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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청의 일기 2023년 10월 04일

Broadcaster 설청이
2023-10-04 17:08:17 340 0 0

가끔 꿈을 꾼다.

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과거다.


나는 그때가 제일 즐거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


과거로 딱 한 번만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분명 그때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가장 무섭고, 힘들고, 슬펐던 때를 고르라면 그 또한 거침없이 그때를 고르겠지.


날 응원했던 가족들, 날 좋아해 주던 사람들.

친구처럼, 연인처럼, 가족처럼, 든든한 지원군처럼 언제나 내 옆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던 사람들.

내가 조금 모자라고 바보 같아도 그저 웃어주고 도와주던 사람들.

나는 이게 천직이라 생각했다.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술했듯, 모든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어떨 때는 세상에 나서서 내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나를 막고, 괴롭히고, 시험하고, 나의 한계를. 내 정신을 확인하려 드는 것 같았다.


내가 행복해지려 할 때마다 내 마음속 폭풍은 거세졌고 나는 겁쟁이가 되어 갔다.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소중한 게 너무 많았다.

감정의 높고 낮음에, 무언가를 향한 애착과 집념에 적당히가 없었던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암시했다.

깊게 좋아하지 말라고. 언제든 쿨하게 털어내고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애정만 가지라고.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갓난쟁이처럼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근데 또 한 번 좋아지면 너무 좋아하게 되고, 한 번 싫으면 한없이 싫어진다.

아이가 밤이 무서워 으레 엄마를 찾듯, 엄마의 품이 세상의 전부이듯.

나는 한 번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내 세상이 되고, 전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바보 같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잃을 게 많아지니, 무서운 것도 많았다.

매일을 두통에 시달렸고, 밤마다 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이 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유흥 거리를 찾아 그곳을 떠돌아다닐 것이리란 생각에 컴퓨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 혼자 남으면 어떡하지?


그날도 부모님 집에 가는 날이었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실망할까 봐 일을 도우러 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어쩐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추워. 아파.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어버릴 것 같은 정신으로 어떻게서든 말을 전한다.


나 아파요. 너무 아파요.

분명 가기 전에 다음 주에 또 만나자고 인사라도 하려 했던 것 같은데.

핸드폰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 꺼져 있는 컴퓨터를 바라만 봐야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오빠가 날 업고 병원에 갔다.

열이 40도래. 걸을 힘도 없어 간호사 선생님이 휠체어를 밀어줬다.

열이 너무 높아 곳곳의 장기가 다 부풀어서 입원을 해야 한단다.

소화 기관이 전부 엉망이 돼서 밥도 못 먹는다.

하루 종일 토한 나머지 초록빛의 액체만 나왔다. 그게 위액이라던데.


열을 내리는 주사를 맞았는데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은 병원에 있어야 한대.

병원엔 컴퓨터도 없는데. 마이크도 없는데.

일주일이 지옥이었던 나는 스스로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이 펄펄 끓었다.


일주일을 꼬박 굶었다. 침대에만 누워 있었더니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다.

다리가 얇아졌다. 그건 좀 기분이 좋은데, 여전히 아파.


꽤 오래 있었다. 팔로워는 갈수록 줄었고 급기야 나는 아예 페이지를 거들떠도 안 봤다.


그 사라진 숫자 중에 나와 웃고 떠들던 네가 있을까 봐.


이젠 아프지 않다. 문제 없이 식사를 하면 그때 퇴원하자더라.

근데 이미 날은 추워졌다.

나는 무서워서 모든 걸 외면했다.

그저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가족들도 있고, 집도 있고, 난 그대로 살아 있고.

너희는 없어도 돼.

아니, 없는 게 나아.

차라리 없었어야 했어.

그런 건 하지 말았어야 했어.


누군가 나에게 후원을 했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받은 게 미안해서 모든 수단을 다 없애버렸다.

쓰자니 양심이 없고, 누굴 주자니 그 사람에게 미안해 안 쓰는 통장에 넣어버렸다.


아파하는 이들을 외면한 채 아파하지 않을 이들만 의식하며 멍청하게 굴었다.


곧 스물 한 살이네. 처음 스무 살 됐을 때 참 재밌었는데.

생일이다. 여전히 친구들은 축하해 주지만 뭔가 심심해.

발렌타인데이. 나 초콜릿 진짜 잘 만들었었는데.

화이트데이. 쿠키 굽는 연습을 했었는데. 결국 못 줬지만.

공휴일이네. 이런 날은 오전에... 아...

이젠 케이크도 구울 수 있게 됐는데, 자랑 할 곳이 없어.


오늘도 꿈을 꿨다.

급기야 이런 상상도 해 본다.

사실 나는 아직도 너희를 만나고 있는 거 아닐까?

몽유병이나 이중인격... 뭐, 그런 건 아닐까?

근데, 난 여전히 무서워.


늘 50 언저리던 즐겨찾기.

오랜만에 들어오니까 90이 돼 있었다.

기분 참 이상해.


그냥저냥 잘 지낸다.

해보고 싶었던 것도 해 보고, 직접 일해서 돈도 벌어보고.

근데 아직도 가끔 듣는다. 넌 참 입으로 밥 벌어먹는다고.

그랬던 적도 있었죠, 뭐.

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세상이었고, 태양이었다는 게 참 기분은 좋다.

듣기 좋잖아.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는 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참 슬프긴 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지금 누군가의 태양이 아니라 저주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겁쟁이를 누가 좋아하겠어.

근데 어쩌겠어. 다 내가 저지른 일인데.

스스로 구멍에 파고 들어간 쥐를 누가 억지로 끌어내겠어? 잡아 죽이려는 거라면 몰라도.


또 꿈에 나왔다.

미련을 버리기가 참 힘들다. 떠올리기만 해도 괴롭고 슬퍼진다.

맞아. 그래서 내가 짝사랑도 안 했었지.

미련하게도. 나는 참 금붕어다.


벌써 1년이 넘었다. 무뎌지는 것 같았지만, 무의식 속엔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도 버리지 못했어. 네가 준 선물.

방송용 외장하드는 여전히 서랍 속에.

네게 보내려던 편지는 침대 밑에 있어.

모니터는 이제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어째선지 두 개가 마음이 편해.

올리지 못했던 동영상은 여전히 바탕 화면에 남아 있어.


엄마가 들어와 방 정리 좀 하라 했다.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엄마는 꽃이 좋다며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사촌 준다며 조명 달린 웹캠을 챙겼다.

엄마가 고른 것들을 예쁜 상자에 담아 가져갔다.

근데도 여전히 네게 하지 못한 말들이 침대 밑에 있어.


문득 유튜브에 뜬 누군가의 생방송 클립. 참 즐거워 보여.

외장하드를 정리하다 발견한 예전의 흔적들. 맞아, 이런 것도 있었지.

폴더를 보기만 해도 10분 전에 부랴부랴 준비하던 그때가 생각나.

방송 시작 전에는 늘 팝송을 틀어줬지.

난 지금도 들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 가벼워질까.

부디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다.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소식 한번 없이 숨어버린 나를 원망하기를.

슬프지 않은 이들이 두려워, 슬퍼하는 이들을 외면한 나를 용서치 말기를.

여전히 겁 많고 멍청한 나를 실컷 비웃어 주기를.

그럼에도 나로 인해 구겨지지 말고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멋있게 살아가기를.


난 당신들을 정말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더욱 나서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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