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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먼저 졸업한 친구의 유서

覆水不返盆7d871
2018-01-09 22:24:48 1096 4 0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도록, 매일 밥을 해주셨고, 매일 어린 그를 비호해주셨고, 매일 머리를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서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느낄 즈음, 어머니가 없어도 그는 매일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아버지 역시 악화된 병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가지 못했다. 그 탓인지 몰라도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글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자신이 느낀 아버지를 때론 강경하게, 때론 부드럽게 표현했다. 소설가가 된 이유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위해"라고 표현될 만큼. 그 말마따나 그는 소설가 삶 평생을 걸쳐 아버지를 표현했다. 자신이 느낀 아버지가 다른 이의 아버지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매일같이 문학의 순수성을 위해 싸웠다. 그것은 무릇 이 사회에 뿌리 박힌 문학에 대한 생각에 가지는 저항 의식뿐만 아니라, 단순히 불행하다고 표현되는 내 삶에 무조건적인 도망이기도 했다. 항상 웃고 있는 뒤에는 나 역시도 천애고아라는 딱지를 뗄 수가 없었다. 먼저 하늘로 가버린 어머니는 얼굴조차 모르고, 병세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겐 더 이상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 내가 혹여 결혼해서 자식을 가져도, 내 자식에겐 비루한 삶을 남겨주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자식에게 '네 아버지는 애비, 애미도 없다.'라는 결점을 남기고 싶지 않다. 다른 작가보다 더 작가답게 책을 파고들었던 이유는 어쩌면 내 과거와, 아픔과,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느낄 사회적 서리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열정적인 나에게 삶의 무게는 어깨가 아니라 엉덩이를 무겁게 했다. 하지만 내가 내 아버지를,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음 싶은 것을 표현할 때마다 현실은 더욱 더 빠르게 나에게 달라붙었다. 어두운 방 구석도,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길도 내겐 무섭지 않았지만, 혼자 있다는 고독은 날 삼켜가고 재워갔다. 어쩌면 나는 타자기와 함께 잠겨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심해보다 더 차갑고 어두운 속으로 잠식해갈 때, 난 비로소 내가 내 숨통을 죄여간다고 느꼈다. 잠수부는 어디 있는가? 해저함은 어디 있는가? (생략) 이를 끝으로 나는 세상을 하직하려한다. 내가 하직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자신있지는 않지만,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기에 하직은 매우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벗이여. 비록 그대 죽음을 욕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난 자네가 조금은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허이. 어차피 자네가 살아도, 자네가 죽어도, 이 사회에, 우리의 문학에 큰 불을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사는 게 더 낫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자네가 먼저, 우리보다도 빨리 깨우친 무언가가 있어 인생을 졸업했다고 생각하게 되네. 난 이따가 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게. 지루하진 않을 것 같아. 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많지 않은가?


추신.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연이란 명목으로 내 감정 호소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넣고 싶은 내용을 전부 넣지는 못했지만, 이 전 글과 이 글만으로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문학에 대한 내 생각을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한다. 내 정체를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몇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그저 문학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 다를 바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신청곡

: 예민 -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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