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방송계에선 남자는 나가뒤지라는 데 이거 어떡하냐. 」
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인데 푸념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1년동안 평청자(평균 시청자) 3명이다. 매일매일 저챗(저스트 채팅)방송 돌리고 있는데 힘들더라 매일 똑같은 시청자고.」
-1년 하고 평청자수 3명을 못 넘냐 접어라
-ㄹㅇㅋㅋ 그 방송 왜 하냐?
게시글에는 있으나마한 수의 댓글이 달렸다. 그저 지나가는 인터넷 망령의 게시글로 치부하고 쉬쉬한 것이다. 나도 그 당시 이 글을 보고 웃고 있었다.
-게임 방송이나 해 ㅋㅋ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댓글을 적어 내려갔다. 대부분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나름의 자신은 있었다.
그 뒤 비슷한 게시글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래와 같이 적어 내려갔다.
-아 진짜. 게임 잘하면 겜방으로 인기 타면 된다니까 종겜(종합게임)스트리머로 인기 싹싹 긁어모아.
->ㅋㅋ 여기 또 멍청이 하나 있네
->ㄹㅇ 겜방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그런 나를 따라다니는 멸시와 조롱. 정말 현실에서는 방구석에서 히히덕거리기만 할 놈인데 말이다.
분했다. 왜 이런 쉬운 걸 못하는 거지? 그래서 평소 보고 있는 사이트인 트위시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그게 한 달 전이다.
“하이 이하.”
나의 닉네임인 이덕배와 hi를 합친 이하. 이걸 아무도 없는데 외는 것도 고역이었다. 늘 변함없는 시청자수 0.
“오늘도 레오리 한다.”
레전드 오브 리그, 줄여서 레오리. 백 가지가 넘는 챔피언들을 가지고 하는 AOS장르 게임이다.
게임이 시작되고 캐릭터들이 서로 스킬을 난사했다.
“시미라 궁극기 왜 또 이상한 타이밍에 쓰네?”
“아오 우리 정글은 왜 안 와주냐.”
“야, 미드는 왜 혼자서 킬 따이냐고!”
물론 팀원 욕은 필수. 욕은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자극적이라 좋다. 듣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그래서 내 플레이는 어떻냐고?
0/3/1
-아 우리 서폿 못하면서 입터는 거 봐라.
-놔둬 불쌍한 앤가 보지.
-ㅋㅋ
병신들. 언젠간 내가 캐리해줘서 우러러 보게 해줘야겠네.
“야, 내가 캐리해준다. 나 전 시즌 금 티어 였어.”
-구라치고 앉아 있네
-전 티어 금 ㅋㅋㅋ 그래 잘 캐리해봐라.
-[전체]서폿이 입텀 나 던짐 수고.
진짠데.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다. 그 와중에 원거리 딜러는 던진다고 채팅이나 치고 앉아 있고.
“내가 캐리해준다.”
그 하나의 말로 채팅은 조용해졌다, 아니 솔직히 희망은 있었다. 2킬을 따내고 어시스트도 쏠쏠히 챙겼으니까. 문제는 원거리 딜러다. 적한테 벌써 5번이나 죽었다. 고냥 뒤에서 경험치만 먹으라고 해도 말도 안 듣고 그냥 냅다 던진다.
“아니, 원딜(원거리 딜러)아 진짜 던지냐?”
-응 수고.
팀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원딜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야, 원딜 좀 사려.”
-[전체]ㅋㅋ 서폿이 나보고 사리랜다.
-[적군1]야, 그냥 무시하고 계속 던져.
-[적군2]그래 캐리 고맙다 서폿아.
결국 원딜이 없는 싸움을 계속하다가 기지가 그대로 털렸다.
「패배」
-ㄹㅇ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진 말자.
-평생 동 티어 달고 살아 서폿아. ㅋㅋ
채팅창에 올라오는 무수한 욕. 이건 분명 팀이 잘못한 거다. 나는 캐리했다. 2킬이지만 아무튼 캐리다. 어시스트도 많이 했다. 실제로 내 덕에 이긴 전투도 몇 개 있었다. 억울했다. 그 감정은 결국, 내 손을 움직이게 했다.
“야~ 이 XX야. 그렇게 캐리해줘도 못 받아먹는 거냐? 대단하다 야. 그냥 접어 너는 존재가 민폐다….”
이 외에도 차마 입에는 담을 수 없는 욕을한참이나 내뱉고서야 채팅을 멈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채팅창은 수많은 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ㅋㅋ X신.
내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를 단 한 마디에 부정당하자 더욱 열이 뻗쳤다.
“야, 나 트위시에서 방송하는 사람이다. 이덕배 쳐라.”
잠시간의 침묵. 나갔나 싶었지만 나갔다는 표시는 채팅창에 올라오지 않았다.
-ㅇㅋ.
그 말을 끝으로 원딜도 게임에서 나가버렸다.
“너 지금 내 방송 보고 있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하지만 그걸 비웃듯 시청자 수는 0명에서 멈춰있었다. 그래 올 일이 없지. 녀석 겁먹어서 도망친 게 분명했다.
“아오, 빡쳐.”
나는 멍하니 방송 화면을 바라봤다. 게임 화면만이 덩그러니 띄워져 있었다. 채팅방처럼 마음도 텅 비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에이, 게임이나 하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게임 시작 버튼에 손을 올렸다. 올 리가 없지.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그 때 시청자수가 1로 바뀌었다.
-이덕배킬러: 나 왔다.
홀리, 진짜 오냐. 거기다가 내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서 아이디까지 만들다니. 아주 반 죽여놔야 겠는 걸.
“뭐야 왔냐?”
일단은 점잖을 빼야한다. 말싸움은 화 안 난 척 하는 게 중요하다.
-이덕배킬러: ㅋㅋ 뭐야? 하꼬네?
하꼬. 그러니까 시청자 수가 작은 방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고약한 욕으로 쓰이고 있고.
“하꼬가 뭐 어쩌라고. 너 잘 만났다. 야, 던질 거면 게임을 하지 말든가.”
그러자 채팅창에 쏟아지는 무수한 ㅋㅋㅋ.
“야, 웃지만 말고 제대로 붙어 봐.”
-이덕배킬러: 불쌍한 놈들 보면 측은해지는 스타일이라 ㅋㅋ
뭐지 이 놈. 갑자기 와서 선민의식이라도 부리는 거야. 이런 놈들은 자기도 불쌍하고 측은한 놈인 걸 모르니까 이런 말하는 거다.
“야, 너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마. 어머니가 보고 뭐라 하겠냐.”
-이덕배킬러: 병x.
확 그냥 차단을 해버릴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말을 이어갔다.
“야, 그러니까 네가 방구석 찐따란거야. 친구도 없지?”
이 정도면 타격이 클 테다. 도발에 넘어오고 화를 내면 내가 이기는 거다.
-이덕배킬러: 나 여친있는데?
나쁜 놈.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고.
“거짓말 하지 마라.”
-이덕배킬러: ㅋㅋㅋ 진짠데?
정말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건가.
“아니, 네가 커플이든 말든 그게 뭐가 중요한데!”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 호흡이 가파라졌다. 절대 부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이건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다. 부모님을 욕 들으면 화를 내야하는 것처럼.
-이덕배킬러: ㅋㅋ 애쓰네.
“하, 진짜.”
나는 차단 버튼에 손을 올렸다. 즐거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이덕배킬러: 하, 갑자기 인생 허무하네.
음?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서로 싸우는데 갑자기 고민이냐.
“뭐야? 갑자기?”
-이덕배킬러: 너 같은 놈이랑 대화나 하는 내 인생도 엄청나더라.
그렇게 말을 하면 묻는 사람이 뭐가 되냐고. 이거 은근히 까는 재주도 있네.
“어쩌라고. 우리 싸우는 중이다,”
-이덕배킬러: ㅋㅋ 진짜 개처럼 싸우려 드네.
그야 나는 함씨 집안 웅(雄)필 이니까. 수컷이 있는 남자. 자랑스러운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아야지.
“뭐냐, 갑자기 한숨이나 푹푹 내쉬는 말투 하고.”
-이덕배킬러: 그냥 고민이 있어서 말야.
“그래서 뭐.”
-이덕배킬러: ㅋㅋㅋ 모솔인가 보네.
아, 너무 잘 알아서 짜증난다, 이 놈 진짜 나 아는 놈 아냐? 친구라든가…, 라고 할 뻔.
“진짜, 너 자꾸 이야기 본질 흐릴래?”
-이덕배킬러: 너 좀 재밌다?
“아부 떨지 마라.”
-이덕배킬러: 왜 내가 너한테 아부를 떨어? 여친한테 하는 것도 바쁜데
“정말 차단 박아버릴까?”
-이덕배킬러: 엥? 차단하려 했음?
“어.”
-이덕배킬러: ㅋㅋㅋ 진짜?
정말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유쾌한 건지. 왜 이리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놈이야.
“하, 그래. 여자친구, 여자친구 잘 떠들어라.”
-이덕배킬러: ㅋㅋㅋㅋ
나는 아이디를 차단했다. 어차피 싸우고 차단할 생각이었다. ㅋㅋㅋㅋ에서 멈춰있는 화면을 보고 나는 게임 시작버튼에 손을 올렸다.
정말 나부터가 성격이 비틀려 있다 보니 이상한 놈들도 꼬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차단한 아이디도 한 5개 정도 된다.
-감돌이: 야 진짜 차단하냐?
“뭐야?”
그만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차단한 지 1분도 안 돼서 또 채팅이 올라왔다.
“워야? 아까 아이디 부계정 맞았네,”
-감돌이: 맞아.
뭐 대충 짐작은 했으니까. 별로 놀랍진 않았다.
“왜 다시 왔냐? 밴 두 번 먹게?”
-감돌이: 너 재밌어서.
끝까지 재밌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냥 무시하고 두 번 차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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