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목록 :
“으아아아아아!”
투박한 금속 투구를 쓴 검투사는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상대에게 달려갔다. 검투사의 상대이자 토로바틀 콜로세움의 10년의 무패의 신화인 ‘지지않는 자찰라크’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검투사의 행동에 크게 당황해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던 검투사는 단칼에 지지않는 자찰라크의 머리를 베어 콜로세움의 용사에게 패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새로운 용사의 탄생에 콜로세움의 모든 관중들은 단 하나의 이름을 구호처럼 외쳤다.
“가울! 가울! 가울! 가울! 가울!”
검투사는 잠시동안 자신에게 쏟아지는 응원과 함성을 즐긴 후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던졌다. 그의 모습은 흉측했다. 보통의 기갑단과 다르게 온 몸이 하얀색이였지만 눈만은 신선한 피와도 같은 붉은색이였다. 게다가 어릴 적의 사고 때문에 그의 하관 부분은 매우 흉하게 상처가 나 있었기에 그를 처음 본 대부분은 그를 경멸하고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모두가 그의 얼굴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울이라 불리는 검투사는 이제 와서 자신을 칭송하는 그런 그들을 오히려 싫어했다.
“앙코르! 앙코르! 정말이지 멋진 경기였다!”
관중들의 환호를 뚫으며 매우 위엄있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의 말에 관중들은 환호를 멈추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음 말을 하는 것을 기다렸다. 가울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졌고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빛나는 황금색과 보락색으로 된 왕좌에서 일어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기갑단의 황제, 칼루스였다.
“그대는 진정으로 전투의 화신과도 같았도다! 무모하게 끝없이 싸우는 이들과 다르게 전략을 쓰며 싸우는 그대야말로 이 콜로세움의 용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가울, 자네야말로 진정 짐이 찾고 있던 인재이다! 오늘의 승리는 모두가 축하해주고, 모두가 이 날을 기억해줄 것이다!”
칼루스 황제의 말은 마치 이번 콜로세움 경기의 폐회사와 같았다. 황제는 자신의 말을 끝낸 후 잔을 들어 가울을 축하해주었고 관중들은 그에 맞춰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칼루스 황제가 밖으로 나가는 걸 가울은 보았다. 그는 황제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자신의 목적이 한 걸음 다가선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로 그때, 콜로세움의 경비병이 그에게 다가왔다. 가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채울 수갑을 위해 두 팔을 들었지만 경비병은 수갑 대신에 이클라둡스 꽃으로 된 목걸이를 들고 있었다. 경비병은 화환을 가울의 목에 걸어주며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지금은 너의 업적에 취해있거라. 이따가 밤에 황제 폐하와 만나야 하니.”
가울은 이클란 주를 충분히 마셨기에 취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또렷한 정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경비병이 일러준 대로 칼루스 황제와의 면담 때문이었다. 그는 수갑에 채운 채 경비병에 이끌리며 사치가 흘러 넘치는 방에 도착했다. 자신의 흉한 하관을 가리기 위해 쓴 거친 철로 된 가면 때문에 가울은 앞을 제대로 못 봤지만 가면 틈새로 보이는 광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칼루스 황제는 가울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경비병들과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냐? 그대들은 오늘의 영광을 받아 마땅한 전사에게 지금 이렇게 놔두고 있었단 말이냐? 어떻게 된 것이냐, 신들라투스?”
“허… 허나, 폐하. 가울은 노예 검투사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이지만, 오늘 그에게 죽었던 자찰라크 역시 평소에도 가울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무려 10년이나 말입니다. 게다가 가울의 손발이 자유롭게 풀어놓았다간… 폐하를 헤칠 가능성도 있기에...”
“변명은 듣기 싫다, 신들라투스! 당장 가울을 속박하는 저 강철 족쇄들을 풀어놓고, 그를 황실 욕조로 데려가 그의 몸을 정성스럽게 씻어놓거라! 그리고 짐의 옷장에서 가장 화려한 옷들 중 하나를 가울에게 입힌 후에 짐에게 다시 데려오거라! 이것은 짐의 명령이자 가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이다! 이를 어기지 말거라, 알았느냐?”
“예...옙! 폐하...”
신들라투스는 결국 황제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고야 말았다. 황제의 말이 끝나자 그는 경비병들을 시켜 가울을 구속하던 가면과 족쇄들을 풀은 후 황실 욕조로 안내했다. 가울은 생애 처음으로 받는 환영과 배려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분명히 자신의 스승에게 들은 것과 달랐다. 그에게서 들었던 칼루스 황제는 이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가울은 황제의 화사스런 토가를 입은 채 다시 칼루스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황제는 잔에 든 와인을 음미하다가 다시 온 가울을 보자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두 팔을 높이 든 채 가울을 껴안으며 말했다.
“아아, 가울이라 불리는 전사여! 진정 그대와 이렇게 단 둘이서 만난 것에 기쁘구나! 아까 짐이 콜로세움의 이들에게 가울 그대를 지금처럼 꾸며 짐에게 데려오라고 시켰거늘 오만한 그들이 짐의 명령을 어긴 거 같구나. 그대가 원하기만 하다면 짐이 그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거늘, 혹시 원하느냐?”
“아… 아닙니다, 폐하. 제가 어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습니까? 전 그저 콜로세움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일개 노예 검투사일 뿐이옵니다. 오늘 폐하와 만난 거 자체가 이미 저에게 있어서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허!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가울! 목숨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로다! 목숨은 항상 소중히 여겨야 하는 법이다. 자 그렇다면 어서 이 자리에 앉거라. 오늘 그대와 많은 얘기를 하고 싶구나.”
가울은 황제의 계속되는 배려와 친절에 슬슬 의심하기 시작했다. 칼루스 황제를 잘 아는 스승의 말에 따르면 보통 황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황제가 원하는 것이 있기에 이렇게 만나는 것이 아닌가? 가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채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대도 눈치챘다시피 오늘 짐이 그대와 만나고 싶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제안이라뇨… 무슨 제안이십니까, 폐하?”
“그 제안은 바로… 얼마 전 짐의 충성스러운 군단이자 우리 제국의 자랑스러운 병사들인 붉은 군단이 그들의 지휘관을 잃어버렸다. 그는 매우 용맹하고 저돌적이었지. 하~ 아직도 짐은 생각이 또렷하게 난다. 프톨란타스 그가 녹튀스 행성에서 보여준 그 용기를! 아 그대도 분명히 그걸 본다면 아주 감명깊게 보았을 것이야.”
“… 예, 그렇습니다. 페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한 번 생각한 걸 얘기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어디 한번 말해보거라.”
“제가 그 붉은 군단의 새로운 병사로 임명하신다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다, 가울. 짐은 가울 그대를 붉은 군단의 사령관으로 삼고 싶다. 그대의 신들린 전투 실력은 그대로 콜로세움에 두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그대는 짐의 곁에서 제국을 위해 헌신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가울 자네의 운명이다.”
가울은 생각보다 파격적인 황제의 제안에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가면 갈수록 뭔가 달랐다. 혹시 자신의 스승의 말이 모두 진실이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스승인 그는 개인적으로 황제에게 원한이 가져있기에 황제를 그렇게 폄하하고 비난했던 것일까? 일단 가울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황제를 위해 입을 열기로 했다.
“감… 감사합니다, 폐하. 고작 저 같은 존재에게 그러한 자리를 주신다니… 게다가 폐하의 곁에 서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모든 기갑단의 일원들에게 크나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고작 노예인 제가 하기엔 다른 이들의 시기와 원한을 삼을 것이며 제가 담기엔 너무나도 큰 거 같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아니야! 가울 자네는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 그대는 저 살아남길 힘든 콜로세움에서 계속 생존해왔다. 그리고 짐은 우리 제국을 위해선 그 어떤 출신의 이들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짐은 가울 자네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의 일들을 하고 싶다. 그 일들을 위해선 그대의 도움이 꼭 필요하도다.”
가울은 황제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았다. 그는 속으로 한 번 거절했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황제의 제안에 받아들여야지 흐름이 자연스럽고 의심을 덜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연기를 한 후 마지못해하면서도 감격하는 연기를 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 저 가울은 앞으로 죽는 날 때까지 영원히 황제 폐하를 보좌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기갑단 제국의 앞길과 영광을 가로막는 적들을 무참히 없앨 것이며 우리 제국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태양과도 같은 번영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 짐은 가울 그대가 분명히 그럴리라 확신한다. 자 오늘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명예로운 내일들을 위해서 같이 건배하자꾸나!”
붉은 군단 소속 함선이자 가울의 기함인 ‘불멸’은 아무도 없는 한 황량한 사막 행성 위에서 유유히 부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불멸의 주인이자 붉은 군단의 유령 사령관이라 불리는 인물, 가울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을 위한 옥좌에서 가만히 앉아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던 가울은 이내 자신의 방 안으로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을 맞이했다.
“때맞춰 왔구나, 내 친구들이여. 여기서 다시 만난 것에 진심으로 반갑다.”
“그렇긴 하지만… 가울, 우리가 굳이 이런 먼 곳까지 와야 하는 것이오? 이러면 오히려 황제가 우릴 수상하게 여기지 않겠소?”
황제의 축제 담당관인 몰리 아몰리는 투덜거리며 가울에게 쌀쌀하게 말을 걸었다. 그의 말에 대장군 우문아라스는 자신의 엄니를 문지르며 탐탁지 않는 듯이 말을 했다.
“그대의 말은 어느정돈 일리가 있소, 축제 담당관. 하지만 우리의 숭고한 대의에 합류한 호위대장 샤오텟과 황제의 아첨꾼 이스칼이 지금도 그 부패한 황제 곁에 머물면서 우리의 시간을 벌어주고 있소. 그들 덕분에 황제의 눈과 귀가 가려졌으니 우린 안전하게 이 곳에 온 것이오.”
그녀의 말에 또 다른 여성이자 기갑단 제국 최초의 자유민 신분을 얻은 사이온, 오트조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뒤로 황제의 딸이자 기갑단 제국의 공주인 황녀 카이아틀은 가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자, 나의 친구인 대장군의 말처럼 어서 빨리 회의를 시작하시지, 유령 사령관. 우리의 거사를 반드시 성공하게 만드는 작전을 위해서 말이야.”
“그럴 것이오, 황녀. 자 다들 자리에 앉으시오.”
모두가 가울이 마련한 의자에 앉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가장 이 일에 불안해하고 있던 몰리 아몰리부터 다시 입을 열었다.
“가울, 자네 말대로 우리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병들어 가고 있는 건 맞네. 그렇기 때문에 자네의 의견인 칼루스 황제를 폐위시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든 이들, 그리고 나도 동의했지만… 그를 몰아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사형시킬 것인가?”
“당연한 거 아니지 않나, 아몰리? 아무리 황제가 내 아버지라 할지라도, 우리의 숭고한 대의와 우리의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선 그 누구도, 설사 내 친족이나 친구들이 걸림돌이라면 나는 그들을 언제든지 죽이고 쳐낼 각오를 하고 있다. 황제의 딸인 나도 이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졌는데 아몰리, 넌 그러지 못하는 거냐?”
“아…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황녀이시여.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황제를 죽인 후의 상황입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칼루스 황제는 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펼쳐 그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황제가 죽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역으로 우리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에 난 걱정하는 겁니다.”
“그대 말대로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다, 아몰리. 하지만 우린 기갑단이다. 기갑단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크리우스의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번영해왔고, 제국은 성장해나갔다. 우리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다면 칼루스를 따르는 자들은 결국 우리의 힘에 감탄하고 우리의 편이 될 것이다.”
대장군 우문아라스는 자신의 친구인 황녀 카이아틀의 편을 들어주며 말을 끝냈다. 그녀의 말에 몰리 아몰리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눈치로 오트조트와 가울을 번갈아 보며 눈빛으로 애원했지만, 여성 사이온은 먼저 그의 기대를 깨버리며 말을 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망할 황제는 지금 저를 시작으로 제 모든 동족들에게 제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를 선사하려 합니다. 그건 안되는 일입니다. 이 자유는 오로직 제 손과 제 노력으로 통해 얻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한 내 동족들이 내가 힘들게 얻은 이 자격을 그냥 받아먹게 해둘 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대들의 계획에 참여한 것이고, 황제의 그 허무맹랑한 생각이 헛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선 그를 처형해야만 합니다.”
“오트조트, 너의 생각은 어떻든 간에, 우리는 반드시 칼루스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나와 가울이 맺은 약속이였으니깐. 그렇기 때문에 축제 담당관, 자네의 생각은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갑자기 난입한 거친 목소리에 가울을 뺀 나머지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울의 방 안으로 붉은 갑옷을 입은, 한쪽 눈이 먼 기갑단 한 명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칼루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쫓아냈다는 인물, 영사였다.
“칼루스는 나에게, 아니 나를 대표로 하는 기갑단의 힘 그 자체에 큰 굴욕을 선사했다. 그 때문에 우리 제국은 나약해지고 내부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어! 우리 제국을 부패하게 만드는 그 자를 살려둘 이유조차 없다. 우리의 숭고한 계획의 끝은 칼루스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안 그런가, 나의 제자여?”
이 모든 논쟁의 결론을 자신이 끝맺어야 한다는 걸 가울은 깨달았다. 그는 붉은 빛의 눈으로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자신의 스승인 영사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고 대장군과 황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말이 가울에게서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반면에 자유민 오트조트는 표정의 변화없이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고 몰리 아몰리는 불안감에 떨어 있었다. 가울은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당신의 생각이 맞다, 나의 스승이여. 칼루스 황제는 우리의 제국을 망가뜨리고 썩게 만들었다. 우리의 제국을 다시 살리기 위해선 그를 몰아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를 없애버려야 한다. 이미 그의 딸인 황녀 카이아틀님 조차 동의했다. 우리의 목표는 그를 몰아내고 죽이는 거 뿐이다. 자, 이제 계획할 시간이다. 나의 친구들이여.”
그로부터 며칠 후, 칼루스 황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황금빛 궁전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황제는 윤기가 흐르는 호화로운 음식들과 신두 종족들이 즐겨 마신다는 그들의 음료를 먹고 마시고 있었다. 칼루스는 자신과 함께 이 축제를 즐기는 이들의 행복한 표정들을 보며 매우 흡족했다. 이 모습이 바로 그가 바라던 제국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즐기는 이 사치와 번영을 자신이 다스리는 제국에 속한 모든 이들이 마땅히 누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시작할 것이다.
“하하, 정말 즐겁지 않느냐? 이스칼, 내 오래된 벗이여! 이 모습이 바로 짐이 꿈꾸는 진정한 이상향 그 자체이니라! 짐은 이 광경을 제국의 모든 이들이 밟고 있는 땅 위에서 반드시 실현시킬 거야!”
“정말이지 듣기만 해도 황홀해지는군, 칼루스 황제여. 언젠간 그 꿈이 실현될 날이 올 것이야… 자네의 통치가 끝나는 날엔 못 보겠지만.”
“무슨 말인가, 이스칼? 그때는 짐의 어여쁜 딸인 카이아틀이 실현해줄...”
“축제는 끝났어요, 아버지. 이제 현실로 돌아오실 때입니다.”
칼루스 황제는 갑자기 대규모의 군사들을 이끌고 온 자신의 딸을 보며 당황했다.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딸은 정작 자신에게 끝없는 증오의 불길을 내뿜으며 병사들에게 고함을 쳤다. 딸의 명령에 따르는 반역자 무리들은 순식간에 황제의 축제를 즐기던 가신들과 호위 병력들을 포위했다. 칼루스는 자신을 지켜줘야 할 샤오텟과 이스칼이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에 크게 경악했다.
“이스칼 내 벗이여, 왜 짐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이냐? 그리고 딸아… 지금 뭘 하려는 게냐? 짐이 총애하는 가울의 병사들을 이끌고 지금 뭘 하자는...”
“이 일은 황녀께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오, 황제여. 또한 그대 곁에서 아첨을 일삼는 비겁한 배신자가 꾸민 것도 아니지… 이건 당신이 그토록 총애한다는 유령 사령관, 내가 계획하고 주도한 것이오.”
칼루스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았고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자신의 충실한 부하이자 친구인 가울이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 동료들도 자신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이들이였으며 그 중 한 명은 자신이 직접 자유민 신분을 줬던 오트조트도 있었다. 말을 잃은 황제 앞까지 온 가울은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이었다.
“오늘의 일은 전부 다 내가 꾸미고 계획한 것이다, 황제여. 나는 낙오자로 태어났지만, 나를 구해주고 힘을 기르게 해준 내 스승 덕분에 강해졌다. 그리고 그의 숙원을 위해 일부러 노예 검투사가 되어 당신의 관심을 끌어내려 했지. 다행이도 나의 노력은 헛되이 되지 않았고, 당신은 나를 거두었다. 이젠 나의 스승의 복수를 할 시간이 되었다.”
“가울… 가울…!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설마 이것도 오늘의 축제 중 일부인 것이냐? 연극 치고는 너무나도 무섭고 진짜 같다! 축제 담당관, 설명이라도 해다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황제 폐하… 죄송합니다만 지금 유령 사령관이 말하는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폐하께선 이제 곧 죽을 것입니다. 저흰 그 동안 황제 폐하의 은총과 영광을 받아 먹고 살아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제국의 태양과도 같은 번영과 영광을 위해선 이제 그만 물러나주셔야 하옵니다.”
“마침내! 내 복수의 시간이 왔구나! 정말 잘해주었구나, 나의 제자여! 어서 제국을 망가뜨리는 기생충과도 같은 저 자를 당장 처형하거라! 그를 죽일 수 있는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일행 중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영사는 기쁨에 만끽하며 연회장에 들어왔다. 칼루스는 옛날 자신이 직접 내쫓았던 영사가 돌아온 것에 깜짝 놀랐고 가울과 다른 인물들을 바라본 끝에 사건의 진상에 대해 깨닫는데 성공했다. 황제는 가울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울! 설마 짐을 죽일 건가?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대는 잘 알지 않느냐? 짐이 얼마나 그대를 총애하고 아껴왔는지! 정녕 그 시절들을 잊은 것이냐?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부디 짐을 헤치지 말게나! 또한 그대는 저 영사의 밑에서 자라왔으니 잘 알지 않겠나? 영사는 지금 자넬 조종해 우리의 제국을 독차지하려는 거야! 자네는 그저 이용당하는 것일세!”
“헛소리 따윈 집어치워라, 황제! 가울, 설마 저 나약하고 입만 번지르르한 황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기억해라, 너가 나락 구렁텅이에서 헤메고 죽음만을 기다렸던 날, 널 구해주고 강하게 키워준 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그 약속 때문에 오늘날의 너가 탄생한 것이고, 이제 그 약속을 실현시켜야 한다.”
가울은 계속되는 영사와 황제의 말을 들으며 내적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둘의 말은 모두 맞았다. 자신의 스승 영사는 그날 자신을 구해줬고 자신을 기갑단 최강의 전사로 만들어주었다. 그의 꿈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황제의 부하가 되고 난 후 영사가 말해준 말과 다르게 황제는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부하들을 대해주었고 특히 자신을 제일 총애하고 기특해주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황제의 말이 더 맞는 거 같았다. 가울은 잠시 생각한 끝에 영사를 보며 말을 했다.
“영사 내 스승이여,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황제를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어쩌면 득이 될수도 있을 거 같소. 비록 그는 제국을 망가뜨린 죄악이 있지만, 우리의 걱정 많은 축제 담당관 말처럼 황제는 백성들에게 너무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소. 황제를 지금 죽인다면, 그는 순교자가 될 것이며 수많은 이들이 우릴 죽이려 들 것이오. 차라리 황제를 살리는 대신 천천히 황제의 업적들을 약화시키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후, 때가 될 떄 그를 죽여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소.”
“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넌 분명히 그 날 칼루스를 죽이겠다고 말했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을 바꾸겠다고? 너답지 않구나, 가울. 그리고 감히 나와의 약속을 어기겠다고?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해준 것들은 전부 다 무시하겠다는 것이냐? 너가 감히 그럴 일을 해도 된다는 거냐?!”
“영사, 난 아직도 그대가 나에게 힘을 가르쳐 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또한 나를 교묘하게 조종하고 날 지배했었다. 그 동안 저 황제와 함께 지내면서 그대가 내가 말한 말들과 상당히 달랐다. 영사, 당신은 날 속였다. 당신이야말로 자신의 소원을 위해 순수하고 나약했던 아이를 속인 건 지금 내가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아닌가?”
“말조심해라, 제자여! 넌 내가 버려낸 무기다! 무기는 항상 자신을 사용하는 주인의 말에 따라야만 한다. 오늘날의 너를 만든 것은 바로 나이니, 너는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자,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황제를 죽여라. 어서!”
가울은 결국 황제의 목을 칠 예정이었던 검을 자신의 스승에게 겨누었다. 영사는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했다. 그는 주위에 있는 가울의 병사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제자에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자는 것이냐? 너가 감히 나를? 다들 뭐하는 거냐? 당장 가울의 검을 물리도록 해라, 어서!”
하지만 영사의 말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몰리 아몰리와 이스칼은 예상 밖의 전개에 어안이 벙벙해져 감히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황녀 카이아틀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고 오트조트와 대장군 우문아라스는 병사들과 함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샤오텟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칼루스 황제에게 무기를 겨눌 뿐이었다. 영사는 아무도 자신의 말에 따라주지 않은 것에 놀랐고 가울은 그런 자신의 스승에게 말을 했다.
“보았는가, 나의 스승이여? 이들은 모두 나의 말에 따를 뿐이다. 이들은 모두 나의 동맹이자 부하이다. 당신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난 당신의 무기였다는 건 어느 정돈 맞지만, 나는 살아있는 무기다. 자유 의지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무기이다. 이제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 휘둘리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을 죽이지도 않을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를 버려내고 단련시킨 건 영사 그대이니까.”
가울은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칼루스 황제에게 검을 겨누며 닫았던 입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황제, 그대도 나를 완성시키는 것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나는 그대에게서 영사에게 받지 못했던 것들을 배웠고 얻었다. 자비, 연민, 포옹… 나는 그것들을 배웠기에 오늘의 거사를 도와줄 동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난 그대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칼루스 황제, 당신 덕분에 우리 제국은 망가지고 부패해버렸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겠다. 대신 당신을 유배시킬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그대가 자랑스러워 하는 업적들을 모두 부정할 것이고 제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 거다. 그리고 난...”
가울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권총을 3발을 정확히 3초에 걸쳐 쏘았다. 연회장의 모두가 그 행동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기갑단의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 태양을 정복했다는 아크리우스를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가울은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빛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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