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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그 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覆水不返盆0f8a1
2018-02-04 21:19:51 943 4 0

예전에 잠깐, 재능기부 쪽 일환이었던 상담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지금 학교에 있는 Wee 클래스와 같은 것이었다. 아마 심리학을 교양으로 들은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었다. 들어주기만 해도 됐었지만 꽤 많은 학생이 상담을 하러 오곤 했는데, 그 중 한 학생이 기억에 남아 감히 이곳에 써본다.

그 학생은 이름과 사는 곳 등 개인정보를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 학생은 의자에 앉자마자 다소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제가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 당시 중고나라 사기 등은 성행하지 않은 터라, 나는 이 학생이 보이스피싱이나 금융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형사사건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고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음.. 그런 일이라면 경찰서를 가야하지 않을까?"

그 학생은 내가 말한 '그런 일'이 무엇인지 예상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학생은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 속에는 낯 뜨거워지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남성이었는데, 지금 있는 말로 '몸캠'이었다. 나는 그 영상 섬네일만 잠깐 훑어보고 다시 학생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게 왜?"

"영상 밑에 있는 설명을 보세요."

나는 그 학생 말대로 따라했다. 영상 설명이 가관이었는데, 예를 들어 그 학생이 진해에 살고 있는 82년생 홍길동이라고 하면 영상 밑에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82년생 홍길동'이라고 적혀있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영상 속 남자는 학생과 비슷하게 생겼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내게 해결책을 물었다.

"전 진짜 이런 영상을 찍은 적이 없어요. 애초에 휴대폰으로 뭘 한 적도 없고, 누군가와 이상한 만남을 가지려고 시도한 적도 없었어요. 맹세합니다."

"만약 네 말이 맞다면, 당장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는게 좋겠구나. 이 일은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하루라도 빨리 경찰서에 가.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학생은 거기서 더 묻지 않고 나갔다. 나는 그 학생이 이 일로 나쁜 선택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만약 학생 말이 맞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그 학생은 학교 생활을 열심히 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일은 겪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가끔 그 일에 대해 물으면 그 학생은 웃으며 말했다.

"경찰에 신고도 해서 제가 할 일이 없잖아요. 그리고 내가 한 게 아닌데 위축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뒤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렸지만 그 학생은 입, 귀, 눈을 닫은 채 성실하게 다녔다. 겉으로 보기에도 활기차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불신을 가졌다. 그 학생이 영상을 찍은 것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신을 한번에 잠재운 일은, 그 학생이 허위 정보 적시에 관한 재판이 열렸을 당시 내가 참고인으로 재판을 참관했을 때였다. 허위 정보를 적은 당사자가 운 좋게 잡혔고, 그 학생의 정보를 제공해준 그 학생의 동급생들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학생의 정보를 적은 이유는 '그냥 놀리고 싶어서'였다.

이미 피의자냐 피해자냐는 모두 정해져있었고, 형벌을 어느 정도로 하냐로 설전을 펴고 있었다. 두 변호사가 끝도없이 논쟁 아닌 논쟁을 펼쳐서 재판관은 최후 변론으로 넘어갔다. 그 학생이 직접 자리에 일어났다.

나는 그 학생이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해서 담담히 말할거라 생각했지만, 그 학생은 최후 변론 도중 눈물을 흘리고 말을 더듬었다. 긍정적인 마음에도 어린 나이에 큰 사건을 겪은 것은 너무나도 큰 상처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이 말한 최종 진술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비록 그동안 학창 생활동안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친구로써 존중해야할 것을 존중하지 못한 적이 많습니다. 만약 양심을 대가로 재판을 받았다면 저는 이 자리가 아니라 저 자리에 앉아야했을 겁니다. (생략) 하지만 재판관님, 이 일은 이전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정을 져버리고 망나니처럼 행동했다면, 저들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져버리고 한 사람을 재기불능을 몰아세웠습니다. 저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고, 저를 응원해주는 선생님이 있어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저는 그 일이 있은 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매일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도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저들이 말하는 합의금, 실추된 명예 회복은 필요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저들에게 적합한 형벌을 내려 이 사회에 정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부디 제 처지를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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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 Kim - Say You Lo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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