저런, 일주일이 채 안 남았군.


강두11- (믿기지 않는) 거짓말! 그 따위 거짓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요?


노인22- (무심히) 믿건 안 믿건 그 또한 자네 맘일세.


강두11- (두려운) 만약 그 시간이 지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죠?


노인22- 아마도 자네 친구처럼 되겠지.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강두11- (겁이 덜컥) 대철인 어디로 사라진 거에요?


노인22- 이 세상의 시간을 모두 소비했으니 아마도 저 세상에 도착해 있겠지. 

              이승과 저승 어디쯤에 떠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고.


강두11- 근데 왜... 아무도 대철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거죠? 

              나는 대철이를 똑똑히 기억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구요!


노인22- 그 친구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자네이기 때문이지. 그 끝을 자네가 붙잡고 있었을 뿐이야.


강두11-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대철이가 죽었다니... 그럴 리 없어...


노인22- 죽고 살고 하는 단순한 개념으론 설명하기 힘들군. 

              제 시간을 한 번에 다 소비해 버린 거지. 어리석게도 말이야.


강두11- 말도 안 돼. 이게 말이 돼? 다 미쳤어! 미쳤다구!!


노인22- 시간을 함부로 여긴 대가치곤 참으로 지독하지? 되돌릴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게 바로 시간이네.


M. 브릿지

 

E. 집 앞 골목, 걸어오는 가영 하이힐 소리.


강두11- (off) 가영아!


가영44a- (짜증 섞인) 집 앞까지 왜 왔어? 더는 너랑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 돌아 가.


강두11- 우리 어디 가서 잠깐 얘기 좀 해.


가영44a- (냉랭히) 아니, 난 할 말 없어. 들을 말도 없구.


강두11- 널 속인 건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믿어 줘.


가영44a- (픽-) 어쩔 수 없어서 그딴 추잡한 거짓말로 날 속여?


강두11-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았어! 한번 사는 인생 나도 뽀대나게 살아 보고 싶었다구.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가영44a-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니? 됐으니까 할 말 다 했으면 가.


강두11- (질끈, OL) 돈 좀!... 돈 좀 빌려줘, 가영아...


가영44a- (기가 찬)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강두11- (절박한) 어이없는 거 알아.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을 거야.

               근데 가영아, 내가 상황이 좀 급하게 됐어.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얼마나 염치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금방 갚겠다는 약속은 못하지만 꼭 갚을게, 꼭!


가영44a- (치를 떨며) 너 진짜, 이 정도로 형편없는 놈이었니?


강두11- (이미 이성을 잃은) 나, 죽을지도 몰라! 아니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구! 

               내 친구 대철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거야! 그 영감한테 시간을 다 팔아버리는 바람에...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지 않으면... 그땐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구!


가영44a- (질색하며) 정말 미쳤구나? 도대체 뭐가 널 이렇게 만든 거니?


강두11- (안절부절) 그러지 말구 가영아...


가영44a- 넌 자존심도 없어? 헤어진 연인한테 찾아와서 돈 빌려 달라고 손을 내밀어? 

                나 같으면 차라리 은행 강도짓을 하겠다. 그 정도로 니가 지금 하는 짓이 바닥이란 소리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는 하니?


강두11- (비굴하게) 그래, 가영아... 니가 하는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가영아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나 좀 살려 줘... 나 좀...

가영44a- (OL) 이건 아니잖아 서강두!!!


강두11- 가영아! 가영아 제발!!


가영44a- (Na, 에코) 그날이 내가 강두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받았던 고가의 선물들을 돌려주기 위해 강두를 찾았을 땐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강두를 기억하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강두는 정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 거리 소음.


노인22- (off) 이봐요, 아가씨. 미안하지만 지금 몇 시쯤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가영44a- 아, 네... 세시 조금 넘었어요.


노인22- 아이고 고마워요. 시계가 참 멋지네. 근데 아가씨, 혹시 시간 있어요?


가영44a- 시간...이라뇨? 무슨 시간 말씀 하시는 거에요?


노인22- (오묘한 말투로) 아가씨의 시간을 사고 싶은데, 내게 시간을 팔지 않겠소?!


M.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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