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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문예] 7번

Broadcaster 세인님
2017-05-14 10:45:41 706 0 0

나는 바보였다.

어릴적 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없었다. 있었다면 ‘왜 남자애들이랑 노는 게 다를까? 쟤네들은 뭐하면서 놀까?’ 이게 전부였다.

초등학교 3학년 7반이었던 나는 당시에 반에서 유행하던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개학하고 나서 얼마 안 지난 5월이었다. 아이들은 봄 계절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마다 사귀어라 사귀어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며 이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자투리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를 부르면서까지 같이 반으로 불러 말뚝박기, 술래잡기 및 얼음 땡 놀이를 하였다.

반 내에 유행하던 놀이가 빛을 발한 걸까 반에 한두 명씩 익숙한 남녀의 얼굴들이 반에 많은 아이 앞에서 고백하며 사귀기를 여러 번 하고 있었다. 한커플,두커플... 늘어나는 커플들속에서 나도 호기심과 함께 한 여자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였다. 갑자기 앞문 쪽으로 아이들이 원으로 둘러싸며 “오~~~~”를 연발하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환경에 궁금해 그 원 안을 보았다.

반에서 인기 좋은 남자애 민규와 여자애가 사귀게 된 것이다. 남자아이의 고백으로 그 둘은 그시간이후 커플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러웠다.

‘우와 사귄다면 저렇게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부럽다...부럽다, 나도 갖고 싶다

4교시가 끝나고 하교하는 중이었다. 하굣길에 이야깃거리는 역시 오늘 사귄 커플 민규와 하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럽다는 둥, 잘어울린다는둥

근데 갑자기

충동적으로, 다시 생각해도 충동적이었다.

나도 그 짝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궁금하니까

이성 교제 라는 게 대체 뭐길래 애들이 저렇게 반응할까?

앞에 걸어가고 있던 같은 분단인 여자애들 무리 3명에게 말했다.

“야 나 사실 좋아하는 여자애 있어”

3명중 2명이 나에게 다가와 “누구? 누군데? 말해줘어” 라며 나에게 급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었다.

난 우발적으로 한 명을 골랐고 말하기는 창피해서 팅겼다.

“응..아 말하기 좀 그래”

여자애들은 애원하며 누군지 알려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관심받는 게 좋았던 나는 결국 앞에 걸어가는 같은 분단인 여자애들 무리 중 한 명을 찍어 얘기했다.

“최승연”

그러자 최승연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여자애가 승연이에게 가서 얘기했다.

“야 xx가 너 좋아한 데”

난 그때 그 아이의 앞모습을 보지 못했다.고백한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사랑 고백을 했다는 것 그 자체에 창피해 한 것 같았다.

하나 나의 호기심과 관심이 부른 고백은

“(작게 속삭이며)아, 싫어” 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계속 가던 길을 걸었다.

주변에 여자애들은 처음엔 “야 그래도 저렇게 얘기했는데 그냥 사귀어줘”라고 얘기를 하다가 완고한 거부에 결국 포기한 채 그 무리와 서로 헤어졌다.

정말 신기했던 게 난 그때 연애고 뭐고 아는 게 없었다. 집 가면 먹고 자고 컴퓨터 하고 그게 다였던 나였다. 그래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고백을 한 이후로 한 번도 뒤를 쳐다보지 않으며 걷던 아이와 그 아이에게 그냥 한번 사귀어줘 라고 얘기하는 그 두 상황이 너무 창피했다.

숨고 싶었다. 아니 전학 가고 싶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창피했다. 한심했다.거절당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추리한다면 못생기거나 아니면 재미가 없거나 남자답게 힘이 세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녔다.

바로 뒤에 고백을 한 당사자가 있었는데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은 그녀그 상황을 중계하며 불쌍하니까 사귀라고 말하는 그 아이들

뭐가 부끄럽고 뭐가 창피한지도 모르는데 내가아는 거라곤 메이플스토리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다였던 내가창피했다.

그 무리와 헤어지고 나서 유치원 옆을 도는데 머리가 띵하더니 충격에 빠져 아무 생각 없이, 하염없이 아파트 단지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충격에 빠진 지도 모른 채 그저 몸이 기억하는 데로 하염없이 집을 향해 걸었다.

유치원과 아파트 단지 사이 짧은 거리를 지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적다는 것을 머리가 무의식적으로 알아채고 있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눈물은 바람과 만나 한없이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눈물이 나니까 콧물도 같이 나기 시작했다.

닦을 휴지도 없어 나는 왼쪽 소매로 콧물과 눈물을 같이 닦으며 울음을 멈추려고 했다.


웃기지 않는가?

난 단 한 번도 그 여자애한테 내 있지도 않은 매력을 보여줘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그저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관심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겐 불쾌했을 행동을 내 멋대로 하고 상처 입은 것이다.


지가 멋대로 관심받고 싶어서 고백하고 차인 건데

대체 왜 울었을까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너무 슬펐다.

사실 생각해보면 호기심만으로 고백한 건 아니었을 거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관심과 호기심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으로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눈물은 멈출질 모르며 흐를 뿐이었다.

익숙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자 우리 집인 105동이 눈앞에 나타났다.

눈물이 멈추길 기다리며 옆에 떨어지는 벚꽃 나무의 꽃잎을 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그 날은 바보인 내가 한심한 나를 발견한 날 이였다.

나는 지금 한심한 바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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