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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키의 게임 및 영화 리뷰 Fate/Stay night, Fate/Zero

Broadcaster 어스키
2021-04-07 17:33:10 440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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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모두가 추천하던 페이트 제로를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2006년에 제작된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오리지널을 볼때는 굉장한 고역이었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느정도 시대상을 감안 할 필요가 있겠지만 인물들의 대화나 연출, 긴장감을 주기 위해 고의 패배하는 뻔한 전개, 아서왕이 여자로 등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황당무계의 끝을 달렸다. 가장 눈 뜨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과거의 인물을 소환해 강림시켜 실체화 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마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 마력 공급의 행위가 성교라는 것이었다. 동료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살려 줬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성교를 해버리는 장면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주인공의 적대 세력들은 괴물이거나, 광인이거나, 사악하거나, 건방지거나 하는 등 성격적, 인격적 문제가 저마다 하나씩 달려 있는 상태였고 이들을 징벌하는, 비교적 정상적 사고 방식을 가진 주인공 일행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분이 주어졌다. 그나마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싶은 캐릭터들은 중후반부에 드라마틱한 순간도 없이 순식간에 리타이어 해버려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싸움에 일개 고등학교 학생 3명과 교사 1명, 이국의 18세 소녀, 동네 신부님이 승부를 본다니 너무나도 가당찮았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총은 굉장히 위험한 도구로 묘사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총질 한번 하지도 않는다. 이 운명을 결정짓는데 집착하는 명문 가문 역시 셋이나 있음에도 이들이 직접적으로 간섭하지도 않는다. 너무 구멍이 많지 않나? 사람들이 어째서 이 작품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가 나로서는 매우 어려웠다. 이런건 그냥 위인 모독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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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작품 전개의 끝을 보게 만들어 준 것은 장르물로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기본 설정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서로의 정체를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칼 끝을 겨누고 싸움을 맞댄다. 수십번의 칼부림이 오가도 쉽사리 결판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인물들의 정체가 공개된다. 공개되는 정체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업적을 지닌 위인. 그 순간 '아, 이 싸움은 누가 이기겠구나' 하고 시청자들의 머리속에 두 사람의 싸움이 판가름이 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업적을 가진 사람을 데려와 그들을 맞대결 시키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식으로 결판날지 대충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드림 매치 형식의 성격도 띄게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관우와 아킬레스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라는 것들 말이다. 이런 일차적, 장르물로서의 흥미가 내가 페이트를 마지막까지 볼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이나 사상 같은 것들은 구체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칼부림 하고 정체가 까발려 지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마저도 오래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볼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주인공 에미야 시로였다. 에미야 시로는 이젠 클리셰가 되어 너무나도 낡아 빠져버린, 정의 무새 주인공의 원형 그 자체였다.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며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약자들을 돕고 악한을 징벌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스타일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1차적이어서 취급도 안해준다. 심지어 일본 서브컬쳐 계열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대게, 에반게리온의 등장 이 후로 주인공의 성격이 수동적인 부분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었다. 너도나도 이카리 신지를 따라하다 보니 죄다 뭘 할 의지를 안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이야 그럴 수 있다. 주 골자가 싸우기 싫어하는 소년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이야기니 말이다.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지 않아하는데, 부모가 자신의 욕심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작품이니 말이다. 그러나 너도나도 이 주제를 따라하기엔 좀 질리지 않은가? 


그러나 에미야 시로는 좀 달랐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능동적이고 무모하다. 몇번의 죽을 위기도 넘기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관철하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가져야 할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서브 컬쳐계열 캐릭터면서도 굳은 의지의 전형을 가진 캐릭터다. 심지어 작중에 등장하는 에미야 시로의 또 다른 자아는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아 이상을 포기하고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탈피하기도 한다. 이런 그를 보며 어찌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엔딩을 보고 난 후에도 '어째서 그는 후에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까' 라는 고민도 하게 만드는 여운까지 준다. 만약 주인공이 에미야 시로가 아닌 다른 캐릭터였다면 보다 못해 뛰쳐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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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두가 추천하는 페이트 제로를 봤다. 실로 일본 서브 컬쳐계의 금자탑이다. 작품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인물들의 사상들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과거에 어디에서 한가닥 하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이끌고 어떤 업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파해 설득하는 것부터 하지 않아야 겠는가. 작품은 역사속 영웅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생각은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것을 대입해 시청자들을 납득 시킨다. 사실 각본 자체를 그냥 서술하게 된다면 꽤나 손발이 오그라 든다. 배경은 현대인데, 왕이 어쩌구 하면서 이야기 하려니 눈에 들어오겠는가. 더군다나 전작에서 왕이라고 말한, 마력 공급(...) 받던 소녀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어디 귀에나 들어올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뛰어난 성우들의 연기와 작화, 연출력으로 극복해 마치 진짜 왕들의 대결처럼 보이게 승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주인공 세이버, 기사왕의 사상은 올바른 길이다. 높은 직책을 지니고 있다면 누구보다도 앞서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댓가가 크다 할지라도 모든 짊을 지어지고 스스로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투쟁의 짊을 지고 살아갈 순 없기에 자신 스스로가 희생할거라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현신이라고 봐도 된다. 자리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야 된다고 말하지 않던가. 실로 기사의 도라고 할 수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아서왕의 왕도야 말로 진정한 왕의 덕목이라고 봐도 된다. 그러나 이 덕목의 한계는 뚜렷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욕심이 있고 만들고 싶은 이상향도 존재한다. 그러나 아서왕은 끝없는 희생을 강요한다. 자리의 무게를 아는 자라면 마땅히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올바르다. 막말로 모두가 아서왕 같은 바른 생활을 하기는 힘들지 않던가. 작중 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여성 혼자서 이런 짐을 짊어간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며 지나치게 고고하고 순수하다고 평한다. 


이에 또 다른 주인공인 정복왕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한다. 왕이란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끝없는 투쟁을 통해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상향과 꿈을 심어줌으로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말이다. 마땅히, 인간으로서의 욕심을 무한히 드러내며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야망으로 치환시켜 지구를 다 누빌 정도의 웅대함을 누려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끝없는 희생만을 강요하며 야망을 단호히 잘라내다간 부하의 길을 열어주지 못해 언젠가는 원망을 듣게 될거라고도 한다. 신하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 욕심을 이뤄내게 해 줄 수 있는 것 역시 왕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받아치기다. 진정한 정복왕이 내보일만한 야욕이라고 할수 있지 않는가. 


세 번째 주인공인 영웅왕 길가메쉬는 다른 말을 한다. 왕이란 이상과 욕심을 넘어서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는 존재여야 된다고 말이다. 압도적 무력과 함께 쾌락과 향락에 젖어 그것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을 무릎 꿇게 만들고 그 정점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보게 될 지라도 그것은 왕 보다 약한 이들의 푸념일 뿐이다. 그가 다른 이들을 잡종이라 부르는 이유도 '자신 외에는 모두 왕이 될 자격이 없는 규격의 인간'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영웅이라면 분명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세계의 유일한 사람인데, 누가 감히 나에게 덤비겠는가? 길가메쉬의 이런 위험한 사상은 자신의 규격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크기의 인간, 코토미네 키레이를 각성시키는 굉장한 실책을 저지른다. 물론 그는 실책이 아니라 깨달음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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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종으로 부리는 마스터 역할의 인물들 사상들 역시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키리츠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세상의 싸움을 완전히 단절 시키고 싶어하는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하고 누군가는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키리츠구는 이런 현실에 타협해 자신이 악역이 되기로 결심한다. 고고한 이상을 가진 아서왕과 어쩌면 가장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둘은 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허심탄회하게 딱 10분만 얘기해도 될 것을 말이다. 하긴,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는 꽉 막힌 사람들이 어디 10분이나 대화를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척점에 있는 코토미네 키레이는 실로 위험한 인물이다. 코토미네는 마음속 깊이 인간의 추악한 면모의 끝을 보고 싶어한다. 그는 죽음의 눈 앞에서야 인간의 진짜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신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속마음이 오래전부터 억눌려 왔었다. 그러나 그는 향락을 추구하는 길가메쉬의 설득으로 변화하게 된다. 인간의 추악함을 보기 위한 각본과 줄거리를 만드는데 열중하게 된다. 이윽고 그는 순수함을 주장하는 사람을 파멸 시키는데 몰두한다. 문제는 그 파멸의 끝이 인류 전체라는 규격인 것. 길가메쉬는 일찌감치 그의 규격과 그릇의 크기를 가늠한지 오래였던 것이다.


세 번째로 비중이 많은 마스터인 웨이버 벨벳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애송이다. 헌데, 어떻게 그것을 입증하겠는가. 자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은 편견으로만 가득차 있다. 우선 순위의 명망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도둑질을 통해 알렉산더를 소환한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허풍으로 치부했지만 자신을 독려시키고 기개를 깨워주는 그 모습을 보며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다. 왕의 끝없는 투쟁을 보며 이상과 꿈을 그린다. 청년의 작은 소망은 이내 웅대한 기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페이트 제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완성형 인물이란 것이다. 그 중간에 웨이버 벨벳을 끼워 넣어 알렉산더의 활약상과 함께 성장형 캐릭터로 돋보이게 만든점은 이 애니메이션이 포함하고 있는 크기와 다양성을 증명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페이트 제로는 등장인물들의 사상적 완성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납득시키고 매료되게 만든다. 드디어 06년판 페이트에서 해내지 못했던 판타지 위인 배틀을 보게 된 것이다. 시행착오와 마력 공급(...)에 대한 설정 번복이 있었지만 뭐 어떤가. 이만하면 됐지 않던가. 왕들의 배틀이 현신한 절정의 장르물이란 찬사는 충분히 받을 만하지 않는가. 물론 다른 페이트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약간의 두려움은 있다. 그때마다 페이트 제로를 떠올려야 할까. 이건 작은 고민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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