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즐디님.
역대급 장마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폭염이 내리쬐는 스펙타클한 여름의 끝 이네요
말복을 넘기고서도 푹푹 찌다가 이제서야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낮에는 밭에 나가 계시는 즐디님이라면 날씨의 변화를 확실히 느끼시겠지요
오늘은 조금 늦긴 했지만 여름하면 거의 무조건 연상되는 납량특집 느낌으로 괴담을 한편 소개시켜 드릴까 합니다.
요즘에는 사연도 안올라오고 즐디님도 슬램덩크에 빠져 사시는 것 같아 즐디오에서 이 사연을 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재미로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심장이 약한 즐청자를 위해 깜놀짤은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ps :처음들었을 때 어떤 남자 연예인의 경험담이라고 하던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요
2000년대 초 어느 가을날, 일이 생겨 서울에 며칠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 이었답니다.
지방으로 이어지는 한적한 국도를 타고 하염없이 내려가길 몇시간 째
어느새 도로엔 어둠이 깔리고 뜨문 뜨문한 가로등의 불빛만이 도로를 비추고 있었고
펜스옆에는 수확철이 되어 황금빛을 발하는, 끝없이 이어진 논밭의 벼 행렬이 달빛을 받아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아름답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끝이 날 것 같지않던 논밭도 지나가고 얼마 뒤 수풀이 우거진 들판과 언덕이 나왔고, 남자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 멀리, 헤드라이트의 시야 끝에 , 반쯤 수풀에 삼켜진, 집처럼 보이는 단층의 콘크리트 건물이 보이더랍니다.
분명 아무신경도 안쓰고 운전만 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논밭을 감상하느라 계속해서 펜스 바깥쪽을 보고 있었고,
눈썰미가 좋았던 남자는 무성한 수풀 사이에 모습을 감춘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이질적인 구조물을 한눈에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 건물을 이상하게 살펴보던 남자는 더욱 이질적인 존재를 보게됩니다.
콘크리트 건물쪽으로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형체가 더욱 확실하게 보였고, 낡아서 반 쯤 허물어진 외벽의 안쪽에
사람이 한명 있었단 겁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긴 머리카락이 보이는걸로 미뤄 봤을때 여자였고, 신기하게도 춤을추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답니다.
달빛아래 박자를 타는 듯 안타는 듯 한 불규칙한 리듬으로,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그 여자의 기이하고 신비로운 춤은 국도를 벗어나 집에 도착해서도 남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 여자가 잊혀지지 않자 그 남자는 결국 다시한번 그녀를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논밭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장소였기 때문에 다시 그곳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펜스를 넘어 콘크리트 건물안으로 들어간 그의 앞엔 며칠 전의 그여자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부서진 콘크리트 천장에서 튀어나온 철근에 밧줄로 목을 매 죽어있는 채로
그 자리에서 바로 뛰쳐나온 남자는 겁에질린 채 몇십분을 목적지 없이 운전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공포에 굳어있던 머리가 어느정도 풀리자 남자에겐 끔찍한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을 지탱하는 힘이 사라져 1.5배는 더 무거워진다는데, 가을의 산들바람으론 시체가 내가 봤던 그 역동적인 동작처럼 흔들리는건 무리다" 였죠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에는 두가지 해답만 남았습니다.
첫번째는 "내가 정말로 귀신에 홀려서 그렇게 보였다"
두번째는 차라리 첫번째 해답이 정답이었으면 싶을정도로 잔혹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내가 그곳을 지나갔다" 였죠.
죽으려던 의지와는 다르게 목이 끊어질듯 한 질식의 고통으로 생존본능이 발동되어 밧줄을 잡으려던 그 처절한 몸부림,
그 필사적인 몸짓이 멀리서 지켜본 그에게는 춤으로 보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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