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자리들 사이에 놓아주시고, 이제 시작해봅시다."
각자의 젖은 우산들이 까마귀 같이 어느 방향들을 주시한다. 우산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기가 시간을 잰다.
"오늘은 이 방향으로 토의를 시작합니다. 안건은 '비행기의 존재 의의'입니다."
방향이라고 해봤자 별 안에 별 안에 별을 긋고 그 직선들을 난잡하게 배치한 방향이다. 결국 스스로들도 순서를 헷갈리지만 주제는 존재의의만큼 날아간다. 라이트 형제가 1분을 넘기지 못 하고 추락한 후 박수를 받은 얼마 뒤에는 생텍쥐페리가 영원히 그의 어린 왕자의 세계로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보잉이 말썽이라 비행기들이 픽픽 떨어진다. 그리고 양력과 중력이 휘감기면서 서서히 사람들은 떠오르지만 까마귀는 여전히 시간을 잰다.
원탁 안쪽을 모두 시간으로 뒤덮은 까마귀들은 이제 시간을 재지 못 한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쏟아지고 바람을 따라 까마귀들은 다시 시간을 재지만 바람의 속력만이 헤아려질 뿐 바깥의 물방울들이 난입하면서 진짜 시간은 종적을 감춘다. 얼마쯤 지나면 다시 창문을 닫고 존재 의의를 찾아 떠오르는 그들은 정지한 시간 속에서 논의를 정지한 구간만큼을 반복했고 까마귀들은 자리 밑에 내려져 수분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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