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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이 일기장 첫경험을 되돌려 주세요. 상편

휘필
2019-12-01 00:57:47 172 1 0

#01


각종 약물이 플라스크에 담겨 형형색색의 안개를 내뿜는 어두운 실험실 안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드디어 완성이네! 조수! 드디어 완성이야!”


얼굴에 그을음이 가득 묻은 마법학자 아푸로가 기쁨에 겨운지 얼굴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여 조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푸로와는 비교도 안 되게 그을음이 잔뜩 묻은 나가리라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긴 생머리를 어루만지고는, 본인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성과 절제를 발휘하여 간신히 분노와 폭력의 충동을 가라앉힌 후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뜻하신 바를 이루었군요.”


“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군! 분명 자네의 열정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야.”


그러고는 음하하! 하며 거만하게 웃는 아푸로를 보며 나가리라는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교수님? 사람을 일주일 가까이 붙잡고 씻지도 못하게 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인가요?”


한참을 기분 좋게 웃던 아푸로는, 그제야 자신의 여 조수 등 뒤에서 일렁이는 사신의 그림자를 확인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내 그는 헛기침하고는 입을 열었다.


“크흠!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하겠네. 하지만! 내가 만든 건 아주 위대한 도구라고!”


“시끄럽고 그래서 뭐냐고요?”


본심을 살짝 흘리며 나가리라가 미소지었다. 또 관심 있는 그녀를 추적하는 시스템(girl’s pointing system, 통칭 GPS) 같은 걸 만들었다면 모조리 쓰레기통에 쑤셔 박은 후 남은 빈자리엔 본인을 구겨 넣을 거라고 나가리라가 굳게 다짐하고 있을 때 아푸로가 입을 열었다.


“과거를 수정하는 기계일세.”


나가리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한번 자신의 귀를 후벼 파고, 곧 귀를 두어 번 두드려 자신의 귀가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아푸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만들었다고요?”


“음? 듣지 못했는가? 과거를 지우는 기계라고 했네.”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나가리라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차분히 그에게 물었다.


“과거를 바꾼다고요?”


“맞아.”


“이 작은 회중시계가요?”


나가리라는 은색으로 빛나는 회중시계를 들어 올리고는 물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시계는 그들이 일주일간 철야를 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물건이며 아푸로가 주장하는 과거를 지우는 기계였다.


아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시계에 달린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시간대로 맞추고, 지우고 싶은 과거를 말한다면 그때로 돌아가 그 일을 수정할 수 있네. 그야말로 과학과 마법의 절정! 세기의 발명! 나의 천재성을 찬양하게나!”


잘난 듯이 떠드는 아푸로가 있으면 지랄 말라며 딴지 거는 게 평소 나가리라의 역할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 스토킹 시스템 같은 거나 구상하던 사람이 웬일로 이런 도구를 만든 건가요!?”


“이성 포인팅 시스템이야! 그리고 GPS가 뭐 어때서?”


나가리라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그 시선의 의미를 대충 눈치챘기에 그는 별다른 말 없이 화제를 돌렸다.


“크흠! 이걸 만든 이유는 간단하네. 나가리라 자네는 그런 경험 없나? 이랬으면 좋겠다. 혹은 이랬으면 좋았을걸. 이런 생각 말이야.”


“...많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나가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어구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아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는 인간은 없네.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언제나 실패의 위험에 둘러싸여 있네. 그래서 ‘만약 이랬다면.’ 하면서 후회하고, 또 괴로워하지. 하지만! 그 만약을 수정할 수 있다면! 더는 괴로워할 일이 없지 않겠나? 그래서 만든 거야.”


“교수님도 그런 일이 있는 건가요?”


나가리라가 아푸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나 역시 사람일세. 없을 리가 있나. 무슨 일이 있어도 되돌리고 싶은 일 정도는 있네.”


“그게 대체 뭔가요?”


언제나 장난기 넘치는 그에게 쉽게 볼 수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기에 나가리라가 조금 걱정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푸로는 마치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듯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마치 눈물이 흐르지 않게 억지로 버티듯 그 상태로 있던 아푸로는 곧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실패했던 나의 첫 경험을 되돌리고 싶었네.”


“야 이 시벌 새끼야.”


결국에 버티지 못하고 나가리라가 쌍욕을 뱉었다.


*   *   *


아푸로가 과거를 수정하는 기계를 만들고, 나가리라가 실패했던 첫 경험의 역사를 슬프게 어필하는 아푸로의 턱에 분노의 어퍼컷을 날린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그가 만든 도구가 획기적인 발명인 것은 분명하기에 그들은 임상시험을 준비했고 곧 크나큰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임상시험을 할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었고 과거를 수정하기 위한 도구이니 생쥐 같은 동물에게 임상시험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가리라는 자신이 실험체가 되겠다고 나서는 아푸로를 기절시킨 후 실험 도우미를 모집하는 광고를 내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치지 않았다.


“아무도 지원을 안 해.”


광고를 내고 또다시 며칠이 흐르자 나가리라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보상금도 분명히 적어두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호기심으로라도 지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임상시험 같은 위험한 걸 지원하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게다가 시간을 되돌리는 말도 안 되는 도구라니 하하하.”


“......”


“하하핫! 이것 참 곤란해! 이거야 원, 이거 어떻게 한담?”


이 상황이 참으로 기쁜지 아푸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하였다, 그 태도가 얄미워 나가리라가 그를 흘겨보았다.


“그쯤 해요. 이건 진짜 문제에요. 가벼운 도구도 아니고, 못해도 임상시험은 수차례 걸쳐도 모자랄 텐데 실험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으니 부작용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사용한다니까.”


“제발 좀 닥쳐요. 실험을 주도해야 할 당신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라고요?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그런 대단한 도구를 만들고 그딴 하찮은 일에 좀 쓰려고 하지 마!!”


뚜껑이 열린 나가리라가 소리치자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아푸로 역시 얼굴이 붉어져 소리쳤다.


“하찮다니! 그런 중요한 일에 실패한다면 되돌리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고작 그런 거로 시간까지 되돌리는 기계를 만든 건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아니야! 난 모든 이들의 욕망과 바램을 알기에 만든 거다. 분명 나만이 바란 게 아닐 거다!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그러니까 그런 멋진 말로 커버하려고 하지 말라고! 그런 욕망을 위해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건 댁밖에 없다니까?”


“있으면! 있으면 어떡할래?”


“있으면 내가 평생 댁을 주인님이라고 부릅니다!”


“어? 자네 분명 말했네?”


“됐네요! 대신 그 반대도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조수한테 존댓말 쓰는 연습이나 하시죠.”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그들이 말도 안 되는 내기를 하고 결과를 알게 된 건 바로 다음 날 저녁이었다. 


거의 일주일 만에 그들을 찾아온 임상시험 지원자는 놀랍게도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어린 여자였고 자신의 지원동기를 밝힘으로써 아푸로에겐 희망을, 그리고 나가리라에겐 절망을 안겨주었다.


“첫 경험을 되돌리고 싶어요.”


*  *  *


터무니없는 지원동기를 밝혀, 아푸로의 불순하기 짝이 없는 제작 동기에 정당성을 부여해버린 처자의 이름은 네리아였다. 나가리라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단발머리의 그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설마 그 문제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설마 교수님과 같은 문제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거든요.”


“......”


“...주인님.”


이빨 사이에 잔뜩 씹혀져 흘러나오는 주인님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아푸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가리라는 입을 꾹 다물고 이를 부드득 갈며 분노를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모처럼…. 아니. 간신히 찾아온 지원자이니 기다리게 하면 곤란하죠. 어서 가죠.”


“아! 그렇군! 모처럼 마음이 동지…. 아니! 지원자이니 소홀히 대접할 수는 없지! 어서 끓여놓은 차를 내오게.”


“네? 안 끓였잖아요.”


“그럼 끓여! 가랏! 노예! 아니, 조수!”


이빨이 부드득 갈려 나갔다. 나가리라는 자신의 치아가 손상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왜 그런 내기를 했는지 후회하고는 곧 차를 끓이러 갔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차를 끓이고 가볍게 즐길 다과를 준비할 때쯤, 나가리라는 그제야 그 괴짜인 아푸로가 어린 지원자에게 무슨 해괴한 짓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서둘러 응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뜻밖에 정상적인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네리아양? 이 서류도 작성해 주셔야 하오.”


“아, 네.”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채, 맞은 편의 아푸로가 내미는 서류를 받은 네리아가 빠르게 펜을 놀려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마도 실험동의서인 듯하였고,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분명 해괴한 상황이 일어날 거라 굳게 믿던 나가리라였기에, 예상치 못한 정상적인 상황을 보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아푸로가 입을 열었다.


“오! 왔나? 어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차를 가져오게.”


“네, 네. 주인님.”


너무 예상외였던 건지, 나가리라는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레 주인님이라고 흘러나온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다가가 차와 다과를 내었다. 네리아는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였고 나가리라 역시 인사를 하고는 아푸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인간이 웬일이지?’


장난스러운 기색 하나 없이, 네리아가 작성한 서류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아푸로를 나가리라는 어색하게 보았다. 거듭 말하지만, 평소에 기행을 일삼던 게 아푸로의 평범한 모습이기에 나가리라는 더 불안과 혼란을 느꼈다.


“저기, 다 작성하였는데 드리면 되나요?”


“아, 여기 내 조수에게 주면 되오.”


아푸로는 보던 서류를 나가리라에게 넘기며 말하자 네리아 역시 들고 있던 서류를 나가리라에게 내밀었다. 나가리라는 그것들을 모아 순서대로 정리하며 슬쩍 서류 내용 역시 살펴보았다.


‘이름…. 사는 곳…. 기타 인적사항….’


나가리라는 혹여나 아푸로가 서류에 무슨 이상한 장난을 쳤을까 싶어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마침내 나가리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인간이 정신을 차렸구나!’


나가리라가 감격한 얼굴로 아푸로를 힐끗 보았다. 해괴한 짓을 일삼아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던 그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역시 그도 이 실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어.’


아푸로가 철이 들었다는 생각에 나가리라는 기쁜 마음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푸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리아양? 실험에 앞서서 가벼운 몇 가지 답을 해주겠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별거 아니오. 아무래도 일반적인 실험이 아니다 보니 몇 가지 세세하게 확인을 해야 해서 그런 거요.”


아푸로의 말에 나가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그들이 실험할 것은 일반적인 도구가 아니라 시간에 간섭하는 도구이다. 무슨 부작용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무엇이 궁금한가요?”


나가리라가 그리 생각할 때 네리아가 답하였다. 그녀의 말에 아푸로 역시 진지한 얼굴로, 네리아를 쳐다보며 이내 물었다.


“어떤 실수가 있어서 첫 경험을 실패한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네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가리라는 혹여나 서류들이 흩어질까 잘 모아 정리해놓은 뒤 아푸로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   *   *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푸로를 대충 옆으로 치워버린 나가리라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는 최대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저분이 가끔 발작을 일으켜서 그렇답니다.”


“하하하.”


나가리라가 최대한 부드러운 얼굴로 이야기했지만 아푸로 때문인지, 아니면 웃으며 주먹에 묻은 피를 닦는 나가리라 때문인지 네리아는 연신 나가리라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이내 붉어진 얼굴로 나지막이 물었다.


“저기…. 진짜 얘기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나가리라가 얼굴이 붉어져 손까지 흔들며 부정하자 그제야 네리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느새 고통을 이겨낸 아푸로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폭력이다! 중요한 질문을 하는데 왜….”


“......” 


“미안. 잘못했네.”


조용히 나가리라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아푸로가 시무룩한 얼굴로 얌전히 그녀의 옆에 앉았다.


나가리라는 주먹을 쥐어 보여 말없이 경고한 후에 네리아에게 입을 열었다.


“흠흠, 네리아양?”


“네.”


“혹시 없애고 싶은 그, 경험이라는 게…. 차마 말하기 힘든, 그…. 아픈 일이라거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나가리라가 묻자 네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혹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싶어 묻던 그녀는 안심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이 임상시험은 되게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에요. 물론 어느 임상시험이든 위험하지 않은 건 없지만 이건 수준이 달라요. 그, 첫 경험도 분명 중요한 거지만 그것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나가리라는 그녀가 혹 임상시험의 서류 항목에 기재된 위험 항목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얘기하였다. 과거를 수정한다는, 무슨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임상시험에 20살밖에 안 된 어린 여성이 피실험자로서 참여한다는 사실이 나가리라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네리아는 그런 나가리라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전 괜찮아요.”


단호히 말하는 그 모습에 나가리라는 순간 말을 잃었고 멈춰버린 대화를 이어간 것은 옆에 있던 아푸로였다.


“그럼 위험 항목은 숙지한 거로 이해하고 진행하겠소.”


“네.”


“잠시만요!”


실험을 진행하려는 아푸로에게 나가리라가 따지려 들었으나, 아푸로가 그녀를 제지하였다. 잠시 가만히 있어 보라는 그 행동에 그녀는 따지고 싶었지만 네리아 역시 괜찮다고 말하였기에 결국 그녀는 상황을 따라가기로 하였다.


나가리라가 얌전해지는 걸 본 아푸로는 곧 품에서 은색의 회중시계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아푸로가 만든 과거를 수정하는 기계였고 그것을 보며 네리아가 물었다.


“시계?”


“그렇소. 이건 시계요. 물론 그냥 시계는 아니고 과거를 바꾸는, 사소한 기능이 탑재된 시계일 뿐이오. 오늘의 주인공이지.”


“그게요?”


네리아가 미심쩍다는 듯 그의 손에 들린 회중시계를 보았다. 그녀는 그런 작은 시계가 과거를 바꾸는 엄청난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듯하였다. 나가리라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에 제작자인 아푸로를 보았다. 


“그렇소. 다만 알다시피 아직 안전성은 검증되지 않은 물건이요. 아직 미완성이지.”


“그 말은 아예 작동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네리아의 물음은 나가리라 역시 생각한 것이기에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푸로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절대. 그건 장담을 할 수 있소. 그 시계는 작동할 것이오.”


당당히 말하는 아푸로를 보며 나가리라는 속으로 동의하였다.


‘사고를 하도 쳐서 그렇지 확실히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제발 사고 좀 치지 말라고 생각하며 노려보는 나가리라를 느꼈는지, 아푸로는 그녀의 눈치를 몇 번 보고는 이내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말을 이었다.


“실험은 몇 단계 걸쳐서 진행될 예정이오. 단계라기보다는 시간 단위로 보는 게 맞겠군.”


“짧게 짧게 진행할 건가요?”


“정확하네. 조수. 첫 시작은 1분 정도로 짧게 할 거야. 설사 실패해도 큰 부작용이 없게끔. 그다음은 몇 분 정도. 그렇게 늘려갈 생각이네.”


아푸로와 나가리라는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네리아는 그런 둘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녀가 이해를 못 한 것으로 생각한 아푸로가 설명을 해주었다.


“괜히 위험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분명 아가씨는 위험할 수 있다는 항목을 이해하고 동의하였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위험에 빠뜨려서 실험할 생각은 없소이다.”


네리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이해한 거라 판단한 아푸로는 이내 시계를 열어보았다.


“어쨌든 조심하는 건 언제나 좋지. 어쨌든 말인데, 지금 당장 뭔가 사고를 하나 좀 쳐주지 않겠소?”


“네?”


“사고 말이오. 사고. 아무거나 사고 좀 쳐보시오.”


당황해하는 네리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푸로는 그저 시계만을 보며 같은 말은 반복하였다. 네리아는 영문을 몰라 지금 그가 농담하는 건가 싶어 아푸로의 눈치를 살펴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시계만을 볼 뿐이었다.


“사고 모릅니까? 사람 난감하게 만드는 일 말이오. 아무거나 좋으니 서둘러 주시오.”


네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결국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몫으로 있던 차가 담긴 컵을 들고는 곧 그것을 뒤집어 버렸다.


그러자 남아있는 찻물이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처럼 떨어져 탁자를 적셨고 찻물이 튀어 오르자 나가리라가 놀래 뒤로 몸을 빼었다.


“이, 이렇게 하면 되나요?”


사고를 치라기에 행한 행위였지만 네리아는 불안한 얼굴로 지시를 한 아푸로의 눈치를 보았다. 아푸로는 자기 옷에 튄 찻물 따윈 신경도 안 쓰며 입을 열었다.


“ 7시 10분. 좋아.”


아푸로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시계를 네리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갑작스레 시계를 받은 그녀는 당황하며 아푸로에게 물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간단하네. 일단 다이얼을 맞추게, 연도는 내버려 두고 내가 방금 말한 7시 10분으로. 돌렸나? 그다음 시계에 대고 말하게. 차를 엎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조수! 자네는 얼른 기록하게!”


빠르면서도 정확히 지시하는 아푸로의 말을 들으며 나가리라는 급한 대로 실험 동의 서류의 뒷면에 빠르게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네리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가 하라는 대로 침착하게 따라 하였다.


“찻, 찻잔을 엎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네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계에 대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가라라와 아푸로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의 일어날 변화를 살펴보았다.


.


“어쨌든 조심하는 건 언제나 좋지. 어쨌든 말인데, 지금 당장 뭔가 사고를 하나 좀 쳐주지 않겠소?”


“네?”


“사고 말이오. 사고. 아무거나 사고 좀 쳐보시오.”


당황해하는 네리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푸로는 그저 시계만을 보며 같은 말은 반복하였다. 네리아는 영문을 몰라 지금 그가 농담하는 건가 싶어 아푸로의 눈치를 살펴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시계만을 볼 뿐이었다.


“사고 모릅니까? 사람 난감하게 만드는 일 말이오. 아무거나 좋으니 서둘러 주시오.”


마이페이스로 말하는 아푸로를 보며 네리아는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었고 나가리라는 그런 아푸로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네리아양이 찻잔을 뒤집어서 찻물이 튀겠구나.’


나가리라는 그리 생각하며 아직은 깨끗한 아푸로의 옷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


“저…. 혹시….”


“잠깐?”


세 명의 사람에게서 각기 다른 문장이 튀어나왔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당황이었다.


“저기? 제 착각인가요? 저기?”


저도 모르게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던 네리아는 멍한 얼굴로 그 상태에서 입을 열었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아푸로가 다급히 나가리라에게 물었다.


“조수! 지금 몇 시인가? 지금!”


아푸로의 외침에 나가리라 역시 정신을 차리고는 빠르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7시 9분 54초.


시곗바늘은 그리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그녀는 멍한 얼굴로 시간을 그들에게 알렸고 그들 역시 멍한 얼굴로 이내 네리아 손에 있는 은색의 회중시계를 바라보았다. 


“성공한 건가요?”


네리아가 상황을 이해하고는 그들을 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정작 아푸로 본인도 단 한 번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얼떨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은 성공한 것 같군. 아니지! 조수! 지금 당장 네리아양의 몸을 살펴보게. 아니야! 네리아양이 직접 말해주게. 어디 몸이 불편한 곳이 있는가?”


아푸로가 흥분한 얼굴로 그리 말하고는 이내 자기 몸도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는 이상이 없는가 살피는 그의 행동에 나가리라 역시 슬쩍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문제없어.’


그녀는 자신의 손과 발이 멀쩡히 달린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하고는 네리아를 쳐다보았다. 네리아 역시 아무 이상이 없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들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참지 못한 아푸로가 나지막이 한 마디 내뱉었고 그것은 그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었다.


“서, 성공해버렸다.”


이번만큼은 나가리라도 그런 그의 말에 태클을 걸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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