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님님 봄처럼
조사관은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물어보았다. 마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아내야 한다는 듯이. 꽤나 긴 시간이 흘렀고, 지루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그가 오직 진실 된 답변만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짓을 꾸며내기 위해 불필요하게 머리를 굴리거나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외모, 말투와 달리 고압적이지 않은 조사관의 태도.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아늑하고 편안한 풍경이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긴 시간에 걸친 조사를 견뎌내기는 꽤나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식적인 건 이제 끝났소.”
조사관은 서류뭉치로 책상을 탕탕 쳤다. 톡하는 소리를 내며 녹음기가 꺼졌다. 시종일관 엄격함, 근엄함, 진지함을 유지하던 조사관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느껴졌다. 그것은 흥미로움이었다.
“주위사람들은 당신을 괜찮게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조사관의 입에서 좋은, 따뜻한, 착한, 훌륭한, 대단한 등등의 단어들이 쏟아졌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기억해주었다는 이들에게 속으로나마 감사를 전했다.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지? 평판을 위해서? 당신의 궁핍했던 생활을 보면 그런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겠던데. 거기다 당신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고맙다는 표시 하나 없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바라기나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소?”
“지금 이 순간에도 춥고 싸늘한 가을이나 겨울을 마음속으로 걸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그래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들은 따뜻함이라는 것을 잘 모를 수 밖에 없어요. 그들에게 세상의 봄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 뜻은 알겠지만. 굳이 그렇게 직접 나서서 힘들게 고생을 했어야 할 필요가 있소?”
“봄은 구석구석, 겨우내 얼었던 모든 것을 찾아가 녹입니다. 산골 깊은 곳도, 높은 건물에 가린 음지에도. 저는 봄의 화사함, 따뜻함만이 아니라 그 활발함도 닮아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사람들을 챙기고 싶었습니다.”
“혹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싶소?”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저 같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다만 그런 꿈같은 세상에 살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길을 택할 겁니다. 후회 없이.”
조사관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었다. 조사관은 이 대화를 여기서 마쳐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조사해야하는 임무 상, 얼음 같이 차갑고 굳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마음을 녹이고 흔들 수 있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자, 슬슬 일어납시다. 아직 갈 길은 머니까.”
이제 봄보다는 여름이 가까워져가던 어느 날.
간만에 비가 내리고, 날씨가 싸늘해졌다.
뜨겁게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차갑게 식던 그 날,
사람들은 평생을 헌신하고 봉사해온 성인의 삶을 추모했다.
‘봄처럼 살다간 사람.’ 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