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키 0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 챕터 원은 젊은 시절의 홈즈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홈즈는 파트너 왓슨과 함께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중 시점 기준으로는 27세로, 이미 과거사가 꽤 있을법한 나이로 그려지고 있죠. 하지만 코난 도일은 그동안의 홈즈 개인사에 대해서는 그려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단편집들에서 20살에 이미 추리를 시작해 자신의 직업을 삼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의 생애애 대해서 특별히 언급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들 입장에선 꽤 궁금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홈즈는 미디어 사상 최고 괴짜 중 한 명이잖아요. 쭉 홈즈를 지켜봤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궁금해 할거란 말이죠. 오랜 시간동안 셜록 홈즈 게임 시리즈를 제작한 프로그웨어는 이 점에 주목해 셜록 홈즈 챕터 원을 제작, 비교적 덜 고르게 짜여진 청년 시절의 홈즈를 담아냅니다.

챕터 원에서는 홈즈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등장하기 때문에 정신적 성숙함을 보이지 않아 사건 해결에 있어 꽤나 애를 먹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홈즈가 사건을 해결 못한다던가 그 특유의 오만함이 사라진건 아니에요. 되려 젊은 시절이라 시건방이 하늘을 찔러 주위 사람들을 아주 대놓고 무시하고 있죠. 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 미성숙함의 결정체로서 가상의 친구, 존이 등장합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홈즈는 지극히 불온한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아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죠. 결국 그는 가상의 친구 존을 만들어 자신의 '미온적' 부분을 보완합니다. 존이 함께 있어야만 그의 정신이 온전하게 자리매김 하기 때문에 어딜가나 그와 함께합니다. 사건을 해결할 때에도 존에게 의지해 이것저것 물어기까지 하죠. 그래서 때로는 존에게 '어차피 나는 너가 만들어낸 친구이기 때문에 너가 나에게 묻는 것은 너가 너에게 묻는 것과 같다' 라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예상했다시피 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홈즈의 파트너인 존 왓슨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홈즈는 아직 왓슨과 만나기 전이잖아요. 프로그웨어는 홈즈의 정신 세계가 타인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아예 왓슨을 가상의 인물로 설정해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특별한 심적 세계를 지니고 있는 홈즈를 나타내기에 딱 좋은 표현인 것이죠. 오랜 기간동안 홈즈를 지속적으로 연구했던 게임 회사이기 때문에 이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게임의 후반부에 이르러 홈즈는 자신의 잘못과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가상의 친구인 존의 선택을 존중해 특별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홈즈의 결단으로 최종반부에서 주홍색 연구로 이어지며 마침내 '미완적 홈즈의 정신적 완성'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홈즈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홈즈만을 바라본 회사에서만 만들 수 있는,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진정한 프리퀄인 것입니다.

비교적 덜 고르게 짜여진 청년 홈즈를 다루는 셜록 홈즈 챕터 원

높은 수준의 오픈 월드 구조 역시 게임의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게임은 여타 홈즈 시리즈와는 달리 완전한 오픈 월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홈즈 시리즈는 개별적 에피소드로서, 폐쇄된 공간에서 주어진 정보를 얻기 위해 돌아다니는 게임이었습니다. 제한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수사물이란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런던이라는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그냥 사건 현장에 가는 것에 불과했단 거에요. 다른 장소로 이동해 수사 연계를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 역시 또 다른 폐쇄 공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들이 셜록 홈즈 악마의 딸과 홈즈 시리즈의 외전, 씽킹 시티에서부터 보완되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온전한 맵을 펼쳐 보이면서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점들을 강조하고 있죠. 챕터 원 역시 작중의 무대가 되는 가상의 섬, 코르도바를 돌아다니며 각종 정보와 힌트를 얻어 수사하기 때문에 하나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란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맵을 활용하는 유기성도 꽤 뛰어난데, 이를테면 바닥에 깔려있는 바퀴자국을 따라가 범인의 은신처를 발견한다던가, 혈흔을 조사해 그 흔적을 따라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하는 등, 넓게 펼쳐진 오픈 월드를 낭비 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픈 월드 추리게임으로 톡톡히 자리매김한 홈즈 시리즈

낭비 없이 오픈 월드를 깔끔하게 소화한다

다만 게임의 연출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게임은 꽤나 무미건조합니다. 연출들도 딱딱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사운드, BGM 같은 것들도 꽤나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이건 하드보일드 연출의 정석 패턴을 지나치게 따라가다가 발생한 시리즈의 문제점입니다. 사건 현장에서는 이미 피튀기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피가 흐르고 유혈이 낭자하며 엉망진창이 된 상태죠. 유저는 그 현장을 확인하는 사람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영상적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사건을 추론하고 결론에 도달했을때, 현장이 가졌던 분위기의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끓어오르는 사건의 긴장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홈즈 게임 시리즈는 오랜 시간동안 이 부분을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그 정도가 과해서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죠. 드디어 챕터원에 이르러서야 홈즈의 눈에 격렬한 싸움의 모습들이 들어오는 연출을 비추어 내긴 합격점에 이르렀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