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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문예] 13번

Broadcaster 세인님
2017-05-14 10:53:28 725 0 0

마음이 헛헛해져 맥주 캔을 하나 땄다.

시원하게 냉장고에서 나온 맥주를 한 모금 넘기자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술도 잘못하는 그가 속이 먹먹해지면 가끔 하는 짓이다. 안주는 어제 야구 경기 보면서 먹다 남은 식어빠진 치킨조각들이다. 남들은 치킨 목아지가 맛있다는데,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거지?’ 라며 그는 한입 배어 먹다말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오늘도 교수 놈은 그에게 지랄을 떨었다더라. ‘미친 새끼!!!’ 그 머리도 홀라당 까진 전형적 꼰대 교수가 떠올라 남은 캔 맥주를 다 부어 넣었다. 하아, 그저 사는 것이 다 개 같았다. 졸업 논문도, 교수새끼도, 같은 실험실 동기의 똥 멍청함도, 그저 다 짜증이 났다. 졸업을 해도 또 머리 홀랑 까진 직장 상사를 만나야하고, 또 멍청한 동기 놈의 실수 뒤처리나 해야겠지. 술도 못하는 그의 체질에 앞으로도 이렇게 맥주 한 캔 두 캔 마시다보면 술고래가 되고, 배불뚝이 아재가 되고, 머리도 까지고, 꼰대가 되고, 그렇게 시간 흘러가는 것, ‘그게 사는 건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봄이라 날은 선선 했고, 한 캔의 맥주에 알딸딸해진 그는 작은 자취방 창문을 열어서 시원한 봄바람을 느끼려했다. 봄이라 날은 좋았다. 사람들이 입은 옷의 무게는 가벼워졌고, 벚꽃엔딩은 거리에 울려 퍼지고, 꽃 놀음에 다들 난리였다. 봄의 찬가에 맞춰 짝짝이 즐겁게 나들이를 나간 사진과 SNS 자랑 글들이 한가득하다. 서로 ‘좋아요!’ 엄치를 척하고 꾹꾹 눌러대지만, 그는 그저 그런 짓들이 한심하다. 그런 글을 보고 있는 그 자신도 한심해져버린다. 그도 한창 해야 할 연예라고는 전역 하고나서 몇 번의 소개팅이 전부. 그 남자만 좋아하기도 했고, 그 여자만 좋아하기도 했고, 그렇게 한쪽의 손바닥만으론 박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복학 후 굳어버린 돌 머리를 굴려가며 겨우 학업을 따라가고, 알바를 뛰면서 한두 푼 생활비를 벌다보니, 연애는커녕 연애세포는 이미 죽어버렸다. 솔직히 그때는 살아가기에도 벅찼고, 앞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N포세대가 그였고, 포기는 배추를 세는 게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그는 이제와 결국 봄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냥 다 귀찮아졌다. 어쩌면 그냥 귀찮다고 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했을지도. 못한다고 하는 건 쪽팔리니깐.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술이 당긴다. 맥주 한 캔에 평소의 그라면 OK꿀잠이지만, 오늘은 잡생각에 술이 깨버렸다. 대충 옷을 걸쳐 입고, 편의점으로 다시 한 캔을 사러간다. 터덜터덜 가는 길마다 봄에 취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봄 저녁은 신선했고, 사람들도 신선하다. 그는 먹먹했다. 애써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눈에 담기 싫어 애꿎은 핸드폰만 죽어라 쳐다보았다. 아침에 본 웹툰들만 괜스레 다시 본다. 점심도, 저녁도 모두 해결해주는 단골 편의점 에서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어 계산한다. 친해져버린 주인아주머니는 폐기상품을 서비스로 넣어주며, 그나마 이 자취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온정어린 안부 인사도 내 마음에 넣어주신다. 젊은 놈이 혼자만 와서 편의점 도시락만 축낸다며, 밥을 해 먹으라며 잔소리를 해주신다. 그는 멋쩍은 웃음만 남기고 나온다. 다시 그는 핸드폰 화면만 눈에 담고 자취방으로 온다.

마음이 먹먹해져 다시 맥주 캔을 땄다. 술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A4용지 하나를 주워들어 글을 끄적여 본다. 글을 쓰는 건 그에겐 참 오랜만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가 지겨워져 일기장이랄 것도 없이 그냥 낙서같이 그적거리며 한두 자 써 본적도 있었다만, 그는 그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날정도로 예전의 일이였다. 탈고랄 것도 없이 그냥 거침없이 글을 쓰다가 말아버리는, 칙 하고 켜버린 성냥같이, 그저 짧게 불을 밝히고 마는 감성이 타오르다가 만다.

그렇게 나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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