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풍경 그대로가 아니며
단어는 단어 그대로가 아니며
호흡은 호흡 그대로가 아니다
거기에 놓여있는 포도에 대하여,
여기에 놓여있을 조각에 대하여,
저기에 놓여있던 추상에 대하여.
오늘 창문 밖의 도로로부터 길게 뻗어 나의 고향에까지 돌아가는 꿈을 꾸어보았다. 창문 안의 나는 햄버거를 먹으며 창문 밖에서 기다리는 것만 같은 나의 고향은 이런저런 식으로 그려지고 말해지고 머릿속에서 울려퍼지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창문 안에서만 날다가 부딪혀 더 이상 날지 않기를 익힌다.
오늘 포도는 많이 따셨습니까? 포도의 한 알 한 알이 새기고 있던 말들이 톡톡 터지며 들이켜질 때 느끼던 상쾌함이 문득 기억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왔을 때 제가 가지고 가고 싶다던 잡지사의 구독 상품은 잃어버렸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그 잡지사 물건 중에 싸구려도 섞여서 스캔들이 있었다는데 제 물건도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걸로 전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숫자 11개를 눌러봅니다. 다이얼은 잘 됩니까, 목소리는 잘 나옵니까, 하루는 어떻습니까. 저도 이런 질문을 받아보고 싶은 때가 있지만 그때 창문 바깥의 모든 움직임들이 11개의 방향으로 난잡해진다는 역겨움이 밀려오면 이내 질문들을 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창문 바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오늘도 오른쪽 발이 무겁습니다. 이 무거운 발을 축으로 돌아서 뻗을 수 있을 만큼 뻗기를 기도해보지만 제 몸짓에서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렇게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꿈을 꾸다가 이내 지금 눈에 들어오는 하늘의 탁함만큼이나 제 시야가 탁해지도록 울었던 적이 있어 더 이상 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제도.
그렇게 저는 오늘도.
그렇게 저는 내일도.
언젠가는 돌아가겠습니다.
언젠가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언젠가들의 어절마저 어색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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