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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 나는 빡빡이다

Broadcaster 돌콩92
2021-11-05 08:53:19 125 1 1

나는 빡빡이다.

내 아버지도, 큰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대머리셨다.

그리고 운명의 여신은 매정하게도 나라고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머리가 빠지는건 그 자체로도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게 하는건 대머리라고 놀려대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고 배우고, 대부분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가?

아마 태어나는 인종은 선택할 수 없으니, 그걸로 놀려서는 안된다는 이해심과 배려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머리는 어떠한가?

대머리 또한 타고난 기질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증상임에는 틀림없을 터이다.

그러나 모종의 합의라도 되어있는 것인지 대머리를 놀리는 데에는 다들 어떠한 주저도 없는것처럼 보였다.

그만 놀려대라는 말을 해도 오히려 더 신나 하는 그들을 보고 나도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세상의 멸시와 조롱을 버티며 오늘도 회사에서 묵묵히 맡은바 업무를 처리하는 와중에, 나는 오랜 의문을 해결해줄 실마리를 발견했다.

3B 법칙. 아기, 미녀, 동물이 들어간 광고는 성공한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대머리는? 안타깝게도 나이든 아저씨한테서나 발생하는 증상이다.

나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뉴스를 봐도 여자와 어린아이가 당한 사고에는 전 국민이 눈물을 흘려주었다. 위로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몸이 상하고 다치는 내 동년배 노동자를 위한 눈물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중년 아저씨로 남아있는 채로는 영영 놀림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아기가 되어야 하나?'

안타깝게도 회춘의 영약은 탈모치료제보다도 개발이 요원해 보였다.

'그럼 짐승이 되어야 하나?'

남은 인생을 깜빵에서 썩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나는 바로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주저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꼭 머리가 자라는건 아니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건 그저 머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머리가 자라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변의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수술을 마치고 몸에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몸은 갸름해졌고 가슴은 봉긋해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머리는 자라나지 않았다.


아무리 지나도 머리가 자라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가닥 희망이 남아있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로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탈모 때문에 성전환까지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자라지 않는 나를 이제는 사람들이 위로해 주리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여전히 비웃음뿐이었다.

바뀐점이라면 털소수자라고 놀리는 것에 더해 성소수자라는 놀림거리가 추가됐다는 것 정도였다.


그제야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3B가 3B인 이유는 그들이 귀엽기 때문이라는 것을.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주장은 있어도, 소고기를 먹지 말자는 주장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성별을 바꿔 여자가 되었다 한들 대머리인 나는 전혀 귀엽지 않다는 것을.




문득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놈 하나가 떠올랐다.

'귀여움은 정의다'같은 소리를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녀석이었다.

애니 캐릭터에 심취해서 맛탱이가 가버린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역겨운 오타쿠 새끼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리석은건 오히려 내쪽이었다.

귀여움은 정의고,

나는 빡빡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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