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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입니당 습작

Broadcaster 해해
2021-05-09 08:28:31 98 0 0

1화


사실 남 일에는 관심을 크게 갖기 않는 게 좋다.


누군가 즐겁든, 기쁘든, 우울하든, 슬프든 나는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들었는지 묻는다면 내 성격이라고 밖에는 답해줄 방법이 없다. 그도그럴것이 나는 평범한 가정에 평범하게 자라왔기에 그거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찐따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친구 관계에선 내가 관심이 없을 뿐이기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되고도 한 달 동안. 나는 그 누구와도 교류 없이 조용히 책을 읽었다.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그래” 정도로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흥미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책 가짓수도 적거니와 그 책들도 고등학생 입맛에 맞는 책들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그나마 소설류 중에서는 인기 있는 책이라면 한두 권 비치되었기에 지루한 수업시간에 짬짬이 시간 내어 읽곤 할 뿐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머리도 식힐 겸 도서관에서 스미노 요루 작가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넘기고 있던 중이었다. 책 너머로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미노 요루 작가는 첫 작이 너무 임펙트가 컸어.”


책을 내려 보니 한 여학생이 나를 보고 있었다.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너는?”

“한은영. 전학 온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직 이름도 몰라?”


그랬지. 일주일 전에 전학 온 여학생. 다만 나는 그 존재만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친해질 것도 아니고.


“그 뒤 작품들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위상을 따라가지는 못 했지.”


그리 말하던 은영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책을 읽다니. 혹시 백마 탄 공주님이 말이라도 걸어주길 기대한 거야?”

“뭐, 그게 목표라면 지금 이뤄졌네.”


처음 말을 나눈 사인데 시답잖은 농담이나 나누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왜 온 거야?”


은영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나에겐 ‘좋은 질문이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할게 있어서 말야.”

“말?”


나는 은영의 표정을 살폈다.


“물건을 좀 전해줘.”


은영은 교복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 돈으로 네가 원하는 책을 하나 사서 보내. 잔돈은 너 가지고.”

“책?”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은영을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책 말이야. 너는 동화책이나 고를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는 거 같지는 않는 거 같으니까.”


독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놈이었다. 내가 융통성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욱해도 될 상황이었다.


“친구나 선생님한테 부탁하지. 왜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당연한 의문이었다. 나와 은영의 접점이라곤 같은 반이라는 거 밖에 없었다. 딱히 얘기도 나누지 않았고 친하지도 않은 상대였다.


“잘 생각해봐. 내가 왜 굳이 너한테 부탁하겠니?”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시켜서?”

“맞아.”


의문이 좀 풀렸다. 왜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제 3자를 통해 부탁했는지는 몰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관심 없었으니까.


일단 돈을 받아들고 저울질했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들어보고 해줄 수 있는 선이면 해주고 안 되면 딱 잘라 거절한다. 그게 내 습관이었다. 수락할 수 있는 부탁이면 들어주고 아니면 거절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디로 보내면 되는데?”

“학교 근처에 있는 큰 병원 있지? 거기에.”


병원이라면 학교에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됐다. 거기다 마침 집으로 가는 길.


보통 책 한권이라면 대략 15000~18000원 사이로 약 3000원 정도 받는 대가로는 나쁘지 않았다.


“알았어.”


그 말만 남기고 은영은 뒤들 돌았다. 찰랑거리는 그녀의 단발머리를 지켜보며 나는 혀를 찼다.


‘참으로 별난 놈.’


**


학교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서점으로 갔다. 책을 정리하는 서점 주인을 뒤로 한 채 나는 안쪽에 소설 코너로 걸어갔다. 소설들이 나라별로 진열돼 있었다. 나는 그 중 일본 소설이 꽂혀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외국 서적을 더 선호한다. 왜 그러냐면 한국 소설 코너에는 졸작과 명작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지만 누구나 명작을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외국 책은 어느 정도 인기가 보장된 책을 수입해 와서 양질의 책이 많다는 근거 없는 신조에 충실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책도 대부분 외국 책이어서 외국 입맛에 길들여져 있고 말이다.


천천히 선반을 훑었다. 대부분 유명 작가의 책이다.


의미 없는 손동작을 이어가던 나는 결국 지쳐 떨어져나갔다. 너무 같은 종류의 책뿐이다. 외국 소설의 단점이다. 인기가 보장된 걸 가져온다는 건 결국 작가의 이름에 기댄다는 뜻도 됐다. 충분히 실력 있는 작가들도 있을 텐데 그런 작가들이 쓴 책을 보려면 서점 주인에게 물어물어 구석까지 가야만 했다.


영어 책들도 살펴봤다. 그래도 영어 책들은 상황이 나았지만 내가 재미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돌아다니던 내 눈에 들어온 건 결국 한국 소설이었다.


처음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스치던 내 손가락은 어느 곳에서 멈췄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분명 들은 적 있었다. 윤동주의 시집. 무심코 책을 펼쳐든 나는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윤동주 -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시는 학교에서 배워 몇 개 안다. 그렇지만 이런 시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윤동주가 이런 시도 썼구나. 특히 놀란 부분은 이 시대에도 일본 서브 컬쳐에서 유행하는 가녀린 여성이 나오는구나하는 것이었다.


지식이 늘었다. 어느새 다음 장을 넘기던 나는 무심코 그 책을 집어 들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시집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평소 시는 안 읽었는데 갑자기 시라니. 분명 무슨 바람이 분 게 분명했다.


“학생, 왜 그래?”


어느새 서점 주인이 다가와 물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다행히도 서점 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바코드만 찍고 있었다.


“9,800원.”


생각보다 싼 가격이었다. 이러면 내 손에 쥐어지는 돈도 꽤 남았다.


아무래도 이 시집을 고른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은영이 알려준 병실은 306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완만한 경사를 따라 병실 문이 양쪽에 있었다. 양쪽을 훑어보며 복도를 따라 걷자 문패에 적힌 숫자가 점점 커져갔다.


‘여기네.’


동그란 문패에 306호라고 적혀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가 양옆으로 놓여있었다. 나는 환자들의 얼굴을 살피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은영이 말한 자리는 창가 오른쪽 자리. 가장 안 쪽이었다. 그곳엔 한 여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나와 별반 나이차가 나지 않아 보였다. 많이 쳐줘야 두 살 정도? 그런데 여자를 볼 때마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낯이 익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늘어진 긴 생머리에 장난스러워 보이는 옆얼굴, 그리고 책을 보며 짓는 미소까지. 가까이 다가가자 의문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어이.”


어느새 나는 그 여자애한테 말을 붙이고 있었다.


“현우?”

“어.”


가영, 내 소꿉친구. 그녀는 놀란 듯 나를 올려다봤다.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게 얼마만이야!”


가영은 활짝 웃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 앉아.”


가영은 옆에 놓인 세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길에 따라 의자에 몸을 걸터앉았다.


“정말 올 줄 몰랐어.”

“올 줄 몰랐다니?”

“너 원래 남한테 관심 없잖아.”


맞는 말이다. 여기 불려온 것도 내 의지보다는 선생님의 부탁 때문이니까.


“어떻게 지냈어?”


으레 할 수 있을만한 질문.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덤덤히 중학생 때부터의 인생을 나열했다.


중학생 때 헤어지고 가장 가까운 학교에 갔다는 점도 친구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점도 지금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점도


별 거 없었지만 가영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다행이야.”

“뭐가 다행인지?”

“아무 탈 없잖아.”


순간 가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의 시선은 가영의 병상으로 옮겨갔다.


“너는 어떻게 지냈어?”


2화


“글세.”


가영은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잊었던 추억을 꺼내는 듯 그녀의 눈빛은 그윽했다.


“보시는 대로 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있답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가영은 억지웃음을 잘 못 짓는다는 걸.


“나을 수 있는 병이지?”

“응, 한 달 정도만 병원에 있으면 돼.”

“그래?”


그러던 내 눈은 가영이 보고 있던 책으로 옮겨갔다. 가영도 시선을 눈치 챘는지 책을 들어보였다.


“그건 뭐야?”

“이거?”


갈색 한지 배경에 달이 뜨고 그 달을 분홍색 꽃이 가리고 있었다. 마치 수묵화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였다.


“진달래꽃이란 시집이야.”


진달래꽃이면 김소월 시인의 작품이다. 진달래꽃과 초혼,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등 몇 가지 작품이 떠올랐다. 국어 시간에 배워서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넌 여전하네.”


내가 알던 가영은 문학소녀였다.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곤 했다. 한 번은 그 책을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 가영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단어의 뜻을 술술 말하는 가영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 당시 가영은 소설을 읽었는데 지금은 시집을 본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늘 시랑 소설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고 생각했다.


“응, 최근 읽기 시작했어.”


가영은 시집을 펄럭였다. 의외로 두꺼웠다. 시가 모두 30편이 넘어 보였다.


“근데 너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가영이 말했다. 그제서야 계속 들고 있던 시집이 생각났다.


“이거 주러.”


나는 시집을 건넸다. 주면서도 신기했다. 어떻게 골라도 시집을 골랐는지 참으로 대단한 우연이었다. 만약 가영이었다는 걸 알면 대충 소설하나 사가지고 왔을텐데 말이다.


“정말? 고마워. 마침 윤동주 시인의 시도 읽고 싶었는데.”


김소월과 윤동주라니. 시의 두 거장이 만나버렸다. 시집을 받아든 가영의 얼굴은 활짝 피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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