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여행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모든 변수에 다 대비 할 수 없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문래에 오게되었다. 집에서 멀지 않고, 서울에서 가격 괜찮은 게스트 하우스는 많지 않았다. 며칠을 있게 될지 기약도 없었다. 인생은 한치 앞도 알수가 없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다.
사실 좋은 일로 오게된 것은 아니었다. 임시 거처 같은 거였으니까.
이전 같았다면 나는 숙소에 처박혀서 상황을 비관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이 단단해진거 같다.
어차피 문래에 오게된거 마침 그동안 히더지님 방송을 통해 알게된 장소들을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가족들을 먼저 숙소에 돌려보낸 후 문래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주변의 몇몇 네온 사인만이 운치 있게 밤을 밝히고 있었지만 난 그보다 칠흙같은 어둠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공연을 보러 간 것도 매우 즉흥적인 선택이었지만 그곳에서 난 누구도 의식할 필요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한 없이 가라앉을수 있었다.
근데 그게 참 좋았다.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고 표정을 억지로 지을필요도 없고 그저 공연하시는 분의 음악에 귀기울이며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눈을 감고 듣게 되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 일단 음악은 듣기 좋아야하는구나, 내가 너무 메세지를 전달하는데에만 힘을 줬구나란 생뚱맞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난 숙소에 와서 잠을 청했다.
문래의 밤에 한껏 취했던 나는 문래의 낮을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아침이 되었다. 바깥의 추위에 망설였지만, 모처럼 왔으니 여기저기 둘러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밖에 나와서 처음 들은 생각은 이곳이 과연 내가 어제 밤에 오고간 그곳이 맞나? 란 것이었다.
문래의 낮은 밤과는 전혀 달랐다. 닫고 있던 철공소들이 여기저기 문을 열고, 많은 분들이 분주하게 오고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완전히 달라진 풍경에 낯설음을 느껴 발걸음이 망설여졌으나 어디를 가든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문래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날카롭고 차가운 철을 가지고 작업하시는 분들을 보며 처음엔 거칠게 느껴졌다.
한번은 사진을 찍으려 프레임을 잡고 셔터를 누르려던 찰나에 철을 옮기는 분과 눈이 마주쳐 얼른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 앞을 지나가며 난 사실 볼멘 소리를 들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은 지나가는 길을 반쯤 막고 있는 철재봉을 안으로 넣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짧았지만 정중한 마음이 느껴졌다.
난 부끄러웠다. 나는 이분들의 모습만 보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뒤늦게 움직인 입이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고자 힘차게 말해보였다.
그리고 문득 저분들의 간절함과 나의 간절함이 전혀 다를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게 간절함인지조차 모르겠으나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불빛 화려했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주변의 철공소의 분위기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히려 가는 곳곳마다 벽화나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전부터 예술가는 뭔가 거창한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예술가라고 대문 짝만하게 광고를 하기보단, 무슨 유럽을 옮겨놓은듯이 주변을 안어울리게 바꾸기보단, 그저 자신들의 손길로 자신들이 사는 문래동의 이곳 저곳을 주변에 어울리게 꾸며놓았다.
그게 참 좋았다. 이렇게 철공소와 예술이 서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니 어쩌면 철공소분들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문래이기에 이렇게 멋진 공간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삶을 윤택하게 해주기 위해선 예술이 필요하고,
자칫 소통을 놓치게 될수 있는 예술엔 삶의 치열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삶의 치열함과 예술가의 작품들은 어느 쪽도 자신들이 더 대단한거처럼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에게 힘이되어 주는 것 같았다.
어떤 곳들은 운치있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주변 풍경에 녹아들었으나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그 모습은 앞에서 말한 공존이라기보단 자신의 색을 단단히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에 히더지님에게 들은 것처럼 이곳은 젠틀리피케이션이 진행중이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치열한 불이 꺼질지, 어떤 예술가분들이 이 곳을 꾸며놓고 떠나게 될지 모르지만, 이후에 아름답고 그럴듯한 거리와 맛있는 가게만 가득찬 문래라면 나는 다시 찾게될 거 같진 않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문래를 필름카메라로 찍어보았다.
나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스킬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찍는가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놓치는 어떠한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마음이 가게되고, 왜곡되지 않게 담아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바라본 문래의 모습이다.
-에필로그
사실 글을 여기까지만 썼는데, 어제 히더지님의 방종 무렵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마디를 더 적어보고자 한다.
인생과 여행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번 문래 탐방도 생각지못한 어려움을 만나지 않았다면 겪을수 없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내 문제를 위해 앞뒤 안가리고 달려오는 친구 3명을 얻었으며,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는 아버지 같은 분을 얻었다. 아니 이미 그들이 내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잘 이겨내준 스스로에게도 고마웠다.
인생이란 한치 앞도 알 수 없고 때론 그 길이 두렵다. 이 길이 맞는지, 망설여 질때도 있다. 때론 삶을 짖누르는 어려움을 마주하기도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용기내어 어딘가로 걸어가다보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다보면 그 길에서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 같다. 그래서 인생도 여행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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