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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이미 지나간 일

익명의464c024c
2018-02-18 23:54:42 706 0 1

나는 명절이 싫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매년 안가면 안되냐고 어머니께 졸랐었다.
그치만 매번 끌려갔고 매번 의견이 묵살되는게 참 싫다.

떡국이 싫다.
먹어도 먹어도 끝나지가 않는걸... 양은 넘치게 많은데 남기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먹어야만 하는 상황도 싫다.

새배하는것도 싫다.
유독 나를 싫어하시던 할머니께서 새뱃돈 주기 싫다고 손에서 안놓으시며 고깝게 나를 쳐다보셨었다. 그깟돈 안받는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저 가만히 서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같이 먹는 것도 싫다.
좋아하는 음식이 나와서 맛있게 먹는데 "너는 좀 그만 먹어라"라는 소릴듣고 방으로 들어가 소리를 죽여 울던 생각이 난다.

다같이 떠들면서 놀았는데 나만 불려가 혼나던 상황도 모른척하시는 다른 어른들도 시간이 지나선 진짜 잊어버리신것도 싫다.

할머니는 이제 없다.
돌아가시고 염하던 날, 다들 서럽게 우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울지않았다.
날 싫어하셨고 나도 싫어했다.
여기서 운다면 내 자신이 너무 가증스럽게 느껴질것 같았기에 끝까지 울지 않았다.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니 명절엔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치매가 오신 할머니께서 날 못 알아보신채
"이름이 뭐니?"라고 물어보시며 내 부축을 받으셨었다.
내 손을 잡아주시며 꼬깃꼬깃 구겨진 5천원을 꼭 쥐어주셨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스킨쉽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싫어하고 명절은 지금도 싫어한다.
그치만 나와 할머니를 둘러싼 상황이 달랐다면 좀더 나은 관계가 될 수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한번씩은 든다.

한번쯤은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볼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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