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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이 일기장 첫경험을 되돌려 주세요. 하편

휘필
2019-12-01 00:59:42 155 0 0

*  *  *


실험은 계속되고 놀랍도록 실패하는 일은 없었다. 점차 시간을 늘려 과거를 되돌려 보아도 그들에게 가해지는 부작용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의아한 점은 있었는데,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실험을 진행하는 그 세 명 말고는 없었다. 나가리라가 의아해하며 묻자 아푸로가 한참 생각을 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아마 시계 근처에 있어서 간접적이나마 영향을 받은 게 아니겠나? 하긴 생각해보니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세계에서 난리가 났겠군.”


아푸로의 말에 나가리라와 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평범히 살아가는데 갑자기 시간이 몇 초 몇 분 뒤 멋대로 되돌려진다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마무리는 편지를 전하러 찾아온 집배원의 뺨을 아푸로가 때린 후 한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찾아온 집배원에게 뺨 때린 것을 사과하여 미친놈 취급받은 것으로 그날의 실험은 마무리되었다.


“정말 수고했네. 조수. 네리아양도 감사하오.”


작성된 실험 기록을 정리하며 아푸로가 말하자 그녀들은 웃음 지었다. 그들이 한 실험에는 육체적으로 위험한 일과 노동력을 수반한 일은 없었으며 사실상 이 실험을 통해 생긴 부작용은 아푸로가 집배원으로부터 광인 취급 당한 것 외엔 없었다.


아푸로도 그냥 형식상 한 말이었는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수고했소. 다들.”


“저, 그럼 실험은 다 끝난 건가요? 저기, 서류에 적혀있던 건….”


네리아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삼켰지만 나가리라는 그녀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임상시험의 피실험자로서 지원한 이유는 첫 경험을 수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아푸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아주 공감하는 얼굴로 말하였다.


“암. 마음이 조급한 건 잘 아오. 아무렴 첫 경험을 실패한 건 빨리 고치고 싶지.”


“.......”


“노려보지 마! 아무튼, 일단 오늘은 실험의 첫날이오. 지금 당장 문제는 없지만, 다음 날 갑자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소?”


“...그렇네요. 네.”


아푸로의 말에 네리아가 머뭇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묘하게 집착하는 듯한 그녀가 나가리라는 신경이 쓰였지만 캐묻기도 뭐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아푸로는 손뼉을 한번 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이해했다고 보고, 조수? 오늘 밤은 이곳에서 네리아양과 같이 있어 주게.”


“....네?”


나가리라는 그게 무슨 소리냐 라는 얼굴로 아푸로를 보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하였다.


“시간이 늦었잖아? 만일 이대로 돌려보냈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


아푸로가 10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여주며 말하자 나가리라는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을 안 아푸로는 실실 웃으며 놀리듯 말을 이었다.


“아니, 뭐. 내가 있으라면 있겠네. 피곤한 조수를 고생시킬 필요는 없지. 까짓거 내가 같이 있지!”


물론 아푸로는 자신의 조수에게 깝죽거린 대가를 곧바로 치르게 되었다. 아푸로의 안면을 주먹으로 쳐 바닥을 뒹굴게 만든 나가리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네리아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신가요? 집에 따로 연락해야 한다던가. 아니면 부모님이 기다린다던가….”


“......”


그러나 네리아는 그런 나가리라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나가리라는 그녀가 듣지 못한 건가 싶어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아, 아. 그만하게. 조수, 그냥 있게.”


아푸로가 맞은 코를 문지르며 말하였다. 나가리라가 그를 보자 아푸로는 씁쓸한 얼굴로 살짝 네리아의 눈치를 살피고는 나가리라의 귓가에 대고 이유를 말하였다.


“저 아가씨 혼자 살아.”


나가리라는 그 말을 듣고 네리아를 보았고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것을 보며 나가리라는 그녀의 인적사항을 기억해 내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시계를 만들 때는 쉴 틈이 없어서 씻지는 못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실험실에는 씻고 잠자는 용도의 방은 갖춰진 곳이었고 나름대로 침대도 있었기에 여성 두 명이 하룻밤을 지내기에는 부족하진 않았다.


“...하나라서 문제지.”


나가리라는 눈에 보이는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침대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성인 여성 두 명이 자기에는 약간 모자란 감이 없진 않았다. 나가리라는 행여나 뒤척였다가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네리아에게 피해가 갈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죄송해요. 불편하신가요?”


“아! 미안해요. 혹시 자는데 깨웠나요?”


“아니요. 잠이 안 와서 저도 눈만 감고 있던 거에요.”


행여나 자기가 깨웠나 싶던 나가리라는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아푸로가 가기 전에 그녀에게 남겼던 말을 기억했다.


“그녀가 혹 수상한 짓을 하는지 감시해주겠나?”


“네? 무슨 짓이요?”


“시계를 훔친다거나. 아무래도 좀 불안해서 말이야.”


나가리라는 기계장치에 끼워져있는 은색의 회중시계를 떠올렸다. 은색의 작은 회중시계.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수정할 수 있는 혁신적인 마법의 도구였다. 물론 그것을 만든 계기가 아푸로 본인의 실패한 첫 경험을 수정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그리고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과거를 수정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있었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나가리라가 묻자 감고 있던 눈을 뜬 네리아가 그녀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그, 진짜 첫 경험을 바꾸고 싶어서 이 실험에 참여한 건가요? 그렇게 안 좋았나요? 남자친구가 최악이었다던가?”


나가리라의 물음에 네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역시 너무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질문이었나? 나가리라는 너무 아푸로에게 물들었다고 속으로 한탄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억지로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아니에요. 그저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네?”


“제가 바꾸고 싶은 건 제가 아니에요. 어머니에요.”


나가리라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자 네리아는 빙그레 웃었다.


“어렸을 땐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아. 미안해요. 그래서 방금 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첫 경험을 바꾸고 싶다는 말인가요?”


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영원히 축복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이 언제나 축복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한 거군요.”


나가리라의 말에 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치 못한 임신. 사랑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그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준비되지 않은 결과물만큼 사랑을 돌아서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아이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 남자는 결국 도망갔다. 그녀의 집안은 그녀의 어머니를 반쯤 의절을 하다시피 하였다. 완전히 의절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어머니는….”


나가리라는 차마 낙태했냐는 물음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큰 어른들도 해내기 힘든 게 육아다. 갓 성인이 된 그녀에게 있어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가리라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저 기계를 바라는 거군요. 어머니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네리아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천장을 보며 나지막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지금도 생각해요. 그 일만 없으면 어머니는 행복해질까? 아니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까. 하지만 전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했어요. 그 일만 없으면 분명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어머니는 지금?”


“과로로 돌아가셨어요.”


나가리라는 옆에 있는 네리아를 꼭 껴안았다. 네리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나가리라의 품속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어요.”


나가리나는 울먹이는 네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잘한다. 조수.”


나가리라는 기분 좋게 잠든 편안한 꿈속에서 칠판 긁는듯한 불쾌한 목소리에 인상을 썼다.


“저리가~ 누구야.”


“누구냐고 들으면 답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나 아푸로다.”


“교수님!?”


나가리라가 기겁하여 눈을 뜨자 그녀의 앞에는 한 손에 작은 기계장치를 들고 있는 아푸로가 있었다. 벌써 아침인가 싶어 밖을 보았지만, 밖은 여전히 어두웠기에 그녀가 인상을 썼다.


“뭐 놔두고 왔나요?”


“놔두고 온 게 아니라 도둑맞은 게 있어서 그런다. 너 혹시 옆이 안 허전하냐?”


나가리라가 멍한 머리로 그가 말한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고 곧 그 의미를 깨달은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져 서둘러 옆을 보았다.


네리아는 온데간데없었다. 더불어 기계장치에 끼워져있던 은색의 회중시계도 모습을 감추었다.


“...시계에 GPS를 달기 잘했군.”


아푸로가 손에 든 기계장치를 이리저리 돌리며 중얼거렸다. 


*  *  *


나가리라는 아푸로가 대기시켜놓은 차를 타고는 이동하였다. 그가 시계에 달아놓은 GPS 덕에 네리아의 위치를 알 수 있어 그들은 수월하게 그녀를 추격할 수 있었다.


나가리라는 차로 이동하는 동안 그녀에게 들은 과거를 전부 아푸로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슬픈 듯,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나 중얼거렸다.


“어째서일까요. 심정은 이해하지만 훔쳐서까지 일을 벌이려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그리 말하다가, 문득 아푸로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나가리라와 비교도 안 되게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가리라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만한 물건을 도둑맞았으니 화가 날 만했다. 


“정말 죄송해요. 교수님.”


“자네한테 화가 난 게 아니네. 네리아 때문이지.”


“제가 주의를 더 기울였으면….”


“나는 도둑맞은 것 때문에 화난 게 아니네. 그녀의 사정을 알아서 화가 난거야.”


아푸로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죄송해요. 그녀의 도둑질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심정적으로 이해는 되지 않나요? 아이를 낙태해야 했던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려고…….”


“...일단 오해부터 풀지. 그녀가 의도적으로 빠뜨리고 말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네가 멋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일세.”


“무슨 뜻인가요?”


“네리아는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고 했지?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는 혼자인 상태고.”


“네.”


“그녀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지?”


순간 나가리라는 누가 머리를 망치로 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가 낙태했다면 다시 누군가와 재혼을 해서 네리아양을 낳았다는 건데 아버지가 없군. 왜일까? 그녀는 미혼모인 어머니 손에 자랐으니까. 그리고 그 어머니가 과로사하자 그녀는 홀로 자라야 했어. 그게 무슨 뜻일까?”


억지로 끼워져있던 퍼즐들이 순서대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끔찍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퍼즐이 말이다. 나가리라가 혼란스러워할 때 아푸로가 중얼거렸다.


“본인이야. 네리아 자신이 바로 실수로 만들어진 그 아이인 거야.”


“...그럼 그녀의 목적은? 그녀는 어머니의 첫 경험을 지운다고 했잖아요? 그 말은?”


“뻔하지! 네리아양이 지우려는 건 자기 자신이네! 그녀는 내가 만든 도구로 자살할 셈이라고!”


*  *  *


밤이 찾아온 하늘은 병원의 옥상에 검은 휘장을 드리었지만 시리도록 푸른 달은 그 휘장을 걷어내고 푸른 빛을 아련하게 비추었다.


네리아는 그런 푸른 달빛에 취한 듯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휩쓸고 지나가고 머리가 차게 식은 그녀는 곧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엄마.”


네리아는 애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녀는 절대 학대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한 적도 없었다. 가족에게 버림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을 낳는 것을 선택한 어머니는 홀로 열심히 네리아를 보살피며 키웠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순간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지쳐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뻔뻔스럽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미안, 그동안 힘들었지?”


네리아는 이내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었다. 째깍거리는 시계 안에 있는 다이얼은 이미 네리아가 태어난 날짜로 맞춰져 있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돌려줄 차례이다. 자신만 없다면. 그리 생각하며 그녀는 천천히 시계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좋아. 거기까지!”


느닷없는 소리에 네리아는 놀라 소리 난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거칠게 숨을 쉬는 아푸로와 그를 한심하게 보는 나가리라가 있었다.


“경비원이 문을 안 열어줘서…. 몰래 비상구로 왔는데…. 계단 진짜 많네. 휴….”


“운동 좀 하세요.”


“시꺼. 헥. 헥.”


“...어떻게 알고 온 건가요?”


“그건 자네가 알 바 아니지. 도둑, 아니. 자살 지망생 씨?”


신랄하게 말하는 아푸로를 보며 네리아는 잠시 놀란 얼굴을 하고는,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말하는 걸 들으니 눈치챈 것 같네요. 시계는 돌려드릴게요. 한 번만 쓰면 돼요. 애초에 계약서에도 첫 경험을 없애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물론일세. 하지만 누가 자살하려는 걸 옆에서 방관하면 자살방조죄로 잡히거든. 사실 다 제쳐두고 남이 만든 거로 자살하려고 하지 말게. 기분 더러우니까.”


그 말을 들은 네리아는 조금 기분이 나쁜지 눈썹을 찌푸렸다.


“이해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보아하니 제 사정을 어느 정도 아시는 것 같은데.”


“아네. 근데 어쩌란 건가? 난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의 말은 별로 귀 기울이는 타입이 아니거든.”


“...그런 게 아니에요. 저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알 바 없네.”


네리아는 말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아푸로는 화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하였다.


“자기 목숨이든 아니든, 어떤 숭고한 목적이 있든 간에, 목숨을 저울대에 올려 무게를 잰 순간부터 자넨 생명을 경시하는 거야."


네리아와 아푸로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대치 상태가 끝나지 않자 나가리라가 그 앞을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네리아씨.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당신의 사정은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당신이 없어진다고 어머니가 더 나은 삶을 산다는 보장이 있나요?”


“없지요. 하지만 적어도 어머니의 발목을 붙잡는 불행의 가능성을 없앨 수 있어요.”


“네리아양!”


나가리라가 외치자 네리아가 그녀를 보았다. 자신을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띈 채 말을 이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전 어머니에게 있어 불행의 시작에 불과해요. 제가 태어나서 어머니는 불행을 평생 등에 업고 살았어야 했으니까. 이제는 좀 웃게 해주고 싶어요.”


네리아는 그리 말하였고 나가리라는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슬펐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녀의 인생은 죄책감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휘갈겨 쓰여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 어머니가 불행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네리아를 옭아매고 있었고 자기가 있으면 어머니는 불행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네리아양. 사람은 언제나 불행하기만 할 수 있나요?”


“무슨 소리인가요?”


“네리아양. 어머니는 당신과 함께할 때 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나요?”


네리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째서인지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나가리라는 말을 이었다.


“네리아양.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과 함께할 때 정말 불행했나요? 당신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나요? 아닐 거예요. 정말 불행했다면 당신을 키우는 걸 중간에 포기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


“잘 떠올려 봐요. 분명 당신의 어머니는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사랑하는 딸과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분명히 행복했을 거예요. 어머니는 당신을 바라보며 웃은 적이 없었나요?”


네리아는 머리를 맞은 듯 멍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바라볼 때? 그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언제나 죄책감에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희미했다. 하지만…. 하지만 희미하다는 건 기억에 없다는 게 아니었다.


네리아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그녀가 아버지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어린 시절,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그 어린 시절이 네리아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네리아. 사랑하는 내 딸.”


그랬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분명히 웃고 있었다. 얼굴은 지치고 피로한 기운이 가득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행복한 듯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엄마…….”


네리아는 그 모습을 떠올리고는 울음을 터트릴 듯 중얼거렸다.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자신을 바라볼 때 분명히 그녀의 어머니는 웃고 있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그런데도 더없이 행복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네리아양. 분명히 당신의 어머니는 불행했지만, 당신과 함께 살아서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어머니는…. 저와 함께해서 행복했을까요?”


자신이 없다는 듯, 처연하게 네리아가 중얼거리며 물었다. 그것을 들은 아푸로가 대신 답하였다.


“그걸 왜 우리에게 묻나?”


아푸로가 그리 말하자 나가리라가 냉큼 그의 허벅지를 찼다. 그 모습을 보며 네리아는 피식 웃었다. 어째서인지 꽉 막혀있던 속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니지.’


그녀는 이내 생각을 고쳤다. 그래. 딱 하나 미련이 남아있었다.


“...나가리라씨. 고마워요.”


“네리아양?”


그녀의 말에 나가리라가 희망을 느끼고는 환하게 웃었고 네리아 역시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하였다.


“...그리고 죄송해요.”


“네리아양!!”


네리아가 시계를 매만지자 나가리라가 놀래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달려오는 나가리라를 보며 뭐라고 말하고는 이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네리아는 그날을 끝으로 시계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시간이 되돌려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그들은 다음날 급히 네리아의 서류를 토대로 그녀의 행적을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행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기록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막을 수 없었네요.”


나가리라가 실험실의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씁쓸하게 중얼거렸고 아푸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을 정리하듯 가만히 있던 그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평생을 걸쳐서 쌓인 죄책감을 쉽게 바꾸기는 힘들었을 걸세. 그녀의 죄책감은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평생 불행했다는 것에 기인하는 거니까.”


그 말을 들은 나가리라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아푸로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네리아양은 그 방법밖에 없었던 걸까요?”


나가리라가 슬프게 물었다. 아푸로는 그 말을 들으며 그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불행을 겪네. 감당하기 힘든 불행에 무릎이 꺾이고 사는 의지마저 놓을 때가 있어. 그걸 극복하는 건 한 가지뿐이야.”


“...뭔가요?”


“기억하는 거네. 불행하기만 삶에도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좋은 일이 나쁜 일을 희석하지는 못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순간이 불행한 일 때문에 빛이 바래는 것도 아니네. 우리의 삶은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도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야.”


아푸로의 말에 나가리라가 이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웬일로 정상적인 조언을 해주는 건가요?”


“왜냐하면, 난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았거든.”


무슨 소린가 싶어 나가리라가 의문을 담아 그를 보자 아푸로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녀가 사라질 때 혹시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나?”


“...아니요. 정신이 없어서…. 어어이 어아이이우? 입 모양 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교수님은 들었나요?”


“어머니께 전할 게 있어요. 나는 그리 들었네.”


나가리라는 그 의미를 몰라 고개를 기울였다. 아푸로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어쩌면 이미 그녀는 깨달았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그때 누군가 실험실의 문을 두드렸다. 집배원이었다. 아푸로는 나가리라한테 있으라고 말한 뒤 자기가 직접 받으러 갔다. 그리고는 한 3분 뒤 그는 한 손에 작은 소포를 들고 돌아왔다.


“누가 보낸 건가요?”


“글쎄? 해외에서 보낸 거네. 늦어서 죄송해요 라고 쓰여있는데? 조수 혹시 외국에 아는 지인이 있나?”


아푸로의 물음에 나가리라는 고개를 저었다. 소포와 편지는 그저 이 실험실 앞으로 부쳐져 있을 뿐이었다. 결국, 누가 보낸 것인지 확인할 겸 아푸로와 나가리라는 소포를 뜯고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작은 상자 안에는 몇 장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으며 그 가운데엔 그들에게 익숙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교수님…….”


“와,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네.”


아푸로는 피식 웃으며 소포 한가운데에 손을 뻗었고, 곧 은색으로 빛나는 회중시계를 들어 올렸다.


“미래가 바뀌면서…. 어찌 된 일인진 몰라도 해외에서 살게 되었나?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찾아도 안 보이지.”


아푸로가 그리 말하며 웃고 있을 때 나가리라는 소포 속에 손을 뻗어 한 사진을 들어 올렸다. 


늙은 아주머니와 젊은 여성이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나가리라는 그것을 보곤 이내 사진을 뒤집었다.


사진에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


“... 아무 소용 없던 건 아닌 듯하네?”


아푸로 역시 그 사진을 발견하고는 나가리라를 보며 물었고 나가리라는 환하게 웃는 두 모녀의 사진을 다시 한번 보고는 이내 빙그레 웃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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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네 어떡하죠 이번편은 정말 못 쓴 것 같습니다 너무 욕심부렸다  나폴리괴담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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