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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의 쓸쓸함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2019-10-04 14:26:34 187 0 0

정물화에는 으레 낙엽이 없다.

대신 사과, 병, 오렌지,

곡선으로 구성된 것들이 일일이 나열되어 서 있다.


그러므로 정물화의 모델인 사과를 베어먹어도 정물화에 그려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므로 여전히 낙엽은 그려넣을 수가 없다.

나뭇가지라는 그물만이 남는 이 가을의 망에 걸리지 못한 이파리들을.


난 어제 다 그려넣은 베어먹은 사과의 정물화 아래로

일기장에 어제 이렇게 기록했다.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내일도 안녕하시길."

내가, 나에게밖에 건낼 수 없는 이 말도 나뭇가지에 걸리지 못한다.


오늘은 나뭇가지에 걸릴 수 있는 말을 쓸 수 있을까.

나뭇가지를 따라 흘러 나의 그물 밖으로 그 말이 나아갈 수 있을까.

이때까지 곡선을 가둔 캔버스에서 직선의 바람이 질문을 가로지르고

직선의 일기장 아래로 여러 곡선들을 짜집으며 단어들을 꾸려나갔다.


무엇을 써내든 난 낙엽을 마지막에 그려넣으리라 다짐한다.

눈이 오면 망들마저도 풀어져 버리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보이는 세상에서 낚을 수 있는 것은 캔버스 색에 덮여버리니까.

-캔버스, 유색, <낙엽>에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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