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이마가 빛나는 밤에 빗속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

방치된 클럽마스터24c35
2019-11-21 11:04:32 267 3 0

몇일전 새벽에 비가 많이 왔다.
집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니 불현듯 친구 생각에 우산을 들고 골목길을 나섰다.
친구가 생각나면 전화하면 되는 2019년에 무슨 우산을 들고 나가는가 싶겠지만,
녀석은 증발해 버리듯 모든 연락을 두절한채 없어져 버렸다.
오르막길 끝에 있는 공원에 올라, 야경을 덮은 비를 바라 보며
친구 생각을 했다.

친구는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나를 불러내 술을 마시자고 했다.
그러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늘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비가 존나 오는날에 한적한 강가에 차를 세워 놓고 커피를 마시는거야..."

20대 중반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땐 친구에게 면박을 줬다.

"너 아직 사춘기 안끝났냐?"

내 앞가림에 급급했던 나는 친구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30대가 되고 친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여느때 처럼 비가 오는날 친구는 나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몇년전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비가 오는날 강가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는거야.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게 꿈이야."
"너 그 이야기 술만 먹으면 하는거 아냐?"
"어? 내가 그랬냐? 시발놈... 뭔 말만 하면 다 기억하고 있냐."
"베트남도 갔다와, 일본도 갔다와, 대만도 갔다와, 그렇게 빨빨대며 돌아다니면서 또 비를 맞으러 가신다고?"
"그거랑 달라 이새끼야."
"가시면 되잖아요. 뭐가 문젭니까? 그걸 말해보라고."
"…. 몰라 씨발.. 모르겠어."

친구는 언제나 내면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피했다.
나는 언제나 친구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 했고
친구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몇마디가 오고가면 늘
"아 몰라 이 새끼야" 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잔소리 전문가인 나는 친구를 이해하기는 커녕 구석으로 몰고가는 말을 자주 했다.

"아니 봐바. 나는 하지도 못한 결혼을 하셨어, 예쁜 딸있어, 부모님 살아 계셔, 직장있어,
대체 어디가 문제냐고."
"또 그 소리냐…. 시끄럽고 술잔 비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는 언제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것 같았다.

20대 초반에는 강원도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부모님 몰래 입학준비를 하다 걸려서 모든것이 무산 되기도 했다.

이상향인 강원도.

이상적인 여행인 비오는날의 커피.

친구가 이런 이상적인것에 강하게 집착하는 것을 보고, 나는 친구를 마음대로 생각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현실을 버리고 이상을 향해 여행 하고 싶었지만, 욕망의 족쇄를 한쪽 발목에 스스로 묶고. 족쇄 반대편은 현실의 바닥에 못박아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린 사람' 으로 정의해 버렸다.
이런 편견가득한 정의로 인해 나는 친구를 보면 못마땅해 하거나, 잔소리 할 거리를 찾는 인간이 되었다.
또. 친구에게 편견이 생겼다는것을 인지 했지만 부숴버리지 못했고, 우리는 그저 얼굴이 익숙해서 만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 관계가 녀석도 지겨웠던 것일까? 친구는 어떤 연락도 되지 않는다.
나는 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자, 호들갑을 떨며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었다.

다른 친구 최가놈은 녀석이 제수씨와 함께 출국했고, 그대로 떠난게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웠다.
친구 어머니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시고는 여느때와 다르게 성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친구집 근처에서 치킨가게를 하는 치킨맨은 최근에 일어난 범죄사건에 연루된거 아니냐고 했다.
DM이나 보내보려던 제수씨의 페이스북은 폐쇄 되었고, 전화번호도 바뀌어 버렸다.

모든 끈은 끊겨 있었고, 할수 있는건 그저 그리워 하는 일 뿐이었다.

몇일전 늦은 새벽. 오르막길 끝에 있는 공원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를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현실에 못박힌 족쇄의 못을 뽑아버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길.




후원댓글 0
댓글 0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이 글에 댓글을 달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해 보세요.
▲윗글 인생, 여행 송라
▼아랫글 낮달 ㅇㅋ_
공지사항/스케줄수다팬아트역지더지-히더지채집컨텐츠추천/건의사항히더지 모의고사 기출문제공개고백이마가 빛나는 밤에히더지 원정대숙제검사연재물마이쮸 포도단(노조위원회)방송일기정모展
3
수다
스캐쥴변경 성공 [4]
약은약사에게
11-28
2
수다
아무거나 [4]
송라
11-28
2
수다
당신이 악역 캐릭터를 맡는다면? [4]
사람먹는이불
11-28
2
수다
메이투 메이투 [5]
약은약사에게
11-28
1
숙제검사
1 [4]
약은약사에게
11-28
3
수다
히더지 트수도감 시리즈!! [1]
사람먹는이불
11-28
6
팬아트
4000 point [4]
비만지
11-26
6
수다
문래동 최고 힙한 사람 [6]
사비나_
11-25
4
수다
인스타 업로드 하실거죠?? [3]
약은약사에게
11-25
5
수다
뒤늦은 신제품 광고 [3]
히치미치
11-25
2
수다
두또 결과 발표 [3]
헤비베이스
11-24
10
수다
그림 언박싱 후기 [3]
약은약사에게
11-23
11
숙제검사
히교수님 레포트 제출합니다 [9]
피부속부터지속되는보습
11-22
6
이마가 빛나는 밤에
엄마 아빠 따라가서 먹었던 포장마차 우동
공원옆 포장마차
11-22
3
11-22
4
공지사항/스케줄
다다음주 묙요일 12.6 이빛밤 주제는! [1]
Broadcaster 히더지
11-22
4
공지사항/스케줄
11.29 다음주 금요일 약빠는밤은! [15]
Broadcaster 히더지
11-22
6
공지사항/스케줄
오늘 방송은!!! [2]
Broadcaster 히더지
11-22
2
컨텐츠추천/건의사항
오늘 부탁드리는것 [1]
헤비베이스
11-22
1
이마가 빛나는 밤에
방송 연장용 사연글
Dan
11-21
1
이마가 빛나는 밤에
여행
어나니머스
11-21
1
이마가 빛나는 밤에
발리: 처음이자 마지막 서핑
dd
11-21
1
이마가 빛나는 밤에
갱원도
히드지
11-21
2
이마가 빛나는 밤에
인생, 여행 [1]
송라
11-21
»
이마가 빛나는 밤에
빗속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
방치된 클럽마스터
11-21
1
수다
낮달 [1]
ㅇㅋ_
11-20
0
숙제검사
텀블벅 공유 문서 [3]
히스트_
11-20
6
11-20
4
11-19
2
수다
#빌런 [3]
히스트_
11-19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