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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라디오 사연 하나 적습니다!

익명6e490
2019-04-25 03:13:45 198 2 0

(이 일은 사실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닐거리는 아니라...누군지 눈치 채셔도 익명으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절미님!^^

잘은 모르겠지만 사연라디오는 이렇게 시작하길래 멘트 써봤어요ㅎㅎ 라디오에서 보면 다들 이렇게 하던데..아닌가요?

아무튼 제가 오늘 적을 사연은 제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남자문제로 친구랑 멀어진 얘기에요ㅠㅠ

흔한 얘기지만 흔한 스토리의 아침 드라마가 인기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서 아닐까요!ㅋㅋㅋ

음 제가 그 친구에게 아직도 좋은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서 좀 편향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기본적으로는 제가 처음 잘못을 시작하는 이야기라 재밌게 사연으로만 읽어주세요!


때는 고1 봄쯤으로, 저는 입학식날 하필 배가 아파서 하루종일 엎드려 있던 탓에 반에서 제대로 밥 같이 먹는 친구가 없었어요ㅠㅠ 딱 다들 어떻게든 친구 만들려고 말 거는 그 타이밍에 나도 꼈어야 하는데..하고 가끔 생각해요ㅜ

그러다가 제 앞 뒷번호에 있는 남자애들과 어떻게 잘 친해지게 되어서, 간신히 밥을 같이 먹게 되었어요! 그 친구들하고 관심사도 잘 맞고, 다 착한 친구들이라 정말 고마웠어요ㅠㅠㅠ..그렇게 반에 무사히 녹아들수 있었습니다!

"너 @@@(그 당시 좋아하던 관심사) 좋아해? 나도 그거 아는데ㅋㅋㅋ"

이게 아마 제가 친해진 첫 동성친구가 했던 말일거에요!!! 가명을 쓰자면...음...수진이로 할게요!

수진이는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지만, 저랑은 다르게 같은 중학교 출신의 친구도 있고, 원체 친화력이 나쁜 아이가 아니라서 친구가 꽤 있는 타입이었어요! 저는 수진이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취향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정말 재밌게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수진이와 이미 친했던 수진이의 친구들, 그리고 저와 친해진 남자아이들까지 합해서 꽤 큰 무리가 만들어졌고 함께 밥도 먹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아이들끼리 서로 '요즘 호감가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어요. 저는 딱히 없다고 얘기했고, 수진이는 머뭇거리면서 얘기했어요.

"나...영훈(가명)이가 요즘 좀..."

더 말하기 부끄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지만 다들 안다는 듯이 음, 음, 하고 수진이를 격려해줬고 저는 상당히 놀랐어요. 그 때 같이 있던 아이들 중에서는 제가 영훈이랑 가장 친했거든요! 그래서 조금은 생각없이, "어 그럼 내가 도와줄까?"하고 말을 꺼냈어요. 영훈이가 워낙 착하고 좋은 애라서 수진이가 영훈이랑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좀 더 수진이랑 친해지기 위해 무심코 꺼낸 말이기도 했어요.

수진이가 활짝 웃으면서 "아 진짜???고마워!!!!"라고 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아차...내 주제에 무슨....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최대한 열심히 두 사람의 접점만 만들어 주면 되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열심히! 두 사람의 다리 역할을 했어요. 영훈이와 제 번호가 가까워서 같이 할 일이 많았기에 대화도 잦았고, 대화 하면서 수진이의 좋은 이미지를 많이 얘기하거나 수진이를 포함해서 놀러가는 약속을 잡기도 했어요. 친한 사람끼리 4인조를 짤 때는 수진이와 저, 영훈이와 다른 친구를 껴서 조를 짠 다음 수진이가 영훈이 옆자리나 맞은 편에 앉도록 도와주기도 했어요! 나름 참 열심히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영훈이가 저를 좋아하는것 같은거에요...

처음에는 그냥 '에이 설마' 싶었는데.... 가끔 영훈이쪽을 보면 눈이 자주 마주친다거나,  장난치면서 얘기하거나 할 때 귀가 빨개지거나 하면서 점점 '어..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의 저는 생각이 없을 뿐더러 대담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영훈이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야 너 혹시 요즘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랬더니 영훈이 귀가 또 빨개지고.... 한참동안 답을 회피하던 영훈이는 결국...

"너..."

라고 말했습니다ㅠㅠ 솔직히 귀여웠어요.... 말하기 부끄러워서 책상에 엎드려서 대답하는데...귀만 빨개가지고...!

여기서라도 끊었어야 했는데...당황해서 저는 바보같은 질문을 했어요.

"어...그..그럼 너 나랑 사귀고 싶어?"

"....(작게 끄덕)"

아..정말 그 동안 수진이랑 영훈이를 이어주겠답시고 많이 얘기하면서,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영훈이한테 정이 많이 갔었나봐요ㅠㅠㅠ 수줍게 엎드려서 대답하는 그 모습이, 원래는 새하얗던 피부가 목까지 빨개진게, 너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어요ㅠㅠㅠ....

영훈이는 또 잠시 말이 없다가, "너 수진이랑 나랑 이어주려는거 아니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영훈이가 저한테 호감을 가진지는 꽤 되었는데, 자꾸 수진이랑 엮으려는 모습이 보이니까 아 얘는 나한테 관심 없다보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다는거에요....

저도 어느샌가 얼굴이 빨개져서 우물쭈물하다가 맞다고 했고, 영훈이는,

"그럼, 너 이런 상황 다 빼고...나 좋아해?"

라고 치명타를 넣었습니다. 경솔함 끝판왕인 저는 고개를 끄덕였구요.

결국 저와 영훈이는 사귀게 되었고, 워낙 소문이 잘 퍼지는 학교라 수진이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수진이한테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정말 면목 없다고 얘기하면서 잘못을 빌었어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수진이와 그 곁의 친구들이 모두 저에게 몰아붙일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잘못을 비는 대신에 조용히 넘어갔고, 수진이는 불 같이 화를 내는 대신에 저를 말 그대로 공기 취급하며 무시했습니다. 아, 물론 가끔 사람이 없는 곳에선 싸늘하게 보기도 했구요. 수진이의 무리에서 간간히 나오는 제 뒷담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때까지 친해졌었던 여자아이들과는 멀어지고, 한 동안은 남자아이들 무리와 같이 밥을 먹고 영훈이와 연애하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 후에 다른 여자아이들 무리와 연애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어요. '아, 이게 인소면 내가 악역이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구요ㅠ

그리고 영훈이랑은 그 해 겨울에, 새 학년이 되기 전에 헤어졌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게, 겨울방학이 되고 서로 오래 떨어져 있다보니 내가 왜 우정도 버리고 뒷담 까일 각오를 하면서 사랑을 선택한건지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겨울방학 기간에 결단을 내렸고, 영훈이가 공범자처럼 죄책감 느끼지 않게 나 혼자 그냥 나쁜 년으로 남아야겠다 싶어서 큰 대화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영훈이가 한 동안 많이 울었다고 친구한테 전해 들었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에는 영훈이도 마음 정리를 다 했는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진이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내가 경솔했다고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처음엔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던 수진이지만 중간쯤 가서 제가 울먹이기 시작하니,

"됐어. 나도 좀 솔직히 나 혼자서 꽁하게 뭐하고 있나 싶었어."

하면서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소중한 친구를 되찾았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수진이와 다녔습니다. 영훈이와 사귀고 헤어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수진이 무리의 아이들에게도 해명하고, 죄책감으로 인한 것인지 수진이를 많이 배려하고 신경쓰면서 지냈어요. 

아, 여기서 한 가지. 수진이 성격에 꽤 히스테릭한 면도 있었기 때문에 시험을 망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엎드려만 있었어요.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도 수진이를 챙겨서 급식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짜증을 심하게 내면서 종종 울었기 때문에, 결국 시험을 본 후에는 수진이가 다가오지 않는 이상 건드리지 말자는 암묵적 룰이 생겼어요. 그 때문에 수진이는 시험기간만 되면 혼자서 틀어박히곤 했구요. 

저는 그런 수진이가 신경쓰여서 그 날 급식에서 머핀이나 쁘띠첼 같은 맛있는게 나오면 급식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남은걸 챙겨서 가져다주곤 했어요. 학생인데다가 용돈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점 음식을 사다주진 못했어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그 외에도 수진이에게 양보해야하거나 해 줄 수 있는게 있으면 속죄 하듯이 다 들어주었어요. 생색내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저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ㅠㅠ 다른 친구가 저한테 "넌 왜 수진이한테 잡혀살아?; 짜증 안 나?"라고 물으면 "괜찮아. 그래도 내버려둘순 없잖아..."라고 얘기한다던가, 조금 더 친한 친구에게는 "내가 잘못한게 있어서 그래."라고 슬쩍 말을 꺼내다가도 괜히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일까봐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수진이는 점점 마음을 다시 열어주었고, 다시 저희는 '친구의 날' 행사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과 편지쓰기'에 서로를 쓸 만큼 친해졌어요. 서로 언제 그랬냐는듯 즐겁게 지내면서, 그렇게 모든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어요.

수진이가 그 일로 제 험담을 3년 동안 계속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수진이와 제가 함께 있던 무리에선 이미 제 해명으로 이 얘기를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수진이와 친한 다른 여자애들이나 나중에 무리에 합류한 친구들은 영훈이와 저에 대한 얘기를 넌지시 수진이한테 물어봤었나봐요. 저는 그 얘기가 나오면 피하려고 하고, 굳이 캐내더라도 제가 잘못한게 많았다는 식으로 뭉뚱그렸으니까요. 

어느 날은 수진이가 없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자기 연애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하는건 어떻겠느냐는 제 조언에  '야 솔직히 너한테는 좀....(듣고 싶지 않은데)'식으로 말해서 되물었더니, 그 친구가 수진이에게 들었던 제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도 수진이에게 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했구요.

수진이에게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그 일에 대해, 사실에 가깝되 제가 실제보다 더 지독한 악역으로, 수진이는 배신당한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영훈이에게 이미 마음이 있었는데도 수진이를 골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고, 영훈이에게 꼬리를 쳐서 영훈이가 넘어갔으며, 헤어지니 다시 수진이한테 붙었다는 식으로요. 수진이가 오해를 했나?하고 생각하기엔 제가 처음에 사과하러 갔을 때 자초지종을 다 말했었고, 제가 사과하기 전에 얘기가 퍼졌나 싶기엔 아이들이 수진이에게 이야기를 들은 시점이 상당히 최근이었습니다.

용서받은줄 알았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수진이는 조용히 제 뒤에서 험담을 퍼뜨린거에요.

한 동안 그 이유를 멍하니 생각했던것 같아요. 왜 수진이는 굳이 그 일을 꺼내서 제 험담을 했을까요.

고3이 되었더니 수진이의 히스테릭함이 도를 지나치면서 다른 친구들이 약간씩 거리를 뒀고, 상대적으로 무리의 아이들과 제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니 불안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단순히 거슬리거나 미워서였을까요. 수진이에게는 두려워서 아직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물어보면 수진이가 뭉그적하게 넘기면서 옛날 일을 왜 들추냐는 식으로 말할 걸 알거든요.

수진이에게 진실을 물어보지는 못 하고, 친한 듯 서로 웃으면서도 한 구석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도 수진이랑 그 때 다녔던 친구들하고 연락을 하는데... 믿지 못한다고 해야할까요, 믿지 않는다고 해야할까요. 그 당시에 제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제 이미지를 '친구 남자 뺏고 헤어지니 다시 염치없게 붙은 년'으로 생각한 그 친구들이나, 그런 이미지를 심어준 수진이나, 솔직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도 제 얘기를 듣고 이해해준 친구들한테 고마워서, 괜히 무리 내에서 갈등을 티 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완전히 연을 끊지 않았고, 대신 수진이와는 성인이 된 후에 다른 일로 한 번 크게 다투었는데....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사연 보낼게요:)

꽤 긴 글이 되어버렸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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