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 그대의 존재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닿을 수 없는 거리라도
이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바라만 봐도 아름답기만 한 그대는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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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교 / 비교
꽃다운 사람은 많다고 해도
너다운 사람은 너밖에 없다
사람들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너만의 모습 그대로가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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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 어쩌다 나는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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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 나에게 주는 시
우산을 접어버리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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