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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문예] 15번

Broadcaster 세인님
2017-05-14 10:54:18 676 0 0

지지 못한 벚꽃나무


문득 확인한 단톡방 화면에는 익숙한 꽃나무 사진들과 함께 캐릭터 이모티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른한 정오의 동작으로 둘러본 그곳엔, 무슨 꽃이냐고 묻는 말과 함께 올망졸망 꽃을 틔운 봄나무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디 봄나들이라도 갔던 걸까? 계속해서 보내져오는 여러 꽃모습의 사진 속, 봄의 계절에 잊히면 섭섭한 벚꽃도 그 한 자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직 덜 여물어 푸른 봉우리를 틔우고 있는 것부터, 따스한 기운을 일찍이 받고 이미 파릇한 잎사귀들로 변해버린 것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봄은 이리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나보다.

은근슬쩍 자랑하듯, 그리고 부러운 듯. 오가는 봄철 나들이에 대한 대화는, 대화방 끝에 띄워진 숫자를 시나브로 늘려가며 계속해서 이어져나갔다.


작년엔 꽃을 보러 갔었던가? 재작년엔 어쨌을까? 뒤로 가기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모르는 척 지나가게 두려던 생각은, 이내 비춰진 홈 화면에서 걸음을 돌리고선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 벚꽃. 너와 같이 본 벚꽃의 모습은 아직도 내 핸드폰 속에서 봄을 나타내고 있다.

바람결에 날아든 벚꽃 잎이 알알이 박힌 너의 생머리와, 배시시 웃는 입가에 반사되는 햇빛. 사진 저 멀리서 뛰어온 꼬마아이가 네게 쏟은 슬러시의 오렌지 향은, 해가 지난 지금도 비강을 간질이듯 선명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내 눈동자에 비춰진 너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아이의 슬러시가 만들어낸 얼떨결의 첫 경험.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는 하얀 지팡이를 내게 휘두르며 부끄러워하던 너의 모습은 어떠한 생물보다도 사랑스러웠다.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 설령 네가 이제 내 숱한 전화를 받을 수 없어도, 왜 이렇게 늦었냐며 울먹이듯 구박할 수 없어도, 더 이상 나를 기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철새처럼 돌아오는 너의 모습들은 왼손 약지에 남아, 봄철이 되어서도 철붙이의 차가운 감촉으로 창자를 끊는 것 같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내가 너의 눈이 되고, 추억이 되고, 평생을 곁에서 걸어줄게. 세 달 여간 주머니에서만 숨어있던 은색 반지를 내민 그날. 분위기 없이 호프집 맥주와 마카로니 뻥튀기를 앞에 두고 비루하게 고백하는 내게, 더듬더듬 내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머금곤 미소 짓던 너의 얼굴은 지금도 자국으로 남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로 사랑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말을 너를 떠나보내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좀 더 멋진 말을 해주고 싶었다. 좀 더 멋진 장소로 데려가, 여자아이들이 꿈꾸는 왕자와 공주의 모습으로 다시금 프러포즈하고 싶었다.


너와 날 쏙 빼닮은 아이들을 낳고, 너와 거닐은 벚꽃 길에 다시 들러, 함께 싼 김밥을 싸들고 소풍을 가고 싶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우리가 걸었던 길을 따라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나는 너와 벚꽃잎 휘날리는 그 장면을 손잡고 바라보며, 어느 서정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조용히 울리는 풍경 소리와 같이 맞이하고 싶었다.

웃는 네 뺨에 떨어져 흐르는 눈물이 부디 너의 것이 아니기를. 너를 슬픈 모습으로 만들려는 내 것 또한 아니기를. 흐려져만 가는 시야와, 그 습기를 머금은 스마트폰의 촉감이 너와의 추억을 비집어들음에, 비현실이란 공간에서 진통제를 찾아드려 발버둥 친다.


표시 시간이 경과되어 거멓게 암전되는 화면. 다시 너의 모습을 찾기엔, 지금의 나로썬 잠금 화면을 밀어낼 용기조차 없다. 그저 멍하니 떠나보내는 공간 속, 그날처럼 저 멀리 지나가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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