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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페온은 질서의 신이 아닙니다

(익명)9a94c
2023-11-07 13:33:49 289 1 1

루페온은 혼돈에서 태어나 자기실현을 이뤘습니다

그리곤 모두에게 자기실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아크를 공공재로 뒀죠

근데 루페온은 쟁취한 거지만 아크라시아의 생명들은 그냥 거저 받은 거잖아요?


자기실현은 경험과 성장을 통해 선택한 나다운 행동을 해야 이뤄집니다

사회적 시선이나 지위 등의 이유로 타인을 의식하는 행동은 자아의 몫이고

이 자아가 여러 경험으로 진정한 나를 형성하고 찾으면서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근데 그냥 줘버렸으니 자아가 자기로 성장할 기회가 없었겠죠?


이건 루테란한테도 되풀이되는 건데요

테르메르가 깽판쳐서 에버그레이스가 아크를 몰수했잖아요?

그거만 아니었으면 루테란이 대륙을 쏘다니면서 에스더를 모을 시점에 아크도 같이 찾았을 거란 말이죠

그때 쌓인 인연과 경험을 토대로 아크를 계승했을 텐데 루테란은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근데 루테란이 “왜” 에스더를 모아야 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그 테르메르가 굴린 스노우볼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난 거잖아요?

그럼 루테란은 사실 정당한 계승자가 아니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인연과 경험이 없는 아크는 최대출력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 번 데인 루페온이 찢을 적부터 열쇠라는 장치를 만들었죠

그 열쇠를 사용하려면 트리시온에 아크를 다 안배하는 게 조건이잖아요?

근데 루테란 세대에서 트리시온은 개방되지 않았거든요?

배경지식 없이 생각해보세요, 한 번에 전달된 아크가 과연 올바른 경험으로 쟁취한 것일까요?

물론 주시자는 다 봤겠지만 트리시온이 개방되기 전의 주시자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죠


베아트리스가 에버그레이스에게 얘기할 때도 우리에게 아크의 힘이 깃들었고

그 아크에 담긴 인연과 기억을 토대로 에버그레이스가 선택했잖아요?

근데 루테란은 어때요? 에버그레이스가 품고 미스틱이 배송해준 아크에 무슨 기억이 있겠습니까?

에버그레이스는 목격한 것을 토대로 선택했지만 트리시온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겁니다

루테란은 진짜 빛의 길을 걸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루테란 자체는 자기실현을 어느정도 이뤘다고 봐야해요

루페온을 만났다는 거 자체가 대단히 상징적이거든요

루테란이 엘가시아에 왔을 쯤엔 이미 라우리엘이 모든 걸 조작할 시점이니 루페온이 없을 때라 봐야겠죠?

근데 루테란은 루페온을 봤다네? 어떻게 봤을까요?


융 심리학에서는 자기실현을 개성화라고 하는데

이 개성화를 설명할 때 영지주의와 신비주의를 연관지어 얘기하거든요?

이때 핵심적인 게 하나 있습니다

자아가 영적인 것, 그러니까 신을 마주하는 것은 가장 깊은 나를 마주하는 거라는 개념

신의 모습을 통해서 내 무의식이 원하는 바가 표출된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언제 신을 보고 들었는지


화마군단이 다시 침공한 슈샤이어에서는 빙결의 신 시리우스를

여러 세력이 다투고 있던 로웬에서는 조화의 신 기에나를

더럽혀진 명예의 끝과 라제니스의 위기가 겹쳤던 엘가시아에서는 명예의 신 프로키온을

지식을 찾아 도달했던 볼다이크에서는 지혜의 신 크라테르를


우린 무언가 필요하다 느낄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신을 목도했습니다


그럼 루테란은 질서의 신이라 불린 루페온을 봤으니 뭘 필요하다 느꼈을까요?

세상에 혼돈이 가득하니 질서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아니요, 루테란은 누구보다 자기실현을 갈망했습니다

위기도 다툼도 없는 엘가시아는 절대 낙원이 아니라는 비망록의 언급

이건 루페온의 의지와 정확히 부합하는 사상이예요


루테란은 자신을 남기고 싶어했던, 자기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인물입니다

잊혀지지 않길 원했던 루테란은 나라는 개인을 세상에 남기려 했습니다

나라를 자신의 이름으로 세우고 그 오랜 세월을 들여 왕의 무덤을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루테란은 왜 카제로스를 죽이지 않냐는 아제나의 물음에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했죠

왜 그렇게 ‘하기 싫다’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말했을까요?


신은 언제 본다고 했죠? 내가 무언가 필요하다 느낄 때, 즉 부족하다 느낄 때.


자신이 세상을 구할 영웅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을 루테란은 1차적인 자기실현을 실패합니다

계승자가 할 수 있는 일, 트리시온 개방에 실패했을 테니까요

그렇게 부족함을 느낀 루테란은 루페온을 대면하고 또다른 자기실현의 길을 걷습니다


개성화, 자기실현의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나를 타인과 분리하는 것을 통해 내가 누군지 확립하는 것입니다

루테란은 자신은 불가능한 일, 아크의 진정한 개방을 위해 미래 계승자의 앞길을 닦습니다

온 세상에 아크를 숨겨 찾는 과정에 인연을 쌓게끔 하고

그 아크를 하나하나 제때 운반하여 트리시온의 인정을 받도록 말이죠 


세상이 혼돈에 가득 찼는데 질서의 신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죠?

그는 자기실현의 신이지 질서의 신이 아니니까요

근데 자기실현을 이루어낸 루페온이 왜 질서를 자처했을까요?

우선 ‘자아’는 세상이 만든 질서에 얽매인 자신이고 ‘자기’는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입니다


아만한테 자아를 강요한 건 누군가요? 

혼돈에 가까운 황혼? 아니면 질서에 가까운 새벽?


바루투는 진정한 아만의 모습인 악마화 상태를 널 잠식할 거라며 감추게 만들었어요

이건 무의식을 마주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자기실현을 막는 언행이거든요?

지금 아만을 보면 로스트아크로서의 나를 인정함과 동시에 진짜 나의 모습도 인정하고 있죠?

이렇게 나의 빛과 어둠을 모두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자기실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만이 무의식의 나, 어린 아만의 환영을 볼 수 있었던 거죠


황혼은 어때요? 바실리오가 아만한테 뭐라고 했나요?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제 마음은 정했느냐? 이러잖아요

누가 봐도 이게 자기실현에 더 가까운 말 아닐까요?


혼돈 그 자체인 카마인도 그래요, 카마인이 아만을 강제로 끌고 갔나요? 아니죠?

무슨 꿍꿍이로 데려온 거냐는 아만의 말에 선택은 네 몫이었다며 일침을 놓습니다 

아만이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말했을 때도 아직도 인과의 굴레에 매어있냐고 궁시렁댈 뿐 강요하진 않죠


이렇게 모든 묘사가 혼돈이야말로 자기실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세력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근데 자기실현으로 대우주 오르페우스를 만든 루페온이 질서다? 뭔가 이상하죠?

아크도 그냥 너네 쓰라고 줬던 신이 질서를 강요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그가 질서를 자처한 건 일정 시점 이후라고 생각해야 맞겠죠?

저는 그 시점을 아크를 쓰고 교만해진 생명들이 신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라고 보고 있어요

질서를 강요하지 않으면 세상은 다시 무로 돌아간다는 걸 봤으니까요


근데 자신의 혼돈한 질서가 아니라 완전한 질서를 노리는 카제로스가 넘어오려 하고 있어요

카제로스 편이라 할 수 있는 아브렐슈드나 카멘이 자기실현을 꿈꾸고 있다고 보이시나요? 아니죠?

완전한 자아의 통제로 자기실현이 불가능할 때, 바로 이때 루페온은 의식 세계에 간섭할 권리를 얻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깨어있을 때 봤던 신들은 뭔가 불완전했거든요

불길에 얼음이 녹을 쯤의 시리우스, 조화가 깨진 세상의 기에나, 명예를 빼앗긴 프로키온

모두 무언가 결여된 상태이기 때문에 의식 세계에 간섭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크라테르는 자기실현이 깨진 다른 신들과 다르게 완전할 수밖에 없죠

지혜와 깨달음은 변할지언정 계속되니까요

무의식의 극치인 완전한 신이 내게 닿기 위해선 나의 내면에서 말해야만 했고

의식 세계에 현신하기 위해선 나의 일부에 깃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혼돈의 마녀가 뭐라고 했죠?

“순리가 무너져 역리가 되고 역리가 순리가 되어 바로 서리라”

이건 세상의 모든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크라테르에게 너무나 위협적인 말 아닐까요?

물론 지혜는 계속하여 변화한다는 움벨라의 가르침이 있지만 역리가 순리가 된다는 건 차원이 다른 표현이잖아요?

신들은 자기실현의 위기를 느끼고 우리를 구해달라 청한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로스트아크는 계속해서 꿈에 대한 메세지를 던지는 게임이잖아요?

이것도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수단으로 자주 언급되는 건데

꿈이란 거 자체가 세계 공통으로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죠?

잘 때 꾸는 꿈과 내가 하고 싶은, 이루고자 하는 꿈

무의식은 신의 형태로 나타난다 했죠?

신화나 성서를 보면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언급이 참 많아요

그리고 이 계시가 일종의 ‘이루고자 하는 것’이 되거든요? 계시가 곧 나의 꿈이 된단 말이죠

그런 모습을 본 융은 자기실현을 위해서 꿈이 필수적인 요소라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계속 꿈을 꾸라는 건 자기실현을 향해 나아가란 얘기인 거죠

게임을 관통하는 ‘꿈이라는 메세지, 이게 바로 루페온의 의지인 거예요


로스트아크는 이번에 이그하람을 통해 이 자기실현의 메세지를 더욱 표면으로 끌어올렸어요

융 심리학을 빌리자면 이그하람은 지금 자신의 분신인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겪는 중이거든요

그림자는 의식 속 인격이 싫어한 부분이 한데 모여있는,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충동같은 개념인데요

그림자와 인격은 절대 강제로 하나가 될 수 없거든요?

둘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과정 중에 ‘투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부분인 ‘그림자’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으면 거기에 나를 투영해서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는 것

이 ‘투사’를 통해서 나의 분신이 의식 세계에 생기고, 그를 통해 나를 돌아보면 나의 일부로 흡수할 수 있어요


얼핏보면 인격이 카마인, 그림자가 카멘으로 보이지만 전 사실 반대라고 봐요(심리학적 측면에서)

의식 속 나는 무의식 속 그림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카마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주어진 명령에 복종하는 카멘과 자기만의 목표가 뚜렷한 카마인도 앞에 말했던 자아와 자기의 차이점이죠?

게다가 나약한, 진중하지 못한 나 자신이야말로 카멘의 그림자에 가까워요

이렇게 모든 설정이 카마인이 무의식, 그림자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카마인이 왜 잠자코 있는지도 납득이 되죠?

카마인은 카멘이 본인을 인지할때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래야 이그하람이 자기실현을 이루어 신으로서 다시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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