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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 두유원츄

Broadcaster 돌콩92
2020-11-30 00:43:39 104 0 3

『두유원츄』


제 1 장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는 이른 아침. 수호는 여느 동년배 고등학생들보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모님이 계시질 않으니 정말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군.'

수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첩보원이었기 때문에 직업상 출장을 나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집에 홀로 남겨지기 일쑤인 수호는 어렸을 적부터 저절로 자립심이 강한 아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의 시작은 조간신문으로 부터."

수호가 언제나처럼 신문을 가지러 집 앞을 살피고 있을 때 평상시에는 보지 못하던 꾸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지? 요구르트 배달을 시킨 기억은 없는데? 혹시 시식광고인가?"

수호가 수상하게 여기며 안을 살펴보니 시식용 이라는 건 맞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함방두유'라고 써진 팩두유가 들어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경우는 유통기한이 짧으니 집 앞에 시식용으로 두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유기농 제품이라고 하니 꽤나 괜찮은 두유 같기도 하고, 이왕 받은 거니까 감사히 마시도록 할까."

그러나 수호가 두유를 한 모금 목으로 넘기자마자 갑자기 차오르는 구토감과 어지럼증에 바닥에 내용물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우웩!!"

수호는 유기농 제품이라고 해서 바로 안심하고 마셨던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독이라도 들어 있었던 건가? 별로 목숨을 위협당할 짓은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부모님이 알아서는 안 될 위험한 정보라도 캐내신 건가? 크윽, 마시기 전에 조금 더 생각해보는 건데……. 우선은 병원에 가야해.'

머리가 웅웅 울리는 상황에서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며 수호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행인지 불행인지 '두유 알레르기'였다. 그와 함께 내려진 처방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는 두유를 마시지 말 것' 이었다. 덕분에 수호는 드물게도 학교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팩두유 하나 때문에 아침부터 이 생고생 이라니……. 뭐, 독살의 위험이 아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더구나 어째서인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인데도 손발만은 여전히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수호는 아직도 피곤이 덜 풀렸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리에 늘어진 파김치처럼 엎어져 있었다.

"야, 수호야 왜 그렇게 기운 빠져있어? 오늘 학교도 늦고 말이야."

평소와 다르게 수호가 기운이 없자 같은반 친구인 선명희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꽤나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수호와는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수호가 보기에는 그저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는 여자아이라는 인상이었다.

"아... 그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집앞에 공짜 두유가 배달돼 있길래 마셔봤는데, 내가 두유 알레르기가 있더라고. 그 덕분에 병원까지 실려 갔다가 왔거든."

"흐음, 두유 알레르기라니 참 요상한 걸 다 갖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동네에 배달된 그 함방두유 말인데, 수업 전에 굉장히 그걸로 소란스러웠어. 애들이 그렇게 맛있는 두유는 처음 이었다던가, 그건 두유 이상의 무언가 였다던가, 두유가 꽤나 고급스러운 것 같던데 회사의 배포가 대단하다던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곳에 한 번에 배달을..."

"그 얘긴 이제 그만하자. 그 두유 때문에 한 고생 때문에 지금 두유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띵띵 울리니까."

평소라면 흥미롭게 들었을 만한 일상의 대화였지만 수호는 지금 상당히 지친데다가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혔던 두유가 남들은 그렇게 맛있게 마셨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울컥 하여 말을 끊었다.

"뭐, 나는 두유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입도 대지 않았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 이후로는 서로 시시껄렁한 잡소리나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사건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수호는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다.

 

제 2 장

 

시식용 두유 사건이 발생한지 대략 한달 정도가 지났다. 그 사이에 수호가 살고있는 동네인 원담동은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설마하니 그 두유가 이렇게 큰일의 전조였을 줄이야."

알고 보니 수호가 토했었던 두유는 일반적인 두유가 아니었다. 그 두유는 두유에 무슨 마약이라도 탔는지 비정상적인 중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만약에 여기서 그쳤더라면 중독자는 붙잡아 관리하고, 두유공장을 가동 중지시키면 해결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방두유에는 기묘한 부작용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복용한 사람은 울끈불끈한 마초에 괴력을 갖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 때문에 원담동은 마초들에게 지배되어 경찰조차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최근에는 함방두유가 거의 종교화 되어서 신자들이 함방두유를 마시지 않는 자를 탄압하고 함방두유를 찬미하며 강요하고 다니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호는 자신이 직접 두유공장을 찾아내 가동을 중지시키기로 결정했으나 그의 계획은 타고난 체질 탓에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제기랄, 동네에 돌아다니는 건 두유에 중독된 마초들뿐이니 두유냄새가 거리에 진동을 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잖아. 덕분에 두유공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어. 명희는 잘 하고 있을까?'

 

단순히 두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덕분에 무사히 마초가 되지 않은 명희는 두유공장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을이 이상한 두유종교 집단 마초 패거리들한테 점령당하는 게 보기 싫어서 수호랑 같이 공장을 찾아보기로 했지만 정작 수호 녀석은 알레르기 때문에 제대로 탐색도 못하고 나만 고생이군. 거기다 제대로 된 단서도 나오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공장을 찾아내지 못하면 원담동은 점점…….'

명희는 두유알레르기가 없어서 두유냄새가 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두유에 중독된 마초들이 그녀를 보기만 하면 함방두유를 강요했기 때문에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로인해 탐색, 심문, 추적 모두 실패로 끝나 명희는 꽤나 낙담하고 있었다.

"이대로 마을주민이 모두 마초가 돼버리는 건 싫은데……."

"이봐 학생"

계속되는 두유 강요로 예민해져 있던 명희가 순간적으로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나는 두유중독자가 아니라고. 마초도 아니야. 너도 아니잖아? 그렇지?"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명희를 불러 세웠다. 명희가 돌아서서 보니 웬 중년의 아저씨가 큰 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호리호리 하지는 않지만 일단 마초는 아닌 듯한 점잖은 느낌의 아저씨로 확실히 두유에 중독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학생 혹시 두유공장을 찾고 있지 않나?"

"그걸 어떻게 아셨죠?"

명희는 약간 놀라워하면서 물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다음에 나올 말에 비하면 약과에 불과했다.

"이 아저씨는 말이다……"

 

"그래서 그게 이 아저씨라고?"

명희에게서 바로 연락을 받고 약속장소에서 합류한 수호가 물었다.

"그래. 내가 바로 현재 이 거리에 만연하고 있는 그 '함방두유'제조법의 창시자이자 전 '연육두유'의 간부, 신제품 연구개발부장이었던 임학진박사라네. 지금은 함방두유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네."

"대체 그런 위험한 두유를 만든 이유가 뭐에요?"

"그땐 여러 가지 두유를 연구하면서 심심한 마음에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두유를 개발해 본적이 있었다네, 그런데 설마 그 물건을 대량생산할 사람이 나올 줄이야……. 아무튼 간에 이 이상 함방두유가 확산되는 건 한시 바삐 막아야 하네."

'심심해서…….'

수호는 어이없음에 잠시 한숨을 쉰 뒤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지금 퍼져있는 그 두유가 아저씨가 만든 거라고요?"

"그래"

"대체 그 두유 정체가 뭐에요? 뭘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런 마초가 되는 중독성두유가 나와요?"

"사실은 함방두유 그 자체가 사람을 마초로 만드는 게 아니야. 그 두유에는 복용자의 손발 세포의 비중을 높여 사지를 무겁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네. 거기에다 두유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니 조금만 돌아다녀도 금방 팔다리의 근육이 발달해 마초가 되어버리는 게지."

"뭔가 이상한데요? 몸이 무거워 지면 움직이기도 힘들어 질 텐데, 왜 얌전히 있질 못하고 온갖 난리를 일으키는 거죠?"

"그건 이 두유에 첨가한 각종 알칼로이드 성분 때문이지, 그게 환각 작용을 해서 두유를 마신 사람들을 괜히 들뜨고 무신경해져서 난리를 피우다 보니 자연히 운동이 되어서 그런거겠구나."

"그거 참 여러모로 위험한 물건을 만드셨네요."

"이것저것 개발하는 것 좋아하다보니 별게다 만들어 지더구나. 하하하."

임박사가 재미있다는 듯이 소탈한 웃음을 터트려 보았으나, 수호와 명희가 하나도 재미없다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자 짧게 헛기침을 하였다.

"두유에 아주 마약을 탔군요. 이제 어쩌실 거에요. 이미 중독 되버린 마초들은 어떻게 해요?"

"우선 어떻게든지 공장을 멈추는 수밖에 없다네. 그럼 중독자들도 어찌어찌 치료가 가능 하겠지."

'그게 말이야 쉽지.'

수호는 짧게 한숨을 쉰 뒤 박사에게 재차 물었다.

"아저씨 그럼 공장을 멈추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실꺼에요?"

"후후후, 이래 뵈도 나는 연육두유 간부 였었다네. 이런 일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내 발명품들을 가지고 왔다네."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당당하게 가지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잡동사니라고 해도 될 정도의 물건들이 꽉꽉 들어 차 있었다. 박사는 거기서 작은 녹색 모니터에 좌표와 수치가 표시되어있는 물건을 꺼냈다.

"우선 이게 이 여학생을 찾는데 도 도움이 되어 주었던 '두유추적기'라는 물건이라네. 두유를 마셨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는 장치이지. 이걸로 살면서 두유를 한번도 마시지 않은 이 학생을 찾을 수 있었던 걸세."

수호는 '그거 지금상황에 굉장히 쓸모없지 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박사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어서 찬물을 끼얹기가 뭐했다.

"네, 그건 이제 됐고 다른 건요?"

박사가 다음에 꺼내든 물건은 허여멀건 액체가 들어있는 구슬이었다.

'이번엔 뭔 기분 나쁘게 생긴게 나왔네.'

"이건 '마취두유구술'이라는 건데, 조그만 충격만 가해져도 터지는 구슬이라네. 그리고 이 안에는 강력마취성분이 섞인 두유가 들어있어서 이 구슬에 맞은 상대는 잠시간 마비되게 된다네. 그런데 아쉽게도 덩치가 큰 마초들에게는 효과 가 없는 것 같더군……. 그래, 딱 네녀석들 에게는 잘 듣겠구나. 하하하."

"마초한테 효과가 없으면 어따 써요!"

수호는 계속해서 얼토당토 않는 발명품이라는 것들이 나오는데다 기분이 썩 별로인데 박사가 실없는 농담까지 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혹시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모르지 않나. 그리고 아직 내 발명품들은 많이 남아있다네."

그러면서 다음에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얼핏 보면 권총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오, 이제 뭔가 본격적으로 작전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나오는 건가?'

수호는 권총 모습을 보고 잠시 들떴으나, 임박사의 다음 한마디에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이건 '두유총'이라고 부르는 물건인데, 언 듯 보기에는 권총처럼 보이지만, 방아쇠를 당겨보면 두유가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네."

그러면서 박사가 방아쇠를 당기자 두유총의 총구에서 두유가 뿜어져 나왔다.

"그냥 두유가 든 물총이잖아요!"

"어디가 그냥 물총이라는 겐가! 걸쭉한 두유를 내뿜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 줄 아는가?"

"..."

그후로도 박사가 계속해서 꺼낸 발명품들은 여전히 시원찮은 것들뿐이었다. 수호가 어느 것 하나 성에 차지 않다는 표정으로 임박사를 쏘아보았다.

"이런 발명품이더라도 반드시 힘이 되어 줄걸세. 같이 힘을 합쳐 두유공장을 멈추지 않겠나?"

박사는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수호의 얼굴을 보고 항변해 보았으나 이미 수호는 더 이상 임박사의 발명품에 별 기대를 품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발명품은 전부 별 쓸모가 없어 보여. 그래도 지금의 두유사태에 관계되어있는 이 아저씨라면 분명 충분히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마지막으로 내 문제가 하나 남았군.'

"미안하지만 아저씨랑 그 조잡해 보이는 발명품도 믿지 못하겠고, 무엇보다도 저는 두유 알레르기 때문에 공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할 걸요?"

"아, 그런 문제가 있었나 학생.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나, 거기에 딱 맞는 발명품도 갖고 있다네."

그러면서 임박사는 가방에서 무엇인가 조그마한 물체를 두 개 꺼냈다.

'뭐지? 설마 두유알레르기 약인가? 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텐데?'

약간 놀라워하며 박사의 손을 자세히 보자 거기에 있는 건 코마개 모양의 조금 이상한 물체였다.

"...이봐요 아저씨. 코를 막으면 어디로 숨을 쉬라는 거에요?"

"아니야, 아니라네 학생. 이건 그냥 코마개가 아니라 '코마개형 공기두유청정기'라네."

수호는 그 이상한 모양새에 착용해 보기를 주저했지만, 기기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과 주변에서 보내오는 시선의 압박에 기기를 코에 넣게 된다.

"스으으읍……. 아니? 공기중에서 두유냄새가 완벽하게 사라졌어!"

수호가 공기를 한번 마시자마자 한 달여 만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두유냄새 가신 상쾌한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청량한 기운은 가슴으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게 느껴졌다. 수호는 지금까지의 피폐하고 침울한 기운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온몸에 기운이 넘치게 되었다.

"어떤가? 내 발명품이 학생. 이 코마개형 두유공기청정기는 아무리 두유농도가 짙은 곳에서도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네. 어떤가, 이제 나를 믿어줄 수 있겠나?"

수호는 마음속으로 크게 '그게 뭐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실제로 코마개 공기청정기의 성능은 발군이었고, 박사는 도움이 될게 확실했기 때문에 말을 도로 목으로 삼켰다.

"...물론이죠 박사님. 서로 힘을 합쳐서 우리 마을을 두유로부터 정화시키자구요."

"그럼 이제 이걸로 모든 문제는 사라졌겠지? 그럼 이제부터 원담동을 두유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출발하세!"

이로써 상쾌해진 수호와 명희 그리고 임박사는 두유공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제3장

 

"저기가 바로 두유공장이다."

수호일행은 임박사의 도움으로 매우 수월하게 두유공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쉽게 공장에 도착해 버리다니. 그동안에 공장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보름간은 대체 뭐였던 거지? 게다가... 이거 엄청나게 가까운데 있었잖아!'

의외로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두유공장은 수호네 동네, 그것도 수호가 이미 익히 아는 곳 주변이었다. 수호는 열심히 찾아 헤매던 공장에 마침내 도달했음에도 어쩐지 매우 허탈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두유중독이 확산된 게 우리 동네였으니 가까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에 있었다니.'

수호는 명희에게 대체 무얼 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알레르기 때문이라고는 해도 자신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고, 결과적으로는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가기로 했다.

"공장까지 도착한건 좋은데, 이제부터 어쩌죠?"

수호일행은 현재 공장입구 앞 적당한 곳에 숨어서 공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공장 앞에는 덩치 큰 마초들 여럿이 진을 치고 있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우선 저 경비들을 어떻게 않으면 통과할 수 없겠구먼."

셋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명희가 입을 열었다.

"저기에 있는 놈들 전부다 유인해 내면 되지 않을까?"

"저렇게 마초들이 드글드글 한데 어떻게 다 유인해 낸다는 거야?"

"저 녀석들 두유에 미쳐있어서 조금만 도발해주면 단순하게 걸려들걸? 내가 전에 공장탐색하려고 돌아다녔을 때 내가 두유마니아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대거로 몰려들어서 따라왔어. 저기 앞에서 두유 좀 욕해주고 도망치면 다 따라올걸?"

"조금 위험해 보이는 작전인데, 그걸 누가 해야 하는 겐가?"

약간의 침묵 후, 이번에 입을 뗀 건 수호였다.

"내가하지."

그렇게 말하는 수호의 눈빛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이 근처는 나도 잘 아는 곳이고 경비들 잘 따돌릴 자신도 있어. 그리고... 한번쯤 저 재수없는 마초놈들 앞에서 이 두유 욕좀 시원하게 해주고 싶었어!"

수호는 막 임박사가 꺼내든 두유를 채가서 마초들 앞으로 나아섰다. 그 모습을 임박사가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학생 괜찮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박사님, 저레뵈도 수호는 유능한 첩보원 집안의 자제니까."

박사는 첩보원도 집안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남의 가정사에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사이 수호는 마음속으로 그동안의 고생을 되뇌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 망할 두유 때문에 알레르기로 죽는줄 알았고, 손발은 추라도 매달아 놓은 것 같이 무거워져서 또 고생시키고, 공장을 찾아내려고 했더니 지질히도 안 나타나고, 또 온 동네에 두유냄새가 진동해서 어지럽게 만들고, 코에다가는 이상한 거 쑤셔 박고 다녀야 되고, 거기다가 알고 보니까 공장은 바로 근처에 이었다고? 장난하냐!'

수호는 분노에 찬 얼굴로 마초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원망스러운 함방두유를 바닥에 내리치고 크게 외쳤다.

"야이, 거지같은 두유광……"

그러나 두유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수호가 제대로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초들이 우루루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우라질, 하고 싶은 욕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거냐.'

수호는 마음속으로 분을 삭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잘 걸려든 것 같구나."

"거 보시라니 까요."

숨어서 그 모습을 치켜보던 명희와 임박사가 속삭였다.

"그럼 우리도 이제 들어가 보죠."

명희와 임박사는 한순간에 한산해진 공장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수호가 뛰다보니 생각한 것 보다 사지가 많이 무거워진 마초들로부터 도망치기가 제법 수월했다. 수호는 마초들을 좀 더 끌어들이기 위하여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유롭게 도주했다.

"이것도 못 쫓아 오냐 두유나 처먹는 근육바보들아!"

도망치는 데에 여유가 생기자 수호는 도망치면서 마초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손발이 무거운 탓에 달릴 때마다 가뜩이나 지면이 쾅쾅 울리던 마초들이 더욱더 기세를 높여 무섭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마초군단의 위압적인 생김새 뿐 수호와의 거리는 전혀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캬하하하, 네놈들 그걸 달리기라고 하고 있냐. 아주 그냥 느려 터진게 두꺼비가 허우적대는 것 같구먼."

수호는 느린 속도로 달려오는 마초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으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이 어찌도 황홀한 기분이란 말인가. 마음속에 쌓여있던 울분이 싹 풀어지는 것 같아'

마초들이 열에 뻗쳐 추격에 열을 올려 땅을 울리며 쫓아오는 것 초차도 수호에게는 자신을 축복해주는 행진곡같이 들려왔다. 그렇게 수호가 감격에 젖어 방심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마초가 나타나 수호를 붙잡으려 했다.

"이크크"

다행히도 잡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에 피할 수 있었지만 수호는 굉장히 당황했다.

'내가 둔해빠진 마초들한테 따라잡힐 리가 없는데?'

수호가 혼란스러운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자 뒤에서 쫓아오는 마초들의 발은 느렸지만 거리를 서성이던 주변의 마초들마저 수호를 붙잡으려 모여들고 있었다.

'이런 자칫 속도를 늦췄다간 포위 돼버리고 말겠어. 점점 달리는 것도 힘들어 지고 있는데, 어서 빨리 예정된 진로로 향해야겠어.'

수호가 점점 지쳐가고 앞에서 막아서는 마초들을 제치며 나아가느라 속도가 처음의 비해 많이 떨어진 반면에 계속해서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는 추격대는 조금도 기세가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점점 선두 마초그룹과의 거리가 좁혀지던 그때 수호의 눈에 최근에 지어진 듯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왔다.'

수호는 아파트 단지 입구와 자기 사이에 서있는 마지막 마초를 페인트 동작으로 속이고 마지막 힘을 짜내 오른쪽으로 빠져나가서 전력으로 아파트단지 내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디자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질서정연한 성냥갑 형태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배치된 데다 이상한 조형물과 난잡하게 통로들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미로를 방불케 하였다.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에는 친구 집 찾느라 엄청 고생했지. 평생 여기에서 헤매고 있어라 망할 마초놈들.'

수호는 순식간에 짧게 여러 번 꺾이는 통로 사이를 재빠르게 지나가 언덕 아래에 있는 단지내상가로 들어가 그 안에서 다시 진로를 틀어 단지 외곽 쪽으로 빠져나왔다. 상가 건물 반대편에서 슬쩍 바라보자 모두 다 쫓고 있던 목표물을 잃은 듯이 허둥지둥 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수호는 씨익 웃은 뒤 단지 바깥쪽의 수풀로 들어가 미리 알고 있던 울타리의 개구멍을 찾아낸 뒤 그사이로 빠져나왔다. 개구멍의 크기는 수호가 겨우 통과 할 정도여서 마초들은 설령 구멍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따라올 수가 없었다.

"휴우, 이걸로 완벽하게 따돌렸군. 이제 공장으로 돌아가 볼까."

수호는 한숨 돌린 뒤 재차 발걸음을 옮겼다.

 

수호가 마초들을 몰고 간 사이 공장에 들어선 명희와 박사는 재빠르게 공장 내부로 침투할 생각이었지만 남아있던 한명의 경비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이런, 한명이 남아있었나.'

"오, 역시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나. 별 희한한 놈이 나타나서 도발을 해대더니 모두 다 우르르 몰려 나갈 때 문득 이건 미끼라는 생각이 들었지. 아쉽지만 네놈들을 공장안으로 들여보내 줄 수는 없다!"

덩치 큰 경비가 좁은 문 앞에 버티고 서있어서 쉽게 지나갈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학생? 저길 꼭 지나가야만 하는데."

수호가 몰고 간 마초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빠르게 문을 돌파해야만 했다. 명희는 잠시 생각한 뒤 불안해하는 박사를 불러 가까이에서 대책을 소곤소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

"..."

"그걸로 정말 괜찮겠나 학생?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괜찮아요. 승산이 있어서 하는 얘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박사는 이전 작전도 그럭저럭 잘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뭐냐. 계속 거기서 속닥속닥 거리지 말고 어서 꺼지란 말이다."

"좋아, 협공으로 쓰러트려 주지. 가요 박사님!"

명희의 호령에 맞춰 박사가 동시에 뛰어나갔다.

"흠, 둘이서 같이 덤벼오는 건가. 상관없다. 덤벼라!"

그때 명희가 두유총을 뽑아들고 외쳤다.

"이거나 먹어라!"

경비는 명희가 갑자기 꺼내든 총에 당황하였다.

"아니? 총을 갖고 있었던 건가."

경비가 시선을 총에 빼앗긴 와중에 명희가 그대로 두유총을 겨눈 채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박사님 찔러버려요!"

순간 경비는 자신이 자신에게 접근해 오던 중년 남성을 놓치고 있던 것을 깨닫고 당황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퍼뜩 주변을 보니 중년 남성은 자신을 빙 돌아서 공장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뭐가 협공이냐! 비겁하게 남을 속이다니."

자신이 속은 것에 분노한 경비가 눈을 부릅뜨고 명희를 향해 소리쳤다. 명희는 경비의 외침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만약에 두명이 모두 경비를 지나친다면 당연히 경비가 뒤에서부터 쫓아오게 된다. 임박사가 공장으로 침투한 현재 명희가 도주할 경우, 역시 경비는 박사를 쫓는다. 거기에다 경비를 내버려둘시 동료를 부를지도 모르고 수호일행의 목적이 두유공장에 있다는 걸 알려지는 건 결코 좋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명희는 경비와 어쩔 수 없이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상대해주..."

"크와아아앙!"

경비는 조금 전의 일로 상당히 화가 나있는지 명희에게 저돌적으로 돌격해 들어왔다.

'이 녀석들은 기다릴 줄을 모르는 건가.'

명희는 달려드는 경비에 맞서 몸을 피했다. 미리 예상했던 대로 생각보다 주먹이 빠르지는 않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명희는 타고난 싸움꾼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상대방은 자신의 몇배나 되는 덩치의 사내이다. 일반적으로 싸움을 걸만 한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몇가지 승산에 대한 계산과 도망치기 힘든 상황이 명희를 싸움터로 내몰았다.

'일단 몸을 사리는 것 까지는 세이프인 것 같군.'

명희는 자신이 경비의 공격을 어느 정도 여유롭게 피할 수 있다고 느끼고는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작게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박사는 두유의 부작용에 대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로 인해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는 느려지고 움직이는 궤적은 읽기 쉬우며 상대는 쉽게 지치게 된다. 그러나 위력은 일반 주먹의 몇 배나 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가 자칫 목숨을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 안심은 금물이었다.

'이제 슬슬 나도 공격을 할 차례인가.'

적이 점점 자신의 팔의 무게에 지쳐감을 느끼고 명희는 틈을 보아 경비의 복부에 주먹을 내질렀다.

이 공격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명희가 쓰는 공격은 막지 않고 확실하게 피한 뒤, 복부에 내지르는 공격은 점점 경비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두유로 인한 마초들은 기본적으로 무거워진 손발로 인해 발달된 사지에 비해 몸의 중앙인 머리와 몸통은 빈약했다. 경비의 공격을 회피하며 들어오는 명희의 카운터블로에는 양측의 운동에너지가 더해져 경비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제대로 먹히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겠어.'

명희는 적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주먹으로 느끼며 승리를 예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오산이 있었다. 두유 중독자들은 약물효과로 인해 신경이 흥분되어 있어서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였다. 이것은 명희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경비가 반격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였다.

경비는 복부의 강한 충격에도 아랑곳 않고 주먹을 날렸다. 육중한 주먹이 명희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위험할 뻔했다. 두유 때문에 통감이 둔해진 거려나, 이정도 타격에는 쓰러질 기색이 없네. 이대로는 자칫 내가 위험하겠어.'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명희는 공격을 멈추고 회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상태로는 이 녀석을 쓰러트릴 수 없으니……. 만일을 위해 챙겨온 비장의 무기를 꺼내도록 할까.'

명희는 경비의 공격을 뒷걸음질로 피하며 품속에서 너클을 꺼내 양손에 끼웠다. 무기라는 차가운 쇳덩이의 감촉이 주먹에서 느껴졌다.

'...이거 정당방위로 인정 되겠지?'

약간은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워낙에 귀찮게 구는데다가 생긴 것도 울그락불그락 해서 마초들에게 혐오감이 들던 차라 경비의 빈틈을 발견하는 즉시 온힘을 다해 너클로 후려쳤다.

뻐억 하고 너클의 가공할 위력이 경비의 턱에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충격에 얼이 빠져버린 경비에게 명희는 복부에 너클을 몇 번 더 내지른 뒤 경비가 고통스럽게 꼬꾸라지는 것을 보고 그제야 물러섰다.

'휴우, 드디어 쓰러지는 건가.'

경비는 심하게 고통스럽게 격앙된 얼굴로 명희를 노려보며 묘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끄어허, 으어헉"

경비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왠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희에게는 전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것마저도 끔찍한 기분이 들어서 명희는 '선물로 받은 거에요.' 라고 짧게 나름의 대답을 해준 뒤 최후의 일격을 가해 경비를 기절시켰다.

 

제 4 장

 

명희의 작전을 통해 경비를 뿌리친 박사는 공장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남겨진 명희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학생... 이런 못난 아저씨를 위하여 목숨까지 걸다니, 자네의 희생 평생 잊지 않겠네.'

홀로 감격에 젖은 채 박사는 두유제조기계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이윽고 박사는 '두유제조실'이라고 써져있는 문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 끔찍한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왔군.'

임박사는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제조실 안으로 들어섰다. 박사가 방안을 살펴보자 한 사내가 그를 향해 서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장님."

"김인곤... 자네가 벌인 짓이었는가."

임박사는 놀라움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박사는 일찍이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임박사와 같은 연육두유의 직원으로, 같이 발명품 만들기를 좋아하는 동료였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로서, 나이차이는 많이 났지만 임박사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친근하게 지내왔던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지?"

"그건 당신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예전부터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발명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자신의 발명에 대한 재능을 장난감 같은 물건이나 만드는데 낭비했습니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좀 더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장난감 같은 물건이나 만들어 댔습니다. 그건 저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사내는 자신이 약간 너무 흥분해 있는 것을 깨닫고 잠시 진정한 뒤 말을 이었다.

"그러다 부장님의 '함방두유의 조제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어째서인지 이 물건은 완제품은 없고 조제법만이 있었지만 저는 '이건 써먹을 수 있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이 매출을. 보십시오, 저들의 충성심을. 이 동네는 이미 함방두유에 의해 점령당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거야 말로 제대로 된 발명품의 사용방법 아니겠습니까?"

사내는 거만한 태도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임박사에게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네 녀석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고함을 지르며 임박사는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사내는 그 모습을 모고 작게 훗 하고 웃으며 옆에서 소방호스같이 생긴 관을 집어 들었다.

'저게 뭐지?'

박사가 자신에게 향해진 호스에 놀라 주춤 했을 때 호스에서 두유가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박사는 간신이 두유의 수압에 맞서 버티고 서있었지만 두유포의 위력은 전혀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거기에다 두유의 거센 물줄기가 박사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노려서 뿌려졌기 때문에 숨쉬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커헉,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어, 거기다 두유가 코를 막아서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다. 위험하다.'

박사가 숨에 허덕이며 설핏 두유를 한모금 들이킨 순간 갑자기 손발이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 졌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결국 거센 두유의 공격과 무거워진 손발을 버티지 못하고 임박사는 두유로 흥건해진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크윽, 자네 대체 무슨 물건을 만든 겐가."

"후후후, 박사님의 발명품들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이건 그저 소방호스를 조금 손봐서 관에서 물대신 두유가 나오게 한 것 뿐이니깐요. 물론 여기에 들어있는 두유가 부장님의 함방두유를 개량해 만든, 단 한모금 마시는 것만으로도 꼼짝도 못할정도로 손발이 무거워지는 무시무시한 물건이라면 이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지만요.

그러면서 사내는 다시 거만하게 웃은 다음 박사를 바라보았다.

"훗, 저의 발명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하나 남아있죠."

그러면서 사내가 보여준 기계는 두유생산기계와 관으로 연결되어있고 꼭대기는 공장 천장을 뚫고 나갈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목을 끄는 것은 두유가 그 기계 안으로 모이면서 불길한 소리로 웅웅 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설마?!"

"그렇습니다. 이건 두유를 전 국토로 뿌리기 위해 만들어진 '두유확산기', 제 야심작입니다. 더 이상 기존의 방법으로는 두유를 퍼트리기 힘들다고 느껴지기 시작해서 말이죠. 이것만 있으면 순식간에 두유파동은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곧 있으면 충분한 두유량이 모이고 가동을 시작할 겁니다. 거기에 엎어진 채로 역사적인 두유확산기의 첫 기동을 구경하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후후후, 후하하하하하하하".

공장 안에는 사내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임박사가 비통에 잠겨 숨을 죽인 채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휴우, 드디어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무사히 공장을 멈추는데 성공했으려나?'

먼저 이탈해 마초들을 모두 따돌리고 서둘러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수호가 보게 된 첫 광경은 명희가 우람한 경비를 너클을 낀 주먹으로 내려치는 모습이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수호는 잠시 넋을 잃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수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나 아무리 봐도 명희가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마초를 너클로 패고 있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간신히 경비를 쓰러트리고 한숨 돌리며 주위를 살피던 명희가 수호를 눈치 챘다.

"안녕하냐? 무사히 잘 따돌리고 왔나보구나."

"...어, 그보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는 어딜 가고 너 혼자 남아서 뭐한 거야, 싸웠어?"

"응, 한명이 남아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대신 박사님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어. 우리도 이제 생산기계쪽으로 가자."

"그래, 이걸로 이제 끝나겠지"

수호와 명희는 마음을 다잡고 사건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 공장 건물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박사에게서 받은 여분의 ID카드로 보안문을 통과하며 마침내 두유제조실 앞에 도착했다.

"아저씨의 설명에 의하면 생산기계는 이 안쪽이야. 들어가보자."

수호가 앞장서서 제조실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임박사가 두유에 흠뻑 젖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고 앞에는 왠 낯선 사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너희들, 무사했구나!"

"그보다 아저씨 대체 무슨 일이에요."

"놈에게 당했다. 저놈이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네. 어서 빨리 저기 있는 기계를 멈추지 않으면 함방두유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될 게야!"

"함방두유가 전국으로?!"

이미 작은 동네에 퍼진 것만으로도 엄청난 재난이 벌어지고 있는데, 전국으로 퍼지면 그 피해가 얼마나 거대해 질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저 기계는 어떻게 멈추죠?"

"저 녀석이 비상정지키를 가지고 있을 게다, 그걸 사용해서 멈추는 거다."

수호는 그제서야 눈앞의 낯선 사내에게 눈길을 줘 매섭게 노려보았다.

"당신이 이 망할 두유파동의 범인 인가."

"흠, 일행이 더 있었던 건가. 그래도 내 계획에 차질은 없다."

"잡소리는 됐고, 어서 비상정지키나 내놔라."

"순순히 넘겨줄 거라 생각하나?"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두유호스를 집어 들었다.

"조심해, 저 호스에서 나오는 두유를 조심해. 조금이라도 들이키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

박사에게서 그 말을 들은 순간 수호의 머릿속에 한가지 작전이 스쳐지나갔다. 바로 그 다음순간 명희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명희도 분명 같은 작전을 생각을 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둘은 서로 눈짓을 교환한 다음 호스에서 두유가 뿜어져 나온 순간 수호와 명희는 좌우로 갈라져 사내를 향해 내달렸다.

박사는 이번에는 분명 이겼다고 예감했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유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는 얼굴에 두유를 집중적으로 얼마간의 시간동안 계속 쏘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수호와 명희가 둘로 갈라진 이상 적어도 둘 중 한명은 사내에게 도달할게 분명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 박사는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를 물로 보지 마라!"

사내의 거만한 표정이 사라진 채로 학생들을 향해 고함쳤다. 사내는 학생들이 둘로 갈라진 순간 호스의 사출구를 눌러 두유를 좌우로 퍼져 나가게 쏘았던 것이다. 부채꼴로 퍼져나가는 두유가 수호와 명희를 덮쳐왔다.

"으악!"

두유가 호스에서 얇게 퍼져 나와 공장안은 갑작스럽게 두유안개에 덮여 자욱해 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두유포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강하게 쏘아 댔다.

"털썩."

이윽고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사내는 호스를 멈췄다. 사내는 어느새 거만한 표정을 다시 되찾고 자욱해진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공장안은 두유안개로 가득 차있어서 앞을 잘 구분할 수가 없었다. 사내가 안개가 걷히기를 잠시 기다리던 도중 안개 속에서 갑자기 구슬이 날아왔다.

"아니?"

구슬에 나온 액체에 몸이 젖은 사내는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마취구슬이라니! 어째서 쓰러지지 않은 거냐!"

사내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안개에서 빠져나온 수호를 보고 말했다.

"아무리 두유농도가 짙더라도 편히 숨쉴 수 있다고 했던가, 효과한번 확실하더군, 이 두유청정기"

'설마 박사님의 이상한 발명품에 이렇게나 도움을 많이 받게 될 줄이야…….'

수호는 예상외로 박사의 발명품이 활약하자 박사가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잘했네, 학생. 이제 어서 기계를 비상정지키를 찾게. 시간이 얼마 없네."

수호는 서둘러 사내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이제 어서 기계를 멈추게."

수호는 여전히 기분 나쁜 소리를 울리고 있는 기계로 다가가 열쇠를 꽂고 가동을 정지시켰다. 그러자 그때까지 시끄럽게 울려퍼지던 소음이 사리지고 공장 내부는 조용해 졌다.

"안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사내는 절망에 빠진 채 절규한 뒤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제 다 끝났다.'

수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자 움직일 수 없는 명희와 박사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사소한 일만 빼고…….'

수호는 작게 웃음을 지은 뒤 이제는 여유롭게 공장의 나머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 5 장

 

해가 뜨고 조금 후인 이른 아침. 수호는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부디 별일이 없기를.'

얼마 전의 큰 사건 때문에 무엇보다도 만사가 무탈하기를 바라게 된 수호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수호일행이 두유공장을 점령한 이후 일은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사람들은 점점 표준체격으로 돌아왔고 성격도 다시 밝아졌다. 수호와 명희도 이제 보통 때의 일상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서 이 사건은 정말 끝 이라고 생각하던 수호였지만…….

"역시 아침은 조간신문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수호가 신문을 가지러 집 앞으로 나섰을 때 소포를 한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지? 나한테 소포를 보낼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수호가 이상하게 여기며 소포를 살펴보니 '임학진' 이라는 이름이 써져있었다.

'흐음. 그때 그 아저씨께서 보내신 건가.'

소포를 뜯어보자 안에서 두유 한팩과 편지 한 장이 나왔다.

편지에는 세계를 두유로 점령하려고 했던 범인은 결국 범죄자로 처리되어 처벌을 받았다던가, 도와주어서 고맙다던가, 앞으로도 열심히 발명을 계속하겠다는 내용이 써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PS. 두유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라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두유를 개발해 봤으니 한번 마셔 주길 바라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거 믿어도 되는 건가?'

수호는 불안한 눈초리로 팩두유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동안 임박사와 함께하며 수호의 박사의 발명품에 대한 신뢰도는 꽤나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한번 마셔보기로 결정하였다.

'뭐.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두유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는 두유라니 신기하기도 하니 한번 마셔볼까?'

그러나 수호가 두유를 한 모금 목으로 넘기자마자 갑자기 차오르는 구토감과 어지럼증에 바닥에 내용물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수호는 두유 알레르기 안심제품이라고 해서 '정말' 안심하고 마셨던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내가 다시는 두유를 입에 대나 봐라.'

결국 이날도 수호는 두유 알레르기로 학교대신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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