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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문예] 19번

Broadcaster 세인님
2017-05-14 11:25:26 854 0 0

봄입니다. 살랑한 날씨, 모든 생물들이 첫 발을 내딛는 시기. 저는 남들의 봄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조금 더 힘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행복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따뜻한 주변 풍경이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지 화창한 밖에 비해 조금은 답답한 작은 방, 제가 일하는 이곳이야말로 봄이 가장 바쁠 때입니다. 가슴에 땀이 나도록 무거운 짐 한쪽 귀퉁이를 들고 같이 종종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뭅니다.

오늘따라 씁쓸한 소리를 했더니 입이 떫네요. 음료라도 살 요량으로 편의점을 들리기로 합니다. 8시 언저리였지만 고요합니다. 편의점 가는 길은 비가 살짝 내리다 말아 초등학교 옆길 가로수인 벚꽃의 꽃잎들이 알맞게 떨어져 있습니다. 꽃잎이 떨어져 있는 모습이 알맞다는 말이 얄궂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 떨어져 소복히 쌓여있는 벚꽃잎이 더 예쁘더라구요. 잠깐 서서 벚꽃나무의 밑동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들었더니 때마침 전화가 울립니다. 후배네요. 이따금 같이 술 한잔하는 녀석인데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들립니다. 왕왕 있는 일이지만 오늘도 시간외 근무를 하게 될 모양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 앞 편의점으로 후배를 부릅니다. 무급 시간외 근무에 교통비까지 본인부담일 수는 없지요.

좋은 밤공기, 맥주 한 캔, 벚꽃풍경, 후배의 짝사랑 이야기. 아, 마지막 부분이야 말로 전 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후배는 아니겠지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져요. 비록 그 사랑이 힘들다고 해도 말이죠. 오늘의 시간외 근무는 의외의 소득입니다. 집으로 가는 후배의 뒷모습은 밝진 않았지만 어둑한 하늘에도 조명을 받아 색을 잃지 않은 분홍 벚꽃과 꽤나 어울립니다. 벚꽃은 지겠지요. 그리고 그 가지에서 푸른 잎이 나고, 버찌가 달리고, 내년엔 또 꽃망울을 터트릴겁니다. 언젠가는 후배도 세상을 분홍색으로 물들여놓겠죠.

나부터도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행복한 이야기들만 듣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모두에게 봄은 특별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싶어지는 계절, 봄.

당신은 사랑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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