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목록 :
화성의 어느 한 얼음 동굴 안으로 두 명의 사내가 들어가고 있었다. 두 명 모두 얼굴 전체를 가릴 정도의 가면과 머리 전부를 덮을 수 있는 로브를 쓴 채 나아가고 있었다. 선두에 선 이는 자신의 뒤에 있는 ‘신입’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자주 뒤돌아보았다. 반면에 뒤에서 따라오는 이는 오히려 앞의 인물이 불안해하는 것을 즐기는지 종종 ‘자신은 잘 따라오고 있다.’란 뜻의 제스쳐들을 슬며시 나타냈다.
잠시 후 그들은 동굴 안의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이곳은 작게 잡아도 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매우 큰 크기였다. 지금은 겨우 30명 밖에 없었지만 곳곳에 놓인 화로들과 무기와 탄약 상자들, 그리고 그 외의 잡동사니들 덕분에 텅 비어 보이지는 않았다. 새로 들어온 두 명들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보며 말을 했다.
“여기에서 기다려라. 내가 베인님께 말씀드린 후, 너를 우리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일 의식을 거행하도록 하겠다.”
“난 어디에도 도망가지 않을꺼요, 내가 원해서 당신들과 함께 하고 싶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도망치는 걸 감시할 인원들을 따로 세우지 않아도 될 것이오.”
“흠, 그러면 다행이겠군. 하지만 우리의 관습에 따라 자네가 원치 않겠지만 자넬 감시할 사람들은 있을꺼야,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말이지.”
그는 음침하게 말을 마치며 베인이라는 자에게 찾아가버렸다. 자신을 데려온 자가 떠나는 것을 본 우 밍은 천천히 자신이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자신이 들어가고 싶어했던 모임의 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음침하고 악독스럽지 않는 거 같았다. 하지만 우 밍은 이 사람들을 포함한 자기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고 이 모임도 평범한 모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우 밍은 이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이들의 소문들을 착실히 모았고 이들의 발자취를 쫓아갔고 이들이 추구하는 것을 몰색한 끝에 그는 자신의 목표를 손에 쥐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일원과 만난 우 밍은 자신의 갈고닦은 화술을 발휘해 그들에게 죽는 대신에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다.
잠깐 생각에 빠졌던 우 밍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느 한 인물을 보았다. 그 역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이 모임에 속한 사람 치고는 정중했다.
“반갑소, 그대는 혹시 새롭게 우리의 대의에 합류하는 이요?”
“만나서 반갑소… 이다만, 어떻게 아신 거요? 여기 있는 전부가 가면을 쓰고 있고 복장도 다 어두컴컴하게 입었는데 굳이 날 콕 찍어서 알아맞힌 거요?”
“하하, 누구나 처음에 우리의 모임에 들어왔을 땐 당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내가 가입될 이 곳은 대체 뭐하는 곳인가 하고 두리번 거린다오. 그리고 아직 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소. 그대에겐 우리가 가진 물건이 없기에 새로 가입할 이거나 포로거나 둘 중 하나로 판별할 수 있소.”
“그리고 내가 곧바로 끌려가지 않고 특별히 감시 안 받고 있으니 난 포로가 아니므로 신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건가?”
“그렇소. 당신 생각보다 꽤 영리하군. 우리의 일원이 된다면 우린 엄청난 전력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소.”
“칭찬해주어서 고맙군. 그렇긴 그렇고 우리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데 이름 공유 좀 하는게 어떨련지?”
“세간에는 ‘캘럼’이라 불리고 있지, 난.”
“그렇다면 나도 세간의 이름으로 하지, ‘우 밍’이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우 밍.”
“나도 마찬가지요, 캘럼.”
바로 그때, 떠났던 사내가 우 밍과 캘럼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두 명이 서로 대화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는지 목소리에 짜증이 조금 묻어져 나왔다.
“컬, 우리의 법도에 따라 새로 합류할 이와 아직 대화하면 안되지 않나? 다음부턴 새로이 합류하는 이들을 그냥 혼자 조용히 있도록 하게,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리고르님. 그러면 전 가보겠습니다.”
캘럼은 리고르라 불리는 사나이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선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우 밍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리고르가 최소한 이 모임에서 꽤나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해보았다. 리고르는 그런 우 밍의 생각을 읽은 건지 우 밍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너도 방금 대화를 통해 내가 생각보다 여기에서 꽤나 높은 지위의 인물인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너는 나의 추천을 통해 우리의 모임에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 밍.”
우 밍은 이 거만한 사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자기가 무슨 특권을 누리는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이 꼭 마치 예전에 자신이 보았던 자칭 전쟁 군주와 강철 군주를 보는 거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공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계획이 박살날 수 있기에 그는 우선 예의바르게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예, 알겠습니다. 리고르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아까 전에 나와 말했던 말투보단 훨씬 낫군, 그래. 잠시 후면 자네의 입단식을 열릴 꺼야. 하지만 자네는 운이 엄청 좋군. 아까 베인님에게 들은 것이 진짜라면… 자네의 입단식에 우리 모임의 진정한 수장님께서 자넬 직접 치하해줄 것이니...”
잠시 후 동굴에선 리고르가 말한대로 의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등불들이 타올랐고 여러 고서들이 펼쳐져 여러 단상들과 바위들 위에 올려졌다. 몇 명은 자기네들의 기도문 아니면 문구들을 중얼거렸다. 이러한 광경들을 보며 우 밍은 이 곳이 자기가 오고자 했던 곳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연단 역할로 보이는 좀 높아 보이는 바위 위로 한 명이 올라왔다. 그 자 역시 온 몸을 가린 로브와 가면을 썼지만 다른 이들과 다르게 가면이 독특했다. 마치… 우는 사람의 표정을 형상화 듯한 생김새였다. 아마도 저 사람이 리고르가 말했던 베인인가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우 밍은 예상했고 그의 생각은 맞았다.
“형제자매들이여, 그림자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대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비록, 오늘 이 장소에서 모든 형제자매들이 모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함께 이 집회를 기를 것이다. 아이아트(Aiat), 요르.”
“아이아트, 요르. 아이아트, 요르. 아이아트, 요르.”
우 밍은 그들의 기도문들을 들으며 만약 자신과 같은 이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본다면 주저 없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다 죽일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른바 타락한 암흑기의 부활한 자, 요즘은 타락한 수호자라 불리는 일명 ‘요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었다.
요르의 그림자는 최초로 어둠에 타락한 수호자이자 수호자와 고스트를 죽일 수 있는 무기인 ‘가시’의 주인, 지금은 죽은 ‘드레젠 요르’라는 남자를 찬양하고 믿는 단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경로로 통해 가시를 복제한 가짜 가시들을 만들어 드레젠 요르처럼 되겠다는 목표를 지닌 단체였다. 하지만 그들이 신처럼 믿는 드레젠 요르는 실제론 죄없는 수많은 수호자들을 학살한 미친 자였을 뿐이걸 우 밍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밍이 미친 자를 우상화하는 제정신이 아닌 단체에 제발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 드레젠 요르 때문이었다. 우 밍은 수호자로 부활되어 살아오면서 그 정의롭다는 빛의 힘을 쓰는 자들이 별로 정의스럽지 못한 점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고 체험해봤다. 그는 자신도 부릴 수 있는 이 빛의 힘과 그 힘을 주고 자신을 부활시켜 주었다는 타칭 ‘여행자’라 불리는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흰 공을 믿을 수 없었지만, 이 세계를 혼자 떠돌면서 느낀 것은 하나가 있었다. 자신, 더 나아가 인류를 헤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한편 드레젠 요르는 빛의 힘 말고 군체들이 사용하고 숭배하는 이른바 ‘어둠’의 힘을 수호자가 행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리고 그는 그 어둠의 힘으로 빛의 힘만을 쓰는 수호자 여럿을 죽였다. 우 밍은 그의 전설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만약에 어둠의 힘을 쓸 수 있다면 그들의 힘으로 그들을 무찌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수호자들끼리 서로 싸우며 죽인 것처럼?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그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 녀석들은 분명히 정신 나간 친구들이겠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드레젠 요르와 관련된 정보들, 가시에 대한 정보들은 대단한 값어치를 갖고 있으리라. 자신의 생각을 끝나자 우 밍은 그들이 기도문을 읊는 것을 그만 둔 걸 깨달았다.
“오늘 그대들과 내가 이 장소에서 만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 형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의 드레젠 리고르 형제가 지구의 설원에서 한 수호자와 만났다. 그 수호자는 우리 요르의 그림자의 진의와 대의를 아는 이타심과 이해심 넓은 형제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와 같은 운명을 짊어지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우리의 동료이자 가족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드레젠 베인의 말에 몇몇 드레젠들이 작게 말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젠 베인은 그들의 반응에 아랑꼿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형제가 우리에게 합류하는데 있어서 아주 특별한 분께서 같이 참석해주시기로 했다. 또한 그 분께서 직접 세례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바로… 나와 함께 요르의 그림자를 창설한 자이자 드레젠 요르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자… 드레젠 베일님이시다!”
드레젠 베일이란 이름에 다들 놀란 반응들이 나왔다. 우 밍은 곁눈질로 리고르 또한 놀란 듯한 몸짓을 확인했다. 도대체 베일이란 자가 누구길래 다들 저런 반응들이 나오는지 궁금한 우 밍은 다른 한편으로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미소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베인이라는 자보다 더 수장에 어울리는 자가 직접 나타났다니…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잠시 후 동굴 한 구석에서 스산한 기운과 함께 헌터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에 가시를 든 채 등장한 그 역시 온 몸을 덮은 망토와 가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베인처럼 특이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의 가면은 마치… 악마와도 같은 얼굴이었다.
베일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성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섰고 양 팔을 들어 군중을 진정시켰다. 조용해지자 드레젠 베일은 입을 열어 자신의 말을 모두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형제자매들이여. 그래, 내가 바로 드레젠 베일이다. 내가 그 동안 바빠서 그대들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드레젠 요르님을 살해한 자, 신 말푸르가 우리 형제자매들을 죽인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우 밍은 베일의 말에 갑자기 이 모임에 들어온 것에 대해 살짝 후회감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모은 정보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만약 이들과 계속 함께 한다면 어떤 사내에 의해 영원히 쫓겨다닐 생각에 우 밍은 살짝 겁이 났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 그는 지금도 태양계 전역을 돌면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찾아내 차례차례 죽이고 있다. 하지만 걱정마라! 비록 희생은 불가피하겠지만, 우리의 대의는 진실되니 오늘 새로이 합류할 이 형제처럼 점차 우리와 함께할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하나의 형제 혹은 자매가 사라지면 둘 이상의 형제자매가 대신 채워질 것이다!”
베일의 격려사에 드레젠들은 환호하며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우 밍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이 모임에 합류를 안 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있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황야의 비석처럼 가만히 서 있는 우 밍에게 베인이 가까이 와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리게, 곧 있으면 자네의 입단식을 진행할 테니, 그 동안 자네의 새로운 이름을 한 번 생각해보게나.”
지구의 발사기지.
드레젠 호프란 이름을 새롭게 가진 우 밍과 리고르는 자신들과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시체를 조용히 처리하고 있었다. 우 밍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리고르는 그의 태도에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우 밍을 불렀다.
“아까 전에 한 일에 불만있나, 호프?”
“갑자기 왜 그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리고르님?”
“아까 우리의 적들과 싸울 때 말이다, 호프. 넌 쏘는 것을 잠시 주저했었다. 왜 그런 거지?”
우 밍은 리고르의 물음에 죽은 여성의 시체를 땅 속에 파 묻는 걸 그만두고 허리를 피며 리고르의 물음에 답변했다.
“수호자들을 처리하라는 건 할 수는 있습니다, 리고르님. 하지만 이들은 그냥 수호자들이 아니였어요. 그 놈들과 함께 있던 민간인들입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요르의 그림자는 우리의 뜻에 반하는 수호자들만 싸우는 게 아니였나요?”
“뭔가 잘 모르는 거 같군, 호프. 우리의 대의를 막아서는 자들은 모두 적이다. 그 적이 여행자의 성실한 노예들인 수호자든 그냥 평범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건 상관없지. 우리는 적들을 그냥 살려줄 필요가 없다. 살려준다하더라도 녀석들은 나중에 우릴 공격하고 없애버릴 것이다. 그런 위협들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까지 죽인 것까지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리고르님.”
“까불대지 마라, 호프. 넌 아직 신입에 불과해. 요르의 그림자 내에서 내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은 너도 잘 알텐데, 그런 나에게 지금 반항하겠다는 건가?”
리고르는 자신의 허리에 끼워져 있는 핸드 캐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대놓고 보이는 행동에 우 밍은 살짝 긴장하며 리고르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 앞에서 그 행동을 그냥 보여줘도 됩니까? 우린 같은 드레젠이지 않습니까? 제가 드레젠이 된 날에 읽은 규칙에 따르면 드레젠끼리 죽이면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그래, 그런 규칙이 있지. 하지만 베인이나 베일은 너무나도 허약해. 그저 우리의 숭고한 뜻에 가볍게 넘어간 이들마저 받아주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너 같이 강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녀석들은 드레젠에서 그냥 떠나려 하지.”
“전 그런 녀석들과 다릅니다, 리고르님. 너무 성급하게 단정짓지 마십쇼.”
“아니, 난 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살았다, 호프. 때문에 난 사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지. 나에겐 보인다. 넌 그런 녀석들이랑 같아. 이렇게 허약한 니 놈이 요르의 그림자에 있을 자격이 없어.”
“만약 제가 여기서 죽는다면 다른 이들에게 뭐라 변명할 것입니까?”
“너무 약해서 수호자들에게 죽었다고 하면 되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그 때 우 밍은 그의 말과 천으로 둘러쌓여 있지만 바람에 살짝 풀어헤쳐져 보인 그의 건틀릿을 보고 리고르의 진정한 정체를 깨달았다. 우 밍은 리고르가 자신의 페이스로 넘어가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리고르, 당신은 전쟁 군주 출신이군, 안 그래?”
“… 뭐라고? 니 놈이 어떻게 그걸...”
“전쟁 군주들은 항상 자기들이 맘에 안 드는 것들은 전부 짓밟아버리는 특징이 있지. 네놈과 같이 말이야. 오죽하면 서로 싸울 정도잖아? 너가 같은 드레젠들을 살해한 것처럼.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오래 산 몸이야, 리고르. 너가 그렇게 꽁꽁 숨겨둔 전쟁 군주의 문양만 봐도 너가 전쟁 군주였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어, 이 오만한 자식아.”
리고르는 자신의 비밀이 모두 밝혀진 듯 보이자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선 재빠르게 자신의 핸드캐논인 가시를 꺼내 우 밍에게 똑바로 겨누었다. 순식간에 당한 우 밍은 순순히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생각보다 영리한 친구였어, 뭐 나와 같은 시대에 부활한 자라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군.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널 죽여야겠어. 내 정체를 안 이상 넌 더 이상 살려둘 이유가 아예 없거든.”
“전쟁 군주였다는 과거를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서 요르의 그림자에 숨어들었고 전쟁 군주였던 시절의 습관을 그대로 하다가 다른 이들이 들킬 여지가 생기면 녀석들을 처리했다… 계속 그래왔다는 거군, 그래.”
“그 말 맞다, 호프. 이젠 다음 희생양은 바로 너지. 너무 똑똑한 친구들은 괜히 잘난척하다 일찍 죽고 그러지. 자, 어서 니 놈의 고스트를 꺼내라.”
“그렇다면 너도 너의 고스트를 꺼내지 그래, 어?”
“아 아쉽지만 난 이미 내 고스트를 잃어버렸다. 망할 펠윈터 자식, 강철 군주로 투신한 엑소 녀석 덕분에 내 고스트는 이제 없지만, 오히려 그거 때문에 여러 이점들은 몇몇 있더군. 자 말은 여기까지, 내 말에 따라 행동해라.”
“아쉽지만 그건 나중에 미뤄야겠는데?”
갑작스러운 다른 이의 말에 우 밍과 리고르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폐건물 속 어둠에서 한 발의 총알이 날아왔고 정확하게 리고르의 오른손을 관통했다. 리고르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오른손을 쥔 채 쓰러졌다. 우 밍은 총알이 날아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어둠 속에서 방독면을 쓴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매우 고풍스러운 핸드캐논이 있었다. 그 핸드캐논을 보자 우 밍은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요르의 그림자의 적, 드레젠 요르를 처단한 자, 황금총의 사나이. 신 말푸르였다.
신 말푸르는 우 밍을 신경 쓰지 않으며 리고르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드레젠 리고르. 요르의 그림자의 간부들 중 한 명이자 방금 전 저 드레젠 친구 덕에 밝혀진 전쟁 군주. 너에겐 셀 수 없을 정도의 죄목들이 나열되어 있겠군. 너 같은 녀석은 드레젠 요르보다 더한 악독한 친구야. 너 같은 녀석은 유언을 남길 자격조차 없다.”
“으으윽…. 시끄러워… 난 단지 저 하늘에 뜬 하얀 공한테 받은 불멸과 힘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이 전지전능한 힘을 남을 위해서 써야 하나, 어?!! 이 힘이라면 지구 아니 온 우주를 지배할 수 있다고! 드레젠이나 니놈들과 같은 수호자들은 그걸 모르는 한심한 바보들 뿐이라고!”
“그리고 넌 그런 한심한 바보들에게 죽는 더 한심한 녀석일 뿐이지.”
말을 마친 신 말푸르는 내면의 태양의 힘을 발휘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그는 똑같이 타오른 유언으로 정확히 3발로 리고르를 처단했다. 한때 전쟁군주였던 드레젠이 누운 자리에는 이젠 사람 형상의 검게 그을린 자국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끝나자 신 말푸르는 원래대로 돌아왔고 우 밍을 향해 핸드캐논을 겨누었다.
“니 놈의 이름은 뭐지, 드레젠?”
“드레젠으로서, 아니면 일반적인 수호자로서?”
“둘 다.”
“드레젠으로서는 드레젠 호프, 수호자로서는 우 밍이다.”
“호프(hope)? 드레젠 치곤 꽤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름이로군, 그래.”
“안된다는 법은 없지 않나. 이제 날 죽인 건가, 황금총의 사나이?”
신 말푸르는 잠시 동안 우 밍의 영혼을 보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 밍은 그의 잠잠함에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신 말푸르는 유언을 총집에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니놈만큼은 살려주마. 아까 너희들의 대화를 엿들어서 아는 거지만, 넌 저 리고르처럼 완전히 썩어빠진 녀석은 아닌 것 같군. 어느 정돈 양심이 있어.”
“… 고맙다.”
“하지만 오늘 만이다. 오늘 이후로 다른 곳에서 널 만나면 난 주저없이 널 처단하겠다. 너희들과 같은 드레젠 녀석들은 드레젠 요르처럼 미치고 타락한 녀석들이니 난 너희들을 죽일 의무를 다하고야 말겠다.”
“경고이자 위협인가? 어서 드레젠을 그만두라고?”
“내 맘은 그러고 싶지만 넌 그걸 원하지 않겠지. 너의 선택에 맡기겠다. 넌 똑똑한 녀석이니 분명히 옳은 결정을 내리겠지.”
말을 마친 신 말푸르는 다시 폐건물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 밍은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치 드레젠 베일과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둘이 같은 헌터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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