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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서툰사람들

Broadcaster 로페릭의_매콤달콤
2020-03-26 22:30:15 139 0 2

1유화이

2장덕배

 

E 서팔호 ,E유달수)E(경찰,E김추락)

 

 

 

 

《때와 곳 》 현대의 독신자 아파트

 

제 1 장

 

약간 겨울, 그러니까 초겨울쯤 되겠지.

유화이의 독신자 아파트.

음악이 흐르고 조명이 들어오면, 집주인 유화이집안에서나 입는 헐렁한 옷차림으로 책을 보고 있다.

커피 물이 끓자 책을 덮고 커피를 따른다.

한번에 마시려다 입을 덴다.

호호 불어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다시 책을 편다.

전화벨이 울린다. 유화이음악을 줄인 후 전화 수화기를 든다.

 

유화이 : 여보세요. 네, 제가 유화이에요. 그런데요? 누구요? 서팔호씨요? 

아~ 교감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그런데 이렇게 늦은 밤에 그런 일로 전화하시는 건 실례 아닌가요?… 

그건 댁의 시간대죠? 전 지금 잠자리에 들 시간이예요. 

죄송 합니다만 어차피 이런 일은 전화로 말할 일이 아니고… 

전화를 하시더라도, 밝을 때 다시 해주세요. (전화를 끊는다) (혼잣말로) 참… 별…

 

(유화이. 다시 음악 볼륨을 높이고 침대로 올라가 책을 본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실 내등을 끄고 스탠드의 불을 켠다.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짜증나는 듯 수화기를 집어든다.)

 

유화이 : 네… 참. 이거정말 왜 이러세요?… 글쎄. 절 소개해 주신 건 교감 선생님이지. 

제가 언제, 당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까? 여자 혼자 산다고 너무 편하 게 생각하시나 본데… 

글쎄, 나중에 만나서 얘길 하던가 아니면 내일 전화를 하세요. 열두 시가 넘었는데 어디를 나오라는 거예요. 

여보세요. 참 딱하십니다. 반하실 게 따로 있지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에 무턱대고 이러시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됐습니다. 전 아직 결혼 같은 거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행여 남자를 만나더라도 이런 식은 아니라구요. (전화를 끊는다) 

정말로 죽겠군.  뭐 이 따위 인간이 다 있어.

 

NA 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책을 보려다 기분이 상했는지 신경질적으로 덮고는, 음악을 끄고 잔다. 

잠시 후 눈을 뜨며 스탠드 불을 끄고 옆의 커다란 곰 인형을 껴안았다.

 

유화이 : 김군아, 난 너밖에 없다.

 

NA 그녀는 곰 인형을 꼭 껴안으며 잠에 빠진다. 잠시 후 현관 쪽에서 딸그락 딸그락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소리가 잠시 멈쳤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불을 껐다. 그러자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결국 그녀는 천천히 스탠드 불을 켜고 현관쪽으로 갔다.


유화이 : (나지막이. 조심스럽게) 누구세요?

 

NA 그때. 왈칵 문이 열리며. 서툰 도둑 들어왔다. 그는 후레쉬로 실내전등 스위치를 켰다

 

유화이 : (비명) 악… 엄 마 !


장덕배 : 시끄러워. 조용히 해. (집안을 둘러본 후)… 어휴. 이거… 정말 이젠 이짓꺼리 도 열통 터져 못해먹겠구만. 

            야! 너… 그래 일단. 몇 살이슈?


유화이 : (떨며) 네?


장덕배 : 나이가 어떻게 되냐구요?


유화이 : 스… 스물… 다… 섯이요. 살려주세요.


장덕배 : 스물 다섯… 그래. 나보다 어리니까 말 놓을게. 야, 이 멍청한 계집에야. 

            문을 안 잠갔으면 안잠갔다고 얘길 하던가, 〈문 열려있음〉이라구 대문에다 써놓던가. 

            빌어먹을 열려있는 문구녕에다 자물쇠만 돌렸다 뺐다 돌렸다 뺐다. 쓸데없이 추운데서 얼마를 떨은거야. 

            어째 이게 계속 그냥 돌아가드라구.


유화이 :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저에게 나쁜 짓만 하지 말아주세요.


장덕배 : 알아 알아. 뭔 말인지 알아.


유화이 : 제발… 부탁이에요. 돈이며 물건이며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절 해치지만 말아 주세요. 부탁 이예요.


장덕배 : 알았어. 알았어 나도 바빠. 시간도 없고, 날 밝기 전에 몇 집 더 뛰어야 돼.


유화이 : 선생님 부탁이에요, 제발…


장덕배 : (소리친다) 아. 알았다니까. 그만 좀해. 이 여자가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여. 

           칼 들고 도둑질하러 다닌다고, 사람 다 그렇게 보지 마. 나 그래도 사나이다운 의리와 양심은 있는 놈이야… 

           그리고 기본적인 도덕성은 가진 놈이란 말이야.


유화이 : (떨리는 소리로) 도… 도덕성을… 가지신 분이… 이런 도둑질을… 하신단 말이예요? 

 

장덕배 : 조용히 안해. 그런데 이 여자가 겁도 없이… 이리와.

 

유화이 : 살려주세요.


장덕배 : 아, 알았으니까 이리와. 여기 앉아. (유화이.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가만히 있어 (손을 뒤로해서 묶는다)


유화이 : 이… 러실 필요는… 없잖아요.

장덕배 : 손 아프더라도 참아.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 되니까. 

           그래도 명색이 도둑놈인데 주인한테 물건 챙기는 거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유화이 : 보시면… 아… 시겠지만, 저희 집은 뭐 돈 될만한 것도 없어요. 

           현금도 얼마 없고… 아직 미혼이라 값나가는 패물도 없고요.


장덕배 : 자랑이다!


유화이 : 죄… 죄송해요. 며칠 전 봉급 탄 것도 다 은행에 넣었어요. 일주일치 생활비만 빼놓고요. 그것도 삼 일치는 벌써 다 써 버렸구요.


장덕배 : 이 여자 , 참 말 많네. 조용히 좀 해. 헷갈려! 

           이걸 어떻게 묶드라. 매듭 법이 있는데… (장덕배 손을 묶는 거에 끙끙대다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본다)

           가만있자… 여기서… 한번 돌려 가지고… 거꾸로… 이봐, 오른 손 좀 살짝 올려 봐. 됐어… 

           아, 왼손은 가만히 있고… 빌어먹을 풀렸잖아.


유화이 : 죄송해요… 힘드시면 그냥… 칭칭 막 묶으세요.


장덕배 : 이거봐. 이게 다 당신 안 아프라고 하는 거야. 

           괜히 나 간 다음에 다 큰 처녀가 손목에 밧줄 자국 나가지고 다니는 게 볼꼴사나워서… 

           아까 집에서 할 때는 잘 됐는데… 됐다. 가만히 있어… 

          (시계를 보며) 어, 죽었나, 왜 안가… 이런 빌어 먹을 아무튼 훔쳐도 사람을 봐 가면서 훔쳐야지. 

          그 자식 진짜 로렉스라고 부들부들 떨면서 주던데 이거뭐 이틀도 못 가서… 

          어휴, 하여간 좋은 것도 훔쳐 놓으면 오래 못 가. (집안 이리저리 둘러본다) 

          자, 어디서부터 해 볼까. 야~정말 돈의 혜택을 전혀 못 받은 집이구만 뭐가 이리 허전해. 

          이거 시작부터 애를 먹었더니만… (목이 마르는 듯) 이봐. 뭐 좀 마실 것 없어?


유화이 : 저기 냉장고를 열어보면 우유하고 주스가 좀 있을 거예요. 맥주도 있었는데… 아까 저녁에 제가…


장덕배 : 됐어. 난 근무 중엔 술 안마셔. 가만 방금 맥주라고 했어? 

            스물 다섯 살 여자가 집에서 술까지 사다 마셔? 이거 불량 학생이구만.


유화이 : 스물 다섯이면 성인이에요. 더구나 전 학생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 구요.


장덕배 : 어허,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하는데 어디 꼬박꼬박 말대꾸야. 잠깐 당신 지금 교사라고 했어. 선생님?


유화이 : 네… 중학교 선생님이에요.


장덕배 : 아니, 무슨 선생님이 이렇게 어려, 원래 스물 다섯 살에도 선생이 될 수 있는 거야?


유화이 : 네. 저… 작년에 졸업하고 올 봄에 발령 받았어요.


장덕배 : 그래?… 이거, 내 나이도 젊은게 아니구만, 난 선생님이라고 하면 죄다 40대 중 반은 넘어야 선생님처럼 보이는데, 

           하긴, 나 학교 다닐 때도 젊은 여선생들이 있긴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이라는 여자가 혼자 살면서 술이나 사다 퍼마시고 있고, 그게 뭐 잘한 일이라고 떠들어. 

           그래가지고 애들한테 뭘 가르치겠어. 당신 같은 여자한테 배우는 애들이 어린 나이에 불량기는 죄다 배워 가지고, 

           타락의 길로 빠지는 거 아냐.


유화이 : 아니… 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으세요? 아무리 도둑놈이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실 수 있는 거예요?


장덕배 : 뭐… 뭔 놈?


유화이 : 그렇잖아요. 도둑놈이면 도둑놈답게 물건이나 들고 나가면 될 것이지, 

           나… 남 의 직업을 욕하면서 여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상하게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세상에… 도둑질 당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만 도둑놈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는 건 평생에 이번 뿐 일거예요.


장덕배 : 그런데 이 여자가 말끝마다 도둑놈이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내가 당신 직업 에 대해 뭐라 한건 당신 직업을 욕한 게 아니고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의 당신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결코 당신 직업을 욕한 게 아니라구. 그런데 당신은 뭐라구? 도둑놈…! 

           이봐. 이것도 어디까지나 나한텐 평생 먹고 살아야 될 직업이고 내 후세한테까지 물려줄 천직이라구. 

           그런데 도둑놈이라 니? 그렇게 따지자면 당신은 시작부터 깔아뭉개고 얘기 하는 거 아냐. 

           내가 언제 당신한테 선생년이라고 한적 있어?


유화이 : 그럼, 도둑놈을… 아니, 도둑님이라고 불러야하나요?


장덕배 : 왜 못 해?


유화이 : 참… 기가 막혀서… 그리고 뭐요? 직업에 종사하는 제 태도에 문제가 있다구 요? 

            이봐요 도둑… 님씨, 요즘 맥주가 술이에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한테, 맥주 몇 캔은 그저, 음료수라구요.


장덕배 : 음 료 수?… 허허, 맥주가 음료수라면 소주 두 잔 먹고 뻗는 나 같은 사람은

           술한잔 먹으려면 석 달 열흘 동안 훈련이라도 받고 마셔야겠네.


유화이 : 그거야 아저씨 체질에 문제가 있는 거죠.


장덕배 : 아저씨. 아저씨 하지마. 나 아직 총각이야.


유화이 : 하기사, 도둑질이 천직이라는데 변변한 여자친구 하나 있겠어?


장덕배 :뭐야? (소리친다) 야!… (사이) (유화이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다시 겁먹는다) 

          잠깐… 내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내가 지금 여기 왜 있지… 

          나 참, 저 여자 때문에 내가 무슨 소릴하고 있는거야. 이거 동네 반상회 온거도 아니고… 

          잠깐 이거 몇시지? (죽은 시계를 본 후. 이리저리 살핀다)에이씨 이 놈의 집구석엔 시계도 없어? 이 봐, 시계… 없어?


유화이 : 있어요… 내 손목에…


장덕배 : (유화이뒤로와 시간을 본 후) 휴. 그리 오래되진 않았군. (냉장고 문을 열고, 쥬스를 들이키려다)


유화이 : 저기… 컵에 따라 마셔요. (장덕배 머슥한 듯 컵에 따른다) 그리고, 다 마셨으면 저도 한잔 주시겠어요? 

            너무 놀랐더니… 목이 타네요.


장덕배 : 나. 참. (쥬스를 마시고 한잔 따라서 유화이앞으로 간다. 입에다 대주려고 하 다) 

            이… 이봐. 어… 어디. 빨대 같은거 없어?


유화이 : 없어요.


장덕배 : 이거 원… (입에다 물려서 먹여준다. 천천히 마시는 유화이의 표정을 귀엽게 바라본다) 

            입술 쭉 내말고 마시는 게 꼭 오리새끼 같네.


유화이 : (그 맘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 뭐… 뭐라구요? (웃는다)


장덕배 : 아니, 입술을 쭉하니 내말고 꼴각꼴각 마시는게 거, 뭐야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 오리새끼 있잖아…


유화이 : 도날드 덕?


장덕배 : 아. 이유는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왜 그게 생각이 났는지… 

           (둘 웃는다) (사이. 어색한 침묵) 더… 더 마실래?


유화이 : 아니… 됐어요.


장덕배 : 뭐야?


유화이 : (장덕배 천천히. 보따리를 푼다) 참 구식 도둑 같네요?


장덕배 : 뭐야?


유화이 : 아직도 그런 자루를 가지고 다니는 도둑이 있어요? 

            요즘은 그냥, 현금이나 보석 정도만 간단히 들고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 큰 자루엔 T. V나 전축, 냉장고 뭐 그런걸 넣을 건가요?… 

            그 자루에 모두 채우려면 우리 집 가재구들을 몽땅 넣어도 모자라겠군요. 하하하 (웃는다)


장덕배 : 저 여자가 미쳤나? 아. 조용히 안 해.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스타일이야. 

            그리고 구식 도둑? 이거 왜이래? 나 이래봬도 몽따쥬까지 배포된 지명도 있는 도둑이란 말야. 

            휴, 이젠 구역도 좀 바꿔야지. 연짝으로 이 동네에서만 내리 몇판을 뛰었던지 

            이젠 이 동네 경찰들이 날 잡으려고 안달이 나 있을꺼야. 몽따쥬 가 이미 나돌고 있으니. 

            그리고 무슨 여자가 저 모양이냐. 명색이 칼 들고 들어 온 도둑놈인데 처음엔 잠깐 상징적으로 겁먹더니만 

            그 다음서부터는 무슨 친척 오빠 대하듯이 하네.


유화이 : 건방졌다면 미안해요… 전 그저 도둑질하러 들어오셨어도 그리 나쁜 분은 아닌 것 같고, 

           또… 저한테 해꼬지 같은짓을 생각안하시니 그게 고마워서…


장덕배 : 참. 선생님치고는 철이 덜들었구만. 제집 털리는 걸 생각 안하고… (장덕배 이것저것 뒤진다)


유화이 : 그까짓 가재도구나 돈 몇 푼은 다시 벌면 되잖아요. 

           요즘 같이 흉악한 세상에 그래도 아저씨 같은 도둑을 만난 건 천만다행이에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손목에 밧줄 자국 남을까봐 특별한 매듭 법으로 묶질 않나, 음료수도 따라주고….


장덕배 : 저 여자가, 박약아 아냐. 왜 저렇게 들 떨어진 소리 만하지? 말투하며 목소리하며… 

          중학교 선생? 참. 저렇게 들 떨어진 여자가 중학생을 가르쳐? 애들 말아먹지.


유화이 : 제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전 그래도….


장덕배 :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 (장덕배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다) 

           어디 보자. 6만5천 원… 이게 일주일 생활비야?


유화이 : 미안해요. 원래는 십만원인데 삼일치는 벌써 썼어요.


장덕배 :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하루에 만오천원 정도를 쓰네. 혼자 사는 여자가… 

           아껴서 시집갈 밑천 장만해야지. 왜 이렇게 헤퍼.


유화이 : 아니에요. 하루 밥값, 차비, 생활 용품 이것저것…. 그 정도면 절약하는 거라구요.

           차비 아끼려고 가끔씩 걸어도 다니는데


장덕배 : 허이구, 장 하 셔. 자, 이거 만원은 남겨둘게.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은행 문도 안 열텐데, 밥값 해.


유화이 : 아니, 괜찮아요, 저 비상금 있어요.


장덕배 : 거 좀. (소리친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냥 그러는가보다 하고 가만히 좀 있어. 무슨 여자가 말이 저렇게 많아. 

          이건 완전히, 손만 묶여 있었지. 실권은 지가 다 장악하고 있네. 이거 어디 도둑질 할 맛이 나야 뭘 해먹지. 

          뭐? 비상금이 있으니까 괜찮다구? 아예 비상금 어디다 꼬불쳐놨는지도 가르쳐주지, 왜?


유화이 : 아닌게 아니라, 저 책상 맨 오른쪽 백과사전에 끼어 있어요.


장덕배 : (소리친다) 조용히 안 해! 야, 이 계집애야. 나도 자존심이 있는 도둑놈이야. 

           스물 다섯 살 짜리 코묻은 돈 도둑질하는 것도 양심에 찔리는데 뭐? 비상금까지 털어가라구? 

           고놈의 주둥아리에 냉장고를 물려놓기 전에 입닥치고 있어. (유화이, 화난 듯 조용해진다)

 

(장덕배도 기분 나쁜 투로 담배를 꺼내 피운다)


유화이 : 집안에 냄새 배여요. 창문을 좀 열어요.


장덕배 : (창문을 조금 연다) (…어색한 침묵) 어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건지…. 

         어째 이 동네 방범들 초소에서 화투를 치고 있을 때 알아봤어. 얼마나 비리비리한 동네면…. 

         아파트 수위는 코골며 자고 있지 않나, 가로등도 두 개 중에 하나는 나가 있고, 개들도 주인 보다 깊이 잠들었지. 

         어느 하나 짖는 놈도 없고… 얼마나 훔쳐갈 것 도 없으면, 문 열어놓고 자질 않나, 

         주인이란 여자 입에선 또라이 같은 소리만 나오고… 


(유화이아무말 없자, 장덕배 유화이의 눈치를 슬쩍 본다) 


장덕배 : 이봐, 정말 화 난 거야? 저기… 알았어. 미안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다면… 

          도둑질하는 것도 미안한데, 괜히 마음에 상처까지 내는 것 같아서 그래. 기분 풀어.…

          아. 당신이 자꾸 그렇게 있으니까 내가 불편해서… 물건 하나 제대로 담지도 못하겠잖아. 

          정말이지. 내가 원래 말을 좀 막하는 성격이고… 험하게 자라서 그래. 도둑놈인데 오죽하겠어… 

          아까 …거… 주둥이에 냉장고 물린다는 말은 농담이야. 그냥 겁줄려고… 

          알잖아? 도둑놈들이 원래… 허풍이 좀 심하고 무식하다는 거…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 비상금도 가져가서… 고맙게 쓸게… 그만 화풀어. 


(그때 유화이, 참 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다) 


장덕배 : 뭐… 뭐야…? 뻥이었어? 일부러 삐진 채 한 거야?


유화이 : 하하하… 세상에 당신처럼 귀여운 도둑놈은 처음 봐요, 하하하


장덕배 : 뭐가… 어째?


유화이 : 부탁인데요. 돈 열심히 벌어 놓을 테니, 6개월에 한 번 정도씩 훔치러와요. 하하하


장덕배 : 뭐 저런 계집애가 다 있어? 이런 빌어먹을… 아, 그만 웃어. 


(장덕배 신경질적으로 물건 이것저것을 자루에 담는다. 그러다가 옷장 서랍 안을 여는 순간)


유화이 : (갑자기) 어, 거긴 안돼요.


장덕배 : 이크! (열었다가 안을 본 후 금방 닫아 버린다) 미안… 미안. (겸연쩍다)

 

(장덕배 다른 곳을 뒤지다가 킥킥대며 웃는다)

 

유화이 : (부끄러운 듯) 뭘 그렇게 웃어요?


장덕배 : 색깔을 참 다양하게 입는군. 하하하하하.


유화이 : 뭐예요? 여자 속옷 훔쳐보는 게 뭐 그리 잘한 일이라구 웃어요?


장덕배 : 내가 뭐 알고 그랬나… 아니, 그리고 도둑놈이 그런거 따지면서 훔치는 거 봤어? 

           나나 됐으니까 그래도 얼른 닫았지. (장덕배, 훔치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휴, 잠깐 쉬었다가 하자. 이거 저녁을 안 먹었더니만 배가 고픈데… 잠도 오고…


유화이 : (비꼬듯이) 라면이라도 끓여드려요?


장덕배 : 누가 당신한테 밥달래?


유화이 : 거기 탁자 밑에 과일 있어요. 그거라도 드세요.


장덕배 : …그럴까…? (사과 하나를 집어서 먹는다)


유화이 : 칼, 있어요. 깍아드세요.


장덕배 : 칼은 나도 있어…. 거 책에서 보니까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고 하더구만.


유화이 :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시나 봐요.


장덕배 : 건강이 최고야. 아프면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는 거라구.


유화이 : 그러시는 분이 남들 다 자는 밤에 몸 축나게 이러고 다녀요.


장덕배 : 건강할 때 하나라도 더 훔쳐 놔야지. 나이 먹으면 이 짓거리도 못해.

          (옆 테이블 위에 액자를 보며) 학교 다닐 땐가?


유화이 : 대학교 1학년때에요.


장덕배 : 어… 역시, 어렸을 때가 예뻐. 크면 때가 너무 많이 묻어.


유화이 : 때라뇨?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거예요?


장덕배 : 아니, 그러니까 점점 커가고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말야. 세상의 때에 찌든단 말야.


유화이 : 그럼 지금 제가 … 세상에 찌들대로 찌들었단 말씀이세요? 그렇게 보여요?


장덕배 :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는 참… 예뻤다.


유화이 : 고맙군요… 왜요? 그것도 가져가시게요?


장덕배 : 내가 왜 이런걸 가져가? 돈 한푼 안되는걸…


유화이 : 추억이잖아요? ‘아 언젠가 초겨울, 난 이렇게 생긴 고주망태 여선생의 독신자 아파트를 털었다’


장덕배 :  참 , 거 손 뒤로 묶인 채 부단히도 계속 떠드는 구만…


유화이 : 아닌게 아니라 팔이 저려서 죽겠어요. 이걸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장덕배 : 조금만 참어. 거진 다 털었어.


유화이 : 우리 집같이, 별 볼일 없는 집에서도 훔쳐갈게 있긴 있는 모양이죠?


장덕배 : 참… 내가 당신 맘 아플까봐, 안 말했지만 , 아닌게 아니라 …진짜 내용 없다.


유화이 : 네?


장덕배 :  A. B. C로 등급을 매긴다면 완전 C급이라구. 요즘 이런 TV가 어딨어? 

            냉장고며 전축도 죄다 구닥다리고… 내가 나중에 괜찮은 거 하나 건지면 보내 줄게.


유화이 : 안 그래도 조만 간에 가전제품을 장만하려던 참이었다구요.


장덕배 : 바꾸려면 조금 일찍 바꾸지.


유화이 : 누구 좋으시라고… 그러면 저것들은 안 가져 갈건 가요?


장덕배 : 야. 저런 고물 가져가서 어따 쓰라고 가져가냐? 이런 건 어디다 팔아먹지도 못해. 괜히 가져가면 짐만 되고…


유화이 : …은근히, 기분 나쁘네요.


장덕배 : 뭐가?


유화이 : 그렇잖아요. 아무리 없이 살지만 도둑놈한테까지 이렇게 무시당할 줄은 몰랐어요.


장덕배 : 참, 별… (이 때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순간, 둘 다 시선이 전화로 간다) 야, 이 밤중에 전화올데 있어?


유화이 : 아니… 어… 없어요. 누구지?


장덕배 : 어떻게 하지?


유화이 : 만약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같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안 받으면 뭔가 의심할지도 모를텐데요.


장덕배 : (한참을 생각에 젖다가) 거 벨소리 드럽게 크네. 받아봐. 어떻게 말해야 되는진 알지? 


NA 밧줄을 풀어주러 가는데 유화이는 그냥 스스로 풀고 나왔다 


장덕배 : 아니 어떻게?


유화이 : 그냥 힘을 주니까 풀리던데요. 

(장덕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첩을 본다. 그리곤 칼을 들고 유화이에게 간다) (수화기를 들며) 


유화이 : 여… 여보세요. 누… 누구… 또 당신 이에요? 정말로 왜 이러세요? 어머 이젠 술까지 먹었나봐. 

            이봐요, 계속 이런 식으 로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꺼에요. 

            글세, 난 당신 같은 사람 만난 일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으니까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요.(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장덕배 : 누구야?


유화이 :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장덕배 :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를 그렇게 받아?…경찰… 아니지?


유화이 : (혼잣말) 참, 자기가 뭐 그리 대단한 도둑놈이라고…. 

           어떤 남잔데, 자꾸 전화해 서 만나자느니, 날 좋아한다느니… 귀찮게 하는 사람이에요.


장덕배 : 여자가 얼마나 하고 다니는 행실이 변변치 못하면 남자들이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해.


유화이 : 뭐라구요? 난 이 남자 본 적도 없다구요. 

           학교 교감선생님 아는 제잔데 그냥 사진 한 번 보여준 걸로, 반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며 이러는 거라구요.


장덕배 :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선생이라는 여자가 오밤중에 보지도 못한 남자가 술먹고 전화해서 껄떡되게 만들어놓고.


유화이 : 뭐… 뭐요?


장덕배 : 그래, 내 당신 같은 여자들을 알아. 

           겉으로는 뭐, 남자가 필요 없다느니, 사귀는 게 귀찮다느니, 콧대만 높였지, 

           속으로는 자기를 좋아 해주고 관심 같은걸 즐기는 … 

           솔직히 이런 전화올때마다 맘속으로 즐거워 비명을 지르고 있잖아… 

           사진만 보고 반했다구? 얼마나 사진에 색기가 들어있었으면… 쯧쯧…


유화이 : (거의 울상이 되어) 나가요!


장덕배 : 뭐!


유화이 : (울먹이며)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구요!


장덕배 : 그래, 나가라지 말래도 간다. 참, 드러워서… (장덕배 나가려다 순간 멈칫한다) 

           잠깐…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야? 난 지금 도둑질하러 온 거고… 저 여잔… 

           나 이거 저 여자 때문에 나까지 또라이가 돼가잖아. (칼을 들이대고) 입다물고 저기로 가!


유화이 : (그제야 자신도 상황을 파악한 듯) 저 …저기… 아… 알았어요. 그 칼 좀 치우고 얘기해요.


장덕배 : 얘기는 무슨 얘길 해? 빨리 거기 앉아!


유화이 : 다시 …팔을 묶을 건가요. 아파서 죽겠어요… 그 엉터리 매듭법 때문에 …


장덕배 : 조용히 해. 당신은 손을 묶기 전에… 아닌게 아니라 냉장고로 입부터 막아 놔야겠어. 

          정말이지 무슨 여자가 이렇게 말이 많아. 내 도둑질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봐. 

          뭐, 그리 할 말이 많고, 따질게 많아? 아, 그런건 당신 친구나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나 하란 말이야. 

          왜 죄없는 도둑놈한테 죄다 지껄여서 나만 개념 없는 도둑놈 만들어? 

          이거 완전히 정신 산만해서… 뭘 훔쳐야 될지. 어느 물건이 얼마나 나갈지 감을 못잡겠잖아. 

          당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해봐. 내가 들어와서 당신하고 지금껏 떠든 얘기들이 도둑놈과 집주인이 나눌만한 대화인가를… 

          괜히, 시간만 허비하고… 이게 다 당신 수다 때문이잖아, 훔쳐갈거나 많다면 이해나 하겠어. 

          뭐 쥐뿔도 들고 갈만한 것도 없는 집주인이 뭐가 그렇게 대견하다고 떠들어대. 

          그리고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애들이 조금 떠들어도 시끄럽다고 두들겨 패지? 안 봐도 훤해!


유화이 : 댁도… 참… 말이… 많네요.


장덕배 : 뭐가 어째?… 저 놈의 주둥이! …(유화이, 겁을 먹는다) 

           조금만 더 털면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입좀 다물고 조용히… 조용히 책이라도 보던가… 

           그래 먼저 자라. 나 그냥 대충 털다가 안 깨우고… 그래, 내가 어지른거 정리도 해주고 갈 테니까…


유화이 : (참던 웃음을 터뜨린다)


장덕배 : (어이가 없는 듯) 우… 웃어?


유화이 : 알았어요. 지금부터 조용히 있을께요.


장덕배 : …그래?…진짜… 고맙다. 내가 나중에 이거 뭐야… 음, 리모콘, 그래 리모콘 T. V 하나 건지면 보내줄게. 그러니까 그래… 쉿…(장덕배 숨을 돌리며, 터는 작업을 하 려는 순간, 전화벨 울린다) (화가 치밀어 오른 듯) 이놈의 집구석은 뭐 좀 하려면 지랄이야. 주인 여자나 전화통이나 하나같이….


유화이아… 아까 그 사람일꺼예요.


장덕배그 빌어먹을 새끼는 집도 없대?


유화이바… 받아야 되나요?


장덕배 그럼, 아까는 받고 지금은 안 받으면 의심할거 아냐? …받어. 그리고 그 자식 자 꾸 귀찮게 굴면 나를 바꿔죠.


유화이(수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장덕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이거 정말 왜 이러세요. 당신은 집도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희 집엔 지금 오빠 도 와 계신단 말예요. (장덕배, 수화기를 가로챈다)


장덕배 이거 봐. 당신 뭐야? 당신 뭔데 함부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전화질이나 하고 있 는거야. 지금 몇시인줄이나 알아?… 이봐, 내가 언제 당신한테 시간 물어 봤어 나 도 로렉스 시계 있어.…뭐, …동생을 달라고 이봐, 얘가 무슨 물건이야. 그리고 이 양반아 남자가 무슨 여자 사진에 가지고 이래?…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사진은 믿을 게 못돼. 실제로 만나면 실망할거라니까 얼굴도 그렇고… 여 자가 말은 또 얼마나 많은데… 내가 당해봐서 알어. 드럽게 조잘댄다니까… 허허, 이친구 그래도 막무가내네… 아. 알았어. 알았어. 그래, 내가 동생 줄 테니까, 전화 끊어… 아, 그렇다니까… 그래,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 술 좀 그만 쳐먹구. 나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해. 어, 그래. 나중에 보자… 응, 차조심해서 들어가.(전화를 끊는 다) 미친 새끼. 드럽게 질기네.


유화이(노려보며)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장덕배뭘?


유화이당신 조금전에 전화기에 뭐라고 했냐구요?


장덕배 그런데 이 여자가 왜 눈은 족제비눈을 해가지고 이래?


유화이당신이 뭔데 맘대로 날 주구 말구해요?


장덕배 아하… 그거야. 저 친구가 자꾸 미친 짓을 하니까. 내가 그냥 둘러댄거 아냐.


유화이그냥 둘러 댔다구요?… 만약에 당신이 가고, 내일서부터 저 사람이 넌 내 꺼다 하 고 행패를 부리면 그땐 어떻게 하라구요? 당신이 책임질꺼에요?


장덕배 설마 그렇게 까지 할까… 그리고 정 그렇게 나오면 만나봐, 그래서 맘에 들면 시 집가. 그러면 되지 요즘… 스물 다섯도 늦은 거야. 얘기 해 보니까, 저 친구 나쁜 놈 같진 않더라구. 그리고 돈도 좀 있는 거 같던데, 제가 모자랄게 없으니까 저렇 게 무턱대고 나오는 거 아냐.


유화이(버럭 소리친다) 야 이. 도둑놈아!


장덕배(놀라서) 뭐… 뭐?


유화이(울면서) 네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해. 네가 뭔데 시집가라 마라 그래? 야 이도둑놈 아. 도둑이면 도둑질이나 하고 갈 것이지. 너 뭐야? 네가 우리 부모야. 네가 내 오 빠야? 네가 나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그런 소릴 해. 여자가 혼자 산다 고 너까지 날 깔보는 거야. 그래, 난 혼자 산다. 너 뭐그리 잘났냐? 도둑놈 주제에, 도덕 선생님처럼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 맘에 들면 시집가라구? 네가 언 제 봤다구 그런 소릴 해. 그래 난 시집가기 싫다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혼자 산다. 그렇다고 너까지 날… 엄마! (유화이, 침대에 엎드려 운다)


장덕배 (어이없는 듯) 아… 난… (담배를 꺼내 피운다. 그러다, 창문을 연다) 내가… 한 말이… 말이었나. 난 그저… 좋잖아. 처녀가 좋은 사람 만나 시집 가는거… 정말 로… 난… 당신한테 무슨 상처를 주거나… 당신을 무시한게… 아닌데… 이거, 오 늘 정말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야… 저기, 이봐… 난 정말이 지… 그래. 당신이 무슨 사연이 있나본데… 아… 난… 몰랐잖아… 아무튼 미안 해… 맘을 상하게 했다면… 난 도둑이긴 해도, 그래서 남의 물건을 훔치긴 해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울리고 가는 놈은 아니야… (전화기를 보며) 아, 저 미친 새 끼때문에… 당신은 나한테 정말 잘해줬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말이 좀 많다고 내가 흉은 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영업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거고… 여자 로써 그리 보기 싫은 건 아니야… 저기 내가 사과할게… 그렇게 울지좀 마.

(그때, 유화이고개를 급히 들고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유화이 훔칠 건 다 훔치셨나요?


장덕배 어?… 뭐… 대충은….


유화이그럼… 이제 가보셔야죠? 몇 집 더 뛰신다며….


장덕배 어? …그래 …그래야지.


유화이 저에게 해꿎은 짓은 안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장덕배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보따리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며) 그럼 갈게. 아까는 정 말 미안해. 난 정말…


유화이 가세요.


장덕배 응? 그래, 가야지… 저기, 문단속 잘하고 있어.

 

(장덕배.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그가 나가자 유화이침대로 돌아오며, 테이블 위의 어머니 사진을 잡고 흐느낀다.)

 

유화이엄… 마…

 

(잠시 후,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유화이, 고개를 들며 이상하다는 듯 창쪽으로 가려할 때, 현관 밖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리며. 곧 장덕배 들어온다)

 

유화이(놀라며) 왜… 왜 또 오셨어요?


장덕배(분노한 표정으로) 난… 난 정말 널 믿었는데….


유화이뭐라구요?


장덕배 난 정말 인간적으로 널 대했다구. 도둑질하는 것도 미안해서, 안 다치게, 맘 아프 지 않게 최대한 노력했는데…


유화이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장덕배 계단을 채 내려가기도 전에 이럴 수 있어? 도대체 몇 군데다 전화를 한 거야. 몇 군데다 어떻게 얘기를 했길래… 경찰 차가 수두룩하고 소방차까지 오게 만들었니?


유화이내가 뭘 어쨌단 말이에요?


장덕배난… 정말로 T.V 괜찮은 거 건지면 보내주려고 했단 말야. 널 울리고 가는 게 미안해서… 그런데 넌 뭐야… 도둑 맞은 게 많으면 이해나 하겠어. 쥐뿔도 돈 될 만한 것 하나 제대로 없으면서… 도대체 뭘, 얼마나 불려서 신고를 했으면 저렇 게 많이 와!


유화이이건 오해예요. 난 신고 같은 거 한 적도 없고, 아예 그런 건… 생각해봐요. 당 신 말대로 뭐 도둑맞을 것도 없는 집에서 이런 일로 신고를 하겠어요. 망신만 당하게….


장덕배 그럼, 저건 뭐야. 밖에 있는 저 자식들은 뭐냐구?


유화이(창문 밖을 내려다보며) 나도… 나도 모르는 일 이예요.


장덕배그럼 저 자식들이 어떻게 알았지? …날 미행했나… 으… 이젠 끝이야. 모두 끝 장이라구. 빌어먹을, 어째 이 집구석에 들어올 때부터, 저 문고리가 열려있을 때부터 불길했어… 이젠 어떡한담.


유화이정… 그러면… 자수를 하세요. 정상 참작이란 게 있잖아요.


장덕배(의미심장한 눈으로 유화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칼을 든다)


유화이(겁먹으며) 왜… 왜 그러세요? …왜… 자꾸… 그… 런 눈으로 봐요? (장덕배 천 천히 유화이에게 다가간다) 뭐… 뭐하려는 거예요? …이… 이봐요… 이러지… 말 아요… (유화이, 뒤로 주춤주춤 도망가며 벽에 몰린다) 살… 살려줘요… 당신… 이 런사람… 아니잖아요… 제발… 다시… 생각해봐요… 이러면… 영원히 구제 못 받 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장덕배 (순간 멈칫하며) 그래, 죽으려면 나 혼자 죽어야지. (유화이를 보며) 그래,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걱정마. 아무짓도 안 할테니까. (창쪽으로 가며) 결국엔 이런 식으로 될 줄 알았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불쌍하게 쇠고랑 차고 끌려가진 않겠 어. (창 뒤로 천천히 오르며) 그래, 세상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 능력 없는 놈들 은 찌그러져야만 하는. 어떻게 해볼 엄두도 못나게 만들었어.(거의 울먹인다)


유화이지금… 뭐 하는 거예요? …미쳤어요. 여긴 오층이에요. (그때, 전화벨 울린다. 유화이받는다) 여보세요. 뭐요? 호출이요? 호출했어요?


장덕배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유화이여기 호출한 사람 없어요.(전화를 끊는다) 이봐요 다시 생각해봐요. 당신이 뭐 그리 대단한 도둑이라고 이러는 거예요?


장덕배 음악을 틀어줘. 홀리데이를 틀어줘.


유화이당신 미쳤어요. 어서 내려와요. 거기서 떨어지면…. 다친단 말이에요.


장덕배 다쳐? 난 죽을 꺼야. 어서 음악을 틀어. 부탁이야. 홀리데이를 틀어줘.


유화이(덩달아 울상이 되어간다) 턴테이블이 고장나서 안 나와요.


장덕배 이놈의 집구석은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라디오라도 틀어봐.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음악을 틀어 줘.


유화이아… 알았어요… (유화이라디오를 튼다)

 

(E. 지금까지 청취해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씨… 빌… 노… 노. 씨. 비. 에스… 동해물과 백두산이 …)

장덕배꺼!! 당장 꺼!! (유화이, 얼른 끈다)


유화이미… 미안해요.


장덕배 당신이라도 불러.


유화이네?


장덕배 당신이 부르란 말야. 홀리데이 몰라?


유화이제발 이러지 마요.


장덕배어서 불러. (칼을 들이댄다)


유화이(떨며 부른다) 렛 미 테이큐 파 어 웨이 유드 라이크 어 홀리데이 렛미 태이큐 파 어 웨이… (음치다)


장덕배 그만해, 소름 끼쳐.


유화이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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