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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이야기입니다. 6년 전의 나

서이삭3399
2022-06-21 12:30:54 106 0 0

어렸을 적 나의 꿈은 막연했다. 어떤 때에는 평범한 공무원이나 될까라는 생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그냥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되겠지‘라는 생각 뿐 이었던 것 같다. 그 중 교사가 되는 것도 그냥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란 생각으로,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2011년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그것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회의감뿐이었다. 고등학교 무렵 나는 사회라는 과목에 관심이 많았었고 사회학과나 정치학과 같은 과에 가고 싶었으나 결국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속담에 ‘시간은 화살과도 같다.’ 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 입대를 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마음에는 중심이 없었고 매번 공허한 마음이 들어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았었다. 그럭저럭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 했을 때 나는 23살이 되었었고, 더 이상 철없이 지낼 시간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과 공부, 교직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시기였고 좋은 점수가 나에게 보답했었다. 하지만 무기력함이 또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니까 다시 1년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말이다. 정말 남들이 보면 낯이 뜨거울 정도로 ‘막’ 살았다. 그게 이번 겨울 때 까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낭비했던 시간이, 삶을 비관하고 무기력했던 나날들이 부끄럽다.

  오늘은 2016년 4월 22일 금요일이고, 나는 오늘 ‘중세국어문법론’과 ‘국어논리 및 논술’ 이라는 전공과목의 시험을 보고 온 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느낌들이 스쳐간다. ‘뭘 해야 하지?’, ‘다음 주부터 교생실습을 나가야하는데, 나도 내 마음의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가르치는 사람으로 적합할까?’ 등. 사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한 심정이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온전히 전달해 주지 못하고, 두려움이 외형적으로 표출된다면, 또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잘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책들이 나와 함께 했었다. 그 중에서도 난 문학이라는 장르를 가장 좋아했었다. 이청준, 이문열의 소설부터 윤동주, 서정주의 시까지, 읽는 것이 좋았고 마음에 담는 것이 좋았고 여러 생각들이 스쳐가는 것이 좋았다. 문학은 내게 상처를 보듬는 존재였다.

  사범대학은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고, 나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교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수많은 교수학습 방법과 이론들, 전공 공부까지...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만 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난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현실에, 사회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렵다. 나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내가 임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시험에 붙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날 다시 집어삼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들은 아마 내 합리화일 것이다. 항상 피해 다녔고 또 피하려고만 하는 마음 말이다. 이런 고민들은 시험기간이라 공부의 양이 많아지고 수면이 부족해서 드는 생각일 것이다. 쉬고 싶은 마음,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려고 했지만 이번 시험만큼은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시험 점수 뿐 만 아니라, 다음 주에는 결국 나가게 될 교생실습 때문이다. 열심히 해보지 않은 자가 과연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될까라는 생각이 나를 게으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줬다. 

  사람은 항상 흔들리는 존재라곤 하지만, 난 너무 의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편차가 심했다. 교수님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시간을 흥청망청 탕진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 반성하는 삶을 살진 못해도, 무엇이라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본 글이 보편적인 것과 다른 이유는, 마치 내 성찰일기 마냥 적었다는 데에 있다. 그렇지만 난 나를 속이고 활자를 속여서 글씨를 입력해서 보람된 교사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교육자의 상은, 내 스스로 떳떳하게, 열심히 가르칠 수 있는 모습, 그 뿐이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생각나면서 같은 제목의 시, 윤동주의 ‘자화상’도 떠오른다. 전자가 부끄럽고 힘든 삶을 이겨내겠다는 것이라면 후자는 성찰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애증이다. 두 감정은 내가 얻어야 하는 양식이면서 내 마음이다. 부끄러운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움을 감당해내고, 날 오늘도 돌아보게 만든 이 시들은 또한 내 중심을 잡아주는 손길이다.

  한번 부딪혀 봐야겠다. 더는 미룰 수 없고 미루어서도 안 되는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일 학생들에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수업해보고 싶다. 교생실습 후에는 내 마음이 좀 더 확실해지고 견고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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