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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드리고픈 말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2019-11-16 21:50:25 223 1 0

어느 시간의 당신에게 드리고픈 말입니다.


더 정확히 하자면 제가 지나치지 않은 시간의 당신에게 드리고픈 손입니다. 거기에 재빨리 손을 펼쳐서 제 손금을 읽어드립니다. 오래 살지는 못 하지만, 벼슬운은 있다고, 손금 읽어주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지금의 당신의 손금은 그 생명선이 손목 위로 자라나고 있으니 분명히 제가 남길 무엇을 이어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화선은 줄이 다 타버리면 불을 완전히 안으로 옮겨 터뜨리지만 생명선은 줄이 다 타버리면 마지막 순간에 온전해지는 정신을 안으로 옮기고도 터뜨리지 않습니다.


아직 지나치지 않은 시간의 당신은 아직 유리창 안에서 삐걱대는 관절, 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루를 살아가고, 무언가를 읊조린다는 사실을 장담합니다. 그렇게 삐걱대는 이유마저도 아직 그 언젠가에 맞는 구조가 없기 때문이고, 더 구체적으론 그 구조를 상상하는 제 능력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천진난만함은 더 나은 골격을 산상하고, 구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유리창 안에서도, 유리창 안의 유리창으로, 그러고도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하시는 게 좀 안타깝습니다. 그 때마다 제 심장에는 거기에 합동인 감옥이 켜켜이 쌓여 고통스러워집니다. 전 육신만으로 유리창을 두드리지만 유리창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제 심장의 간이감옥이 반작용으로 흔들리며 제 온몸마저 무너져 아파지게 됩니다.


전 그럼에도 오늘도 제 나름의 예언의 방법을 당신에게 들고 왔습니다. 예언 속의 당신은 항상 아름다운데, 현실의 당신도, 미래의 당신도, 아름다운데, 왜 그 사이의 당신을 저는 보기가 어려워지는 겁니까.


이제 온 손을 내미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제 온몸을 내밀겠습니다. 온몸에 갇힌 심장에서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감정도 끌어내 그 당신을 구해내겠습니다. 유리창 바깥의, 그 바깥의, 세상으로 완전히 지나치지 않은 시간의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나날이 제 생명선의 끝을 지나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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